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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짓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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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2.16 17:04
최근연재일 :
2024.03.11 19:1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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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6,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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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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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잡초 제거 (2)

DUMMY

“이런 미친. 움직이며 사람을 공격하는 잡초라니. 일단 식물이 아니잖아. 저건 잡초야, 뱀이야?”


민재는 자기도 모르게 주춤 물러났다.

놈이 잡초라는 증거는 머리에 돋은 작은 싹뿐이었다.


‘젠장,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헌터의 장비와 지원이라도 있었는데. 호미로 뭘 어쩌지? 마법을 써 볼까?’


놈을 향해 호미를 뻗고 의식을 집중했다.


트롤의 분노.

호프집에서 양아치 같은 각성자에게 사용하고 22방이 남아 있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법이 구현되는 묵직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법 등급이 낮아서인가, 아니면 여기가 놈이 만든 일종의 아공간이라서 그런 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확인은 나중.


잡초는 몬스터의 특징을 빼닮았다.

무섭게 생겼어도 동작은 굼뜬 편이었다.

놈이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들기 전에 그가 먼저 움직였다.


“죽어!”


옆으로 돌아가 호미로 놈의 관자놀이를 찍었다.


퍼억, 벽을 친 느낌이었다.

질기고 단단한 껍질도 원판의 특성을 그대로 이었다.


“크아악.”


놈이 괴성을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긴 이빨 사이로 녹색 액체가 뚝뚝 흘러내렸다.


‘독인가? 이건 원판도 없었는데.’


등골이 서늘해졌다.


놈이 고개를 세우고 그를 물려는 찰나.

민재는 상체를 숙이고 놈의 틈을 파고들었다.


‘주걱턱!’


호미를 아래에서 위로 움직여 놈의 턱을 찍어 올렸다.


“크윽.”


이번에도 그의 손이 아렸다.

외형은 원판과 비슷했는데 약점은 달랐다.

겨우 약간의 생채기를 입혔지만 스르르 아물었다.


어설픈 공격이 오히려 화를 돋웠다.

놈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꼬리로 후려쳤다.


몸집과 달리 힘이 제법이었다.

콰앙, 검붉은 흙먼지가 요란하게 일었다.


‘몬스터와의 싸움은 해봤어도 잡초와의 싸움이라니. 몬스터야 약점을 공략하면 된다지만 잡초는 어떻게······.’


민재는 황급히 물러나다가 멈칫했다.


‘저놈은 몬스터처럼 생겼지만 잡초다. 몬스터의 약점은 핵과 연결된 부분. 그렇다면 잡초의 약점은?’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잡초는 뿌리를 제거하는 게 상식이었다.


민재는 놈의 발밑을 주목했다.

과연 뿌리처럼 생긴 것 수백 개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짧은 다리가 많다는 점에서 지네가 연상됐다.


‘저긴가?’


민재는 씨익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제초제를 내밀었다.


***


칙, 치익.

민재는 놈의 발을 향해 제초제를 뿌렸다.

일반 잡초에 뿌린 것보다 효과가 훨씬 빨랐다. 제초제에 맞은 부위가 대번 말라비틀어졌다.


“끄아아.”


놈이 고통에 차 울부짖으며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다리를 많이 잃었다.

가뜩이나 굼뜬 놈이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렸다.


“누구 맘대로 도망이야?”


민재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 놈을 막아섰다.


분무기의 끝을 돌려 일점사로 바꾸고.

식초로 만든 제초제를 물총처럼 쏘았다. 찌익.

잔뿌리 같던 다리 십여 개가 말라서 후두둑 떨어져 나갔다.


‘놈은 몬스터의 마기에서 나왔지만, 땅의 기운을 받고 성장했지. 그렇다면 땅에서 자란 작물, 특히 잡초의 성질을 지니는 게 당연하지.’


이제 알 것 같았다.

형태는 달라도 요령은 잡초를 제거하는 것과 동일했다.


바람을 등지고 골고루 제초제를 뿌렸다.

이어서 낫으로 몸통과 하체를 분리했고, 마지막으로 호미로 놈의 발을 땅에서 완전히 파냈다.


쿵, 놈이 머리를 옆으로 하고 넘어졌다.

여전히 안광을 번뜩이며 그를 노려봤지만 전투는 사실상 끝났다. 남은 제초제를 쏟아붓자 이내 잠잠해졌다.


“내 승리군. 짧지만 치열한 승부였다.”


민재는 양손을 허리에 걸치고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어차피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영화나 소설에서 본 것처럼 우쭐거리고 싶었다.


다만 상대는 몬스터가 아니라 잡초였다.

비록 몬스터처럼 움직이고 공격하는 놈이었지만, 잡초는 잡초였다.


‘몬스터를 상대로 승리했으면 더 자랑스러웠을 텐데. 잡초한테 이기니까 뭔가 떨떠름하네. 낯간지럽기도 하고.’


어디선가 미풍이 불었다.

놈의 시체가 검은 재처럼 흩날려 사라졌다.


대신 검고 긴 뭔가가 나타났다.

길이는 약 50cm 정도. 굵기는 10cm쯤이었고,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저게 그 보상인가?”


민재는 눈이 번쩍 뜨였다.


각성의 상태 창에는 나름의 인과율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보상이 따른다는 것이었는데, 이때 보상은 과업이나 몬스터와 관련이 있었다.


민재는 보상을 향해 손을 뻗다가 움찔했다.

썩은 내가 진동했다. 자세히 보니 보상의 모양도 어디선가 많이 보던 것이었다.


상태 창에서 본 게 떠올렸다.


- 특별 미션. 보상은 F급 천연 두엄.


‘똥’이란 단어를 ‘F급 천연 두엄’이라고 그럴싸하게 잘도 포장했다.

얼마 안 됐는지 멀리서도 따끈따끈했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크윽. 똥냄새는 저리 가라잖아? 마법을 작물처럼 재배하는 건 좋은데, 두엄까지 똑같을 필요는 없잖아?”


이걸 안 받을 수도 없고.

그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두엄을 손에 쥐었다.


소똥을 만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차라리 소똥은 양반이었다.

장갑을 끼었지만 특유의 물컹물컹한 느낌과 냄새 때문에 토할 것 같았다.


“우웩.”


민재는 고개를 돌리고 연신 헛구역질하며 보상을 들었다.


***


- 몬스터도 우리와 같은 유기 생명체다. 피와 살로 이뤄져 있고, 사람이나 동물을 잡아먹지. 그럼 놈들도 우리처럼 배설물이 있지 않을까?


쉽게 말해 스터도 똥을 쌀까?

인터넷에 떠돈 유명한 논쟁 중 하나였다.


“할 일 없는 사람인가? 헛소리를 참 길게 하네.”


그때는 별생각 없이 넘겼는데, 썩은 내 진동하는 두엄을 보니 진짜였다.


현실로 돌아갈 때는 들어온 것과 반대였다.

괴상한 검은 소용돌이에 휩쓸린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텃밭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10초도 안 지났다.

화창한 날씨, 천천히 흐르는 구름, 하품하며 쳐다보는 누렁이도 그대로였다.


“내가 꿈을 꿨나?”


꿈이 아니었다.

분무기가 텅 비었다. 오른손의 호미에도 검은 피가 묻어 있었다.


호흡도 가쁘고 체력도 조금 떨어졌다.

마법 작물을 심을 때와 비슷한 증상이었다.


“크윽, 냄새. 똥냄새 저리 가라네.”


뒤늦게 인상을 찌푸리고 코를 막았다.

잡초가 있던 곳에는 ‘보상’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크아아앙.”


그 순한 누렁이도 보상을 향해 사납게 짖더니 줄행랑을 쳤다.


‘웃픈 상황이네. 명색이 보상인데 버릴 수도 없고.’


눈을 질끈 감고 보상을 마법 작물 근처에 골고루 뿌렸다.


보통 두엄이 아니라 마법 두엄이었다.

두엄은 빗물이 땅에 스며드는 것처럼 스르르 사라졌다.


“냄새가 안 가시네. 빨리 샤워 먼저 하고······.”


그가 장갑을 벗으며 일어난 순간이었다.


대문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모시러 왔슈. 어제 말씀드린 칼국수나 같이 드시러 가시쥬.”


충청도 사람보다 더 느린 말투.

쿤 씨가 헬멧을 쓴 채 오토바이 위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좀 씻고 올게. 두엄 냄새가 진동하네.”

“무슨 냄새요? 아무 냄새 안 나는데유.”


쿤 씨는 코를 킁킁거리며 갸웃했다.


“응? 이 썩은 내가 안나?”


민재는 두엄을 바라보고 멈칫했다.


다른 이는 마법 작물을 못 봤다.

인제 보니 사람의 후각으로는 못 느끼는 것 같았다. 누렁이 같은 진돗개는 가능했지만.


‘마법 재배. 정체가 뭐야?’


새삼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마법 작물을 곁눈질했다.

작물은 은은한 빛을 뿜으며 한결 크고 튼실해졌다.

숙성을 거쳐 수확하려면 멀었지만, 제법 튼실한 마법이 나올 것 같았다.


‘냄새는 고약해도 효과는 확실하네. 이번이 특별 미션이라고 했지? 혹시 다음엔 비료나 농약, 작물 영양제 같은 것도 나오나?’


가슴이 두근두근.

동시이 의문이 하나 더 고개를 들었다.


‘핵의 잔존 마기가 재배의 영향을 받아 잡초가 됐다. 혹시 내가 하는 마법 재배는 다른 사람이나 동물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꿈에서 본 낯선 노인의 말도 마음에 걸렸다.


- 자네가 제일 잘하는 걸 해.


농사의 고수는 신성리에 많았다.

해병대 강 영감님만 해도 국민학교 밖에 안 나왔지만 농사에 관해서는 대학원 나온 박사들보다 더 잘 아는 전문가였다. 특히 힘을 배분하고 쓰는 요령은 그도 한 수 접어줄 정도였으니까.

그분들이 어떤 형태로든 갑자기 각성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야. 증거도 없는데 지나친 억측이야. 누렁이는 진돗개니까 사람보다 감각이 발달한 게 당연하고. 영감님들은 각성하기 너무 연세가 많으시잖아?’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마법 재배에 대한 의문보다 저녁 식사가 먼저였다. 어차피 지금은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잠깐만 기다려. 대충 씻고 올게.”


민재는 허겁지겁 집에 들어갔다.

다른 사람은 냄새를 못 맡아도 그가 견딜 수 없었다.


“천천히 하셔유. 바쁜 거 없으니까. 사진 좀 찍어도 돼쥬?”

“상관없는데 왜?”

“노을이 예뻐서유.”


쿤 씨는 웃으며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꺼내 노을과 민재의 집 여기저기를 찰칵.

의식적으로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마법 작물을 심었던 텃밭 일부도 렌즈에 들어왔다.


“근데 이 똥개는 어디 갔지? 마실이라도 나갔나? 그러고 보니 요즘 회장님도 전과 달라진 거 같고.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쿤 씨는 누렁이의 빈집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


뒷집 해병대 영감님댁 마루.


“킁킁, 어디서 썩은내 안 나? 똥 냄새보다 훨씬 독한데?”


해병대 영감은 인상을 잔뜩 쓰고 코를 벌름거렸다.


“무슨 냄새? 너 또 방귀 뀌었지?”


작은 상을 가운데 두고 앉은 슈퍼집 영감이 핀잔을 줬다.


“나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변비 심한 건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데.”

“진짜 아닌데. 강 회장 집에서 바람을 타고 퍼진 거 같은데. 내 코가 예민해졌나?”


해병대 영감은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영감 방귀는 유명하지. 첫 데이트 때 읍내 극장에서 방귀 뀐 거 기억 안 나요? 푸르륵쾅쾅. 남사스러워서 원. 난 어디서 천둥 치는 줄 알았네.”


뒤에서 이쁘니 할멈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때는 내가 첫 데이트라 너무 긴장해서 그런 거고.”


해병대 영감은 얼굴이 빨개져 변명을 늘어놓았다.


푸타타타, 다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쿤 씨의 고물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였다. 뒤에 탄 강 회장이 둘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농장네 강 영감이 칼국수를 한다더니. 거기 가는 모양이네.”


슈퍼집 영감도 민재를 보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똥 냄새고 뭐고 이거나 드셔요. 음식 앞에 두고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이쁘니 할멈이 잘 익은 감자전을 내왔다.


막걸리와 김치는 기본.

진즉부터 상에 놓여 있었다.


“그깟 칼국수보단 우리 이쁘니 감자전이 최고지.”


해병대 영감님은 젓가락을 들고 헤벌쭉 웃었다.


‘썩은 내는 알 게 뭐야? 누가 두엄을 푹 썩혔나 보지, 뭐.’


캬, 술맛 좋구나.

이상한 냄새는 전의 구수한 냄새에 묻혀 희미해졌다.


“어흠.”


엉덩이를 살짝 들고 뿌아앙.

이번엔 해병대 영감의 진짜 방귀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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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주인공 (1) +1 24.03.01 195 7 13쪽
16 거래 성립 (2) +2 24.02.29 218 6 13쪽
15 거래 성립 (1) +1 24.02.28 211 6 13쪽
» 잡초 제거 (2) +1 24.02.27 215 6 11쪽
13 잡초 제거 (1) +1 24.02.26 235 5 12쪽
12 오히려 잘됐다 (2) +1 24.02.25 260 7 12쪽
11 오히려 잘됐다 (1) 24.02.24 291 5 13쪽
10 내가 있어야 할 곳 (5) +1 24.02.24 292 7 13쪽
9 내가 있어야 할 곳 (4) 24.02.23 296 6 11쪽
8 내가 있어야 할 곳 (3) 24.02.22 324 8 12쪽
7 내가 있어야 할 곳 (2) 24.02.21 344 6 13쪽
6 내가 있어야 할 곳 (1) +1 24.02.20 389 11 13쪽
5 당신 누구야? (2) +2 24.02.19 430 8 12쪽
4 당신 누구야? (1) 24.02.18 480 12 13쪽
3 첫 재배 24.02.17 545 16 13쪽
2 농부는 농부다 24.02.16 660 17 13쪽
1 내 농지에서는 마법이 자란다 24.02.16 714 1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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