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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조회수 :
448,007
추천수 :
12,219
글자수 :
3,143,319

작성
20.08.03 21:32
조회
74
추천
2
글자
11쪽

(35막) 성급한 각성 (6)

DUMMY

“100명?”


크리스의 미간이 노골적으로 일그러진다. 이런 그녀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벤은 빵을 뜯던 손을 멈추고 곧바로 대답을 내놓는다.


“걱정 마세요. 100명이면 됐습니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는데, 기사가 100명이 있다고 해도 진입로 하나 뚫기가 어려운 상황인 건 잘 알고 있지?”


“브린타이나의 기사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제 단원들 100명이면 진입로 하나는 충분합니다.”


“흐응.”

호기심과 의심.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자리잡은 표정으로 크리스는 포크를 내려놓는다. 그녀의 차가운 시선은 어느새 자신의 정면에 앉아있는 사내를 향해 있었다.

“그럼, 저 새끼도 ‘단원’인가?”


‘새끼’라는 적의로 지목당한 데커드가 풉하며 씹고 있던 고기통조림을 절반쯤 내뱉었다. 그러나 양국의 지휘관들이 모인 간부식당에서 웃음을 터트린 사람은 데커드가 유일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설마했던 벤의 즉답.

“데커드 드리브달은 어디까지나 카나반 북부군의 전쟁포로이며, 아군에 협조하는 대가로 최소한의 자유를 보장받았을 뿐이에요.”


“협조? 무슨 협조?”


“그냥 뭐, 통상적인 것들이죠. 포로 본인도 제국에서 버림받은 터라 더 이상 동맹에 위협요소는 없다고 판단, 정보원 자격으로 동행하고 있습니다.”


“뭐, 문제가 있다면 그쪽에서 책임지겠지.”


크리스의 웃음은 납득으로 포장된 일종의 압박. 그 속뜻을 모를 벤이 아니었기에, 그는 가볍고 사무적인 끄덕임과 함께 대화의 방향을 돌렸다.


“그럼 저흰 어느 진입로로 가면 될까요?”


“어디든 상황은 다 비슷하니까, 알아서 해.”


“그럼 서쪽 진입로로 갈게요.”


“.......”


고기를 자르던 나이프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 벤을 바라보는 크리스.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했다.

벤이 언급한 서쪽 진입로는 바로 과거 브린타이나 중앙정부가 오스타이나에 보급을 해주는 데 사용한 주요경로로, 크리스가 가장 먼저 디미르와 ‘엑스클라마트’의 투입을 고려하고 있는 격전지이기도 했다.

그런 곳을 정예 100명과 2개 대대 남짓한 보급부대로 뚫겠다고?


“아, 근데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뭔데?”


“우리쪽이 공격을 시작하면, 곧바로 나머지 진입로에도 병력을 투입해주세요. 되도록 이번 공격으로 끝장을 보고 싶거든요.”


“그건 당연한 얘기니까 걱정 안 해도-”


“절대로-. 오스타이나에서 살아나가는 제국군이 한 명이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알고 있어.”

의문이 들 정도의 자신감과 이어지는 당부엔 순수한 ‘의문’만이 녹아있다. 크리스는 얼굴에 남아있는 가벼움을 지워내야 했다.

“우리가 북쪽과 동쪽 퇴로를 차단하지. 공격부대와는 별개로 운용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 그럼 대장님과 자히르 경도 부탁드릴게요.”


“그래.”


“알겠습니다.”


크라트와 자히르의 대답. 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럼 전 준비하러 먼저 일어나볼게요.”


느긋한 발걸음으로 천막을 빠져나가는 벤. 간이식당에 있는 모든 지휘관이 그 자신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일순간 천막 안은 어수선한 분위기로 물들어간다.


이 때문이었을까.

그 누구도 눈치챈 사람이 없었다.



천막을 나서는 벤이,

목발을 짚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





“.......진짜 우리끼리만 가라고?”


“왜? 문제 있어?”


“으음.......”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벤을 바라보던 고도가 고개를 돌려 뒤로 시선을 옮긴다.

구불구불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오느라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단원들’. 그리고 보급과 뒷정리랍시고 동원된 오백여 명의 비전투원들. 고도는 그들 얼굴에 떠오른 공통된 감정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알고 있겠지만, 추리고 추려서 데리고 오긴 했어도 대부분 전투경험이 전무한 애들이야.”


“괜찮아. 어차피 ‘직접 싸우는 건’ 쟤들이 아니잖아.”


“그래, 직접 싸우는 건 아니지. 하지만 총알이 머리에 박히고 검에 심장을 꿰뚫려서 죽는 건 쟤들이야.”


벤이 고도를 바라본다. 그녀의 입에서 이렇게 ‘남’을 위하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이 신기했던 것이다.


“그건 평범하게 싸우는 군인들도 마찬가지고. 저들도 전투마법사를 희망해서, 그리고 싸우기 위해 이 ‘실험’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지. 좀 시기가 일렀을 뿐이야.”


“그게 문제라는 거야. 시기가 이르다는 거.”


“그러니까 그나마 준비가 잘 된 인원들 100명만 추려서 데려온 거잖아. 뭐가 문젠데?”


“.......”

입을 다물고, 걸음을 멈추는 고도. 그녀의 바닷빛 눈동자는 정면을 향해 있었다.

“.......만약, 이 모든 게 너와 내가 예상한 거에 한참을 못 미친다면?”


“.......”


“내가 받은 영혼석이 특별한 거였고, 사실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라면? 여태까지 우리가 주변에서 쌍욕먹어가며 했던 게 다 헛지랄이었다면?”


“만약 그렇다고 해도, 모든 책임은 내가 질 거야. 너나 마스터가 문제될 일은 하나도 없어.”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보인다.”

카나반 병사들 사이로 침묵이 번져나간다. 언덕 위로 모습을 드러낸 절벽과, 그 절벽 위로 나부끼는 먹색 용의 깃발들. 드높게 길을 틀어막고 있는 목책 아래로는 미처 정리되지 못한 이전 전투의 흔적들이 걸쭉하게 비린내를 풍겼고, 너희들 또한 이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라는 듯, 목책 위 제국군들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흐르고 있었다.

병법에 무지한 고도의 눈으로도 단번에 파악이 되는, 실로 암울한 전장. 그녀가 무언가 말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벤은 뒤돌아 최후미에 있는 보급부대로 성큼성큼 다가서는 중이었다.

“중위.”


“에.”


‘예’와 ‘왜’ 사이의 미묘한 발음. 에두가 마법사 후드를 살짝 위로 들추며 벤과 눈을 마주한다.


“후방 경계 좀 부탁할게요. 그리고 만약 전투원 중에 사상자가 발생하면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반드시.”


“에.”


“시신을 회수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해당 인원이 차고 있는 팔찌와 목걸이, 허리띠라도 수거해야 합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에.”


“그리고 지금부터 보게 될 모든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로빈과 지나에게 전해주세요.”


“.......”


어쩌면, 후방 경계 따위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변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보급과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동원된 오백여 명의 비전투원들. 처음부터 이들의 존재 이유는 중요한 ‘자산’의 회수였던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이 남자를 이토록 자신감 넘치게, 동시에 조심스럽게 만든 것일까.


“고도!”


“어.”


후드를 벗어, 푸석한 먹색 머리칼을 노출하는 벤.

그의 표정에선 언제나 그렇듯 어떠한 감흥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눈빛만큼은, 평소의 흐리멍덩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원들 전투준비.”







“대위님, 적이 빠르게 접근합니다.”


“으응?”


기사는 부하의 보고에 당황했다. 로브와 후드를 둘러쓴 100여 명의 마법사를 포착했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 그는 당연히 아군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온 ‘청소부’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청소부’들은 이쪽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방어막을 전개하고 천천히 접근하는 것이 보통. 때문에 그들이 ‘빠르게’ 다가온다는 보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후속부대도 파악됐습니다만, 숫자는 적습니다. 500명 정도입니다.”


“500? 뭔 속셈인지 모르겠네. 전투마법사 따위로 여길 뭐 어떻게 해보려는 건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어떻게 해. 애들 준비시키고 쥬넨 장군님께 보고 올려.”


“옛.”


이전까지와는 다른 규모, 예상치 못한 방식의 공격이긴 했지만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다. 수천의 병사로도 뚫어내지 못했던 방어선을 고작 저 숫자의 전투마법사만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그 수작이 대위로서는 가소로울 뿐이었다.


“전투준비! 적은 방어막으로 아군의 화력을 소진시킨 후 돌입을 노려올 거다! 전방의 마법사들에게는 관심을 주지 마라! 적의 주공은 후방이다!”


1차 방어선의 책임을 맡은 대위의 판단은 빠르고 정확했다. 동시에 그는 적의 전체적인 규모가 너무 적다는 사실을 잊기 않고, 혹시 모를 기만책에 대한 대비 또한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중이었다.

즉, 방심은 없었다.

그러나,


“?!”


갑자기 곳곳에서 솟구친 비명들은,

이런 그의 현실을 허무하게 뒤흔들고 있었다.


“기사다!”


“기사가 섞여있었-!”


어느새 목책 위로 난입한, 남색 로브의 그림자들. 그 말도 안 되는 신체능력을 눈앞에 두고 제국병사들이 떠올릴 수 있는 결론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전투마법사로 위장한 기사들의 습격.’

하지만 이런 병사들의 비명과 외침으로 인해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다름 아닌 대위를 포함한 제국의 기사들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기사라니? 영력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


대위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미 수십의 ‘마법사’들이 단숨에 목책을 뛰어넘어, 방어선 곳곳을 누비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전부 기사였던 것일까? 아니, 지금 곳곳에서 폭발하고 있는 화염과 파편 속엔 확연한 마력의 잔향이 피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마법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움직임과 괴력을 보이는 저들에게서 여전히 영력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사고가 순간 정지한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


어느새 지휘소까지 다가온 마법사 하나. 영력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대위는 무의식적으로 검을 뽑아 후드를 향해 내리쳤다. 만약 상대가 기사라면 영력을 무기에 흘려보내 막아야 할 것이고, 마법사라면 그대로 어깻죽지가 갈라질 일격.

머리는 복잡하나 확신이 담긴 검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마법사, 아니, 마법사 로브를 두르고 있을 뿐은 ‘무언가’는,

너무도 가볍게 대위의 검을 옆으로 쳐낸 뒤, 반대쪽 손에 마력을 모으고 있었다.


“넌 대체-”


현생에서의 마지막 의문을 완결짓지 못한 채, 대위는 안면에 정통으로 화염마법을 맞아 쓰러진다. 만약 그에게 안구를 터트릴 정도의 열기 대신 마지막 시선이 허락됐다면, 깊은 후드 아래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검붉은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을 터.


그리고 어쩌면,


평범한 마법사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희미한 가면의 형태를 눈치챌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작가의말

부족한 글을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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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 (35막) 성급한 각성 (7) +3 20.08.11 114 4 10쪽
» (35막) 성급한 각성 (6) +1 20.08.03 75 2 11쪽
387 (35막) 성급한 각성 (5) 20.07.28 61 2 10쪽
386 (35막) 성급한 각성 (4) 20.07.22 63 1 12쪽
385 (35막) 성급한 각성 (3) 20.07.16 62 3 12쪽
384 (35막) 성급한 각성 (2) 20.07.10 64 4 12쪽
383 (35막) 성급한 각성 (1) 20.07.05 70 3 12쪽
382 (막간) 조련 +2 20.07.01 76 3 11쪽
381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11) +1 20.06.27 73 2 12쪽
380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10) +1 20.06.25 6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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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8) +4 19.09.25 123 5 10쪽
377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7) +2 19.09.20 195 4 15쪽
376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6) 19.09.15 90 4 11쪽
375 (34막) 너는 만용을 부렸다 (5) +2 19.09.09 99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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