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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짓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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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2.16 17:04
최근연재일 :
2024.03.1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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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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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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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농사는 체력이다 (1)

DUMMY

고속버스터미널 근처 카페.

민재와 이혜연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들고 마주 앉았다.


차 시간이 빠듯했다.

저녁 식사는 샌드위치와 케이크 한 조각으로 대신했다.


“제가 큰 빚을 졌군요. 이제 어쩌실 거예요?”


이혜연이 커피를 내려놓으며 말문을 열었다.


“무슨 빚이요? 제가 구한 건 창호 씨인데요.”


민재는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되물었다.


전투 시뮬레이션은 현실과 가상의 중간에 걸쳐 있었다.

던전 안에서는 큰 데미지를 받았고, 전투 후에는 놈의 핵을 얻었다.


하지만 현실에 돌아오니 작은 생채기 하나 없었다.

손에 든 핵만 아니었더라면 한바탕 꿈을 꿨다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몬스터요. 민재 씨가 놈의 공격을 뚫고 마무리했잖아요. 화려하게 듀얼 마법까지 써서.”

“아.”

“일단 1전 1패. 다음에는 꼭 이기겠어요.”


그녀는 일단을 강조하며 그를 빤히 바라봤다.

농담 같아도 입가에 웃음기가 없었다. 눈빛도 찌르듯 날카로웠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적으로 돌리면 피곤한 스타일이네.

민재는 고개를 저으며 내심 쓰게 웃었다.


경쟁은 두 종류가 있었다.

첫째는 남을 이기는 데 혈안이 된 결과 위주의 경쟁, 둘째는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과정 위주의 경쟁이었다.


‘오히려 잘됐다. 그녀가 이를 악물고 정진할수록 내게도 좋은 자극이 될 테니까.’


좋은 경쟁은 언제든 환영이었다.


“이건 약속한 영약이요. 영약은 함부로 복용하면 큰일 나는 거 아시죠? 복용 방법은 안에 적어 뒀으니까 조금씩 천천히 섭취하세요. 패스워드는 따로 없고, 민재 씨의 생체 정보에만 반응하도록 세팅했어요.”


그녀는 가로와 세로, 각 10cm쯤 되는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언뜻 보면 명품 시계나 반지의 케이스 같았는데, 투명한 아크릴에 이중으로 싸여 있었다.


‘A급 마나 영약.’


민재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가 화끈한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어쩐지, 어제 뜬금없이 머리카락 한 올을 달라고 하더니. 근데 얘는 재벌 집 딸내미인가? 상자부터 비싸 보이네.’


아크릴을 검지로 두드리자 맑은 종소리가 났다.


다이X에서 파는 싸구려가 아니었다.

보온, 보랭, 보습 등의 기능이 달린 E급 아이템이었다.


“포장만 봐도 범상치 않네. 떤 약이지?”


민재는 상자를 위에 대고 슬쩍 흔들어 봤다.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걸로 장난칠 사람은 아니니까.”


그녀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압니다. 그냥 어떤 형태인지 궁금해서요. 알약은 질색이라.”


그도 멋쩍게 웃으며 상자를 내려봤다.


“나중에 식사라도······.”


다시 그녀가 말하는 도중이었다.

삐빅, 손목의 전자시계가 가볍게 울었다.


“슬슬 차 시간이 됐네요. 죄송합니다.”


민재는 커피를 단 모금에 비우고 일어났다.


‘누렁이 사료는 해병대 영감님이 줬을까? 그 녀석은 입맛이 까다로워서 커피도 같이 줘야 할 텐데.’


이 와중에도 누렁이가 생각났다.

텃밭 구석에서 자라는 마법 작물, 논밭에서 자라는 현실의 농작물도 마음에 걸렸다.

집을 오래 비우면 불안해지는 건 농사꾼의 본능이었다.


“잠깐만요.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뭡니까?”

“당신에 대해 좀 조사해 봤어요. 이미 유명 길드의 제안을 거절하셨더군요. 왜죠? 화이트 울프만 해도 좋은 길드고, 최소 억대 연봉은 보장됐을 텐데.”


이혜연은 앉은 채로 그를 올려봤다.


물론 모든 헌터가 길드에 소속된 건 아니었다.

일인 군단처럼 필요할 때만 단기 계약을 맺고 일종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헌터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도 프리랜서로 나선 건 어느 정도 실력과 명성을 쌓은 다음.

민재처럼 연수도 안 마친 풋내기가 길드를 마다하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다.


‘그 질문이 왜 안 나오나 했다.’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길드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니까요. 제가 서울살이를 해보니까 돈을 많이 주는 건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어딘가에 소속돼 있으면, 조직의 규범을 따라야 하고 행동에 제약도 많아질 테고요.”

“그래도 돈이 한두 푼이 아닐 텐데요? 그 정도 돈이라면 어느 정도의 불편은 감수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글쎄요. 제 꿈은 고향을 지키는 것, 언젠가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마법사가 되는 것. 딱 두 개입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꿈과 이상을 향한 도전이라고 할까요? 부자가 되는 건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역사상 최강의 마법사라. 다른 사람이 말하면 헛소리라고 넘겼을 테니, 당신이 말하니 기대가 되네요.”


위대한 마법사.

꿈과 이상을 향한 도전.

이혜연은 팔짱을 끼고 그의 말을 곰곰이 되뇌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그가 선택한 길은 돈이나 명예보다 멀고 험한 여정이었다.


“그래도 아쉽네요. 같이 팀을 이루면 잘 맞을 것 같았는데. 왜 그렇게까지 고향을 지키려는 거예요? 농사가 왜 좋아요?”

“농사는 사람을 속이지 않으니까요. 노력한 만큼 보상이 따르죠.”

“에? 겨우 그것 때문에요?”


예상대로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뿌린 대로 거둔다. 전 이 말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사람을 속이지 않고, 노력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게 뭐가 있습니까?”


민재는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되물었다.


“······.”


그녀는 말이 없었다.

몇 번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끝내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다.


“그거 보십시오. 그래서 전 농사가 천직입니다.”

“언젠가 저도 당신을 따라 귀농하고 싶네요.”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쓰게 웃었다.


삐빅, 두 번째 알람.

이제 정말 차 시간이 됐다.


“신성리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단, 귀농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민재는 빙그레 웃으며 돌아섰다.


***


며칠 후, 협회에서 조사관이 찾아왔다.

임시 딱지를 떼고 정식 신분증을 받는 날이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카드 같았는데, GPS 등 각종 기능이 내장된 첨단이었다.


“각성자는 지역 방위군에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매월 수당이 제법 나옵니다만, 까다로운 규정도 많아요. 정기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보고하시고······.”


조사관이 민재의 생체 정보를 신분증에 입력하며 이것저것 설명했다.


총 같은 재래식 무기로 싸우던 시대는 끝났다.

각성자의 숫자와 등급이 국방력인 게이트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은 물론 세계 모든 국가는 새로운 전략자산인 각성자를 관리하는 데 소홀함이 없었다. 정부에서 대형 길드를 허용한 이유 중 하나도 각성자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이었다.


‘진짜 각성자가 됐구나.’


민재는 신분증의 홀로그램을 보며 새삼 실감했다.


“참, 민재 씨도 뉴스에서 보셨을 겁니다. 요즘 일부 각성자가 각종 물의를 일으켜서 시끄러운 거 아시죠? 강도나 살인 같은 각성자 범죄도 증가하는 추세고.”

“왜요? 그놈들이 신성리 근처에도 나타났습니까?”

“아니요. 이런 시골에서 가져갈 게 뭐가 있다고. 근데 서울, 특히 은행이나 아이템 거래소 같은 데는 골치 아픈가 봐요. 하급 각성자로 일반인인 군인이나 경찰이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

“정부는 뭐 한답니까?”


S.T.F.D.A.

정부에서 각성 범죄자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만든 특수 기동대(Special Task Force Dedicated to the Awakened)였다.


“그놈들이 한둘인가요? 게다가 쥐새끼처럼 치고 빠지는 바람에 특수 기동대도 일일이 대응하기엔 역부족이래요.”


조사관은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각성 범죄자라. 하긴, 각성은 인성과 관련 없으니까. 힘을 악용, 남용하는 무리는 어디에든 있기 마련이고.’


술집에서 싸웠던 놈들은 동네 양아치들이었다.


각성자 대 각성자.

만약 진짜 각성 범죄자와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각성자를 상대로는 힘 조절이 어려울 텐데, 만약 싸우다가 실수로 놈을 죽인다면?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지는 민재였다.


***


늦은 점심을 먹은 뒤.

민재는 문을 걸어 잠그고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연수 때문에 집을 며칠 비웠더니 할 일이 산더미였다.

이것저것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이혜연에게 받은 영약은 열어 볼 틈도 없었다.


“이것만 복용하면 마나의 순도가 높아진다고 했지?”


심호흡하고 천천히 상자를 좌우로 벌렸다.

그의 생체 정보에 반응하듯 아크릴이 스르르 움직였다.


‘대체 얼마짜리일까? 영약은 부르는 게 값이라던데.’


심장이 두근거림이 커졌다.


마침내 아크릴 안에 있던 상자가 벌어진 순간.

번쩍, 안에서 눈 부신 빛이 뿜어져 그와 실내를 감쌌다.


‘또 시작이네.’


이젠 자연스럽게 기운에 몸을 맡겼다.


마법 공간.

마법이 그에게 익숙한 현실의 형태로 구체화했다.

다른 각성자의 마나를 컨트롤할 때 겪었던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작물을 심지 않은 넓은 밭.

그는 밀짚모자를 쓰고 밭일 복장으로 서 있었다.

시장에서 산 싸구려 삽을 들었는데, 날이 조금 찌그러졌어도 손에 잘 맞았다.


“자, 이번엔 또 뭘 해야······.”


민재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멈칫했다.


왼쪽 밭두렁.

가축의 소변과 대변, 음식물 찌꺼기 등이 수북했다.

그 앞에는 재, 볏짚, 왕겨, 비닐 등의 재료가 쌓여 있었고, 물이 가득한 큰 대야와 작은 바가지까지 준비됐다.


“퇴비?”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농사와 연결될 거라고 짐작은 했는데.

설마 그게 퇴비를 만들어 밭에 뿌리는 상황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크윽, 냄새.”


급히 코를 움켜쥐었다.

멀리서도 대, 소변과 음식 냄새가 코를 찔렀다.

며칠 전에 얻은 두엄이 잘 숙성된 X 냄새라면, 이건 온갖 오물이 뒤섞인 악취였다.


“아니지. 이게 맞지. 마나가 향상되면 마법도 강해지고, 지질이 향상되면 농사도 잘되니까.”


마나의 질을 보충하는 영약.

그리고 토지의 질을 보충하는 퇴비.


분야는 달라도 역할과 쓰임은 비슷했다.


“퇴비살포기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삽 한 자루로 다 하려면 시간 좀 걸리겠는걸?”


소매를 찢어 콧구멍을 막은 뒤.

퉤, 민재는 삽자루를 쥔 손에 침을 뱉고 밭두렁으로 다가갔다.


귀농하겠다고 온 서울 사람들은 퇴비가 뭔지도 잘 몰랐다.

농협에서 비싼 비료를 사다가 대충 뿌리면 되는 줄 아는데, 퇴비를 만들고 뿌리는 것도 다 요령과 방법이 있었다.


“무협지를 보면 주인공이 영약을 복용하기 위해 운기조식을 하던데. 난 영약을 복용하기 위해 삽질하고 퇴비를 만드네.”


문득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우선 밑에 공기가 잘 통하도록 마른 풀 등을 깐다.

주위에는 퇴비 더미에 빗물이 고이지 않게 홈을 파거나 조금 높게 한다.

재료는 탄소가 많은 층과 질소가 많은 층을 켜켜이 쌓는데, 맨 위에는 거적이나 비닐을 덮어 햇빛과 비로부터 보호한다.


숙련된 조교의 삽질이 이어졌다.

서울 사람은 10분만 해도 허리가 아프다고 엄살인데, 삽질도 다 요령이 있었다.


- 퇴비를 만들 때는 습도와 온도가 중요합니다. 적당히 잘 발효되면 땅의 영양이 되지만, 부패하면 악취를 풍기고 파리나 구더기, 병충해가 들끓기 때문입니다. 퇴비 더미의 발효열은······.


언젠가 들은 농업기술 연구원의 강의도 귓가를 맴돌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작업에 열중하는 민재.

잠시 후, 높이 쌓인 퇴비 더미에서 은은한 서기가 뿜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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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농사는 체력이다 (2) +1 24.03.04 151 6 13쪽
» 농사는 체력이다 (1) +1 24.03.03 166 7 12쪽
18 주인공 (2) +1 24.03.02 178 6 13쪽
17 주인공 (1) +1 24.03.01 195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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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잡초 제거 (1) +1 24.02.26 234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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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오히려 잘됐다 (1) 24.02.24 290 5 13쪽
10 내가 있어야 할 곳 (5) +1 24.02.24 292 7 13쪽
9 내가 있어야 할 곳 (4) 24.02.23 296 6 11쪽
8 내가 있어야 할 곳 (3) 24.02.22 323 8 12쪽
7 내가 있어야 할 곳 (2) 24.02.21 343 6 13쪽
6 내가 있어야 할 곳 (1) +1 24.02.20 388 11 13쪽
5 당신 누구야? (2) +2 24.02.19 430 8 12쪽
4 당신 누구야? (1) 24.02.18 479 12 13쪽
3 첫 재배 24.02.17 545 16 13쪽
2 농부는 농부다 24.02.16 659 17 13쪽
1 내 농지에서는 마법이 자란다 24.02.16 713 1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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