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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짓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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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2.16 17:04
최근연재일 :
2024.03.11 19:1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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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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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6,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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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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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내가 있어야 할 곳 (3)

DUMMY

일주일 후 아침 무렵.

핵의 노란 열매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탐스러워졌다.

여전히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민재는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온몸이 짜릿했다.


# 재배 성공

- 보상 : 하늘의 외침

- 수확 : 0/1


마침내 재배가 끝났음을 알리는 상태 창이 나타났다.

‘하늘의 외침’을 검지로 누르자 구체적인 설명이 나타났다. 예상대로 원거리 뇌전계 마법이었다.


수확의 요령은 전과 같았다.

조심스럽게 열매를 따자 마법이 스르르 스며들었다.


열매는 모두 다섯 개.

마지막 열매를 흡수하자 줄기는 재가 돼 눈송이처럼 흩어졌다.


“한해살이 식물인가?”


민재는 빈 상자를 내려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단전에서 짜릿한 기운이 소용돌이처럼 용솟음쳤다.


한해살이란 열매를 맺으면 씨를 남기고 죽는 식물이었다.

강낭콩이 대표적이었는데, 테투토의 핵은 씨도 안 남기고 사라졌다.


다시 상태 창이 나타났다.

그사이 트롤의 분노는 최종 수확이 끝난 터. 재배 현황이 1/2를 가리켰다.


“한번 시험해 볼까?”


오른손을 뻗으려다가 멈칫했다.


겨우 다섯 방.

연습으로 낭비하기 아까웠다.

물론 핵을 심으면 언제든 다시 얻을 수 있겠지만, 몬스터의 핵은 돈이 있다고 아무나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니다, 아끼자. 장소도 마땅치 않고.”


민재는 입맛을 다시며 손을 움츠렸다.


간단히 아침을 먹은 뒤.

모처럼 펑퍼짐한 운동복을 벗고 일상복을 입었다.

베이지색 면바지와 흰 셔츠였지만 키가 큰 덕분인지 제법 폼이 났다.


왕왕.

마당에 나가자 누렁이가 꼬리를 흔들며 짖었다.


“읍내에 다녀올게. 지난번처럼 개장수 따라가지 말고, 집 잘 지켜. 말 잘 들으면 다녀와서 커피 줄게.”


민재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 경운기에 올랐다.


고물 화물차는 트롤과의 전투에서 박살 났다.

폐차하고 보험사에 청구했지만, 그가 트롤을 공격한 경우라 보험사에서 처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당분간은 경운기와 작은 오토바이가 그의 교통수단이었다.


“눈물이 난다. 이 길을 걸으면.”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경운기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경운기가 덜덜거리며 대문을 나서 도로로 꺾어질 무렵이었다.


“아이고, 강 회장. 오늘 신수가 훤하네.”


옆에서 불쑥 해병대 강 영감님이 나타났다.


밭에 나가는 차림이었지만 신발이 깨끗했다.

아침부터 나무 그늘에 앉아 그의 집을 살핀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요즘 영감님들이 좀 이상한데? 나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


고개를 갸웃하는 민재.

영감님 앞에서 브레이크를 잡았다.


“오늘 멋쟁이네. 영화배우 같아. 서울이라도 가나?”

“읍내 나갑니다. 누렁이 사료랑 이것저것 살 게 많아서요.”

“그래? 난 또 서울 가는 줄 알았지. 잘 다녀와.”


해병대 영감님은 묘한 웃음을 흘리며 그를 위, 아래로 훑어봤다.


‘뜬금없이 웬 서울? 설마 경운기 타고 서울까지 가나?’


내심 의문이 커졌다.


자칭 신성리의 로맨티스트.

평소에도 실없는 농담을 자주 하는 분이었다.


“운전 조심하고.”

“네. 다녀오겠습니다.”


민재는 꾸벅 인사하며 경운기 핸들을 돌렸다.


***


오랜만에 읍내에 나왔다.

서울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번화한 거리를 보니 기분이 새로웠다.


“여어, 강 회장 왔어?”

“언제 맥주 한잔해야지?”


지나다가 아는 얼굴도 여럿 만났다.

워낙 작은 마을인 탓에 다들 학교 선후배, 친구, 혹은 친구의 가족 등으로 얽혀 있었다.


점심은 읍내의 유일한 패스트 푸드점에서 해결했다. 햄버거와 콜라.

본래 밥과 찌개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시골 입맛이었지만, 인스턴트 식품도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었다.


그다음엔 대형 마트로 이동.

누렁이 사료와 식자재 등 이것저것 샀다.

서울 촌놈들은 시골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마트며 카페 등 있을 건 다 있었다.


별다방에서 커피를 산 뒤.

농기구 수리점으로 경운기를 돌렸다.

며칠 전부터 마을에서 공동으로 쓰는 트랙터의 엔진 소리가 이상했다. 수리에 필요한 부품은 오기 전에 전화로 확인하고 주문한 상태였다.


“강 회장, 각성했다며? 메테오 스트라이크로 몬스터 군단을 쓸어버렸다던데. 서울에서 검사는 받아 봤어? 등급이 뭐래? EX인가? 이제 레드 이글 같은 대형 길드에 들어가는 거야?”


수리점 주인은 부품들을 경운기에 실어 주며 호들갑을 떨었다.


‘메테오 스트라이크? EX 급? 대체 소문이 어디까지 난 거야?’


조미료가 너무 들어갔다.

민재는 얼굴이 빨개져 헛웃음을 흘렸다.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으신 거예요? 각성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아직 검사도 안 받았습니다. 메테오 스트라이크는 꿈도 못 꾸고요.”


사태를 수습하느라 진땀을 뺐다.


의심 가는 사람은 딱 한 명.

신성리의 인간 확성기, 해병대 강 영감님이었다.


‘신성리를 넘어 읍내에까지 자랑하고 다니신 건가? 자랑은 해병대 영감님이 하셨는데, 부끄러움은 왜 내 몫일까?’


차세대 영농 인재 강 회장.

신성리에는 슈퍼 각성자가 있다. 읍내에는 그런 각성자 없지? 부럽지? 촌놈들, 크크크.


영감님이 막걸리를 마시며 떠드는 모습이 안 봐도 훤했다.

단짝인 슈퍼집과 짱구네 강 영감님들도 취해서 장단을 맞췄겠지.


“겸손하기는.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며? 이제 서울에서······.”


사장이 피식 웃으며 말하는 도중이었다.


삐이익, 긴급재난문자 도착했다.


[게이트 경보]

13:04 E급 게이트 생성.

신성리, 신강1리, 신강2리 주민께서는 가까운······.


“뭐?”


민재는 문자를 눈으로 읽다가 움찔했다.


게이트 생성 장소는 신성리.

신성리를 위시해 인근 마을에 긴급 대피령이 떨어졌다.


웨에엥,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검은색 전투 트레일러들이 일렬로 지나갔다.

신호등은 무시. 다른 차들은 비상 깜빡이를 켜고 트레일러에게 양보했다.


“화이트 울프?”


트레일러 옆에 그려진 흰 늑대 상징이 눈에 띄었다.


충청도를 지키는 건 레드 이글, 블랙 스컬, 화이트 플래시 등의 길드 세 곳과 정부 소속의 대 게이트 특수부대였다.

그 외에도 열 명 안팎으로 구성된 작은 길드가 여럿 있었지만, 그런 곳은 대형 길드나 특수부대를 보조하는 형태로 전투에 참여했다.


‘쟤들은 레드 이글보다 전투력이 떨어진다고 들었는데. 괜찮을까?’


민재는 트레일러들이 지나간 방향을 보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신성리 쪽이 이상한 거 같아. 전에는 두어 달에 한 번도 안 나타났는데, 요즘은 툭 하면 나타나네.”


수리점 사장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민재를 바라봤다.


‘역시 신성리 일대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어. 꿈에서 본 괴상한 영감님도 뭔가 관련이 있는 걸까?’


저수지에서 품었던 불안이 보다 크고 뚜렷해졌다.

물론 내색하진 않았다. 아직은 근거 없는 막연한 추측이었다.


“별일 없겠죠. 지난번보다 낮은 등급이고, 헌터들도 출동했으니까요.”


애써 태연한 척했다.


하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두근. 원인 모를 긴장과 불안이 엄습했다.


“빨리 가 봐.”

“네?”

“내가 강 회장하고 하루, 이틀 알고 지냈나? 마을 일이라면 뭐든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인데, 헌터들한테 맡겨두고 마음이 편하겠어? 더군다나 강 회장은 이미 두 번이나 전투에 참여했잖아.”


사장은 책상 서랍에서 뭔가 꺼내 던졌다.

민재가 얼떨결에 받아 보니 자동차 열쇠였다.


“경운기 타고 돌아가면 한세월일 거야. 내 차 타고 가. 기스 나면 안 되는 거 알지? 지난번처럼 몬스터를 받아 버리면 손해배상 청구할 거야.”


사장은 가게 옆에 세워진 화물차를 눈으로 가리키며 히죽 웃었다.


“부품은 내가 배달해 줄게.”

“감사합니다. 나중에 계산해 드릴게요.”


민재는 허겁지겁 화물차에 올랐다.


***


민재는 가속 패달을 힘껏 밟았다.


긴급재난상황이 선포된 한낮의 도로.

차량은 드물었다. 신성리에서 도망치는 차는 간간이 보였지만, 신성리 쪽으로 가는 차는 한 대도 못 봤다.

부아앙, 그가 탄 화물차만 회색 연기를 뿜으며 빠르게 미끄러졌다.


“변종 게이트?”


센터패시아에 걸어둔 핸드폰을 곁눈질했다.


내비게이션의 교통정보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세상이었다.

게이트와 몬스터의 상황, 헌터들의 대응 등도 국가안전센터 홈페이지에서 실시간으로 안내했다.


“콜루베르(cólŭber).”


화면 우측 상단에 예상 몬스터의 정보가 떠올랐다.


- 등급은 그저 참고사항일 뿐. 절대적인 게 아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말이었다.


콜루베르, 신성리에 나타난 몬스터가 딱 그런 케이스였다.

마법 능력 F급, 공격력도 F급인 몬스터. 하지만 방어력과 체력은 AA 급이라면?

경보 시스템은 몬스터의 종합 등급을 낮게 판단하고, 이에 맞는 헌터의 투입을 요청한다.


그런데 막상 게이트에서 나오는 건 거대한 괴물.

무게 100톤, 길이 50미터에 이르는 뿔 달린 뱀이었다.


“변종 게이트는 로또 맞을 확률보다 훨씬 낮다던데. 진짜 로또라도 사야겠네.”


젠장, 민재는 신경질적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놈의 영상이 올라왔다.

놈은 브라질과 인도에서도 출현한 적이 있었다.

비상식적인 크기와 방어력 때문에 하급 헌터들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강철도 뚫는다는 검기, 용광로처럼 뜨겁다는 화염구, 대 몬스터용 특수 총알도 놈의 외피에 전부 튕겨 나갔다.


“기가 막히네. 다른 건 몰라도 방어력 하나는 압도적이잖아? 저게 D급이라고?”


어이가 없었다.


물론 인근에 대기하는 상위 헌터들도 긴급 출동할 것이다.

그러나 변종 게이트는 여느 게이트보다 오픈이 빨랐고, 하급 헌터들이 놈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지도 미지수였다.


“조금만 기다려라!”


가속 패달을 끝까지 밟았다.


저 멀리 회색 하늘.

거대한 눈 너머로 회색 뱀의 형상이 흐릿하게 아른거렸다.


***


화이트 울프 R-15 팀.


“씨발,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팀장 박훈근은 고함을 지르며 물러났다.


C급이라도 상위 30%에 드는 각성자였다.

전투 경험도 풍부했고, 특기인 오러 블레이드는 10cm 두께의 강철도 가를 수 있었다.


하지만 안 통했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공격은 겉보기만 요란할 뿐.

뿌연 먼지 틈으로 보이는 놈의 검고 거대한 몸뚱이에는 생채기 하나 없었다.


- 분석팀은 아직이야?


박훈근은 놈의 관자놀이를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날리며 무전을 보냈다.


- 변종이라 시간이 걸립니다.

- 이 새끼들아, 우리 다 죽은 다음에 분석을 마칠래?

- 그게 아니라······.


멍청한 분석관은 말끝을 흐렸다.

키보드를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들렸다.


- 전 대원, D3 포메이션 유지. 분석을 마칠 때까지 놈을 붙잡아 둔다.


박훈근은 애써 화를 억누르고 명령했다.


- D3.


팀원들의 짧은 복창.

팀장을 중심으로 12방위로 흩어져 몬스터를 포위했다.

몬스터가 앞으로 움직이면 뒤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면 오른쪽에서. 계속 반대 방향에서 공격해 놈의 발을 묶는 게 포메이션의 기본이었다.


- 아악.


8시 방향에서 앳된 비명이 들렸다.


갓 배치된 신입이 놈의 방향 전환을 못 따라가고 주저앉았다.

연맹의 전투 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다고 자랑하더니, 어리바리한 티를 냈다.


괴물이 머리를 돌리고 신입에게 입을 벌리려는 찰나였다.

파지직, 어디선가 노란 기운이 쏘아져 놈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마법사?”

“뇌전계?”


다들 마법이 날아온 곳을 돌아봤다가 멈칫했다.


언제 도착했을까?

면바지에 셔츠를 입은 사내가 화물차에서 내렸다.


손에는 무기 대신 낫을 들고 있었다.

자루가 길고 날이 시퍼런 전투용 낫이 아니었다.

시장에서 한 자루에 3,000원쯤. 손잡이와 날이 짧은 제초용 낫이었다.


“저건 뭐야? 기본 장비도 없이.”

“밭일 나가나? 낫은 왜 들고 왔어?”


다들 황당해 고개를 갸웃했다.


구세주랍시고 멋지게 등장한 것 같은데.

전문 헌터들이 보기엔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이런 썅······.”


박훈근도 뭐라고 욕하려다가 멈칫했다.


순박하게 생긴 사내의 왼 주먹.

파지직, 정전기가 튀어 오르고 있었다.

방금 몬스터를 후려친 뇌전계 마법의 흔적이었다.


“마법 쓰는 농사꾼? 혹시 레드 이글하고 싸웠다던 그 마법사인가? 근데 원거리 물리 계통 마법을 구현한다고 하지 않았어? 뇌 속성은 언제 배운 거야?”


박훈근은 황당해 눈을 끔뻑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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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빚지고는 못 산다 (1) 24.03.06 13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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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농사는 체력이다 (2) +1 24.03.04 152 6 13쪽
19 농사는 체력이다 (1) +1 24.03.03 167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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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주인공 (1) +1 24.03.01 195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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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거래 성립 (1) +1 24.02.28 211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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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잡초 제거 (1) +1 24.02.26 23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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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오히려 잘됐다 (1) 24.02.24 290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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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있어야 할 곳 (3) 24.02.22 324 8 12쪽
7 내가 있어야 할 곳 (2) 24.02.21 343 6 13쪽
6 내가 있어야 할 곳 (1) +1 24.02.20 389 11 13쪽
5 당신 누구야? (2) +2 24.02.19 430 8 12쪽
4 당신 누구야? (1) 24.02.18 479 12 13쪽
3 첫 재배 24.02.17 545 16 13쪽
2 농부는 농부다 24.02.16 660 17 13쪽
1 내 농지에서는 마법이 자란다 24.02.16 713 1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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