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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짓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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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2.16 17:04
최근연재일 :
2024.03.1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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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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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빚지고는 못 산다 (3)

DUMMY

송도 KH 연구소, 회의실.

직사각형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연구원 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


분위기가 무거웠다.

다들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렇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정보가 샌 것 같습니다.”


여우처럼 생긴 연구원이 무테안경을 고쳐 쓰며 보고를 마쳤다.


“제길.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거야?”


중앙에 앉은 백발 연구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우리 모두를 위하여, 금연]


가위로 담배를 자르는 포스터가 벽에 붙어 있었다.


“제길. 나도 담배를 끊어야지.”


그는 짜증을 내며 담배를 넣었다.


“내부의 적을 찾는 건 둘째 문제입니다. 이미 울산에서는 테스트 준비를 마쳤습니다.”


좌측에 앉은 뚱뚱한 연구원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인제 와 연기할 수도 없는데. 역발상으로 가는 건 어떻습니까?”


말석의 연구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 조금 소심한 인상이었다.

목에 걸린 신분증에 [5급 김창수]라고 쓰여 있었다.


“역발상?”

“네. 제일 이름 없고 약한 곳. 누구나 가짜일 거라고 생각한 업체에 진품의 수송을 맡기는 겁니다. 반대로 모조품은 대현처럼 유명한 업체에 맡겨 요란을 떨고요.”

“흠. 성동격서인가?”


수석 연구원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끝을 흐렸다.


어차피 정보가 샌 상황이었다.

당장 좋은 아이디어가 안 떠올랐다.


“좋아. 그럼 어디에 맡기는 게 좋을까?”

“안 그래도 적당한 업체를 찾아 놨습니다. 누구도 의심을 못 할 작은 업체죠. 혹시 모르니 제가 그들과 동행하겠습니다.”


김 연구원은 들뜬 표정으로 태블릿을 내밀었다.


모두는 태블릿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FS라는 낯선 업체와 수송 대원의 명단이 떠 있었다.


“······은퇴한 헌터와 각성한 지 한 달도 안 된 풋내기 하급 마법사? 너무 영세한 거 아니야?”


수석 연구원은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


새벽이슬이 마르지 않은 이른 아침.


“집 잘 보고 있어. 말 잘 들으면 개껌 사 올게.”


민재는 누렁이에게 손을 흔들고 고물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어디론가 떠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컹컹, 누렁이가 골목 어귀까지 따라 나왔다가 돌아섰다.


마을을 벗어나 포장도로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강 회장, 어디 가시나?”

“오늘 신수가 훤하네. 맞선 봐?”


오른쪽에서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해병대, 슈퍼집, 짱구네 강 영감님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농장 강 영감님과 일꾼 쿤 씨도 끼었는데, 다들 손에 낫과 포대를 들고 있었다.


“읍내 터미널에 갑니다. 오늘 아르바이트가 있거든요. 어르신들은요?”


잠깐 오토바이를 세우고 인사했다.


“산에 버섯 캐러 가. 할멈이 버섯전골이나 해 먹자고 해서.”


해병대 영감님이 빈 포대를 흔들며 대답했다.


자나 깨나 우리 이쁘니.

해병대 영감님의 순정은 식을 줄 몰랐다.

다른 강 영감님들과 쿤 씨는 시간이 있어 따라나섰다고 했다.


“내 사랑은 만 년으로 하겠소.”


슈퍼집 영감님이 해병대 영감님을 흉내 냈다.


“낭만이 아니라 노망이겠지.”

“미쳤어. 낮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다른 영감님들도 해병대 영감님의 옆구리를 찌르고 킥킥거렸다.


차 시간이 빠듯했다.


“서울 가면 차 조심, 사람 조심. 뭐든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각성했다고 막 싸우고 다니지 말고. 게이트 터지면 무조건 도망쳐.”


영감님들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네. 어르신들도 버섯 많이 따세요. 낮에도 멧돼지가 나온다는데 조심하시고요.”


민재는 꾸벅 인사하고 멀어졌다.

백미러에 비친 어르신들은 한참 동안 손을 흔들었다.


‘나도 서른을 훌쩍 넘겼는데. 아직도 자식처럼 어리게 보이는 모양이네.’


문득 웃음이 나왔다.


정이 살아있는 마을.

신성리에서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사람 냄새가 났다.


***


정오 무렵, 울산행 국도.

검은 승합차 한 대가 산길을 따라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민재가 운전하는 수송 차량이었다.

박인환은 조수석에 앉았고, 김창수라는 연구원이 뒷자리에 앉았다.

그들 외에도 FS 소속의 B급 각성자 다섯이 다른 승합차에 타고 따라왔다.


남자 셋만 가는 장거리 운전.

분위기가 어색했다. 다들 말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평범한 C급 약물이라고 안 했나? 표정이 왜 저렇게 심각하지?’


민재는 백미러로 뒤를 힐끔거렸다.

김 연구원은 철제 서류 가방을 안은 채 경직돼 있었다.


서류 가방을 주목했다.

미사일의 폭발에도 끄떡 없다는 아이템이었다.

내용물은 물론 가방을 지닌 주인도 충격에서 보호해 준다고 했다.


‘가방이 내용물보다 훨씬 비싸겠네. 게다가 대현이 있으면서 우린 왜 부른 거야?


아르바이트 첫날 들었다.

대현은 각성자의 능력치, 숫자, 전투 경험 등 모든 면에서 FS와 비교할 수 없는 큰 회사라고 했다.


그사이 승합차는 큰길을 벗어나 이름 모를 국도로 접어들었다.


‘이 길이 맞나?’


민재는 내비게이션을 힐끔 확인하곤 불안한 눈으로 좌우를 살폈다.


폭이 좁은 오솔길.

언제부턴가 마주 오는 차도 보이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 악당은 대개 이런 분위기에서 습격을 하곤 했다.


그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송도를 떠나기 전, 부산을 떨며 트럭에 오르던 대현 소속 각성자들이 생각났다.


“누구는 싸구려 승합차인데, 누구는 방탄까지 되는 트럭이라니. 아무리 더미라고 해도 그렇지. 너무 홀대하는 거 아니에요?”


박인환이 김 연구원 몰래 투덜거린 말이었다.


‘설마 더미를 습격하겠어? 뭐, 여차하면 다른 각성자들도 나설 테고.’’


그는 사이드미러를 힐끔 확인했다.

FS의 경호팀이 탄 승합차가 바싹 따라오고 있었다.


“프로토타입 장비라는 말을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박인환이 어색함을 깨고 입을 여는 도중이었다.


세상이 돌연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말로만 듣던 게이트 너머의 지옥과 비슷했다.

고오오, 스산한 돌개바람들이 몰려와 차를 감쌌다.


‘뭐야? 환술?’


민재는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콰쾅,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승합차가 위로 튕겼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삐이익, 주전자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들렸다.

우그러지는 철판, 부서지는 유리, 뭐라고 외치는 김 연구원의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


시간의 흐름이 바뀌었다.

전투 시뮬레이션에서 싱쿠스를 상대할 때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감압식 지뢰나 아이템을 밟은 모양이었다.

혹은 적들이 어딘가에 숨어서 보고 있다가 원격으로 기폭장치를 작동시킨 것일지도 몰랐다.

화염은 운전석 아래에서 시작돼 이내 승합차 전체를 휘감았다.


안전벨트를 했어도 충격이 컸다.

머리를 다친 듯 핏물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이 온통 붉게 보였다.


‘정신줄 놓으면 안 돼!’


시야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의식을 집중했다.

단전에서 따뜻한 기운을 느낀 찰나, 상처에서 흰빛이 뿜어졌다. 두엄으로 강화된 콜루베르의 치유 마법이었다.


- 우니베르소스 투에리(univérsos tuéri, 모두를 보호한다).


박인환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파고들었다.


황금빛 서기가 차량을 감쌌다.

충격을 흡수하는 광역 디펜스의 일종이었다.

화염은 그대로였지만 열기와 충격이 대번 약해졌다.


콰쾅,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승합차는 두 바퀴를 튕겨 돈 뒤 가드레일에 거꾸로 처박혔다.


시간은 불과 1, 2초 남짓.

최초의 폭발에서 민재의 마법과 박인환의 스킬 발동이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빨리 나가야 해!’


영화에서 많이 봤다.

사고 차량이 불길에 휩싸여 폭발하는 장면이었다.


불현듯 한기가 느껴졌다.

공포가 아니었다. 살을 에는 추위가 불길을 꺼뜨렸다.

아, 뒤따라온 경호 차량에 빙계 속성을 지닌 각성자가 있었던 게 떠올랐다.


차 안을 빠르게 훑어봤다.

망할 에어백은 잠잠했고, 튕길 때의 충격으로 조수석 문이 반파됐다.


“젠장.”


박인환은 비틀거리며 먼저 차에서 내렸다.


‘김 연구원은?’


거미줄처럼 갈라진 백미러로 뒤를 곁눈질했다.


김 연구원은 특수 가방을 들고 있었다.

안경만 살짝 금이 갔을 뿐.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도 찌그러진 문을 박차고 엉금엉금 기어서 빠져나갔다.


‘그나마 다행이다.’


민재는 마지막으로 문을 열려다가 멈칫했다.


젠장, 문이 고장 났다.

문고리를 거칠게 여러 번 당겼지만 꿈쩍하지를 않았다.


초조했다.

밖에서는 오토바이의 거친 엔진음이 연달아 들렸다.


“망할 국산 차!”


욕설을 내뱉으며 오른 주먹을 뻗었다.


트롤의 분노.

10cm의 간격을 두고 10방이 작렬했다.

콰쾅쾅, 문은 주먹 자국으로 엉망이 돼 튕겨 나갔다.


“엎드려!”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

민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콰앙, 정면에서 폭발이 일었다.

뒤에서 경호팀 직원이 불의 화살을 날린 것이다.

번호판이 없는 붉은 오토바이는 곡예 하듯 방향을 틀어 피했다. 죄 없는 도로가 움푹 파였다.


아수라장.

인사나 경고 따위는 없었다.

오토바이를 탄 복면인들이 사방에서 들이닥쳤다.

숫자는 다섯. 아니, 어딘가에서 숨어 공격 중인 놈들까지 포함하면 일곱이었다.


경호팀과 복면인들은 승합차를 중심으로 전투가 한창이었다.

얼음과 불의 화살, 뇌전계 총알 등 각종 원거리 공격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역시 선빵 필승.

복면인들이 기습 준비를 잘했다.

경호팀은 방어 대형으로 자리를 지키는 게 고작이었다.


- 민재 씨, 박 선생님을 부탁해!


통신기에서 경호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박 선생님?’


박인환은 부상으로 은퇴한 지 오래였다.

광역 디펜스 스킬로 충격을 줄였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끼이익, 요란한 바퀴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 한 대가 돌진해 왔다.

조수석이 있는 뒤쪽. 박인환과 김 연구원이 가드레일을 등지고 나란히 서 있었다.


오토바이에 탄 놈이 등 뒤에서 뭔가를 꺼내 던졌다.

G.F.N.(Gravitational Field Net), 일명 중력장 그물이 둘을 향해 넓게 퍼졌다.

하급 몬스터를 포박할 때 주로 쓰이는데, 중력을 강화해 상대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아이템이었다.


“정신없네.”


민재는 그물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트롤의 분노 40방이 그물을 향해 산탄총처럼 퍼졌다.

퍼퍼펑, 중력장 그물은 타깃에 닿기 전에 공중에서 폭발했다.


“민재 씨.”

“강민재?”


박인환과 연구원이 반색하며 동시에 외쳤다.

오토바이에 탄 놈도 의외라는 듯 그를 힐끔 쳐다봤다.


“물러나세요!”


민재는 엎어진 차를 밟고 가드레일 쪽으로 뛰어올랐다.


트롤의 분노는 여유 있게 수확한 터.

아낄 필요가 없었다. 놈을 향해 수십 방이 무차별적으로 터졌다.


결국 오토바이가 중심을 잃고 미끄러졌다.

놈은 도로에 넘어지기 직전 도로 쪽으로 몸을 날렸다.

오토바이는 그대로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 튕겨 나가 화염에 휩싸였다.


‘됐다.’


민재가 다시 마법을 구현하려는 찰나였다.


이번엔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저격수처럼 숨어 있던 복면인들이 나타난 것이다.

동시에 도로를 뒹굴던 놈도 벌떡 일어나 그를 향해 돌진해 왔다.


“······실전은 게임이 아닙니다. 비겁하든 말든 먼저 죽이는 쪽이 장땡이죠.”


연수 때 박인환이 농담처럼 했던 말이 떠올랐다.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둘.

경호팀은 다른 복면인들에게 발이 묶인 상태였다.

그 혼자 박인환과 김 연구원을 보호하며 셋을 상대해야 했다.


놈들 주위의 마나가 요동쳤다.

스킬과 능력을 본격적으로 발동할 모양이었다.


“농사는 체력이다.”


민재도 주저 없이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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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빚지고는 못 산다 (1) 24.03.06 132 4 12쪽
21 농사는 체력이다 (3) 24.03.05 136 5 12쪽
20 농사는 체력이다 (2) +1 24.03.04 151 6 13쪽
19 농사는 체력이다 (1) +1 24.03.03 167 7 12쪽
18 주인공 (2) +1 24.03.02 178 6 13쪽
17 주인공 (1) +1 24.03.01 195 7 13쪽
16 거래 성립 (2) +2 24.02.29 217 6 13쪽
15 거래 성립 (1) +1 24.02.28 211 6 13쪽
14 잡초 제거 (2) +1 24.02.27 214 6 11쪽
13 잡초 제거 (1) +1 24.02.26 235 5 12쪽
12 오히려 잘됐다 (2) +1 24.02.25 260 7 12쪽
11 오히려 잘됐다 (1) 24.02.24 290 5 13쪽
10 내가 있어야 할 곳 (5) +1 24.02.24 292 7 13쪽
9 내가 있어야 할 곳 (4) 24.02.23 296 6 11쪽
8 내가 있어야 할 곳 (3) 24.02.22 323 8 12쪽
7 내가 있어야 할 곳 (2) 24.02.21 343 6 13쪽
6 내가 있어야 할 곳 (1) +1 24.02.20 389 11 13쪽
5 당신 누구야? (2) +2 24.02.19 430 8 12쪽
4 당신 누구야? (1) 24.02.18 479 12 13쪽
3 첫 재배 24.02.17 545 16 13쪽
2 농부는 농부다 24.02.16 659 17 13쪽
1 내 농지에서는 마법이 자란다 24.02.16 713 1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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