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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짓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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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2.16 17:04
최근연재일 :
2024.03.1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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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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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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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농사는 체력이다 (3)

DUMMY

민재는 고라니를 향해 돌진했다.

패시브 스킬은 숨쉬는 것처럼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러웠다.


의식을 집중하고 체내의 마나를 느낀다.

발이 지면을 박차려는 찰나 발끝에 마나를 집중한다.


부웅, 평소보다 빠르게 힘차게 움직인다.

그리고 다시 지면에 닿으려는 찰나, 같은 요령으로 반대 발을 움직이고 가속한다.


‘이런 요령인가?’


처음엔 위화감이 느껴졌다.

강화복을 처음 착용했을 때와 비슷했다.


갓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뒤뚱뒤뚱.

중심을 잡는 것도 어려웠지만, 세 걸음쯤 반복하자 대충 감이 왔다.


# 히든 패시브 스킬 활성화

농사는 체력이다.


반투명한 상태 창이 바뀌었다. 활성화로.


마법의 구현과 달랐다.

마나의 소모가 증가하는 대신 운동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이혜연 같은 물리계 고등 각성자보단 느렸지만, 어지간한 C급 디펜더보단 빨랐다.


‘마법 농부도 농부. 아침부터 밤까지 농사를 지으려면 체력이 기본이지.’


생각은 길었지만 실제 시간은 짧았다.

순식간에 20미터를 격하고 고라니의 품을 파고들었다.


“뭐, 뭐야?”


다른 이들의 비명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


놈의 크고 붉은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패시브 스킬에 들떠 정작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공격 마법이 없는데. 목젖을 후려칠까?’


자신 없었다.

운동 능력이 좋아졌을 뿐.

디펜더처럼 내구력이 높아진 건 아니었다.

놈의 단단한 가죽을 맨주먹으로 쳤다간 오히려 그의 손이 부러질 것 같았다.


끼이이익.

놈이 괴상하게 울며 박치기하듯 머리를 들이밀었다.


‘젠장.’


타앗, 민재는 왼발로 지면을 박차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슬아슬했다.

놈의 튀어나온 주둥이가 잔상을 뚫고 지나갔다.

그는 놈을 지나친 뒤, 다시 창고 벽을 박차고 오른쪽으로 꺾어졌다.


제비가 낮게 나는 것 같았다.

가속이 붙어 한걸음에 오륙 미터씩 도약했다.


고라니도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인간이 느닷없이 낮고 빠르게 내달리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날 따라와라!’


그는 상체를 돌리고 놈을 향해 무전기를 던졌다.


퍼억, 놈의 긴 대가리에 정확히 명중했다.

끼에에에엑, 놈이 붉은 눈동자를 빛나게 길게 울음을 터뜨렸다.


좁은 시야와 단순함은 놈의 본능.

놈은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민재만 따라왔다.


큰 원을 그리듯 술래잡기를 시작했다.

민재는 앞서 달리면서 주위를 빠르게 훑어봤다.


“저게 무슨 싸움이여?”

“강 회장이 유인하는 거 같은데?”


사람들은 듬성듬성 서서 놈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물을 던질까?”


몇 명은 그물을 쥔 손을 움찔거리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둘 다 너무 빨랐다.

자칫하면 고라니가 아니라 민재가 그물을 덮어쓸 위험이 있었다.


예상이 맞았다.

5분쯤 달리자 놈은 혀를 길게 빼고 숨을 헐떡거렸다.


“슬슬 마무리 하자.”


민재는 창고 지붕을 향해 팔을 들고 검지를 빙빙 돌렸다.


- 그물 준비하셔유.


쿤 씨가 눈치 빠르게 무전을 날렸다.


다시 1분 후.

놈이 제 풀에 지쳐 비틀거렸다.

길고 단단한 머리에서 허연 수증기가 솟아올랐다.


“좋았어. 변종도 별거 없구먼.”

“변종이 된다고 머리가 좋아지는 건 아니잖아.”


영감님들은 여유를 되찾고 서서히 포위망을 좁혔다.


민재도 놈에 맞춰 속도를 늦췄다.

계획대로 놈을 지치게 했지만, 그도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마나의 소모가 생각보다 컸다. 몇 시간 동안 마법 작물을 재배한 것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 잡것. 잡았다!”


해병대 영감님과 슈퍼집 영감님이 좌우에서 큰 그물을 던지려는 찰나였다.


끼에에엑.

놈이 고라니 특유의 높은 톤으로 울며 내달렸다.

지친 척한 속임수였거나 마지막 힘을 짜낸 모양이었다.


“막아!”

“잡아!”


영감님들이 던진 그물들은 속절없이 허공을 갈랐다.


“오메, 이게 뭐여?”


하필 이쁘니 할멈이 있는 쪽이었다.


주저앉은 이쁘니 할멈.

놈의 옆구리를 노리고 돌진하는 민재.

그리고 할멈을 막아서는 해병대 영감님의 그림자가 겹쳤다.


***


놈이 이마로 해병대 영감님의 가슴을 들이받았다.

동시에 왼쪽에서 민재가 어깨로 놈의 긴 목을 들이받았다.


‘영감님은?’


민재는 반사적으로 영감님을 돌아봤다.


상징 같은 빨간 모자가 너풀거렸다.

영감님의 마른 몸은 실 끊긴 연처럼 날아갔다.


“이놈이!”


다른 영감님들의 그물이 놈을 이중, 삼중으로 짓눌렀다.


놈은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그물을 빤히 보며 옴짝달싹 못 했다.


“영감!”


이쁘니 할멈이 울면서 영감님에게 달려갔다.


영감님은 움직일 수 없었다.

고개만 살짝 들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할멈은 영감의 머리를 들어 자기 무릎 위에 앉혔다.


“이 미친 영감탱이.”

“니미럴,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 없는 거 몰라?


다른 영감님들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둘을 둘러서서 악의 없는 욕설을 내뱉었다.


“울지 말아. 이쁜 눈가에 주름 생겨.”


해병대 영감님은 마른 손으로 할멈의 눈가를 쓰다듬었다.


뼈가 부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는데.

할멈을 보는 영감님의 눈은 반달형으로 웃고 있었다.


“미안혀. 다이아에 속아서 평생 고생만 했지? 나만 안 만났더라면 김지미 뺨치는 인기 배우가 됐을 텐데.”

“······.”


이쁘니 할멈은 말없이 흐느꼈다.

작고 구부정한 어깨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진정한 사랑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난 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었소. 그리고 그걸 잃고 나서야 크게 후회했지. 인간사 가장 큰 고통은 바로 후회이니, 하늘이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난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겠소. 만약 사랑에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일만 년으로 하겠소.”


해병대 영감님이 짜내듯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우는 걸까, 웃는 걸까?

할멈은 애잔한 눈길로 영감을 바라봤다.


‘응?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민재는 옆에서 듣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꼴에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야, 너 안 죽었다.”


불알 친구 슈퍼집 영감님이 심드렁하게 산통을 깼다.


“이 영감탱이, 몸뚱이 하나는 기가 막히네. 무슨 보약을 먹은 거야?”


짱구네 영감님도 해병대 영감님을 툭툭 차며 내뱉었다.


“응? 안 죽었어?”


그제야 해병대 영감님은 자기 몸을 더듬거렸다.


흙먼지만 조금 묻었을 뿐.

까진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사랑의 기한은 일만 년? 그런 오글거리는 대사 함부로 읊지 마세요. 표절로 쇠고랑 찹니다.”


민재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쓰게 웃었다.

이제 기억났다. 해병대 영감님 대사를 어디서 들었는지.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오래된 홍콩 영화였다.

다른 사람들은 코미디라고 웃었는데, 해병대 영감님은 심금을 흘리는 사랑 얘기라며 좋아했다지?


“니미럴, 오랜만에 분위기 좋았는데. 낭만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촌놈들. 니들이 사나이 순정을 알아?”


해병대 영감님을 툴툴거리며 먼지를 털고 일어났다.


“이 양반이, 다 늙어서 무슨 주책이야.”


이쁘니 할멈은 민망한 듯 얼굴이 빨개져 돌아섰다.


***


잡은 고라니는 읍내의 업자에 넘겼다.

면사무소에서 변종 동물들에 포상금을 건 터. 놈은 그중 최고 등급이었다.


“상처 하나 없이 잘 잡으셨네요. 이렇게 큰 놈은 처음 봅니다.”


업자도 특수 화물차에 놈을 실으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포상금은 지역 상품권으로 500만 원.

창고를 수리하고 조촐하게 잔치도 벌일 수 있는 금액이었다.

면사무소 김 주사의 확인이 끝나면 다음 주 안으로 입금된다고 했다.


마을의 첫 전투.

승리 후 회식이 빠질 수 없었다.

이쁘니 할머니가 마을 회관에서 수제비를 뚝딱 만들었다.


“내 사랑은 만년으로 하겠소? 미쳤네.”

“솔직히 말해 봐. 언젠가 써먹고 싶어서 몰래 연습했지?”


영감님들은 막걸리를 마시며 왁자지껄.


‘해병대 영감님의 낭만 전설이 추가됐네. 아마 두고두고 놀리실 테지? 나도 상철이를 놀려야 하나?’


민재도 옆에서 영감님들의 대화를 듣고 피식 웃었다.


밤 10시가 조금 넘어서 집에 돌아왔다.

우선 누렁이에게 간식을 준 뒤, 간단히 샤워하고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냈다.


“뜻하지 않게 히든 패시브라니. 능력이 성장하면 추가 스킬도 더 나올까?”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였다.


스킬을 활성화했을 때의 감각.

뺨을 스치던 바람, 팽팽하게 당겨졌던 근육이 생생했다.

명칭은 ‘체력’ 강화였지만, 실제로는 체력과 운동 능력 강화에 가까웠다.


‘패시브 스킬은 꼭 필요할 때만 쓰자. 마나의 소모가 너무 커. 그동안 패시브 스킬이 안 나온 것도 내 마나가 부족했기 때문이겠지?’


스킬이 전혀 뜬금없는 건 아니었다.

명칭이나 구체적인 방법은 몰랐지만, 비슷한 생각은 전부터 하고 있었다.


- ······마법사, 전사, 대장장이. 직업은 달라도 원리는 같습니다. 중요한 건 마나. 단지 마나를 사용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죠.


연수에서 이 말을 들었을 때였다.


‘그럼 나도 물리계 각성자처럼 운동능력을 강화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혜연 같은 전문 물리계 각성자보단 못할 것이다.

물리계 각성자는 각성에 따른 신체 변화 외에도 각종 스킬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고 했다.


“이혜연 수준은 바라지도 않는다. 마법사가 그런 능력까지 지니면 사기니까. 제 한 몸 지킬 정도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면, 전투에서도 큰 도움이 될 거야.”


전장을 고속으로 누비는 마법사.

다양한 공격 마법을 적들에게 작렬한다.


상상만으로도 입이 귀에 걸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맥주 한 캔을 다 비웠을 무렵이었다.


“회장님 계셔유.”


컹컹, 밖에서 누렁이 짖는 소리와 쿤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와.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


민재는 문을 열고 반갑게 맞았다.


‘아까 할 말이 있다고 했지?’


고라니 사냥 때문에 깜빡하고 있었다.

마을 회관에서 따로 얘기하려고 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일단 소파에 마주 앉았다.


“캔 맥주 한잔할래?”

“괜찮아유. 아까 막걸리 많이 마셨어유. 그보다 낮에 말씀드리려고 했던 거유.”


쿤 씨는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의 집을 배경으로 노을이 잘 찍힌 사진들이었다.


“이게 왜······. 어?”


민재는 사진을 집어 들다가 멈칫했다.


“역시 이상하쥬? 그때는 찍느라 바빠서 잘못 봤어유.”


꿀꺽, 쿤 씨는 마른침을 삼키고 사진 구석을 가리켰다.


마법 작물을 재배하던 텃밭이었다.

다른 곳은 컬러로 잘 나왔는데, 그 주위만 온통 검은색이었다.


‘마법 작물이 까맣게 찍혔다면 이해하겠는데, 옆에 있던 토마토는 왜 변색한 거지? 육안으로 보면 멀쩡했는데.’


각도를 달리한 다른 사진들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한 건 검은 부분에서 풍기는 기묘한 느낌이었다.

심령사진을 보는 기분이랄까? 이유 없이 오싹하고 등골이 서늘했다.


‘해병대 영감님도 이상했지.’


영감님이 멀쩡한 건 진즉 알고 있었다.

힐 마법을 구현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 마법 재배는 주위의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가설이 굳어졌다.

특히 해병대 영감님은 바로 뒷집에 살고 있었다.

그가 집을 비울 때마다 누렁이 밥을 주는 것도 어르신이었다.


“왜 그런 거래유? 회장님 각성 능력 때문인 거쥬?”


쿤 씨는 탐색하듯 그를 바라봤다.


“원인은 나도 몰라. 다른 사람한테는 말 안 했겠지?”

“당연하쥬. 사장님한테도 카메라가 고장 난 거 같다고 대충 둘러댔어유.”

“그래, 잘했어. 일단 비밀로 해줘.”


민재는 다시 사진의 검은 부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 영감님들도 나처럼 각성하는 건가?’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고개를 내밀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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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빚지고는 못 산다 (1) 24.03.06 13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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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주인공 (1) +1 24.03.01 195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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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거래 성립 (1) +1 24.02.28 211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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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잡초 제거 (1) +1 24.02.26 23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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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가 있어야 할 곳 (1) +1 24.02.20 389 11 13쪽
5 당신 누구야? (2) +2 24.02.19 430 8 12쪽
4 당신 누구야? (1) 24.02.18 480 12 13쪽
3 첫 재배 24.02.17 545 16 13쪽
2 농부는 농부다 24.02.16 660 17 13쪽
1 내 농지에서는 마법이 자란다 24.02.16 714 1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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