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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짓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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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향
작품등록일 :
2024.02.16 17:04
최근연재일 :
2024.03.11 19:1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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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24
추천수 :
194
글자수 :
146,337

작성
24.03.1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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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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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새로운 유형 (2)

DUMMY

암흑 계열의 환술진.

김 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검은 구체가 풍선처럼 팽창했다. 창고 전체를 잠식할 기세였다.


“젠장.”


누군가가 놈을 향해 활을 쏘는 시늉을 했다.


얼음의 화살.

서늘한 기운이 김 연구원의 흐릿한 형체를 향해 날아갔다.


“헛수고야.”


놈의 짧은 비웃음.

화살은 검은 막에 닿자 스르르 녹아내렸다.


“안티 쉴드?”


다른 각성자가 비명처럼 외쳤다.


A.N.S.(Ability Neutralization Shield).

흔히 안티 쉴드라 불린 A급 아이템의 반응이었다.

정확히는 각성 능력을 무력화하는 일종의 영역에 가까웠는데, 해당 영역 안에서 능력을 구사할 수 있는 건 아이템의 주인뿐이었다.


“안티 쉴드가 무제한은 아니잖아? 잠깐 후퇴할까?”

“그럼 박 선생님은?”

“인질인데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놈이 모습을 드러낸 건 준비가 끝났다는 거야. 안티 쉴드까지 준비한 놈인데, 공장 밖이라고 안전할까?”

“맞아. 만약 놈이 공장 주위에 트랩을 설치해 뒀다면? 그래서 우리가 후퇴하는 게 놈의 노림수라면?”


각성자들은 당황하며 갈팡질팡했다.


환술사는 마법사보다 드물었다.

자연히 환술을 접할 기회도 드물었고, 등급과 상관없이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단 한 명, 민재만 예외였다.

그는 눈을 빛내며 놈을 차분히 노려봤다.


‘내부에 적이 있다는 건 예상했다. 그게 순하게 생긴 김 연구원이라는 건 조금 의외였지만.’


놈의 겁에 질린 표정을 떠올렸다.

배신감마저 들었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김 연구원 외에 적당한 내부의 적은 없었다.


환술사도 유형이 다양하다고 했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최면을 걸어 상대를 직접 컨트롤하는 유형도 있었지만, 그런 건 최상급 환술사만 가능하고 금지된 스킬이었다.


‘놈은 간접 컨트롤 형. 상대의 판단력을 일시적으로 흐리게 하는 유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환술진의 파훼법은 하나.

놈의 진법 안에 들어가 정면으로 정신력 대결을 펼치는 것뿐이었다.


“제가 들어가서 깨 보겠습니다. 환술은 잘 모릅니다만, 정신력은 자신 있습니다.”


민재는 주먹을 가볍게 움켜쥐고 한 걸음 나섰다.


“마법사님이요?”

“대책은 있습니까?”


각성자 둘이 동시에 물었다.

다들 이들도 놀라움 반, 기대 반의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연수 때 환술에 대해 간단히 들었습니다. 먼저 타깃의 최근 기억 일부를 읽는다. 그다음 익숙한 광경으로 타깃의 정신을 붙잡아 두고, 현실의 육체를 서서히 잠식한다. 이게 환술진의 기본 아닙니까?”


민재는 각성자들을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환술진에서의 승패는 간단했다.

환각 속에 숨은 술사를 빨리 찾으면 그의 승리, 반대로 시간을 지체하면 검은 기운에 육신을 잃고 술사의 승리였다.


“하지만······.”


누군가가 말리려다가 멈칫했다.


지금은 그저 민재를 믿어볼 뿐.

어차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 기억 일부를 읽고 익숙한 광경을 보여준다고 했지? 그래, 넌 뭘 보여줄 거냐?”


민재는 심호흡하고 놈의 영역에 들어갔다.


***


“여긴 올 때마다 으스스하군.”


민재는 붉은 달을 올려보며 천천히 전진했다.


환술진에서는 시간의 감각이 달라진다고 했다.

무작정 한참을 걸은 것 같은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감이 안 왔다.

물론 핸드폰이나 손목시계 같은 건 모두 작동 불능이었다.


“어?”


어느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깊은 물 속에 빠진 것 같은 느낌.

숨쉬기가 어려웠다. 무거운 추가 달린 듯 손발을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놈이 만든 환술이 아니다. 마나의 격류. 1차 저지선 같은 건가?”


이젠 마나를 느끼고 컨트롤하는 게 능숙했다.

배운 적은 없지만, 어떤 상황인지 본능적으로 파악했다.


‘환술에 앞서 날 지치게 만들겠다는 거겠지. 억지로 통과하면 마나의 정신력의 소모가 상당할 테니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필 마나의 격류를 이용한 방어선이라니.


“의도는 좋았지만 상대가 안 좋았다.”


민재는 농사와 관련된 이미지를 떠올렸다.


마법적 형상화.

마나와 관련된 것을 익숙한 형태로 바꿨다.


때는 장마철, 장소는 물이 격류처럼 불어난 개울이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물이 두렁을 넘을 듯 넘실거렸다.

이대로라면 물이 밭으로 밀려 들어오는 것도 시간문제. 애써 가꾼 작물이 수장될 위기였다.


두렁에 삽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신발도 어느새 말표 장화로 바뀌어 있었다.


“농사 하루, 이틀 짓는 것도 아니고. 물길 돌리는 건 내 특기지.”


퉤, 민재는 손바닥에 침을 뱉고 삽을 들었다.


타인의 마나를 컨트롤할 때보단 어려웠지만, 그래봤자 농사일이었다.

전과 같은 요령으로 밭두렁 주위에 배수로를 파고 물길을 돌렸다. 그래도 물이 넘치는 것에 대비해 이랑 사이에 배수로를 파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허리에서 무릎, 무릎에서 발목으로 수위가 서서히 낮아졌다.


“이쯤이면 되겠지.”


이윽고 민재는 소매로 이마를 훔치며 환하게 웃었다.


비가 그쳤다.

개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했고, 작물은 물기를 흠뻑 먹고 환하게 빛났다.


“빨리 가자.”


삽을 땅에 꽂고 걸음을 재촉했다.

개울을 건넌 순간, 환한 빛무리와 함께 주위 풍경이 달라졌다.


***


화창한 아침.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이었다.

민재는 고물 오토바이를 몰고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강 회장, 어디 가시나?”

“오늘 신수가 훤하네. 맞선 봐?”


문득 걸걸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강 영감님들과 쿤 씨가 다 같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버섯이라도 따려는 듯 다들 등산복 차림에 낫과 포대를 하나씩 들었다.


“읍내 터미널에 갑니다. 오늘 아르바이트가 있······.”


민재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인사하다가 멈칫했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

민재는 오른손으로 목덜미를 감싸 쥐고 눈을 감았다.


전파가 뒤죽박죽 섞인 고물 TV 같았다.

낡은 창고, 복면을 쓴 괴한들과의 전투, 물이 불어난 개울에서의 삽질 등이 두서없이 스쳐 지나갔다.


“왜 그래? 어디 아파?”


해병대 영감님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요즘 너무 무리한 거 아니여?”

“농사지으랴, 서울서 교육받으랴, 일이 많았잖아.”

“맞아. 요즘은 아르바이트도 한다며?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건강이 제일이여.”


다른 영감님들도 그를 바라보며 한마디씩 했다.


“괜찮습니다.”


민재는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착각이었나 보다.

두통이 사라지고 시야도 돌아왔다.


‘이 위화감은 뭐지? 분명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다만 여전히 뭔가 마음에 걸렸다.

목구멍에 가시라도 걸린 기분이었다.


“어르신들은 어디 가십니까?”

“산에 버섯 캐러 가. 할멈이 버섯전골이나 해 먹자고 해서.”


해병대 영감님이 빈 포대를 흔들며 대답했다.


“내 사랑은 만 년으로 하겠소.”


슈퍼집 영감님이 해병대 영감님을 흉내 냈다.


“낭만이 아니라 노망이겠지.”

“미쳤어. 낮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다른 영감님들도 킥킥거리며 해병대 영감님을 놀렸다.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차 시간이 빠듯해서요.”


민재는 오토바이에 올라 출발하려다가 멈칫했다.


이제야 깨달았다. 뭐가 이상한지.

신성리의 일상을 고스란히 재현했지만 어설펐다.


“너 시골에서 살아본 적 없지?”


그는 차가운 미소를 머금고 영감님들을 둘러봤다.

특히 새 등산화를 신고 멋을 낸 해병대 영감님을 주목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여?”


해병대 영감님이 당황해 되물었다.


“민재 씨, 갑자기 왜 그래유? 미쳤슈?”


쿤 씨가 조금 화난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


민재 씨?

의심은 확신이 됐다.

놈이 읽은 건 기억 일부. 세부적인 건 술사가 상상력을 가미해 그럴싸하게 덧붙이는 방식이었다.


“뒷산에 가면서 등산화라고? 그런 건 멋 부리기 좋아하는 서울 촌놈들이나 하는 거지.”

“······.”

“시골에서 뒷산에 갈 때는 말표 장화가 최고다. 바닥이 고무라 미끄러지지 않고, 가시나 덩굴에 긁혀도 부담 없지. 한 켤레 칠천 원. 아저씨한테 말만 잘하면 오천 원까지 깎을 수 있지.”


민재는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해병대 강 영감. 아니, 기억에서 본 낯선 사내를 향해 걸어갔다.


해병대 영감님의 얼굴이 변했다.

주름 많고 순한 인상에 차가운 젊은 남성의 인상이 겹쳤다.


“젠장.”


놈은 뒷걸음질 치며 포대를 던지려 했다.


포대의 벌어진 틈으로 검은 기운이 느껴졌다.

암흑 계통의 마법이나 공격 아이템인 것 같았다.


‘내 앞에서 마법 기습이라니.’


마법의 신속한 구현은 자신의 특기.

민재는 놈을 향해 오른손을 들고 의식을 집중했다.


- 벤티 베룬트 누빌라 캘리(Venti verrunt núbila cæli, 바람이 하늘의 구름을 휩쓸어 간다).


발음도 어려운 낯선 마법어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싱쿠스의 검은 돌개바람.

초장부터 자신이 가진 최고의 패를 꺼내 든 것이다.

전투 시뮬레이션에서 당한 검은 칼날의 바람이 놈을 휘감았다.


“선빵 필승. 힘을 시험해 본답시고 어설프게 했다가 역습을 받는 건 사양이다.”


좌우를 슬쩍 돌아봤다.

검은 바람에 닿은 쿤 씨와 다른 영감님들도 재가 돼 흩날렸다.


“말도 안 돼. 안티 쉴드 안에서 마법이라고?”


검은 돌개바람의 중앙에서 놈의 경악에 찬 외침이 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위의 풍경이 유리처럼 깨지고 무너졌다.


***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박인환은 황당한 표정으로 눈만 끔뻑거렸다.


그도 환술진에 갇힌 상태였다.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민재가 겪은 환술은 옆에서 지켜봤다.


환술은 정신력 싸움.

환술사가 읽을 수 있는 기억의 양은 타깃의 정신력에 반비례했다.

놈이 읽은 기억이 불완전한 것도 그 때문인 터. 특히 각성 능력에 관한 건 상태 창 고유의 암호화 때문에 접근이 불가능했다.


‘민재 씨가 1차 방어선을 쉽게 통과한 건 그렇다고 쳐. 놈을 간파한 것도 이해해. 그런데 안티 쉴드 안에서 마법이라니? 게다가 그 마법은 싱쿠스의 고유 스킬이 아니었나? 다른 마법을 감춘 건 알았는데, 여기서 몬스터의 스킬이 왜 나와?’


의문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민재가 자주 쓰는 원거리 공격 마법도 여느 것과 다른 느낌이었다.


“씨, 씨X. 저 새끼 뭐하는 종자야? 왜 마법을 쓰는 건데?”


발밑에서 욕설 섞인 신음이 들렸다.

본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이 난도질당한 김 연구원이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방금 마법을 쓴 거 맞지?”


다른 각성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앙의 민재만 바라봤다.


가능성은 둘 중 하나였다.

안티 쉴드를 강력한 마나로 찍어눌렀다.

혹은 민재의 능력이 기존의 각성자와 전혀 다른 유형이다.


‘강민재. 잠재력이 내 예상보다 훨씬 위였구나.’


박인환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민재를 바라봤다.


한편, 당사자인 민재는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겉으로는 쓰러진 김 연구원을 차갑게 내려보는 것 같았지만, 마음은 약속한 중첩 핵에 가 있었다.


‘놈의 말은 아까 녹음해 뒀지. 어찌 됐건 임무는 완수했고, 보상으로 중첩 핵을 요구해도 될 거야.’


전례 없는 새로운 유형의 종자.

이번엔 또 어떤 마법 작물이 열릴까?

마법사인지 농부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했지만, 민재는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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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새로운 유형 (1) 24.03.10 83 3 13쪽
25 빚지고는 못 산다 (4) 24.03.09 96 2 12쪽
24 빚지고는 못 산다 (3) 24.03.08 104 4 12쪽
23 빚지고는 못 산다 (2) 24.03.07 117 4 12쪽
22 빚지고는 못 산다 (1) 24.03.06 132 4 12쪽
21 농사는 체력이다 (3) 24.03.05 136 5 12쪽
20 농사는 체력이다 (2) +1 24.03.04 151 6 13쪽
19 농사는 체력이다 (1) +1 24.03.03 166 7 12쪽
18 주인공 (2) +1 24.03.02 177 6 13쪽
17 주인공 (1) +1 24.03.01 195 7 13쪽
16 거래 성립 (2) +2 24.02.29 217 6 13쪽
15 거래 성립 (1) +1 24.02.28 210 6 13쪽
14 잡초 제거 (2) +1 24.02.27 214 6 11쪽
13 잡초 제거 (1) +1 24.02.26 234 5 12쪽
12 오히려 잘됐다 (2) +1 24.02.25 259 7 12쪽
11 오히려 잘됐다 (1) 24.02.24 290 5 13쪽
10 내가 있어야 할 곳 (5) +1 24.02.24 292 7 13쪽
9 내가 있어야 할 곳 (4) 24.02.23 295 6 11쪽
8 내가 있어야 할 곳 (3) 24.02.22 323 8 12쪽
7 내가 있어야 할 곳 (2) 24.02.21 343 6 13쪽
6 내가 있어야 할 곳 (1) +1 24.02.20 388 11 13쪽
5 당신 누구야? (2) +2 24.02.19 429 8 12쪽
4 당신 누구야? (1) 24.02.18 479 12 13쪽
3 첫 재배 24.02.17 545 16 13쪽
2 농부는 농부다 24.02.16 659 17 13쪽
1 내 농지에서는 마법이 자란다 24.02.16 712 1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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