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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톤의 서재입니다.

종말의 경계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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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센스톤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1
최근연재일 :
2023.10.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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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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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9쪽

263화. 영원한 이별

DUMMY

시아라의 스태프를 통해서 엔키의 영언을 들은 그날 밤으로부터, 열흘이 지난 오늘 밤 역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카르마의 왕비가 머무르는 내실의 가운데 조그만 은빛의 침상이 있었고, 백일도 되지 않은 이엘라가 포근한 이불에 싸여 깊은 잠이 들어 있는 모습을 루한과 시아라 그리고 몇 일을 쉬지 않고 달려와 밤늦게야 겨우 백석궁을 찾아 온 제인이 같이 바라보며 한동안 침묵에 잠겨있었다.


“....예전에...지구차원에서도 그랬었지....그때도 성령 언니와 준이..둘이 화이트 홀로 떠나더니....다른 차원인 이곳에 와서도... 나 홀로 두고 떠나는구나...”

제인이 초점 없는 눈빛으로 혼자 말처럼 나직이 중얼거렸다.


“제인....그때는 제인 혼자였지만, 지금은 이엘라가 제인과 같이 있잖아....테라의 김 선생님도...나가슈의 이안나도...”

시아라가 초췌한 모습의 제인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위로해주었다.


“.....오히려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은 시아라와 루한인 걸 알면서도...돌아오지도 못할 먼 곳으로 가는 두 사람 앞에서... 이러는 내 자신이 얼마나 바보같이 구는지.....”

제인이 울먹이며 말을 채 맺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루한....정말 세상의 모든 생명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일까...내 상상으로는 믿어지지가 않아...그냥 이대로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지구차원에서도 세상이 곧 멸망할 것처럼 말했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고 있었잖아...”

고개를 숙인 채 울먹이는 제인이 루한을 보며 억눌린 목소리로 힘들게 말했다.


“나 역시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어...하지만 이곳은 지구차원과는 다르게 아누라는 존재와 그 마지막 목적을 너무나도 확연하게 알아버렸으니...그런 조그만 여지조차 주어지지 않는구나...”

루한이 이제는 마음을 비워버린 것처럼 초연한 기색으로 말했다.


“...이렇게 귀엽고 예쁜 이엘라를 두고...아니...이엘라 때문에 이 세상을 구하기로 결정했겠지... ”


“제인....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내일 마지막으로 회의를 하고 바로 떠날 거야...그들에게는 흑룡이 카라트를 넘어오는 것을 막으러간다고 이야기 할 거야...그래서 우리 둘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제인이 국가수반을 맡을 거라고....”

이엘라의 잠든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는 제인에게 루한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인이 시아라와 같이 한 방에서 같이 자고 싶다고 해서, 루한이 집무실로 홀로 나와 몇 일 전에 하루 간격으로 도착한 김태현과 이안나로부터 온 답신을 다시 꺼내어 보면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는 이별보다 차라리 이렇게 서신을 통한 이별이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사마르 북부를 정리하고 테라칸으로 내려가면서 뒤늦게야 서신을 받아보게 되었네...

어떻게 이야기를 할지...무슨 이야기를 하여도 자네에게 아무 도움도...어떤 의미 있는 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그냥 자네 옆에서 술이라도 같이 하면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 말고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슬플 뿐이네...

세상이 사라지고..그런 세상을 구하고자 먼 길을 떠나는 두 사람의 여정 앞에서 인간사의 잡다한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하지만 자네가 세운 카르마를 지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앞장 설 것이며...이엘라의 대부로서 자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받쳐서 이엘라를 보호하고 위해줄 것을 맹서하겠네.. 하찮은 나의 능력으로는 그것 말고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미안하고 안타까울 뿐이라네...

내가 쓰는 자네의 장대한 서사의 마지막 장은 자네와 시아라가 아누의 본체를 가지고 화이트 홀을 들어서는 장면이 될 것이네...그리고 나중에 이엘라가 자라서 그 책을 읽으면서 위대한 자네들의 여정을 기억하겠지...

다른 차원이든 과거이든 부디 자네들이 원하시는 세상에 가게 된다면..혹시라도 그 세상에 내가 있다면... 그런 나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전해주기를 부탁하면서 이만 글 줄이겠네...


‘그런 세상에 갈 수만 있다면 김 선생님을 꼭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그렇게 되면 그 세상에서 김 선생님이 또 책을 쓰실 지도 모르겠군요...어쩌면 혹시 그 책 때문에 그 세상에 블루문이 오게 될지도 모르니...이번에는 그냥 먼발치에서 인사만 드리도록 하지요...’

루한이 그런 상상을 하며 술잔을 비우고는, 이번에는 이엘라의 정갈한 필체가 쓰여진 서신을 펴들었다.


-.....커다란 세계의 운명을 짊어지신 두 분 앞에서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바라 건데 제가 이엘라의 대모로 살아갈 수 있게끔 허락해 주신다면, 제 남은 생의 희망으로 알고 살아가겠습니다...다음 생이 있다면 꼭 다시 뵙기를...


이안나가 그 마음을 줄이고 줄여서 쓴 짤막한 서신 안에 담긴 마음을 루한이 다시 보면서 가슴이 아릿해져 왔다.

‘이안나...그대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한 내가 미안할 뿐이지요....그대가 이엘라의 대모가 되어 준다니...그대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다음날 아침 백석궁의 마지막 식사를 세 사람만 같이 하면서 루한이 말했다.

“이엘라는 유모에게 잠시 맡기고... 식사라도 조금 하는 게 어때..”


“괜찮아...나중에 루한과 제인이 회의를 할 때 조금 먹으면 되니..나는 신경 쓰지 말고 둘이라도 많이 먹어.....”

시아라가 희미하게 웃으며 품에 안은 이엘라를 보며 말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이엘라와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은 시아라의 마음을 아는지라, 더 이상 뭐라고 말하지 못하고 루한이 까칠한 입맛을 느끼면서 자신도 수저를 놓고 포도주로 목을 축였다.


그런 둘을 바라보면서 아직 수저조차 들지 않은 제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 당장 떠날 것까지 있겠어...하루 이틀은 여유를 가지고 출발해도 괜찮지 않아?”


“어차피 떠날 일인데...하루 이틀 더 머문다고 괜히 마음만 더 불안해 지겠지...지금 이 순간에도 아누의 봉인이 언제 깨어질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을 엘프들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더 빨리 가는 것이 맞겠지.”


식탁에 올린 음식들만 내려다보며 가만히 있던 제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렇게 황망하고 급하게 떠난다니...김 선생님과 이안나도 많이 충격을 받았겠어...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하고 이리 헤어지니..얼마나 섭섭할지...”


“두 분께는 서신으로 알려드리면서 남아있을 제인과 이엘라를 부탁드렸어...제인이 돌아오기 전에 답신까지 받았어...두 분 다 안타까워하시면서 내 마음을 받아주셨고...이안나 대공은 이엘라의 대모가 되어 주기로 했어.”


“...그랬구나...김 선생님은 이엘라가 태어나기 전에 벌써 대부가 되셨고...이안나까지 대모가 되었으니.. 이엘라가 든든하겠구나...나 또한 이엘라가 성년이 되어 카르마를 물려받을 때까지..아니 내가 이 세계에 남아있을 때까지... 시아라와 루한을 대신해... 엄마가 되어주고...”

제인이 더 이상 말을 맺지 못하고 마지막 말은 흐느끼듯이 슬피 울며 말했다.


그런 제인을 바라보며 루한이 한 잔의 술을 더 마시고, 시아라가 조용히 눈물을 떨어뜨리면서 카마프라의 마지막 아침식사를 마치게 되었다.


이층의 내실로 돌아와 잠시 후에 시작 될 회의를 기다리면서, 루한이 챙겨둔 옥갑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

“제인...이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약초야...이것은 이엘라를 위해서 여분으로 가지고 있도록 해...그리고 이엘라가 어디까지 각성을 할지도 모르고...검의 길을 걸을지, 아니면 마법의 길을 걸을지도 모르겠지만...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제인이 대신 카르마를 맡아준다면, 굳이 이엘라에게 국왕의 자리까지 강요하고 싶지 않은 것이 우리들 마음이야...”


“알아...무슨 마음인지...나중에 이엘라가 김 선생님이 쓰신 루한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면, 많은 것을 느끼게 되겠지...루한 말대로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현자의 예지대로 이엘라는 훌륭한 군주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해...”

감정을 추스린 제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루한에게 답했다.


루한이 제인과 이후의 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나누고 쉬고 있을 때, 시종장이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고 들어와서 말했다.

“전하...총리각하를 위시해서 백작 각하 분들 그리고 파세토 자작까지 모두 회의실에 들었습니다...”

시종장 메네스 또한 루한에게서 대강의 이야기를 들은 터라,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차를 준비시키고 주변의 사람들은 물려놓도록 하게...궁내에서는 지금 자네만 알고 있겠지만, 어차피 나중에는 모두 알게 되겠지...궁내의 기강이 흔들리지 않도록 자네가 각별히 보살피고...본궁에는 테베 공작이 이엘라와 같이 기거 할 것이니, 내가 없더라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게...”


“...충심을 다해...공작각하와 공주님을 모시겠습니다..”


시종장 메네스가 무릎을 꿇고 마지막 예를 올리는 것을 받고나서, 루한이 제인과 같이 일층의 홀로 내려와 회의실로 들어서자, 이미 대강의 사정을 알고 있는 니아케와 헤레니즈 외에도 나소르와 헤로트 그리고 파세토는 물론이고 긴장한 눈빛의 사이마르 백작까지 여섯 명의 최측근들이 자리에 일어서며 루한과 제인을 맞았다.

니아케와 헤레니즈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침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머지 네 사람 또한 중대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며 긴장 된 눈빛으로 숨을 죽이고 루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루한이 제인과 나란히 상석에 앉아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앉아서 차를 들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헤레니즈 백작과 니아케 백작은 대강의 상황을 알고 있을 것이니...니아케 백작이 그 사정을 먼저 설명해주게.”


니아케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좌중의 눈동자가 황당한 표정에서 경악의 표정으로 바뀌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루한을 바라보고 있을 때, 파세토가 간절한 눈빛으로 루한을 보고 사정하듯이 말했다.

“...그런 일이...제가 비 전하의 경호책임자이니...북국까지 만이라도..모시고 갈수 있도록...”


“파세토...이제 자네가 경호하고 모실 사람은 이엘라야...나의 마지막 명령이라 생각하고 루네시스 비를 대신해서 이엘라를 지켜주길 바라겠네.”

황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파세토에게 루한이 단호하게 말했다.


“전하...북국을 침탈했다는 그 흑룡이 아무리 대단한 괴수라 하더라도...두 분 전하께서 같이 하시니, 반드시 그 괴수를 물리치고 다시 돌아오시겠지요...반드시 그리 될 것이라고 저..사이마르가...예전처럼 굳게 믿고 기다라고 있겠습니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가 없으니, 어찌 앞날을 짐작하겠는가...단지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앞으로 국정은 물론이고 군무의 최고 책임자는 여기 있는 테베 공작이 될 것이네...헤로트와 나소르..두 백작은 나를 대하는 것과 똑같이 테베 공작을 받들어야 할 것이네...다행히 테라의 국왕과 나가슈의 대공이 이엘라의 대부이며 대모로서 카르마와 영구적인 동맹으로 전폭적인 도움을 약조하셨으니...어떠한 위기가 오더라도, 두 분이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네.. 비록 나와 루네시스 비가 부재하더라도 카르마의 안위가 흔들릴 일은 없을 것이니, 그대들을 믿고 오랜 동안의 여정에 나서도록 하겠네..”


“전하...흑룡이 아무리 신화에 나오는 강력한 마수라 하지만, 전하의 무위와 비 전하의 인세를 초월한 마법에 어찌 대항하겠습니까...북국이 아무리 멀다하지만, 괴수를 물리치고 돌아오신다 해도 길어야 이년 안쪽이 아니겠습니까...그런데 어이해 그리 오래 계실 것처럼 말씀을 하시는지...혹여 저희들이 모르는 다른 일이 계신 것이 아닐지...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 하겠사오니..마지막처럼 말씀하시는 것만은 거두어 주시길...”

헤로트가 루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모두들 헤로트처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모두들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루한을 바라보았다.

루한이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천천히 식은 차를 드는 모습을 제인 역시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자네 말대로...아난드라의 강력한 기사와 엔닐을 비롯한 수많은 마법사들이 있으면서...나와 루네시스 비까지 함께 하고 있는데도...왜 이렇게 힘들게 이야기하는지를 모두들 의아하게 생각하겠지....삼 년이네...만일 삼년이 지나도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내가 이야기 하지 못했던 사정을 여기 테베 공작이 대신 이야기 해 줄 것이네...그 때까지는 이 정도의 이야기로 이해해 주게나..이제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도록 하겠네...”


루한의 말에 오히려 모두가 당혹하며, 이 일이 흑룡이라는 마수를 초월한 엄청난 사건이라는 것을 짐작했지만, 루한의 엄중한 표정과 단호한 음성에 더 이상의 말을 못하고 좌중이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전하...언제 쯤 길을 나서시는지...따로 준비를 하실 것이 있을지...”


“북국으로 가는 가도상에 있는 스피트레 자작의 군영과 노비에타에 있는 힌센트라 자작에게만 간단한 순시형식으로 방문할 것이라는 서신만 보내도록 하게...나머지는 그대로 지나쳐 갈 것이니, 다른 곳에는 알리지 않도록 하게....출발은 오늘 밤에 조용히 떠나도록 하겠으니, 번잡스럽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 주게..”

루한이 니아케의 말에 답해주고 나서 모든 이야기를 마쳤다는 듯이 식은 차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찌...이렇게 그냥 떠나시는 것입니까...몇 일이라도 더 계실 줄 알았는데....”

나소르가 황망한 눈빛으로 그런 루한을 말리듯이 말했다.


“이별이 길면 더 힘들어질 뿐이지...그대들의 마음은 전부 담고 갈 것이니...카르마와 이엘라를 잘 부탁하겠네...”

루한이 말을 마치고 일어서서 여섯 명 하나하나의 눈을 보면서 무언의 인사를 나누고 나서, 회의실을 나서고 그런 루한을 뒤따라 제인마저 회의실을 나서자, 남겨진 여섯 명 모두 할 말을 잊은 채 루한이 나간 문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니아케가 루한이 없는 세계를 상상하며 깊은 절망과 공포까지 느끼며 이를 악물고 있었다.

‘어떻게...이렇게 갑자기 떠나신다는 말인가...전하께서 다시는 돌아오시지 않아...나는 알 수 있어...지금 이 생에서..바로 지금이 마지막으로 루한님을 뵙는다는 것을...’

니아케처럼 모두가 루한과의 첫 만남을 생각하며 깊은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이층의 내실로 들어가는 복도에서 루한이 말없이 뒤따라오는 제인에게 말했다.

“우리가 다른 차원에서 왔다는 그런 말은 빼고.. 적당히 이야기해주면 되겠지...”


“.....”


내실로 들어서자, 여느 때처럼 시아라가 이엘라와 눈을 맞추며 놀아주고 있었다.

그런 시아라를 루한과 제인이 말없이 바라보면서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다가왔지만, 저녁식사는 간단하게 차려서 내실로 가져오게 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만찬용 트레이에 간단한 음식을 담고 시종대신에 니아케가 혼자 끌고 내실로 들어섰다.

원탁에 정갈한 식사를 내려놓고 나서 니아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 식사는...예전에 모시던 것처럼 제가 올리고 싶어서...전하의 명을 어기게 되었습니다...지금 뵙는 것이 마지막으로 두 분 전하를 뵙는다는 것을..저는 알고 있습니다..그러니...마지막 시중은 제가 들 수 있도록...”


“니아케...그만 되었으니 너도 같이 앉거라..”


“....”


“내가 처음 여기로 와서...모든 것이 서투른 나에게 니아케가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지...어쩌면 그때가 제일 즐거운 때였어...대삼림을 헤치고 처음 본 사람이 니아케인 것을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니아케 말대로 우리를 보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겠지만, 우리 대신에 이엘라를 보면서 항상 새로운 인연을 쌓아가기를 바라마...”

루한의 맞은편에 앉아 어린 강아지처럼 하염없이 바라보는 니아케에게 루한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 니아케를 안쓰럽게 보는 시아라가 니아케의 손을 잡으며 다정스럽게 말했다.

“니아케 경...나중에...여기 제인을 통해서 이야기를 듣겠지만, 너무 슬퍼하지는 마세요...그리고 남겨질 이엘라를 잘 부탁드릴게요.”


“전하의 은혜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저 따위가..무슨 그런 자격이 있겠습니까...그렇더라도 제 목숨보다 더 귀하게 공주님을 모시겠으니...부디 두 분께서 가시는 먼 길이 평안 하시기를 항상 빌겠습니다.”

니아케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경의 예를 정중히 올리고 나서, 가슴에 새기듯이 루한을 한번 더 바라보고는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갔다.


“길을 떠날 사람들이니 식사라도 든든히 먹고 가도록 해...그래도 나 하나 정도는 성 밖까지 마중을 나가도 되겠지?”

제인이 수저를 챙겨주며 담담하게 말했다.


밝은 달빛이 창밖에 비추는 것을 보면서 루한이 마법배낭까지 메면서 모든 준비를 마치자, 유모에게 이엘라를 보게 하고 복도의 뒤쪽 창문에서 세 사람이 뛰어내렸다.

은신과 빠른 보법으로 바람을 타듯이 백석궁의 숲을 벗어나 내성을 통과 하면서 괜한 검문에 미리 말해 둘 것을 그랬나하고 걱정을 할 때에, 내성의 관문에서 파세토가 지키고 있다가 지나가는 루한들에게 말없이 고개만 숙이며 서있었다.

중성의 문에는 헤로트가 서 있었고 마지막 외성의 북문에는 나소르가 지키고 있다가 카마프라를 나서는 루한과 시아라를 말없이 배웅해 주었다.

그리고 어두운 외성의 망루에는 헤레니즈와 사이마르 그리고 니아케가 그런 루한들의 마지막 길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간간히 보이는 농장건물들이 서있는 전원지대를 지나서 구릉의 고개에서 루한이 걸음을 멈추고 제인에게 말했다.

“제인...이제 그만 됐어...”


“...루한....만약에...수많은 차원 중의 지구로 가게 된다면...나를 꼭 찾아 와줘.....시아라...성령 언니...나에게는 항상 시아라이면서 언니였어요...지구차원에서도 여기에서도...항상 고마웠어요...이엘라는 내가 잘 키울게요...”

제인이 루한에게 마지막 인사와 부탁을 전하고 억지로 눈물을 참으면서 떨리는 몸을 시아라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


“제인이 있어서 마음을 놓고 갈수 있어...이엘라와 행복하게 잘 살아야 돼...”

시아라가 제인을 안고 나직이 속삭이며 말했다.


루한과 시아라가 한겨울의 폭풍처럼 미련을 끊듯이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을 언덕위의 제인이 지켜보며, 이제 더는 보이지 않는 둘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직이 말했다.

“준아...언니...어딘지 언제일지도 모르는 시공간에서라도...꼭 다시 만날 그 날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게...”

제인이 서있는 언덕위로 빛나는 푸른 달이 오늘 따라 더 푸른빛을 비추는 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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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277화. 창조 23.10.04 182 5 20쪽
276 276화. 돌아온 블루문 23.10.03 166 5 16쪽
275 275화. 성령의 목소리 23.10.03 156 3 16쪽
274 274화. 검은 악마를 마주하다. 23.10.02 158 4 16쪽
273 273화. 루한의 정체 23.10.02 160 4 15쪽
272 272화. 마인으로 변한 마스터 23.10.01 157 3 16쪽
271 271화. 불타는 아얀프라 23.10.01 154 3 15쪽
270 270화. 검은 악마의 진격 23.09.30 157 4 17쪽
269 269화. 검은 악마 23.09.30 174 4 16쪽
268 268화. 아누의 유희 23.09.29 167 5 16쪽
267 267화. 아누 23.09.29 160 5 15쪽
266 266화. 세계수와 아라트 23.09.28 171 5 17쪽
265 265화. 에리두의 결계 23.09.28 160 5 16쪽
264 264화. 북쪽의 여정 23.09.27 165 7 17쪽
» 263화. 영원한 이별 23.09.27 167 6 19쪽
262 262화. 운명에 따르는 결정 23.09.26 173 8 20쪽
261 261화. 스태프의 빛 23.09.26 173 6 17쪽
260 260화. 이엘라의 탄생 23.09.25 177 7 18쪽
259 259화. 왕의 귀환 23.09.25 187 6 17쪽
258 258화. 노비에타를 접수하다. 23.09.24 200 7 15쪽
257 257화. 운명의 흐름 23.09.24 196 7 15쪽
256 256화. 새로운 생명 23.09.23 198 7 15쪽
255 255화. 바깥의 존재 23.09.23 191 5 17쪽
254 254화. 엔키 엘 아시드 23.09.22 189 6 17쪽
253 253화. 현자를 만나러 가다. 23.09.22 195 5 18쪽
252 252화. 족쇄를 풀다. 23.09.21 196 7 17쪽
251 251화. 전쟁의 마무리 23.09.21 195 3 15쪽
250 250화. 감춰진 진실 23.09.20 189 6 16쪽
249 249화. 결투의 조건 23.09.20 190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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