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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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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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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9
글자수 :
3,143,319

작성
20.08.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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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추천
4
글자
10쪽

(35막) 성급한 각성 (7)

DUMMY

“영혼석. 덜린들이 ‘움브라스톤’이라 말하는 것이죠. 워낙 땅 깊숙한 곳에 묻혀있어 우리 인간들은 발견하기도 어렵거니와, 겉으로 보기엔 그저 시커먼 돌덩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치를 가늠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그 실체는, 케테르의 용들에게 학살당한 ‘예전 주인’들의 영혼이 용의 불길로 인해 결정화된 채 갇혀있는 겁니다.”


“결정화?”


크리스의 의문에, 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우리는 혈마법에 의해 묶이지 않는 이상, 육신이 죽으면 영혼은 리벨리움의 바다로 흘러가게 되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창조주인 사도와 악마들의 배려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예전 ‘주인’들의 창조주였던 에일로피아는 자신의 권능을 나눠줄 정도로 너그럽지 못했죠. 대지모신은 실패작들의 영혼 잔재가 남아있는 걸 원치 않았지만, 용들의 화염이 너무 뜨거웠던 게 어쩌면 역으로 작용했는지도요.”


“그게 지금 내가 보고있는 거랑 무슨 관련이 있는데?”

언제나 곁에 있던 디미르는 다른 전선으로의 투입을 준비하기 위해 자리를 지웠고, 자히르나 크라트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크리스는 벤과 단둘이 눈앞의 ‘광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고작 백 명. 그것도 잘 훈련된 기사가 아닌, 햇병아리나 다름없는 백 명의 전투마법사.

그랬던 그들이, 정예기사 백 명도 뚫어낼 수 없을 것 같았던 방어벽을 무너트리고, 더 나아가 전초기지의 제국군들을 섬멸, 가장 까다로웠떤 서쪽의 보급로를 가볍게 돌파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크리스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그들의 활약 그 자체가 아닌, 바로 전투방식이었다.

“기사도 아닌 마법사들이 체술과 검술, 완력으로 제국의 기사들을 압도하고 있잖아. 심지어 저렇게 난리를 치고 있는데도 영력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있어.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간단해요. 영혼석 안에 갇혀있던 덜린족 전사에게 몸을 빌려준 겁니다.”


벤을 돌아보는 크리스의 표정은 간단하다는 벤의 설명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었다.


“빌려줘? 몸을?”


“영혼석을 덜린족이 제련, 절반의 해방상태로 만든 뒤에 영도율이 높은 연철로 그릇이 될 마법사의 사지와 연결하는 거죠. 즉,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영혼이 겹쳐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게 가능하다고?”


웬만한 일에는 놀라움이나 감탄을 내뱉지 않는 크리스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도 어쩔 수가 없었던 모양.


“뭐, 그렇다고 해도 9할 이상이 덜린족의 기술에 달려있는 거여서요. 우리가 관여한 건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죠.”


“그럼, 왜 덜린족이 이렇게까지 협조를 해주는 건데? 보상이 뭐길래?”


덜린의 문명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자가 반도에 몇이나 남아있을까. 크리스도 모르기에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거겠지. 벤은 얇게 웃었다.


“그냥, 뭐어. 우리 왕비님이 저들을 이해해주었고, 제가 가지고 있었던 미래관과 저들의 미래관이 묘하게 맞아떨어졌던 거죠.”


“미래관?”


크리스는 그 이상 파고들 수 없었다.

절벽 아래의 전장에서 폭음과 함께 엄청난 함성이 솟아오른 탓이었다.


“적의 예비대겠네요. 대처가 빠른데요?”


“이렇게 쉽게 뚫릴 줄은 몰랐을 테니, 아마 서쪽을 담당하고 있는 예비대 중 많은 인원이 투입됐겠지. 틈이 생긴 거야. 지금부터는 속도전이다. 놈들이 오스타이나의 주민들에게 뭔짓을 하기 전에 빠르게 치고 들어가야 해.”


“.......글쎄요.”

굳은 얼굴로 턱을 쓰다듬는 벤.

“어쩌면, 저들은 처음부터 오스타이나 주민들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있었을 수도 있어요. 그냥 미끼였던 거죠.”


그런 벤을, 크리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뭐?”


“뭐어, 상관없어요.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국군 중 그 누구도 오스타이나를 살아서 빠져나가서는 안 됩니다.”


“.......아하.”

크리스는 이해했다. 벤이 무엇을 우려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걱정마. 네가 공들여 만든 ‘비밀무기’의 정체가 제국에 알려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베이어 그 씹새끼를 포함해서.”


“.......”

균형은 무너졌고, 이제 곧 모든 진입로를 통해 동맹군의 공세가 시작될 것이다. 아무리 정예병과 지형적 이점으로 무장했다 하더라도 곳곳에서 균열이 일기 시작하면 그 붕괴는 걷잡을 수 없이 전장 전체로 번져나갈 터.

그러나 벤은 이 예견된 승리 앞에서 미소를 짓지도, 고양되지도 않았다. 그의 이성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미묘한 불안. 이제까지 몇 번을 전장의 ‘변수’로서 활약하고 작용해온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그 짜릿함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크리스.”


“응?”


“부탁이 있는데요.”


“뭔데.”


“병사 오천만 빌려주실래요?”


“뭐어?”

마치 점심값이라도 빌려달라는 듯한 벤의 태도에 크리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국경수비대까지 끌어와서 때려박는 마당에 오천이 어딨어? 병사는 왜?”


“신경쓰이는 게 있어서요. 예비대라도 어떻게 안 될까요?”


“안 돼. 예비대도 지금 다 퇴로차단에 투입됐다고.”

일그러진 표정과, 짧은 고민.

“보급대 쪽에서 오백 정도는 줄 수 있어.”


“오백......., 뭐, 없는 거 보단 낫겠죠. 부탁 좀 드릴게요.”


통보에 가까운 부탁을 마치며 성큼성큼 절벽을 내려가는 벤. 그런 ‘변수’의 뒷모습을 향해 크리스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살짝 고개를 저었지만, 승리에 가까워지는 전장의 열기가 그녀의 시선을 앗아갔다. 그녀는 벤과는 달리 고양되어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대제국 전사(戰史)의 첫 획이 될지도 모르는 전투의 결과가 눈앞에 있다. 만약 ‘제국 2군단 주력 섬멸’로 맺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시작일 터. 크리스는 당장 검을 뽑아 내려가고 싶은 욕망을 미소로 대체하며, 다시금 지휘관으로서의 시선을 되찾을 수 있었다.







“놀랍네요.”

비꼬는 게 아닌, 순수한 감탄이 베이어의 입에서 새어나온다. 진입로의 안쪽, 구불구불한 협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벽을 맨손으로 타고 오른 보람이 있었다.

“쥬넨, 저게 뭔지 아시겠나요?”


“.......모르겠습니다. 전혀 감도 안 잡힙니다.”

베이어가 무기력한 대답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쥬넨이었지만, 그로서도 이번만큼은 무지를 숨길 수가 없었다.

“마법을 쓰면서 완력으로도 기사들을 압도한다니, 망자의 일종일까요?”


“그랬다면 혈마력의 기운이 느껴졌겠죠. 하지만 혈마력은커녕, 영력도 느껴지질 않네요.”


“.......”


쥬넨은 숨을 삼켰다. 비록 저 불가사의한 부대의 숫자는 적었으나, 그 적은 숫자만으로도 주요 방어선을 돌파, 예비대는 물론이고 전선 전체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베이어는 당장 눈앞의 상황엔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예상이 맞다면, 바로 저들이야말로 카나반이 이스누시아에서 찾아낸 보석이겠군요. 우리가 의도했던 대로 동맹에 균열이 생길 조짐이 보이니, 어쩔 수 없이 내놓은 거겠죠.”


“그럼, 군단장께서는 저들이 아직 정규군에 편제되지 않았다고 보십니까?”


“만약 그랬다면 백 명이 아니라 가능한 최대한의 숫자를 동원했을 테니까요. 물론 저 숫자로도 전쟁의 판도가 달라졌으니, 확실히 위협적이긴 하네요. 영력을 쓰지 않고도 기사를 제압할 수 있는 마법사들이라니. 마법을 쓰는 마법사나, 영력을 쓰는 기사를 상대하는 훈련만을 받아온 기사들에겐 혼란 그 자체겠군요. 어쩌면 제국 기사들의 훈련양상을 아예 바꾸게 될 수도 있겠어요.”


이대로 베이어를 방치했다간 그가 끝없는 탐구와 사색을 이어갈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쥬넨은 무례를 무릅쓰고 군단장의 말을 끊어야 했다.


“장군, 전선이 하나 무너졌으니, 곧 놈들이 대대적으로 공격을 해올 것입니다. 각 진입로의 방어병력을 천천히 물리다가 성에서 농성을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방어선을 뚫어낸 이상, 적들은 속전속결로 오스타이나 탈환을 노려올 것이다. 이는 병력손실을 최대한으로 줄이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오스타이나 주민들의 안전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이는 베이어가 주민들을 인질 삼아 협상을 진행하였으니 당연한 일. 쥬넨은 이런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여 지리적 이점을 계속 가져가기를 청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뇨, 농성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베이어의 여유로움은, 이런 쥬넨의 우려를 허무하게 녹여버린다.


“예? 그게 무슨-”


“방어선은 유지합니다. 대신 쥬넨은 성의 본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와주세요.”


“북쪽?”


“예, 제가 길을 만들어놓겠습니다.”


무언가 더 묻고자 했던 쥬넨. 그러나 어느새 절벽을 올라온 부관에 의해 입을 다물어야 했다.


“장군, 적들이 모든 진입로를 통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쥬넨 장군, 그럼 부탁하죠.”


“예.”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는 군단장의 그림자. 쥬넨은 짧게 한숨을 내쉰 후, 부관이 올라온 절벽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상황은?”


“아직 교전이 시작됐다는 보고 외에는 없습니다.”


“지휘부는 아직 성내에 남아있나?”


“예.”


“알았다. 지휘부로 가지.”

무성한 수풀, 바로 아래는 절벽. 엄폐된 상태에서 전황을 파악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곳이었지만, 아무리 기사의 몸을 가진 쥬넨이라도 신중할 수밖에 없는 가파름이었다. 때문에 그는 발을 딛기 전에 먼저 아래를 조심스럽게 살펴봐야 했고,

“-?!”


갑작스럽게 뒤통수를 스치는 영력의 압박에 쥬넨은 다급히 몸을 틀어 이에 대응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그의 상체가 절벽을 향해 반쯤 넘어가 있는 상태였고, 결국 그는 중심을 잃고 험악한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만다.

짧은 탄식은 전장의 혼란 속에 묻혔고, 근처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쥬넨 정도 되는 기사가 절벽에서 떨어진 것만으로 치명상을 입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에두는 긴 한숨과 함께 욕을 씹었다.


“이런, 씨발.”


작가의말

부족한 글을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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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막) 성급한 각성 (7) +3 20.08.11 113 4 10쪽
388 (35막) 성급한 각성 (6) +1 20.08.03 74 2 11쪽
387 (35막) 성급한 각성 (5) 20.07.28 61 2 10쪽
386 (35막) 성급한 각성 (4) 20.07.22 63 1 12쪽
385 (35막) 성급한 각성 (3) 20.07.16 62 3 12쪽
384 (35막) 성급한 각성 (2) 20.07.10 64 4 12쪽
383 (35막) 성급한 각성 (1) 20.07.05 70 3 12쪽
382 (막간) 조련 +2 20.07.01 76 3 11쪽
381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11) +1 20.06.27 73 2 12쪽
380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10) +1 20.06.25 69 2 12쪽
379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9) +4 20.06.22 136 4 16쪽
378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8) +4 19.09.25 123 5 10쪽
377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7) +2 19.09.20 195 4 15쪽
376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6) 19.09.15 90 4 11쪽
375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5) +2 19.09.09 99 4 10쪽
374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4) 19.09.04 106 2 12쪽
373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3) 19.08.30 85 3 12쪽
372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2) 19.08.24 105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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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 (막간) 저 너머 +2 19.08.13 101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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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10) 19.08.02 97 3 14쪽
367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9) +2 19.07.28 112 3 13쪽
366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8) 19.07.23 96 3 13쪽
365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7) +5 19.07.19 149 2 16쪽
364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6) 19.07.13 136 1 15쪽
363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5) 19.07.07 139 2 13쪽
362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4) 19.06.16 13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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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2) +1 19.06.02 166 4 15쪽
359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1) 19.05.26 155 3 17쪽
358 (막간) 만년설을 녹이는 방법 19.05.18 161 4 14쪽
357 (32막) 갈림길 (10) +3 19.05.12 139 5 15쪽
356 (32막) 갈림길 (9) +2 19.05.07 168 7 15쪽
355 연재 관련 +5 18.11.28 318 7 1쪽
354 (32막) 갈림길 (8) +2 18.11.20 285 5 13쪽
353 (32막) 갈림길 (7) +2 18.11.15 18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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