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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짓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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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향
작품등록일 :
2024.02.16 17:04
최근연재일 :
2024.03.11 19:10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7,329
추천수 :
194
글자수 :
146,337

작성
24.02.2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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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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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1쪽

내가 있어야 할 곳 (4)

DUMMY

‘정말 이게 되네?’


민재는 왼 주먹을 힐끔 내려봤다.

조금 전, 타깃에 의식을 집중하고 주먹을 뻗자 노란 기운이 번쩍였다.


- 시네 토니리부스 풀구라이(Sine tonítribus fúlgurai, 천둥소리 없이 번개가 친다).


트롤의 분노를 구현했을 때와 달랐다.

배운 적도 없는 마법 주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상처는 없어도 꽤 타격이 큰 모양이었다.

몬스터의 거대한 몸통이 순간적으로 휘청거렸다.


‘앞으로 네 방. 약점을 알아내 신중하게 써야 한다.’


민재는 놈의 영상을 떠올리며 헌터들과 합류했다.


“크아아악.”


놈이 괴성을 지르며 똬리를 틀고 머리를 들었다.


거대한 노란색 눈.

놈과 시선이 마주치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부웅, 강한 바람과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옆에서 그를 덮쳐왔다.


“정신 차려!”


박훈근은 민재를 잡고 몸을 날렸다.

놈의 꼬리가 조금 전까지 민재가 서 있던 곳을 훑고 지나갔다.


“마성의 눈이다. 놈과 시선을 마주치지 마.”


박훈근이 뺨을 찰싹 치며 다급하게 외쳤다.


“아.”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일부 몬스터는 사람을 홀리는 마법을 본능적으로 부린다던데. 그런 건가?’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번엔 강화복을 입을 겨를도 없었다. 낫도 화물차에 있는 걸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왔을 뿐.

장비를 제대로 못 갖췄다. 놈의 공격에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었다.


“설명은 나중에.”


민재는 급히 뒷걸음질 쳤다.

콰쾅, 좌우에서 다른 헌터들이 불과 얼음의 강기를 날려 놈의 주의를 분산시켰다.


“끄아악.”


놈은 울부짖으며 계속 꼬리를 휘둘렀다.


“이걸 쓰십시오.”


다른 헌터가 자기 헬멧을 벗어 던졌다.


민재는 왼손으로 헬멧을 받아 눌러 썼다.

유리의 좌측 상단에 몬스터의 특성과 요약 자료가 떠올랐다.


- 내 말 들립니까? 당신 뭡니까?


헬멧에 내장된 스피커에서 박훈근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도 일단 각성자입니다.”

- 소속과 등급은?

“소속은 없습니다. 등급도······.”


놈이 거대한 꼬리를 수직으로 휘둘렀다.


민재와 박훈근은 말을 멈추고 급히 좌우로 물러났다.

콰앙, 트럭처럼 거대한 꼬리가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땅을 쳤다.


놈이 꼬리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타깃은 민재.

아까 맞은 뇌전의 마법이 상당히 아팠던 모양이었다.


태풍처럼 강한 풍압이 느껴졌다.


“젠장.”


민재는 반사적으로 상체를 숙이고 앞으로 굴렀다.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사이즈가 일반 몬스터와 달랐다.

거대한 꼬리를 이용한 놈의 공격은 한 방만 맞아도 즉사였다.


- 입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박훈근이 놈의 입에 오러 블레이드를 날렸다.

민재도 고개를 홱 돌리고 놈의 입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콰앙, 파지직.

반투명한 무지갯빛 기운과 번쩍이는 뇌전이 거이 동시에 놈의 입가에서 폭발했다.


“젠장.”


민재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러 블레이드에 맞은 오른쪽은 멀쩡했다.

뇌전에 맞은 왼쪽은 살짝 부풀어 올랐지만 이내 가라앉았다. 자가 치유였다.


‘남은 건 세 방. 어쩌지?’


혹시나 해서 가져온 낫은 전혀 도움이 안 됐다.


그때였다.


- 분석 완료. 자료 전송합니다.


분석 담당관의 들뜬 목소리.


헬멧의 스크린에 놈의 외형이 나타났다.

주걱처럼 긴 턱 밑이 붉은색으로 깜빡거렸다.


- A5 포메이션으로 산개. 약점을 집중 공략한다.


박훈근이 빠른 어조로 명령했다.


- A5.


헌터들은 복창하며 놈의 좌우로 이동했다.


‘그게 뭐야?’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민재는 박훈근을 따라 눈치껏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외피가 너무 단단했다.

폭죽처럼 연달아 터진 공격도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 지원팀은 아직인가?


박훈근의 짜증 가득한 고함.


- 화력이 부족합니다.

- 지원팀 도착 6분 28초 전.

- 마나 게이지가 한계에 달했습니다.


다른 헌터들도 난감한 목소리로 중구난방 무전을 날렸다.


- 제게 작전이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무리입니다.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절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민재의 무전이 끼어들었다.


***


- 무슨 작전입니까?

- 광학입자탄 있습니까?


민재는 지난번 전투에서 본 헌터의 장비를 떠올렸다.

직접 사용할 기회는 없었지만, 용도와 사용법은 간단히 들었다.


OPB(Optical Particle Bomb).

일명 광학입자탄. 빛 속성의 입자를 살포해 적의 시선을 교란하는 아이템이었는데, 주로 퇴각할 때 사용한다고 했다.


- 두 발 있습니다. 그걸로 뭘 어쩌시려는 겁니까?

-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놈의 턱에 상처를 입히고 광학입자탄을 터뜨려 주십시오.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 그럼 당신의 시야도 제한적일 텐데요?


박훈근은 어이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마법의 구현에서 정확한 위치 좌표의 계산은 필수였다.

지금 민재의 말은 궁수가 눈을 가리고 화살을 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무리입니다. 눈을 가린 마법사라니요.

- 지금이라도 후퇴하는 게 어떻습니까?


다른 헌터들의 반대도 일리가 있었다.


- 왜 안 된다고 미리 단정하십니까? 제 마법 구현은 여느 마법사와 다릅니다. 맡겨 주십시오.


민재는 자신만만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 ······.


짧은 침묵.

그가 강하게 나오자 오히려 헌터들이 당황했다.


그때였다.


- 이 미친놈아.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지원팀이 가고 있다. 5분만 기다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김창훈이었다.

풍절음이 뒤에서 요란하게 들렸다.

헬리콥터를 타고 지원팀으로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 여긴 네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야!


놈이 잔뜩 날 선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가 있어야 할 곳?’


민재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며칠 전 놈이 찾아와서 한 말도 떠올랐다.

기껏 한다는 게 돈 자랑, 여자 자랑, 명예 자랑이라니.

수억 원대의 연봉, 좋은 집과 차. 그런 물질적인 것으로 자신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사람 잘못 봤다. 날 아직도 서울에서 알던 그 호구로 생각하는 건가?’


놈의 무전은 무시했다.


- 결단을 내리십시오. 지원팀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건 너무 늦습니다.

- 하지만 현재 우리 전력으로는······.

- 놈의 거대한 몸을 잊었습니까? 만약 놈이 발버둥 치다가 쉘터를 덮치기라도 한다면요? 쉘터가 놈의 무게를 견디고 붕괴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습니까?


민재도 김창훈에게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사이에도 몬스터의 발악은 계속됐다.

콰쾅, 놈이 꼬리에 전투 트레일러가 속절없이 날아갔다.


‘이대로 지원팀을 기다리느냐. 아니면 낯선 마법사의 말대로 모험을 걸어서 피해를 최소화하느냐.’


박훈근은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 어서 결단을!

- 명령이다! 기다려!


민재와 김창훈이 동시에 소리 질렀다.


- 팀장님.


다른 헌터들도 당황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 현장의 지휘권은 관할 전투팀장에게 우선한다. 지원팀이 도착할 때까지의 책임자는 나. 마법사님 말대로 승부를 건다!


박훈근은 단호한 어조로 무전을 날렸다.


각성자로서도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었다.

기다리면 전공을 지원팀인 레드 이글이 독점하겠지만, 작전에 성공한다면 모든 공은 마법사와 화이트 울프의 차지였다.


‘언제까지 레드 이글에 눌릴 수는 없지. 이번 기회에 나도 날아보는 거다.’


박훈근은 어금니를 깨물며 민재를 곁눈질했다.


충청도 일대에서는 이미 소문이 파다했다.

레드 이글도 정체불명의 마법사 덕분에 이겼다고 했다.

‘어쩌면 이번에도······?’라는 기대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 모두 들으셨죠? 사방에서 공격을 퍼부어 놈의 주의를 끌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신호하면 팀장님께서 OPB를 터뜨리고······.


민재는 빠른 어조로 작전을 설명했다.


- 알겠습니다.


팀원들은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도박에 가까운 계획이지만 성공하면 막대한 유, 무형의 보상이 뒤따른다는 것을.


끝으로 통신 채널 변경.


- 강민재! 너 죽고 싶어! 당장 내 말대로······.


민재는 김창훈의 짜증 나는 목소리를 차단했다.


***


다리가 후들거렸다.


‘긴장할 거 없다. 저건 그냥 덩치만 큰 구렁이다. 산에서 많이 봤잖아?’


민재는 놈의 정면으로 돌아가며 크게 심호흡했다.


놈의 공격은 크고 느렸다.

문제는 무한에 가까운 스태미나와 자가 치유였다.

어지간한 공격으론 놈에게 충격을 줄 수 없었고, 어쩌다 작은 생채기를 입혀도 이내 치료됐다.


반대로 그와 헌터들은 체력이 빠르게 고갈됐다.

호흡이 거칠어졌고, 몇몇 헌터는 무기와 마나도 거의 떨어진 상태였다.


작전은 간단했다.


‘잠깐이라도 좋다. 놈의 움직임을 멈추고 작은 상처를 만든 뒤, 그 틈으로 모든 마법을 밀어 넣는다.’


남은 뇌 속성 마법은 세 방.

트롤의 분노가 남았지만, 그런 하급 공격은 놈의 이목을 끄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타깃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의식을 집중한다.’


마나의 흐름이 어쩌고, 마법 수식이 저쩌고.

마법 이론이나 좌표 계산 같은 건 배운 적도 없었다.


“크아아악.”


놈도 민재를 발견했다.

그를 집어삼키려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돌진했다.


어느 순간 놈의 모습이 바뀌었다.

과거의 자신을 짓누른 괴물, 돈과 권력이 모든 걸 지배하는 서울이란 이름의 괴물이었다.


- 성공하고 싶어? 그럼 남을 속이고, 짓밟고, 빼앗으면 돼.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라고.

- 인정? 그것도 돈과 힘이 있는 놈들이 하는 거지. 없는 놈이 인정을 베풀면 그건 쓸데없는 오지랖이 되는 거야.

- 내가 언제 그런 말 했어? 이건 다 네 책임이야. 난 모른다. 정 억울하면 법대로 따지든지. 병신. 이건 순진한 거야, 멍청한 거야?


그때는 너무 어렸다.

순하고 물러터져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호구라는 비웃음과 상처뿐.


- 미안해. 오빠는 좋은 사람이지만, 성공할 사람은 아니야. 사람 좋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욕이라고.


그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그녀의 말도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착하게 살고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줄 알았는데.

남을 짓밟고, 빼앗고, 죽여야만 성공하는 게 현실이었다.


‘아니다. 난 틀리지 않았다. 잘못된 건 내가 아니라 세상이었다. 사람과 정, 꿈과 이상. 세상엔 돈 말고도 중요한 게 많다.’


이를 악물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움켜쥔 주먹에서 피가 흘렀다.


- 마법사님!


박훈근의 다급한 목소리가 그를 현실로 잡아끌었다.


퍼퍼펑, 좌우에서 공격이 폭발했다.

턱에서 가장 부드러운 부분. 붉은색으로 표시된 약점에 작은 틈이 생겼다.


- 지금이다!


민재의 짧은 고함.


- 에라 모르겠다.


박훈근은 허리 뒤에서 야구공만 한 구슬 두 개를 꺼내 던졌다.


퍼펑, 그와 몬스터 사이에 눈 부신 빛이 번쩍였다.

그와 몬스터, 헌터들, 주위의 모든 풍경이 빛에 흡수되듯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 꿈은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마법사. 난 고향을 지키며 내 방식대로 마법의 끝을 보겠다!”


민재는 놈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주먹을 뻗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인가?

통신을 차단한 김창훈에게 하는 말인가?

아니면 자신을 비웃었던 모두에게 하는 말인가?


듣는 대상이 불분명했지만, 그의 음성은 결심을 굳힌듯 단호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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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주인공 (1) +1 24.03.01 195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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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거래 성립 (1) +1 24.02.28 210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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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잡초 제거 (1) +1 24.02.26 234 5 12쪽
12 오히려 잘됐다 (2) +1 24.02.25 259 7 12쪽
11 오히려 잘됐다 (1) 24.02.24 290 5 13쪽
10 내가 있어야 할 곳 (5) +1 24.02.24 292 7 13쪽
» 내가 있어야 할 곳 (4) 24.02.23 296 6 11쪽
8 내가 있어야 할 곳 (3) 24.02.22 323 8 12쪽
7 내가 있어야 할 곳 (2) 24.02.21 343 6 13쪽
6 내가 있어야 할 곳 (1) +1 24.02.20 388 11 13쪽
5 당신 누구야? (2) +2 24.02.19 430 8 12쪽
4 당신 누구야? (1) 24.02.18 479 12 13쪽
3 첫 재배 24.02.17 545 16 13쪽
2 농부는 농부다 24.02.16 659 17 13쪽
1 내 농지에서는 마법이 자란다 24.02.16 713 1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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