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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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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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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6쪽

(33막) 겨울이 끝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7)

DUMMY

사도, 혹은 악마 플로닉스의 은총, 혹은 저주.

그 혹한의 숨결은 공국의 심장부인 ‘버닝프로스트’에도 확실히 닿아있어, 검은빛의 도시를 끊임없이 시린 하얀색으로 물들이기 위해 몰아치는 중이었다. 바람도 없이 묵직한 눈송이만으로 시야가 위협받는 환경. 그러나 이러한 ‘환경’에 그 누구보다도 익숙한 니에브의 지휘관들은 어떻게 이에 대처해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천막부터 쳐라! 방수포 있는 대로 다 가져와! 바퀴 하나라도 얼면 공병대 전원 저녁밥 없을 줄 알아!”

용혈석으로 만들어진 성벽을 무너트리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때문에 공성탑과 사다리차 위주로 마련된 공성병기들이지만 눈에 젖어 바퀴가 얼어버린다면 그야말로 낭패. ‘일정’에 맞춰서 곧바로 전투태세에 들어가려면 무엇보다도 공성병기의 존재가 중요했기에, 1진을 맡은 유리소프 중령이 직접 발로 뛰어다니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야, 에이지!”


“예, 중령님.”


하얀 장벽을 뚫고 달려온 부관을 향해 유리소프는 미간을 구긴다.


“아직 뭐 하달된 거 없어?”


“예, 내부 공작조와의 연락이 두절됐답니다.”


“그럼 실패한 거 아니야?”


“통신은 일단 확실하게 끊은 것 같던데요.”


“.......젠장, 지금 우리가 뭘 하려고 하는 건지 제대로 알고 있긴 한 건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모든 게 끝장이라고! 영주님들은 도대체 뭘 하고-”

말을 맺지 못하고 잠시 숨을 삼키는 중령. 그녀의 초조함은 이제 ‘버닝프로스트’가 아닌 반대편을 향해 있었다.

“.......벤조즈 영주의 병사들은?”


“오늘 저녁에는 도착한다고 전문이 왔었습니다.”


“이 날씨에 그 속도면 나쁘진 않네. 어찌 됐든 자정 이전까지는 마무리할 수 있겠어.”


“예, 그럼 일단 중대장들에게 방한 대책을-”



“대대장님!”


폭설을 뚫고 들려온 새로운 목소리. 유리소프가 고개를 돌려 통신병의 얼굴을 마주한다.


“뭐야?”


“정찰대로부터 보고입니다! 버닝프로스트의 동문이 개방되었고, 성벽 위에 있던 수비대가 모두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뭣?”


경악하는 대대장. 그녀의 보좌관이 상관을 대신하여 통신병에게 한 발자국 다가선다.


“본대에 보고는 했나?”


“옛! 지침을 내리기 전까지는 일단 대기하라고.......”


“대기라니?! 버닝프로스트 내부에서 분명 뭔가 일이 일어난 거 아니겠나? 이건 기회야!”


라며 눈을 빛내는 유리소프 중령이었지만, 보좌관은 그녀의 흥분을 방관하지 않는다.


“아무리 적의 숫자가 적다지만 아직 내부의 상황을 확실히 모르는 상황에서 먼저 움직이는 건 위험합니다, 대대장님. 게다가 ‘권성’의 소재도 아직 파악되지 않았고요.”


“권성은 북부에 나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충성파 영주들을 모조리 잡아낸 지금 대공 본인 말고는 주의해야 할 기사전력도 없어! 끽해야 동맹이니 뭐니 소꿉놀이하던 사절들이잖냐!”


“아무리 그래도 본대와의 연계도 없이 선발대 먼저 움직이는 건 위험합니다. 명령을 기다리시죠.”


지극히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보좌관의 사고회로. 잠시 불이 붙었던 유리소프도 혀를 차며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저게 정말로 수작 부리는 게 아니라 기회라면 아까운데.......”


“.......”

대대장이 이렇게 성급하고 조급해하는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이 끝난 뒤 일부 영주들끼리 ‘새로운 질서’를 정립할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는 이득을 위한 경쟁이 시작될 터. 그렇지 않아도 지금 사병을 이끌고 이곳에 합류한 영주들의 대부분은 이번 ‘반란’에 가담하면서도 단지 ‘숟가락만 얹는’ 상황으로 끝날까 봐 초조한 자들이었다.

물론, 자신의 주인도 그런 ‘초조한’ 영주들 중의 하나. 반드시 공을 세우라는 그의 명령을 받은 이상, 유리소프가 단순히 선발대에 임명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지는 않으리란 사실을 보좌관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역으로 저희가 수작을 걸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수작? 어떤?”


“만약 이게 적의 함정이라면, 이쪽의 병력을 한 곳에 집중시키려는 의도일 겁니다. 이거에 낚인 것처럼 열려있는 동문으로 일부 병력을 이동시키고, 그사이 주력과 공성병기들을 남문이나 북문으로 움직여서 성을 공략하는 거죠. 폭설 때문에 시계도 나쁘니 발각될 확률로 적을 겁니다.”


“흐음, 그런데 우리 병력만으로 가능할까?”


“2천으로 도시 전부를 장악하기는 어렵겠지만, 만약 성공하여 성벽과 성문을 장악한다면 본대도 어쩔 수 없이 합류할 겁니다. 이를 통해 승리하게 된다면 공로는 우리 선발대의 것이 되겠죠. 그 어떤 견제도 아무 소용 없을 겁니다.”


만족스러운 답이었을까.

아니, 그 여부는 물어볼 필요도 없이 유리소프의 얼굴에 그대로 떠올라있었다.




=====




“돌격!”


얌전히 흩날리던 눈송이들이 흔들린다. 고함에 이어 함성이 모든 눈을 녹일 기세로 거칠게 울려 퍼졌고, 용혈석의 성벽이 바로 눈앞에 다가올 때까지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은 병사들은 허리까지 올라온 눈을 헤치며 돌진한다.

쌓인 눈에 거친 길까지. 만약 성벽 위에서 궁병이나 소총병, 전투마법사의 공격이 있었다면 꽤나 피해가 나왔을 법한 환경이었지만, 병사들이 성벽에 사다리를 걸고 열려있는 성문으로 접근할 때까지도 버닝프로스트에선 그 어떠한 반응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에이지, 북이랑 남쪽은?”


“포진 완료입니다. 이쪽의 신호에 따라 동시에 공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자아, 어서 물어라.......”


토종 니에브인이기에 추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유리소프의 입술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오직 초조함뿐. 그러나 그녀의 입술에 깃든 초조함이 미소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적이다!”


“막아라!”


기다렸다는 듯이 열린 성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일군의 물결. 유리소프가 미소를 지으며 보좌관에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


“대대장님! 적입니다!”


“나도 봐서 알아. 어서 신호를-”


“아뇨, 북문과 남문입니다! 거기도 적군의 매복이 있었습니다!”


유리소프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각개격파를 노린 건가? 멍청한 녀석들이 오만하기까지 하구나! 맞서 싸워라! 이대로 적들을.......”

그 순간, 대대장의 이성을 비집고 들어온 하나의 단어.

“.......방금 뭐라고 했지? 매복?”


눈덩이가 휘날린다.

하늘에서 내리던 눈송이에 초자연적인 현상이 덧붙여진 건 아니었다.

쌓여있던 눈이, 뭉쳐있던 눈이 곳곳에서 크게 솟구치며 또 다른 눈발을 만들어냈고,

새하얀 기만 속에 숨어있던 수백의 그림자들이 동시에 튀어나와 주변에 있던 병사들을 도륙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유리소프가 ‘매복’이라는 단어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다, 당황하지 마라! 적의 숫자는 미미하다! 이대로 밀고 들어가!”

분위기상 선수를 빼앗긴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유리소프의 눈은 아직 전황을 놓지 않고 있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적의 숫자는 고작해야 이백여 명. 기세 좋게 성문으로 요격을 나선 기병대도 수십 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적은 병력을 북문과 남문에까지 쪼개어 배치해놨으니 적의 전력 그 자체는 보잘 게 없을 터. 여전히 성문은 열려있고, 승리를 위한 활로 또한 건실하다. 대대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성 밖의 적들을 제압해라! 적에게 돌아갈 틈을 주지 마! 성문만 확보하면 모든 게 끝난다!”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문제는,

그것이 그녀의 ‘판단’에만 국한되어있었다는 점이었다.


“대, 대대장님!”


“.......뭐냐, 저건.......?”


분명 성문으로 요격을 나선 적의 기병은 수십 기뿐이었다.

두껍게 쌓여있는 눈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상황에 저런 규모의 기병대가 나서봤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라고 생각했다.

그 기병대의 선두에서,

먹색의 잔영이 춤을 추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흐응~, 저게 지휘관인가?”


군마 위에서 자신의 키보다도 큰 세검으로 형상화된 흑도, ‘오미누스 움브라’를 휘두르던 지나가 미소와 함께 새빨간 혀끝을 씹는다.


“음? 뭐가 보이긴 해?”


마찬가지로 군마를 탄 채 그녀의 후위를 담당하고 있던 로빈이었다. 나름 기사로서의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부한 그였지만, 지금 그의 시야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당황한 적병의 얼굴 몇몇과 새하얀 ‘장벽’뿐. 그러나 ‘나이트 마제스티’의 샛노란 눈동자는 수백, 수천의 눈송이 너머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로빈.”


“응?”


“잠깐 지휘 좀 부탁할게.”


“응, 다녀와.”


기사로서의 그녀.

그 판단에 대해 막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이것이 ‘흐름’의 운명을 버리고 자신과 함께 해준 이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자 믿음.

그 마음을 알았지만, 키스를 해주기엔 군마와 군마의 사이가 너무 멀었기 때문에 검을 쥐지 않은 서로의 손을 맞잡는 것으로 지나는 만족한다. 멀어지는 손끝에 미련이 남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 이따가 보상해줄게~♥”


“헤헷.”




“헤헷-은 무슨.”


“총 내리시죠, 각하.”


“어이쿠, 나도 모르게 그만, 헤헷.”


“헤헷-은 무슨, 각하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찌질한 질투로 동맹을 박살 낼 생각입니까?”


“장난이야, 장난.”

로빈과 지나를 향해 있던 권총의 총구를 내리며 웃어 보이는 그륜. 그는 재규의 잔소리가 다시 이어질까 두려워 탄창이 비었다는 사실도 재차 확인시켜준다.

“그나저나 니에브 사람들은 이런 눈밭 속에서 잘도 싸우네.”


“뭐어, 평생 해왔던 일이니까요.”


“눈밭에서 싸우는 건 익숙해도, 눈밭에서 같은 니에브인을 죽이는 건 별로 안 익숙하겠지.”


“.......”


그새 지저분하게 올라온 수염에 흐릿한 미소. 어떻게 보면 한없이 가벼운 인상의 대통령이지만, 그의 눈동자는 확실하게 병사들의 얼굴을 담아내고 있었다.


“남문이랑 북문 쪽은?”


“이곳 상황이랑 비슷하겠죠. 남문엔 블린저 경이랑 렌이, 북문엔 대공과 권성이 있으니.”


“그럼 일단 초전은 성공적이라는 거네.”

탄약이 없는 이상 자신의 일은 공식적으로 끝났다는 듯, 그륜은 전투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권총을 허리춤에 쑤셔넣었다.

“성벽 쪽 좀 마무리해줘.”


“예.”


빠르게 모습을 감추는 도복의 사내. 그륜은 자신의 경호실장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 어설픈 동작으로 주인 잃은 군마 위에 올라선다.


“대충 정리된 것 같습니다요.”

그런 그륜의 목적은 다름 아닌 로빈이었다. 그제야 그륜의 존재를 눈치챘다는 듯, 로빈은 말머리를 반쯤 돌려 그륜을 맞이한다.

“통신이 안 돼서 북이나 남문의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뭐어, 대충 여기랑 상황이 비슷하겠죠?”


“추운데 고생하셨어요. 굳이 안 나오셨어도 됐는데.”


이것은 한 국가의 수장으로서의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것일까, 아니면 기사가 아닌 한 명의 인간을 걱정해 주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그륜은 맛있게 로빈의 호의를 받아먹는다.


“고생은 여러분들이 하시는 거죠, 뭐. 저쪽 본대는 움직일 생각이 없나 보죠?”


“하하, 좀 더 많이 걸려들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본대가 움직였으면 우리 쪽이 오히려 더 곤란했을 겁니다.”


“흐음, 글쎄요. 만약 ‘변수의 검성’이 여기 있었다면, 이대로 병력을 규합해서 본대를 한번 찌르는 쪽으로 한발 더 나아가지 않았을까요?”


“.......”


로빈은 미소를 유지한 채로 그륜의 얼굴을 바라본다.


‘벤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물론 로빈도 거기까지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지형과 환경, 그리고 상대방의 심리를 이용한 작전을 세워서 유효타를 먹인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래봤자 이들은 선발대. 궤멸시킨다 해도 전체 전력의 2할을 깎아내는 수준이다. 여기서 더 타격을 주려면, 혹은 여기서 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면, ‘친구’는 분명 예상치 못한 이 틈을 노리고 2차 공격을 감행했을 것이다.


“아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이 방면엔 쥐뿔도 모르는 제가 어떻게 감히 기사분들의 역량을 재려고 하겠습니까.”


“맹주라고 우길 땐 언제고!”


“에이, 그거야 정치적인 면에서 그렇단 얘기고.”

일단 ‘맹주’를 부정하진 않는 건가-.

로빈은 쓴웃음을 삼켰다.

“뭐어, 그런 의미에서 제가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로빈?”


“뭘요?”


“로빈과 벤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으음?”


이건 또 예상치 못한 방향의 질문. 불쾌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흥미를 보여야 하는 건지 로빈은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하하, 질문이 좀 애매했죠? 그럼 이렇게 여쭤볼게요. 왕과 검성이라는 직책은 일단 떼어놓고서, 어째서 벤은 결과를 내는 지휘관이지만 인간으로서는 사랑받지 못하고, 어째서 로빈은 인간으로서 사랑받지만 지휘관으로서는 벤에게 열등감을 느껴야 할까요?”


“아니, 저는 딱히 벤에게 열등감은-.......”


무의식적으로 따지고 들려던 로빈이었지만, 곧 그륜의 표정을 보고서 말을 삼킨다. 그가 굳이 ‘열등감’이란 단어를 사용한 건 질문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끌려는 의도였음을 간파한 것이다.


“듣기로는 두 분께서 어렸을 때부터 함께한 친구 사이였다던데. 뭐어, 제가 두 분이 어떤 일을 겪어오셨는지, 어떤 이상을 품고 계시는지 어찌 알겠습니까만, 사실 1선에서 요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르는 거대한 척도가 하나 있습니다.”


“.......척도?”


“‘희생’이죠.”


“흐음.”


어느덧 검신 위로 붉은 기름기를 머금으며 눈이 쌓이고 있었기에, 로빈은 검을 털어내고 검집으로 되돌려야 했다.


“같은 환경, 같은 성장. 하지만 당신에게는 ‘혈통’이란 거대한 기회가 있었던 것에 반해, 벤에게 있는 것이라곤 남들보다 조금 뛰어난 수준의 마법사 기질. 하지만 그는 그마저도 ‘검성’이라는 이름 아래 버려버렸습니다. 숲속에서 평생 평화롭게 이어질 예정이었던 자신의 ‘안식’을 버렸고, 인간으로서의 양심, 인간으로서의 평판, 그리고 사랑까지.

그는 이 모든 게 자신의 유일한 인연, 바로 로빈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만, 글쎄요, 어쩌면 그는 로빈을 위해서라면 로빈을 희생시킬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일지도 모르죠.”


“.......”


“바로 이겁니다.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느냐, 더 나아가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있느냐-가 바로 당신과 벤을 가르는 차이점인 거죠.”


“희생말이죠.......”


로빈의 검붉은 시선이 이미 하얀 장벽 너머로 사라진 태양을 찾는다.


“로빈, 로빈은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킨, 희생시켜야 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는 건 축복이라면 축복이고, 위험이라면 위험이겠군요. 언젠간 반드시 그럴 때가 올 겁니다. 내성이 없는 상태에서 맞이하기엔 너무나 큰 시련이죠. ‘변수’만큼은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자기는 뭐 그런 경험이 있었던 것처럼 허세 부리네.”


어느새 뒤에서 눈발을 뚫고 다가온 재규의 일침. 간만에 진지했던 그륜의 입가에 짜증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아니, 씨벌 간만에 사람이 좋은 얘기 좀 하겠다는데 꼭 그렇게 초를 치냐? 성벽 정리하랬더니 왜 벌써 와?”


“정리할 게 없는데요. 상황 종료입니다.”


“뭐야, 벌써?”


재규의 말대로, 성벽 주변으로는 이미 전장의 비명이나 함성이 사라져 있었다. 소음을 대신하여 모여드는 건 혹시 있을지 모르는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병사들의 눈빛.


“.......희생이라.......”


티격태격하는 대통령과 경호실장을 향한 미소를 거둬들이고, 로빈은 다시 한번 눈발의 폭풍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그곳엔,


적 지휘관의 것이 분명한 피를 뒤집어쓴 그의 태양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작가의말

부족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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