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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310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5.11 13:08
조회
3,019
추천
159
글자
9쪽

그녀와의 첫만남

DUMMY

론멕은 그녀의 귀를 의심했다. 누구냐는 물음은 그녀야말로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런 론멕의 마음을 신경조차 쓰지 않은 듯, 한껏 들뜬 목걸이가 기쁨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아 시발! 누가 줍긴 하는구나!! 지금이 몇 년도지?]


계속해서 들려오는 욕지거리 섞인 누군가의 목소리에, 수녀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비탈길의 음영에는 여전히 수풀만이 무성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50년도? 60년도?]


산 속의 수녀는 겁에 질렸다. 필사적으로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내기 위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던 론멕의 귀에는, 여전히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너 내 말 듣고는 있는 거야?]


침을 꿀꺽 삼킨 론멕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구세요? 어디에 계신 건지···”

[누군지는 몰라도 더럽게 눈치가 없군. 네 목에 걸려있는 건 뭔데?]


그 말을 들은 론멕이 자수정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목걸이 안에 있으시다고요?”

[그렇지!]

“당신··· 그러면 사람이 아닌 건가요?”

[당연하지!]


론멕은 목걸이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그렇죠. 당연하죠! 사람이 어떻게 목걸이 안에서 살겠어요?”

[···나는 내가 엘프란 말을 하려던 거였는데. 그리고 뭐, 사람이라고 해서 못 할 건 없지 않아?]

“사람이 대체 어떻게 그래요? 아니 잠깐만···”


론멕은 다시 한 번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걸이의 말에 담긴 한 단어, 어렸을 적의 역사 수업에서나 들어 본 단어가 그녀의 뇌리에 스쳤기 때문이었다.


“···엘프라고요?”

[그래. 뭐가 이상해? 말투가 어째···]


무엇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는 듯, 갑작스레 말을 끊은 목걸이가 침묵하기 시작했다.


“저기요?”

[···.]

“목걸이 님? 엘프 님?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

“아니 그보다, 당신이 진짜 엘프라고요? 엘프들은 종적을 감춘지 오래라고 배웠는데..."


한껏 들뜬 수녀에게, 목걸이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목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것을 알아챈 론멕은 이내 목걸이와 마찬가지로 입을 닫고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론멕의 귀에는 이제 수없이 많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닷바람이 수풀을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이름모를 새의 적막한 울음소리가, 저 멀리 들려오는 성당의 아침 예배 소리가 그녀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론멕은 이 기묘한 대치가 한없이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나무들의 사이로 불어오는 기분좋은 산바람에서는 서늘함이, 그녀의 집과도 다를 바가 없었던 성당의 뒷산에는 이젠 영문 모를 음울함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론멕이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름끼치는 침묵을 먼저 깬 것은 그녀의 목에 걸린 목걸이었다.


[···다시 물어본다. 지금이 몇 년도지? 토툽스 제국력으로 대답해 줄래?]


그 말을 들은 론멕은 무엇인가를 떠올리려는 듯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토툽스 제국은 400년 전에 사라졌어요. 엘프가 사라진 것도 그 즈음인 걸로 알고 있어요."

[...]

"당신 혹시 제게 짖궂은 장난 같은 걸 하시는 건가요? 목걸이 안에 있다는 것 부터, 역사 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름들을···”


론멕은 마저 말을 마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목덜미에서 강렬한 진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화들짝 놀란 수녀는 공포에 질려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런 론멕의 귓가에 목걸이의 차가운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전쟁을 앞둔 나라는 선전 포고를 하지. 누가 그렇게 정했을까?]


영문 모를 목걸이의 질문에, 당황한 론멕이 대답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누가’ 그렇게 정한 게 아니야. 그건 일종의 예의일 뿐이지. 말하자면 이런 거야. ‘나는 너를 죽이거나, 네가 살려달라고 벌벌 떨면서 빌기 전까지 너를 사정없이 두들겨 팰 생각이란 걸 알아두시오.’ 라고 정중하게 말하는 거라고.]


그것은 더 이상 대화라고 불릴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말 예의가 바른 편이란 말이지. 그래서 너에게 특별히 이렇게 말해주는 거야.]

"..."

[나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 그건 숭고한 희생도 아니고, 정의를 세우는 일과는 거리가 멀지.]

"..."

[오로지 나만을 위해, 내 것을 위해, 나를 세우기 위해. 나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


난생 처음 느껴보는 공포에, 론멕은 힘없이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너는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야. 그런 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를 이해해줄 수 있겠어?]


텅 빈 허공을 응시하며 목걸이의 말을 듣던 론멕이 주체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지 이해가 잘···”


목걸이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네 몸을 이제 내가 쓸 거거든.]



= = = = =



성당의 집무실에서는 한창 엄중한 분위기의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원장 수녀님. 신의 이름으로 말씀 드리는 건데, 이건 정말이지···”


중후한 저음의 목소리가 집무실을 가득 메웠다. 목소리의 주인이 탁자를 요란하게 내리치고는 말했다.


“이건··· 이런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원장 수녀님!”


원장 수녀는 그녀의 맞은편에 위치한, 소음의 원인인 노란 수염의 기사를 쏘아보며 말했다.


“기사단장··· 당신이 아무리 그렇게 격렬하게 항의를 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란 수염의 성기사단장은 원장 수녀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약속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오늘의 아침을 굶기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허리춤에서 꾸깃꾸깃한 양피지를 꺼내든 기사는, 이내 그것을 원장 수녀에게 보이며 울상이 된 채 말했다.


“점심 식단에 고기가 없다니요!”

“아니, 이미 그렇게 정해진 것을 어떻게 하란 말씀이신···”

“식자재 창고에 벌레가 출몰해 음식들을 모두 못 쓰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정해진 식단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원장 수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양파는 아직 쓸 수 있는걸요. 양파 스튜는 어떠세요?”


성당 창립 역사상 가장 끈질긴 논쟁이 이어졌다. 고집 센 두 사람과 중대 문제가 한 곳에 어우러져 끝이 보이지 않는 아비규환을 만들어냈다.


-쾅


열성적으로 각자의 입장을 변호하던 수녀와 기사는, 집무실의 문이 세차게 열리는 소리를 듣고는 논쟁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원장 수녀와 기사단장은 동시에 집무실의 문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수녀님··· 엄마···”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금이 간 안경을 쓴 론멕이었다. 만신창이가 된 그녀의 모습을 본 원장 수녀는 사색이 되어 자리에서 뛰쳐나와 그녀에게 다가갔다.


“론멕···?”


론멕은 힘없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론멕 수녀? 론멕! 론멕!”


원장 수녀는 쓰러진 론멕을 흔들며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어떻게 된 거야! 정신 차리려무나 아가!”


기사단장은 그 모습을 보고는 부리나케 달려와 론멕을 일으켜 세웠다.


정신을 잃은 론멕의 어깨를 부여잡은 그는 수녀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던 중, 문득 그녀의 목 주변에서 무엇인가 빛이 나는 것을 보았다.


목걸이.


진한 자줏빛의 목걸이가 론멕의 목덜미에서 하늘빛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잠시동안 넋이 나간 듯 자수정을 바라보던 기사단장은, 이내 큰 소리로 그의 부하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조엘! 데이브! 당장 집무실로 오도록. 당장!”


기사단장의 외침을 들은 두 성기사는 부리나케 집무실로 들이닥쳤다.


쓰러진 론멕과, 그녀를 둘러싼 원장 수녀와 기사단장을 본 그들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며 입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대장님?”


부하들이 온 것을 확인한 노란 수염의 성기사단장은 손가락으로 론멕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악한 마법에 오염된 자다. 내일 수도로 이송하여 목을 벨 것이니 지금 당장 지하 감옥에 가둬두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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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바다 위에서 +28 20.05.15 1,962 129 12쪽
8 지평선호 +12 20.05.14 2,124 126 11쪽
7 항구와 시작의 도시 +10 20.05.13 2,558 122 7쪽
6 돌격 앞으로 +18 20.05.12 2,625 145 9쪽
5 탈출 +16 20.05.11 2,611 150 8쪽
4 심연 속에서 +18 20.05.11 2,859 161 9쪽
» 그녀와의 첫만남 +15 20.05.11 3,020 159 9쪽
2 목걸이의 목소리 +19 20.05.11 4,012 182 9쪽
1 이야기책. 그리고 론멕 +29 20.05.11 8,125 29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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