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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짓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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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향
작품등록일 :
2024.02.16 17:04
최근연재일 :
2024.03.1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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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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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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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4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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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오히려 잘됐다 (1)

DUMMY



콜루베르의 시체는 치우는 것도 문제였다.

지원팀의 대형 트레일러로는 수송이 불가능했다.

현장에서 놈을 사등분한 뒤, 특수 수송차량을 동원해 겨우 싣고 갔다.


“외피나 이빨 같은 부산물은 필요 없습니다. 승리 수당도 상관없고요. 한 가지만 확실하게 챙겨 주시면 됩니다.”


민재의 요구는 딱 하나.

수박만 한 크기에 흰빛이 영롱하게 감도는 핵이었다.


“······저도 당연히 회장님께 드리고 싶습니다만, 길드도 내부 사정이라는 게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D급 이상의 핵은 정부에서 관리하거든요. 지방의 팀장이 재량으로 허락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박 팀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래도 민재의 요구가 관철됐다.

사흘 후 아침, 박 팀장이 특수 수송차를 끌고 돌아왔다. 길드의 인사부장이라는 사람도 함께였다.


예상대로 핵을 돌려주는 건 핑계였다.

마을에는 보는 눈이 많다며 읍내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아직 소속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화이트 울프라면······.”


인사부장의 길드 소개만 30분.

앞선 김창훈과 달리 계약금과 연봉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각종 특전과 보상도 세 페이지 분량에 달했고, 마을발전기금도 명시돼 있었다.


‘이거 고민되네. 그냥 확 도장 찍을까?’


솔직히 아깝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레드 이글보다 한 등급 아래로 평가받지만, 화이트 울프도 유명하고 건실한 길드였다. 인사부장이 직접 지방까지 내려와 스카우트하는 건 흔치 않다고 했다.


“말씀 감사합니다만, 전 아직 협회에서 검사도 안 받았습니다. 시간을 갖고 생각한 후에 답변드리겠습니다.”


민재는 고민 끝에 정중하게 거절했다.


계약 전까진 그가 갑이었다.

프로야구로 비유하면 대박을 앞둔 FA인 터.

고향을 떠날 마음도 없거니와 설사 계약한다 해도 모든 조건을 들어보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마음 바뀌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인사부장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돌아갔다.


핵을 받고 집에 돌아온 뒤.

민재는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이번엔 뭐가 나올까? 몬스터의 특징을 생각해 보면 방어나 치유 계통일 거 같은데. 광역 치유 같은 게 나오면 대박 아닌가?’


오는 내내 행복회로를 돌렸다.

핵을 들고 뒷마당으로 가자 맑은 종소리와 함께 상태 창이 나타났다.


# 3. 진정한 농부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 D급 콜루베르의 핵

- 재배 규모 : 2

 - 재배 현황 : 0/3

 - 난이도 : D

 - 보상 : ??? 마법 획득

 - 실패 시 : -

 - 특이 사항 : 수박 재배


수박 재배를 누르자 구체적인 방법이 나타났다.

다만 콜루베르의 핵밖에 없는데 재배 규모가 2를 가리키고 있었다.


“핵 하나가 무조건 1은 아니네. 게임의 인벤토리 같은 건가?”


그도 학생 때 온라인 게임을 즐겼다.

작은 아이템은 인벤토리에서 한 칸을 차지했지만, 무기나 갑옷처럼 큰 건 하나가 몇 칸을 차지하기도 했다.

마법 재배도 이와 유사하게 핵의 등급과 크기에 따라 면적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마법 재배가 거듭될수록 한도가 조금씩 늘어나네. 하긴, 농사도 경험이 쌓일수록 재배 면적이 늘어나지.”

  

의욕 과다.

농사 초보가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였다.

기껏해야 텃밭을 가꾼 경험을 떠올리고, 처음부터 넓은 면적에서 농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왜 다들 농사를 만만하게 여기는 거지? 대충 씨 뿌리면 알아서 크는 줄 아나?”


그렇게 하면 골병들고 망하기 딱 좋았다.

주말농장처럼 작은 것부터 시작해 서서히 농지를 늘리는 게 순리였다.


“이번에도 손이 많이 가겠군.”


민재는 팔을 걷어붙이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육묘 준비부터.

순지르기와 유인이 재배법의 핵심이었다.


***


육묘는 방에서 진행했다.


우선핵을 축축하게 적시고 보자기에 싼다.

온도를 25~30도로 맞추고 하루, 이틀쯤 기다리면 싹이 작게 나온다.


다만 이건 수박을 재배하는 경우였다.

핵의 재배는 작물보다 훨씬 빨랐다. 저녁쯤 되자 핵의 끝에서 흰색 싹이 작게 나왔다.


“싹이 특이하네.”


민재는 싹을 유심히 관찰했다.

실지렁이 같은 게 좌우로 꿈틀거렸다.


싹을 특수 제작한 50공 플러그 트레이에 파종한다.

이때 싹은 나중에 뿌리가 되기 때문에 아래로 향하게 한다. 너무 따뜻하면 웃자라기 때문에 온도를 25도 내외로 낮춘다.


이번에도 성장이 빨랐다.

다음날이 되자 흰색 싹이 나왔다.

그사이 민재는 텃밭 구석에 미니 수박밭을 만들었다.


‘수박은 건조에 강하고 과습에 약하지.’


두둑은 약간 높고 경사지게, 고랑은 넓게.


그리고 수박은 덩굴을 길게 뻗는 특성이 있었다.

덩굴을 어떻게 유인하느냐가 중요한 터. 한 시간 간격으로 나와 덩굴을 볕이 잘 드는 남쪽으로 유인했다.


‘무논담수보다 손이 많이 가네. 그만큼 더 좋은 마법이 열리겠지?’


힘들어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농부에게 현재의 고생은 미래의 달콤한 열매였다.


마침내 테니스공보다 작은 열매 두 개가 나타났다.

핵을 심은 지 사흘째 되는 날, 일요일 늦은 저녁이었다.


***


월요일 오후, 을지로에 있는 각성 협회를 찾았다.

S.A.(Society Of Awakener)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각성 협회라는 이름이 더 친숙했다.


“와, 으리으리하네.”


빌딩을 올려보느라 목이 꺾일 뻔했다.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현기증이 났다.


시작은 삼류 웹소설 같았다.

어느 날 이계와 통하는 게이트가 생성됐고, 게이트를 통해 낯선 몬스터들이 쏟아졌다.

이때 게이트에서는 특수한 파장이 나온바, 이 파장에 영향을 받은 일부가 특수한 능력을 갖게 됐다.


인류를 대표하는 각성자 대 이계의 몬스터.

영화나 게임에서 보던 전투가 현실이 된 것이다.

당연히 국가에서는 각성자를 소홀히 대하지 않았고,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법안들이 만들어졌다.


각성자 특별법 제3조3항.


- 잠재 각성자는 정부나 협회가 지정한 기관에서 각성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해병대 강 영감님의 늦둥이이자 불알친구인 상철이와 동행했다.


“빨리 가자. 혹시 알아? A급이 나올지?”


상철이가 그를 잡아끌었다.


“설레발치진 마. 등급은 아무래도 좋으니까.”


민재는 심호흡하고 따라갔다.


대기실에는 먼저 온 잠재 각성자들이 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들뜬 표정이었다. 초조하게 서성이는 외국인도 넷이나 보였다.

접수처에 간이 테스트기를 제출한 뒤,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하고 소파에 앉았다.


- 203번 이혜연 님.


긴생머리 머리의 젊은 여자가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와, 포스가 장난 아닌데?’


민재는 무심코 그녀를 올려보다가 멈칫했다.


운동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얇은 티셔츠 사이로 다부진 등 근육이 보였다.


“아버지한테 들었어. 벌써 스카우트 받았다며? 정말 계속 신성리에 있을 거야? 다시 서울에 나올 생각은 없어?”


상철이가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글쎄. 내 능력은 여느 각성자와 달라서.”


민재는 미소를 머금고 얼버무렸다.


마법을 키우는 농부.

지금이야 텃밭에서 재배하는 정도였지만, 재배 가능한 작물이 늘어나면 넓은 농지는 필수였다.


‘읍내에서도 멀리 떨어진 시골. 조용히 마법을 키우기 최적의 장소지.’


정든 마을과 정겨운 이웃을 떠난다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잘 생각해 봐. 서울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건 알지만······.”


다시 상철이가 말하는 도중이었다.


- 203번 강민재 님.


안내 데스크 위에 이름이 떴다.


“너 부른다. 검사 잘 받고 와.”


상철이가 엉덩이를 두드리고 떠밀었다.


접수원에게 대기표를 건넨 뒤.

민재는 임시 출입증을 받고 2층의 검사실로 향했다.


검사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우선 키, 체중, 혈액형, 근력, 지구력 등 신체 항목을 측정했다.

그다음 센서를 달고 MRI 같은 기계에 들어가 각성도, 잠재력, 마나 등을 체크했다. 검사 항목은 수십 개였는데, 가령 마나만 해도 활성량, 구현력, 정밀성 등으로 세분됐다.


검사를 마치고 대기실에 돌아오니 어느새 5시였다.


“이따 저녁 쏴라.”

“당연하지. 치맥으로 쏘마.”


10분쯤 기다리자 결과가 나왔다.

지인 한 명까지는 동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얀 진료실.

안경 낀 의사가 사무적인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보통 의사가 아니었다. 정신 계통의 특수 능력을 지닌 각성자 의사였다.


각성 파장이 어쩌고, 파장 간 상호 간섭이 저쩌고.

어려운 설명은 들어도 이해를 못 했다. 대충 건너뛰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뭘 먼저 듣고 싶습니까?”


의사가 두꺼운 결과지를 훑어보며 물었다.


“좋은 소식은 뭡니까?”


민재는 상철이와 시선을 마주치고 고민하다가 되물었다.


“같은 마법 계통이라도 마나의 감응도가 다르죠. 가령 백마법사는 백색 마나에 감응하고, 그 때문에 구현할 수 있는 마법도 백마법으로 제한됩니다.”


의사는 복잡한 차트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한데 민재 씨는 마나의 감응도가 자유입니다. 이론상으로는 백, 흑, 적, 청, 녹 등의 모든 마법은 물론이고, 네크로맨서나 정령술사처럼 유사한 계통까지 될 수 있는 거죠. 만능형이라고 할까요?”


민재는 대번 얼굴이 환해졌다.


다양한 몬스터의 핵을 재배할 때부터 어렴풋이 짐작했다.

하지만 정밀 검사를 통해 전문가에게 보증받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뭐든 될 수 있다고? 이거 완전 사기잖아?”


상철이도 제 일처럼 환하게 웃었다.


“나쁜 소식은 뭡니까?”

“마법 수식의 이해도가 최악입니다. 마법이란 마나를 수식에 맞게 컨트롤하는 것인데, 민재 씨는 수식을 이해할 수 없어요. 이건 머리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각성한 능력의 차이죠.”

“······.”

“즉, 민재 씨는 스스로 마법의 구현이 불가능합니다. 수많은 각성자를 진단해 봤습니다만, 이런 결과는 처음입니다.”


의사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등급은 검사 결과에 따라 AI가 즉석에서 판단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최고의 마나 감응도와 최악의 수식 이해력을 동시에 갖추면 어쩌자는 거야?”


임시 신분증이 나왔다.

등급 칸 옆에 ‘F’, 하단의 직업 칸 옆에 ‘기타 등등’이 선명했다.


“실망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농부는 전례가 없거든요. 전례가 없는 건 다 기타 등등으로 나옵니다. 실제로 강민재 씨가 직접 구현할 수 있는 마법도 없고요.”


의사가 위로랍시고 덧붙였다.


“뭐? 기타 등등?”


젠장, 짧은 욕설이 터졌다.

당사자는 담담했다. 욕설은 친구의 입에서 나왔다.


***


사람들 표정이 재미있었다.

협회에 들어갈 때는 다들 들떠 있었는데, 나올 때는 제각각이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 어딘가에 전화해서 자랑하는 사람, 그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사람도 있었다.


“쳇, 좋다 말았네.”


상철이가 더 실망했다.


“각성한 게 어디야? F급도 엄청난 행운인데.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강하고 잔병치레도 없다잖아.”


민재는 손에 든 신분증을 내려봤다.


- F급, 기타 등등.


사진 밑에 등급과 적성이 선명했다.

각성자 중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는 하위 50%였다.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F지. 일반적으로는.’


통계에 입각한 판단이 100% 맞는 건 아니었다.

의사의 말처럼 전례가 없는 건 AI도 판단이 어려웠다.


‘나쁘게 생각하면 기타 등등. 하지만 좋게 생각하면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뜻이지. 그리고 내가 직접 마나를 구현할 수 없으면 어때? 난 마나에 대한 자유로운 감응도 덕분에 뭐든 재배할 수 있는데.’


마법을 키워 쓴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사가 그를 F급으로 평가한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그리고 서울까지 온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각성자로 등록하면 합법적으로 핵을 구할 수 있다.’


게이트 시대.

아이템과 핵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자산이었다.

당연히 정부에서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거래와 취급이 가능하게 통제했는데, 각성자 신분증은 그곳에 출입할 수 있는 일종의 확인서였다.


‘내 마법의 원천은 핵. 핵을 사서 본격적으로 마법을 키워 보자.’


좋은 종자를 찾는 건 농부의 본능.

그리고 마법 농부에게는 좋은 핵이 곧 좋은 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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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주인공 (1) +1 24.03.01 195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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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당신 누구야? (2) +2 24.02.19 430 8 12쪽
4 당신 누구야? (1) 24.02.18 480 12 13쪽
3 첫 재배 24.02.17 545 16 13쪽
2 농부는 농부다 24.02.16 660 17 13쪽
1 내 농지에서는 마법이 자란다 24.02.16 713 1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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