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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짓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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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향
작품등록일 :
2024.02.16 17:04
최근연재일 :
2024.03.11 19:1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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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글자수 :
146,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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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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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빚지고는 못 산다 (4)

DUMMY

박인환과 김 연구원은 가드레일 쪽에 바싹 붙었다.

민재가 둘의 가운데에 서서 양방향의 적을 상대하는 형국이었다.

 

상대도 본격적으로 스킬 발동했다.

우선 정면의 적은 바닥에 양손을 짚고 주문을 읊조렸다.

놈의 좌우에서 아스팔트 피부를 지닌 해골들이 스스로 솟아올랐다.

 

“소환술사?”

 

민재는 흠칫 놀라며 트롤의 분노를 날렸다.

콰직, 해골 병사들은 공격 한 번 못 해보고 아스팔트 알갱이가 돼 흩어졌다.

 

놈의 소환술은 시간 끌기였다.

그사이 배후의 적들도 스킬을 발동했다.

 

- 임미테스 벤티(immítes venti, 사나운 바람)······.

 

한 놈은 바람 속성의 각성자였다.

어디선가 흙먼지를 동반한 강풍이 불어왔다.

 

- 아길리타스(agílĭtas, 민첩성)······.

 

다른 놈은 신체 능력, 특히 속도를 강화하는 타입이었다.

놈은 십여 미터의 거리를 단숨에 좁혀 그의 곁에 나타났다.

 

“죽어!”

 

놈이 품에서 단검 두 자루를 꺼내 휘둘렀다.

 

민재는 원거리 물리 공격이 장기인 마법사.

한 명이 좌표 계산을 못 하게 방해하고, 다른 한 놈이 근접전을 펼친다.

 

아주 좋은 작전이었다.

다른 마법사라면 쉽게 목이 떨어졌을 것이다. 다른 마법사라면.

 

‘나에 대한 연구를 안 했군. 최하급 마법사라고 무시한 건가?’

 

그는 눈으로 좌표를 계산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광학입자탄이 터진 순간에도 몬스터의 약점에 정확히 마법을 꽂은 전적이 있었다.

 

게다가 두엄 덕분에 패시브 스킬도 향상됐다.

놈처럼 빠른 건 아니었지만 일반 마법사의 몸놀림은 뛰어넘었다.

 

‘어림없다!’

 

그는 트롤의 분노를 산탄총처럼 터뜨려 일종의 방어막을 만든 한편, 뒤로 슬쩍 물러났다.

 

“뭐야?”

 

놈의 당혹스러운 외침.

 

단검은 그의 가슴과 목을 스쳐 허공을 갈랐다.

오히려 트롤의 분노 때문에 놈이 허겁지겁 물러났다.

 

다시 오른쪽.

새로운 해골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이번엔 셋.

 

‘그건 안 통한다니까.’

 

민재는 트롤의 분노로 셋을 날려버렸다.

 

그때였다.

콰쾅, 돌연 천둥번개가 치며 하늘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귀곡성에 가까운 몬스터 특유의 울음도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환술?’

 

민재는 흠칫 놀라며 멈칫했다.

 

가짜라는 건 단번에 알아챘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건 일종의 반사 행동이었다.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민재 씨!”

“도와주세요!”

 

뒤에서 박인환과 김 연구원이 동시에 소리쳤다.

 

안 봐도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신체 능력을 강화한 놈이 민재 대신 둘로 타깃을 바꿨다.

 

‘젠장, 물건만 뺏어서 튀자는 건가?’

 

환술 때문에 방향 감각이 마비됐다.

소리는 들렸지만 어느 쪽인지 전후좌우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크윽.”

 

박인환의 짧은 비명.

 

환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환술도 유형이 다양한 바. 갑자기 나타나는 대신 지속 시간이 짧은 타입이었다.

 

감각이 돌아왔다.

민재는 소리 난 곳으로 몸을 돌렸다.

 

박인환은 오른쪽 어깨를 부여잡고 쓰러져 있었다.

김 연구원은 안경이 깨지고 눈이 멍들어 있었는데, 문제는 그가 품에 꼭 안고 있던 가방이었다. 가방이 안 보였다.

 

“안 돼!”

 

김 연구원은 사색이 돼 외쳤다.

 

“물건은?”

 

민재는 급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놈은 가방을 든 채 뒤도 안 보고 달아나고 있었다.

 

“멈춰!”

 

패시브 스킬, ‘농사는 체력이다’를 극성으로 끌어 올리려는 찰나였다.

 

끄에에엑.

왼쪽에서 기분 나쁜 고함이 들렸다.

또 아스팔트로 된 해골 병사. 이번에는 일곱 놈이었다.

 

‘물건을 추격할 것인가, 박인환과 김 연구원을 보호할 것인가?’

 

민재는 좌우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사이에도 물건을 가진 놈은 멀어지고 있었다.

 

고민은 짧았다.

 

‘어차피 C급 약물이라고 했잖아? 사람이 중요하지, 그깟 하급 약물이 중요해?’

 

그는 달려오는 해골 병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울분을 토해내듯 몬스터들을 아예 가루로 만들었다.

 

그사이 놈들은 퇴각.

나타날 때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흩어졌다.

경호팀 둘이 불과 얼음의 화살을 날렸지만 메아리처럼 공허했다.


“젠장, 일 대 일이었다면 다 이길 수 있었는데.”

 

민재는 놈들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발을 굴렀다.

 

분했다.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실전은 게임처럼 일 대 일 토너먼트가 아니라는 걸.


***


최초의 폭발이 있고 1, 2분.

폭풍처럼 휘몰아친 시간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민재는 박인환을 일으켜 세웠다.


“면목 없습니다. 여러분의 발목만 잡았네요.”


박인환은 얼굴을 붉히며 쓰게 웃었다.


상처는 안 깊었다.

칼이 근육을 살짝 찌른 정도였다.

출혈도 금방 멎어 치유 마법을 쓸 것도 없었다.

경호팀원 하나가 차에서 비상 약을 가져와 치료했다.


문제는 부상자보다 물건이었다.


“기가 막히는군. 뭐하는 놈들이야?”

“제대로 당했어. 우리가 여길 지나갈 걸 어떻게 알았지?”


다들 황당해 쓴웃음을 머금었다.

몇 명은 화를 삭이기 위해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적이 비겁하게 기습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건 변명이 안 된다. 전투는 과정보다 결과. 이유가 어찌 됐건 우리의 완패야.’


각성 후 처음으로 맛본 좌절.

민재도 허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박살 난 승합차와 전투 흔적으로 엉망이었다.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국도. 민간인 피해가 없었던 게 다행일 정도였다.


적은 그림자도 없었다.

오토바이의 스키드 마크만 요란했다.

민재에게 당한 한 대가 널브러져 있었지만, 딱히 단서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연구원은?’


왼쪽을 돌아봤다.

김 연구원은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그래도 박 선생님의 광역 디펜스 덕분에 피해가 적었어요. 민재 씨 활약도 대단했고.”

“맞아요. 특히 민재 씨. 깜짝 놀랐습니다. 무늬만 F급이지 혼자 셋이나 상대했잖아요.”

“그런 고속 캐스팅 마법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정정당당한 대결이었다면 상대가 안 됐을 겁니다.”


경호팀이 다가와 위로했다.


그들은 그나마 상태가 좋았다.

승합차도 기스가 많았지만 그럭저럭 굴러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민재의 승합차가 폭발로 튕겨 나간 직후,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꺾은 덕분이었다.


“어쩌죠? 물건이 넘어갔는데.”


민재는 김 연구원을 돌아봤다.

칭찬받았어도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어차피 중요한 것도 아니잖아요.”

“맞아요. 일단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다행이죠.”


다른 경호원들이 위로하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거 가짜 아니었습니다.”


김 연구원은 하얗게 질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짜가 아니라니요?”

“C급 약물 아니었어요?”


다른 각성자들은 이해가 안 돼 되물었다.

박인환만 뭔가 안다는 듯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거 설마?”


민재는 뒤늦게 뭔가 떠올리고 얼굴이 굳어졌다.


정보가 샌 상황.

미끼를 수송하는 것처럼 위장한다.


삼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대현을 미끼로 썼어요. 여기 있던 게 진짜였다고요.”


다 끝났어. 내 인생도 끝이야.

김 연구원은 넋 나간 표정으로 끝났다는 말을 반복했다.


“아니, 이 양반이. 왜 쓸데없이 역발상을 하고 지X이야?”

“진짜를 맡길 거면 방탄 차량이라도 지원해 주든지.”


다른 경호원들이 따지듯 외쳤다.

존댓말이 사라졌다.


“젠장, 어설픈 역발상이 제대로 꼬였구먼.”


박인환도 먼 산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래도 제일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답게 상황 파악이 빨랐다.


“남은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경찰이나 특수대에게 연락한다. 둘째, 우리끼리 추격을 개시한다.”


경황 중이라 정확히 못 봤지만, 놈들의 숫자는 그들과 비슷했다.


“그건 안 됩니다. 경찰에 연락하면 ‘물건’도 알려지게 될 거라고요. ‘물건’은 공식적으로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김 연구원이 대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C급 약물 수송?’


민재는 내심 헛웃음이 나왔다.


연구원의 태도를 보니 확실해졌다.

이번 수송은 단순한 위장 정도가 아니었다.

연구소에서 뭔가 터무니없는 일을 꾸민 게 분명했다.


“추격도 쉽지 않을 겁니다. 폭발 전에 보셨죠? 괴상한 환영.”

“맞아요. 쓸데없는 사명감으로 목숨 걸 필요는 없다고요.”

“하지만 위약금이 문제입니다. 어찌 됐건 운송은 실패한 거잖아요. 법적으로 상당히 시끄러울 거예요.”

“이 바닥은 은근히 좁은 거 알죠? 우리가 물건을 빼앗기고도 가만히 있었다는 게 퍼지면 앞으로 경호나 운송은 끝장입니다.”


다른 경호원들도 의견이 분분했다.

경찰에 맡기자는 쪽이나 추격하자는 쪽. 둘 다 일리가 있었다.


‘환술에 두 번이나 당했다.’


민재는 주먹을 슬쩍 움켜쥐었다.


빚은 갚아줘야 직성이 풀리는 법.

놈들을 추격하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섭섭하지 않게 사례하겠습니다. 현금 일억. 제 사비를 털어서라도 드리겠습니다. 이게 잘못되면 저 혼자만 문제가 아니라 연구소, 나아가 한국 전체가 위험하다고요.”


김 연구원은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외쳤다.


“현금 일억?”


경호원들은 눈이 번쩍 뜨였다.

변명하던 사람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꿨다.


“민재 씨 생각은 어떻습니까?”


박인환은 쓰게 웃으며 민재를 돌아봤다.


“빚지고는 못 살죠. 우리도 기습으로 놈들에게 한 방 먹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민재는 김 연구원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대신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김 연구원은 구세주를 만든 듯 반색했다.

할 수 있다면 그의 발이라도 잡을 분위기였다.


“전에 보니까 중첩 핵이 있던데. 그걸 주실 수 있습니까?”

“그건 왜요? 실험 실패작이라 가치가 없는데.”

“팔려는 게 아닙니다. 마법사라 연구해 보고 싶은 게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폐기되는 거, 제가 어떻게든 한두 개쯤 빼 보겠습니다.”


김 연구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뭐든 쓰기 나름이지. 여느 마법사에겐 불필요하겠지만, 내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특별한 핵이지.’


민재는 어금니를 깨물고 웃음을 참았다.


“그런데 놈들을 어떻게 추격합니까? 벌써 멀리 도망쳤을 텐데. 물건에 GPS라도 부착했나요?”


누군가가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건 내게 맡기세요. 은퇴했다고 만만하게 본 거 같은데. 부상으로 은퇴했어도 능력은 남아있죠.”


박인환은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자신만만하게 덧붙였다.


“제 고유 스킬 중 하나가 추격 계통입니다. 이럴 줄 알고 케이스에 저만 아는 표식을 남겼죠.”


역시 베테랑.

민재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사람들은 흔히 농부가 순박하다고 하는데. 그건 잘 모르고 하는 말이지.’


신성리 주민만 해도 평소에는 온순했다.

하지만 장마철에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몰아치면 논에 나가 싸워 이기는 것도 농부의 습성이었다.


‘두목은 환술사일 거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민재는 후드를 눌러 쓴 실루엣을 떠올렸다.


마법사 대 환술사.

마나를 컨트롤해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을 만든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또한 각성의 여러 항목 중에서 정신 관련 수치가 높았는데, 때문에 일부에서는 마법사와 환술사를 같은 정신계 각성자로 분류하기도 했다.


‘환술이라고? 삼세번은 없지. 빚은 반드시 갚아준다!’


얼굴도 모르는 적이었지만, 그는 전의를 불태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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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빚지고는 못 산다 (1) 24.03.06 132 4 12쪽
21 농사는 체력이다 (3) 24.03.05 136 5 12쪽
20 농사는 체력이다 (2) +1 24.03.04 152 6 13쪽
19 농사는 체력이다 (1) +1 24.03.03 167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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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주인공 (1) +1 24.03.01 195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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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거래 성립 (1) +1 24.02.28 211 6 13쪽
14 잡초 제거 (2) +1 24.02.27 214 6 11쪽
13 잡초 제거 (1) +1 24.02.26 235 5 12쪽
12 오히려 잘됐다 (2) +1 24.02.25 260 7 12쪽
11 오히려 잘됐다 (1) 24.02.24 290 5 13쪽
10 내가 있어야 할 곳 (5) +1 24.02.24 292 7 13쪽
9 내가 있어야 할 곳 (4) 24.02.23 296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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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내가 있어야 할 곳 (2) 24.02.21 343 6 13쪽
6 내가 있어야 할 곳 (1) +1 24.02.20 389 11 13쪽
5 당신 누구야? (2) +2 24.02.19 430 8 12쪽
4 당신 누구야? (1) 24.02.18 479 12 13쪽
3 첫 재배 24.02.17 545 16 13쪽
2 농부는 농부다 24.02.16 659 17 13쪽
1 내 농지에서는 마법이 자란다 24.02.16 713 1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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