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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짓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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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2.16 17:04
최근연재일 :
2024.03.1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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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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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제거 (1)

DUMMY

일요일 오전.

바람이 선선하고 화창한 날이었다.

일반인이라면 교외로 놀러 가겠지만, 농사꾼은 다른 걸 생각했다.


“이게 얼마 만이야. 농약 치기 딱 좋은 날이네. 내일부터 또 서울에서 연수니까 급한 건 미리 끝내야겠다.”


민재는 논에 농약을 살포하러 나갔다.

긴소매 옷, 장화, 모자, 마스크 등으로 중무장하는 건 기본이었다.


5월의 논에서는 벼가 한창 자라고 있었다. 

마법 재배도 중요했지만, 자식 같은 현실의 작물을 외면할 수 없었다.


“회장님, 농약 치러 가시나 봐유?”


경운기를 타고 가다가 쿤 씨를 만났다.


“응. 오랜만에 논에 가 봤더니 피가 많이 자랐더라고. 쿤 씨는 어디 가?”

“사장님 심부름으로 농협에 다녀와유. 참, 내일 저녁에 시간 있으세유?”

“시간이야 있지. 왜?”

“내일 사장님이 시원하게 칼국수가 해 먹자고 하셨거든유. 오셔서 같이 드세유. 제가 회장님 좋아하는 솜땀도 만들어 드릴게유.”


쿤 씨는 말투만큼 성격도 여유로웠다.

태국인이 충청도 말씨를 써서 어색할 때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어쩐지 잘 어울렸다.


“칼국수 좋지. 그럼 애호박은 내가 가져갈게. 마침 집에 실한 게 많거든.”


민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정겨운 이웃이었다.

시골 인심이 흉흉하다지만 신성리는 아직 정이 살아있었다.


“내일 저녁에 모시러 갈게유.”

“응. 내일 보자.”


녀석과는 손을 흔들고 웃으며 헤어졌다.


논은 신성리를 가로지르는 하천 옆에 있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농사를 짓던 곳이었는데, 600평이 조금 안 됐다.

그 외에도 물려받은 전답이 제법 있었지만, 신성리 일대에 흩어져 있어 관리가 조금 불편했다.


“피가 많아졌네.”


경운기를 논두렁 옆에 세워 두고 본격적인 작업에 나섰다.


친환경이 어쩌고, 무농약 유기농이 저쩌고.

멋 모리는 도시 사람들은 농약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는데, 무농약 농법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에휴, 말로는 뭘 못 하겠어? 친환경이 쉽다면 죄다 그렇게 했겠지.”


농약과 비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오, 남용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살포하는 게 중요했다.


슬슬 더위가 치고 올라오는 5월 말.

피가 문제였다. 피는 논에서 가장 흔하게 자라는 잡초였는데, 초기에는 벼와 비슷해서 구별이 어려웠다.

하지만 적기에 제초제를 살포하면 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농약은 집에서 준비해 왔다.

준비물은 2급 저독성의 로얀트 유제와 물.

대략 농약과 물을 1 대 1,000의 비율로 혼합했다.


“으라차차.”


충전식 전동 분무기를 짊어졌다.


농약이 20리터나 들어서 제법 묵직했다.

나머지 농약은 큰 플라스틱 통 두 개에 나눠 담은 상태였다.


논 입구에 선 뒤.

바람을 살피고 천천히 농약을 뿌렸다.

농약이 바람을 타고 잘 퍼지도록 뿌리는 게 기술이었다.


요즘은 농약도 좋아졌다.

지금 뿌리는 것만 해도 벼에 무해했다.

반면 피는 지제부를 고사시켜 뚝 끊었고, 광엽잡초는 배배 꼬아 죽였다.


‘마법 작물에도 잡초가 생기면 어쩌지? 두엄이나 비료도 있으면 더 좋을 텐데. 마법 작물에는 뭘 뿌려야 할까?’


봄과 여름 사이의 화창한 아침.

민재는 농약을 뿌리면서도 마법 재배에 골몰했다.


***


그날 해질 무렵.

민재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집을 나왔다.

현실과 마법의 농사를 병행하는 건 생각보다 피곤했다.


컹컹컹, 누렁이가 꼬리를 흔들면서 요란하게 짖었다.

주인이 반갑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빨리 모닝커피를 달라.


“진돗개 체면이 있지. 똥개처럼 굴지 말라니까.”


민재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 개밥그릇에 커피를 부어 줬다.


자신도 옆에 서서 커피를 홀짝였다.

카페인이 들어가자 정신이 맑아지고 힘이 솟았다.


‘쿤 씨 같은 보조를 한 명 고용할까? 어차피 마법 작물은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데. 농사만 거들어 줘도 한결 편해질 거야.’


농촌에서 외국인 일꾼은 낯선 게 아니었다.

불법체류 같은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들이 없으면 농사가 안 돌아가는 게 현실이었다. 근처에 있는 공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커피를 다 마신 뒤.

민재는 누렁이의 사료를 주고 텃밭으로 갔다.


“어? 이건 또 뭐야?”


재배 중인 콜루베르의 핵을 보고 멈칫했다.


작물은 언뜻 보면 수박 같았다.

오리알만 한 크기에 짙은 녹색이었는데, 두드려 보니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문제는 덩굴에 퍼진 갈색 점무늬였다.

무늬 주변은 서서히 말라 죽는 것처럼 푸석푸석했다.

이대로라면 점무늬가 줄기를 타고 올라가 작물에 번지는 것도 금방이었다.


“이건 덩굴마름병의 증상인데.”


그는 줄기와 뿌리를 유심히 살피며 고개를 갸웃했다.


덩굴마름병.

병든 식물의 잔재와 토양 때문에 발생하는 대표적인 수박 병충해였다.

초기에 디페노코나졸이나 폴리옥시딘 수화제 등으로 제거해야 했는데, 자세히 보니 여느 덩굴마름병과 달랐다.


뿌리 근처를 주목했다.

그도 처음 보는 갈색 풀이 자라 있었다.

실뱀처럼 얇고 하늘거려 괴이했다. 덩굴에 생긴 갈색 점무늬는 놈의 닿은 곳에 집중됐다.


“이게 작물일 리는 없고. 잡초 같은 건가?”


상식적으로 마법 작물에 덩굴마름병은 말이 안 됐다.

텃밭이라도 그가 꼼꼼히 관리했고, 전에 다른 작물을 재배했을 때는 병충해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

핵이 몬스터의 마기에 오염된 경우였다.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어. 핵의 마기는 특수 약물로 여러 번 씻어도 정화가 완전히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일반인이 몬스터의 고기와 피, 핵 같은 걸 함부로 먹으면 미치거나 죽는다지?”


핵은 마법 에너지원인 동시에 마기를 가진 위험물질이었다.

정부에서 몬스터의 사체와 핵을 엄격히 관리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특히 일부 몬스터의 피를 정제해 만든 약물은 기존의 마약보다 10배 이상 독해 사회적으로 큰 문제였다.


“오염된 마기가 괴상한 잡초의 형태로 자랐고, 마법 작물에도 영향을 끼친 거야.”


땅속의 유해한 바이러스나 균이 작물의 질병을 유발한다.

마법 작물은 재배 방법뿐만 아니라 병충해도 농사와 비슷했다. 뱀처럼 징그러운 잡초 형태로 자란 건 예상 밖이었지만.


“이걸 어떻게 제거해야······.”


그가 팔짱을 끼고 중얼거리는 도중이었다.

띠링, 맑은 알람 소리와 함께 상태 창이 나타났다.


# 특별 미션 : 잡초를 제거하라.

- 대상 : 덩굴마름병 유발 잡초

- 난이도 : F

- 보상 : F급 천연 두엄

- 실패 시 : 콜루베르의 핵 괴사

- 특이 사항 : 제초제 사용


제초제를 검지로 눌러 봤다.

상태 창이 아래로 길어지고 구체적인 제초제 제작 방법이 나타났다.


“식초 제초제? 이건 농사용이야, 마법용이야?”


민재는 제초제 제작을 읽어 내려가며 당황했다.


***


일단 방에 돌아왔다.

소파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마법에 제초제를 쓰라고? 영약이나 아이템이 아니라?’


처음엔 제초제라고 해서 황당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헌터가 몬스터를 싸울 때는 강화복과 각종 무기, 아이템이 필요하지. 그럼 농부가 잡초와 싸울 때는? 당연히 제초제와 호미, 낫 등이 필요하겠지.”


팔을 걷어붙이고 바로 제초제 제작에 들어갔다.


준비물은 식초와 달걀노른자 한 개, 식용유 60cc, 에탄올 80cc.

물론 달걀은 싱싱한 것을 사용해야 했다. 부패한 달걀은 혼합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걸 믹서기에 5분쯤 갈아서 물과 혼합하면 준비 끝.

식초로 만든 제초제는 살균과 살충이 뛰어나고 효과도 빨리 나타났다. 날씨가 좋을 때는 3~4시간이면 잡초가 다 죽었다.


다만 식초를 이용해 만든 제초제는 작물도 죽일 수 있었다.

그가 어제 일반 농약을 사용한 것도 같은 이유. 농약은 병충해만 골라 죽이기 때문이었다. 


‘마법 작물은 특히 예민할 거야. 잡초가 집중된 곳에만 조심스럽게 살포하자.’


식초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민재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제초제를 분무기에 담았다.


다음은 복장.

방수 작업복과 무릎 아래까지 오는 장화를 착용했다.

혹시 몰라 양봉집 강 영감님한테 망사 모자까지 빌려 왔다. 호미와 낫도 새것처럼 시퍼렇게 갈았다.


‘오케이, 완벽해!’


거실의 전신 거울로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 잡초 제거하러 가는데 그게 뭐야? 어디 전쟁 나가?


남들이 보면 웃겠지만 그는 진지했다.


“몬스터하고 싸우는 것만 전투는 아니잖아? 가자, 내 농사는 전투다.”


민재는 크게 심호흡하고 잡초에 다가갔다.


***


막상 잡초 앞에 쪼그려 앉았어도 문제가 있었다.

일반 잡초를 제거한 경험은 많았지만, 마법 잡초는 처음이었다.


“이걸 어떻게 죽이지?”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놈을 보니 뭔가 께름칙했다.

제초제를 살포하면 뿌리에서 뱀 같은 괴물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겁먹지 말자. D급의 몬스터도 죽인 몸인데, 잔존 마나에서 생긴 잡초쯤이야.”


분무기의 방아쇠에 검지를 걸고 당기려는 찰나였다.


검은소용돌이.

잡초를 중심으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뭐, 뭐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당황해 도망치려고 했다.

한발 늦었다. 난데없는 검은 기운은 순식간에 그를 삼켰다.


검은빛의 터널을 지났다.

어느 순간, 민재는 낯선 공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주위는 흐릿하고 음산했다.

어디선가 귀신이나 늑대가 튀어나올 분위기였다.


“이건 뭐야? 꿈을 꾸는 건가?”


왼뺨을 살짝 꼬집어 봤다.

통증이 생생했다. 꿈이 아니었다.


양손을 내려봤다.

제초제와 호미, 허리 뒤에 찬 낫은 현실 그대로였다.


“대체 여긴 어디지?”


민재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멈칫했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

하늘에는 피처럼 붉은 달 두 개가 떠 있었다.


“게이트 너머?”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다리가 풀려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 게이트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게이트가 처음 나타난 후 사람들이 가진 의문이었다.


드론, 첩보 위성, 특수 카메라 등.

하급 몬스터가 나올 때 이것저것 넣어 봤지만 전부 통신이 두절됐다.


결국 상급 각성자로 이뤄진 특수팀이 투입됐다.

현실의 시간으로 3분 남짓 남짓. 언제든 도망칠 수 있게 허리에 특수 와이어를 연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서 돌아온 건 딱 한 명. 그도 미쳐서 곧 자살했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유명한 얘기였다.


- 가지 마. 알려고도 하지 마. 거긴 지옥이야.


귀환자는 넋이 나가 이 말만 반복했다.

다만 그는 죽기 전에 낙서처럼 그림을 남겼는데, 온통 까만 배경에 붉은 달 두 개가 덩그러니 떠 있었다.


“진짜 게이트 너머는 아닌 것 같아. 거긴 완전히 지옥이라고 했으니까. 특유의 끈적한 마기도 느껴지지 않고.”


일종의 마법 시각화.

마법이나 마법에 관련된 것은 대상에게 익숙한 사물이나 환경으로 환각처럼 나타난다.


언젠가 각성자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다.

전직이 화가인 일루전 전문 마법사였다. 그녀는 환각 속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환각에서 그린 그림이 일루전 마법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다른 마법사들도 경우는 다르지만 환상을 접할 때가 많았다.


“그럼 여긴 몬스터의 기억에 남은 공간으로 재구성된 건가?”


그는 중얼거리다가 주춤 물러났다.


약 10미터 전방, 땅이 움직였다.

정확히는 아까 본 잡초가 꿈틀거리며 기어나오는 광경이었다.


“움직이는 잡초?”


길이는 약 ㅁ미터.

머리는 위에 잡초처럼 싹이 돋아 있었지만, 몸통은 뱀처럼 생긴 콜루베르의 축소판이었다.


“농사가 전투라는 건 해본 말이었는데. 진짜 전투가 됐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무기는 제초제와 호미.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같았지만 당사자는 웃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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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주인공 (1) +1 24.03.01 195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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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거래 성립 (1) +1 24.02.28 210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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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당신 누구야? (1) 24.02.18 479 12 13쪽
3 첫 재배 24.02.17 545 16 13쪽
2 농부는 농부다 24.02.16 659 17 13쪽
1 내 농지에서는 마법이 자란다 24.02.16 713 1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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