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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톤의 서재입니다.

종말의 경계를 걷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센스톤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1
최근연재일 :
2023.10.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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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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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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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20쪽

262화. 운명에 따르는 결정

DUMMY

이엘라가 새근거리며 잠이 든 깊은 밤에 세계수의 가지를 손에 든 시아라가 조용히 눈을 감고 있다가 살며시 다시 눈을 떴다.

부산스럽게 깜박이던 빛은 사라지고 원래의 스태프로 돌아갔지만, 그 대신에 시아라의 눈빛이 흔들리면서 긴장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루한에게 시아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루한....엔키님이 세계수를 통해서 전언을 보내오셨어...봉인의 결계가 금이 가고 있다면서....에리두의 엘프들이 모두 모여서 최대한 막고는 있지만, 일 년을 버틸지.. 이년을 버틸지...그것도 장담을 하지 못하겠다며....”


‘빠르면...일 년 이내에...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사라진다는 말인가.....’

루한이 시아라와 이엘라를 같이 바라보며 마른 목소리로 나직하게 물었다.

“....그 말 뿐이었어?...다른 말씀은.....”


“...모든 것은 운명에 맡기겠다고만 하시면서...연결을 끊으셨어....”


“운명에 맡긴다는 것은....우리에게 그런 결정을 맡긴다는 말이 아니겠어?...그렇다고 일 년도 남지 않은 시간동안 대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루한이 숨을 가다듬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 시아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시아라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루한의 맞은편에 앉아 한동안 스태프를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루한...만일에...이엘라가 태어나지 않았고....일 년 안에 세계가 사라진다는 말을 들었다면...루한은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아누가 이 세상의 생명들을 모두 거둔다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면...시아라와 제인...그리고 내 주변의 몇 사람들을 데리고 이곳을 피하는 수 말고...대체 무슨 방법이 있을까...’

루한이 굳은 얼굴로 시아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마음속의 있는 그대로 말했다.

“지구차원이 멸망을 앞두고 있었을 때도...내가 세계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어...그런 능력도 없었지만, 어차피 망해가는 세상이라 생각했을 뿐... 세상을 구해야겠다는 한 조각의 의지도 없었어...단지 성령 누나가 화이트홀로 향하는 것을 보고 어차피 이런 세상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무의미하게 종말을 기다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에, 화이트 홀로 들어설 누나를 따라 나섰을 뿐이었지....그런데 차원을 넘어서 온 이 세계 역시 멸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다시 만난 시아라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그대로 두고.. 내가 굳이 예정된 종말인 에우리아를 구하려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차라리 똑같이 종말이 예정된 세상이지만, 지구차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


루한의 말에 어떤 미동도 없이 블루문 같은 푸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아라를 보며 루한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시아라가 그런 말을 왜 했는지 잘 알고 있어...이 곳을 피해 지구차원으로 도망간다고 한들...카라트를 넘어갈 능력이 되는 사람이라고 해야...기껏 김 선생님까지 포함해서 우리들 몇 사람뿐이겠지...설령 몇몇 사람들을 더 데리고 카라트를 넘어 간들...웜홀을 통해 지구차원에서 적응해서 살아가지도 못할 것이고...우리의 이엘라 역시 힘들 것이라는 것을....그리고 도망쳐간 그 세상 또한 종말이 예정된 세상이라는 것 역시 부정할 수는 없겠지......결국 시아라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한 가지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현자의 예지에 나왔던 그 영상....제인이 어린 이엘라와 같이 있었던 영상....이엘라의 옆에 우리는 없었지만, 이엘라가 어린 소녀로 보였었던 영상이었으니....이엘라가 살아가는 세상은 무사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겠지......그러기에 엔키께서 모든 것은 운명에 맡긴다고 하셨을 것이고...”

루한이 마지막 숨을 토해내듯이 말했다.


“루한....내 생명 보다 훨씬 소중한 이엘라가 있지만....이엘라에게는 제인이 있으니.......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루한의 옆에는 내가 같이 있어야만, 이 모든 것을 끝낼 수가 있어...루한도 그리 느끼고 있지?...화이트 홀을 들어서려면, 내가 같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루한도 잘 알고 있잖아...”


시아라의 말에 루한이 말없이 일어나 창가에 서서 눈 내리는 깊은 밤에도 희미한 빛을 뿌리는 두 개의 달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소중한 이엘라가...나와 시아라가 어쩔 수없는 단 한 가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예정된 탄생이었을까?...현자가 예지에서 보여준 제인의 미래가 사실이라면, 나와 시아라가 아누의 본체를 가지고 화이트 홀로 들어가서 에우리아가 종말을 넘긴 것이겠지만....그 다음의 우리는 어떻게 될까....소설의 안상태가 자신의 어린 딸이 살아있는 과거로 돌아가는 소망을 꿈꾸었다면, 시아라와 나는 무엇을 소망해야 되는 것일까....’


“시아라....예전에 성령 누나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화이트 홀을 들어선다면, 자신이 바라는 세상에 갈 수도 있다는 말을....그때 누나는 블루문이 없었던 예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었지...하지만 지금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어떤 경우의 수에도 이엘라와 우리가 같이 만날 수 있는 세상은 존재 하지는 않겠지...”

루한이 눈발이 휘날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엘라가 편안하게 살아가는 세상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겠지...루한과 나는...성령의 말처럼.. 블루문이 없는 지구차원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어쩌면 성령을 통해서 나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루한을 다시 보게 될지....”

시아라가 마치 옛일을 회상하듯이 성령의 영혼에서 찾은 기억의 단편에 희미한 바램을 다시 얹어서 창밖을 보고 있는 루한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루한이 시아라의 말에 자신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여주기 싫어서 창밖의 어둠만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돌아갈 수 있다고 한들 이엘라도 시아라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겠지...그렇다고 기억조차 없이 과거로 돌아간들..그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루한....엔키님의 말씀대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우리가 북쪽의 에리두의 결계에 도착하는 데만도 반년은 더 걸릴 거야.”

시아라가 그런 루한의 상념을 끊어내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예정된 운명의 흐름이란 것이...선택의 기회조차 없이 이렇게 무력하게 쓸려만 가는 것이라면, 차라리 억지로 버티고 싶은 심정이야....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현자의 예지가 미래에 이루어진다면, 세상은 결국 온전해지지 않을까...”

루한이 시아라를 돌아보며 억눌린 목소리로 쥐어짜듯이 말했다.


시아라가 슬픈 눈으로 루한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아무도 강요할 수 없는 일이야..루한이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루한 옆에는 내가 있을 거야...”


새벽이 오면서 눈이 그치고 이른 아침에 다시 떠 오른 여명의 빛이 창가에 비칠 때까지 루한과 시아라는 묵묵히 그 자리 그대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런 둘의 침묵을 깨우듯이 이엘라가 긴 잠에서 깨어나 웅얼거리자, 그제야 시아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엘라를 품에 안고 달래주었다.


이엘라를 품에 안은 시아라에게 루한이 나직이 말했다.

“...제인에게 다시 카마프라로 돌아오라고 전서구를 보낼게...김 선생님에게도 보내야겠지.”


집무실의 의자에 앉은 루한이 시종에게 니아케를 호출하게하고, 무심한 눈빛으로 아침의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 주제에 편안한 삶을 누릴 여유 같은 것은 애시 당초부터 없었겠지...쥬신에서 북국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이 반년 정도였으니...북국에서 더 북쪽이라는 에리두까지 가려면, 카마프라에서 출발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은 비슷하겠지....엔닐에게는 출발 전에 전서구를 보내면 되겠지...’

루한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니아케가 급한 걸음으로 집무실로 들어섰다.


“어떤 일이신데...나가슈로 출발하신 테베 공작각하를 다시 귀환하라 하시는지....”

몇 일 전에 나가슈로 향한 제인을 다시 불러들이라는 루한의 말에 니아케가 당혹한 눈빛으로 물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해 주도록 하겠네...나와 시아라에게 중대한 일이 생겼으니...전문을 받는 즉시 바로 귀환하라고만 보내면 될 거야...테베 공작이 거쳐 갈 경로상의 모든 도시들에게 전서구를 보내고...혹시 도시에 들리지 않고, 혼자서 지름길로 갈 수도 있으니...그 점도 감안해서 지급으로 보내도록 하게...나가슈의 대공과 테라의 국왕께 보낼 전문도 있지만, 그것은 나중에 다시 보내도록 하지...이 일은 당분간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도록 하게.”


니아케가 처음으로 보는 루한의 엄중한 기색에 더 이상 의문을 표하지 못하고 급하게 밖으로 나섰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기색이 저리 엄중하신 걸까...위급하다고 올라온 정보는 아무 것도 없었는데....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리하여 빠르면 일 년 정도가 이곳 에우리의 남은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이엘라의 탄생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을 하나 뿐으로 만든 것을 보면...이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지 않나 싶더군요...그나마 제인이 이엘라의 보호자로 같이 있는 예지를 들었는지라, 그나마 저와 시아라가 안심을 하고 떠날 수 있어 다행인 듯 싶습니다.

지금 쯤 사마르칸에 계시면서 바쁘신 나날을 보내고 계시겠지만, 이 서신을 받으시고 카마프라 오시더라도, 그 때 쯤이면 저희들은 벌써 북국에 도착해 있을 겁니다...그러니 많이 섭섭하시더라도 저희가 없을 카르마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언제까지고 선생님과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며..이만 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루한이 김태현에게 보낼 얇은 속지를 다시 한 번 읽고 나서,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빨리 그 시간이 닥칠지 예상도 못하셨으니.....하지만 언제라도 터질 시한폭탄처럼 예정된 미래였으니, 단지 그 날이 조금 빠르게 왔을 뿐이라고 이해하시겠지.’

김태현이 집필할 자신의 서사를 직접 읽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시종을 부르려고 할 때, 니아케가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며 집무실로 들어섰다.


“전하...테베 공작께서 먼저 지름길로 가신다며 홀로 달려가셨다고 합니다...직선거리로 가실 경로의 도시에도 전서구를 보내어 공작각하를 찾으라고 전문을 보냈지만...언제 조우가 될지는 확실히 예상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테베공작이 무한정 산속을 헤매지는 않을 것이니, 얼마 후면 만나게 되겠지....이것은 테라의 국왕 전하와 나가슈의 대공께 보낼 서신이네..그리고 니아케에게 어느 정도는 지금 상황을 이야기 해주어야겠지..."

루한이 두 개의 동봉된 속지를 니아케에게 건네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난 후에 제인이 나가슈로 가는 길을 멈추고 카마프라로 다시 출발했다는 통지를 루한이 받았을 때, 나가슈의 첨탑에 있는 집무실에서 이안나가 전서를 읽고 있었다.


-....현자를 만나는 그날...말씀드리지 못한 진실이 있었습니다...엘프들의 수장 엔키께서 세계수를 통해 현신을 하시고서 아누의 실체와 세계의 종말에 관한 진실을 말해 주셨지요.

.....앞에서 설명 드렸듯이.. 너무도 엄중한 사실이었기에, 직접 자리한 당사자 외에는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기에 공작께도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이틀 전 엔키님이 시아라의 스태프로 전해준 전언을 듣고 나서,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되었지만 어쩔 수없이 가야만 할 길이라는 사실에.. 이 또한 거스르지 못할 운명이라 생각하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더군요...현자가 예지했던 제인이 함께한 이엘라의 어린 모습이 같이 있었던 영상으로 보건데, 에우리아는 종말을 피해갈 것이라고 소망하면서, 저희 둘은 북쪽의 에리두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을 이리 황망하게 헤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었기에...공작께 글을 적으면서도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생사를 떠나서 시공간이 다른 어느 곳에 있더라도, 이안나 공작의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그리고 남겨질 제인과 이엘라에게 힘이 되어주실 것을 염치없이 부탁드리며, 이만 글 줄이겠습니다.


이안나가 떨리는 손으로 속지를 잡고 두 번 세 번을 다시 읽으면서, 이안나의 맑고 푸른 눈에서 차가운 눈물이 그치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었다.

‘....봉인이 깨지고 아누가 다시 세상에 나타나 모든 생명을 소멸하는 최후의 날이 일 년도 남지 않았다니...아누의 수확....세상의 종말....이런 세상을 구하고자 두 분이...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신단 말인가...‘


이안나가 나가슈 성의 세 개의 첨탑 중 가운데의 가장 높은 첨탑의 꼭대기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카마프라가 있는 북쪽의 하늘을 바라보며, 카마프라를 떠나면서 루한이 건네는 인사말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어진 자신을 자책했다.

‘이루지 못할 연모의 대상이라고만 생각했던 제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고 어리석군요...두 분의 만남과 이엘라...그 모두가 에우리아의 구원을 위한 운명의 연결이라니...두 분이 아누의 본체를 들고 가시는 그 곳의 입구까지 만이라도 제가 모시고 가고 싶지만...그 또한 두 분께 폐만 끼치는 일밖에 되지 못하니...저의 모자라는 능력으로 무엇을 도와드려야 할지...’


카마프라의 백석궁에서 루한이 부총리 헤레니즈와 차담을 가지며 앞으로 있을 자신의 부재를 말해주었다.

“지금 북국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전언을 받고...나와 루네시스 비가 아난드라로 갈 수밖에 없게 되었네....”


“...두 분께서 같이 가실 일이라면, 상당히 엄중한 상황 같습니다만...”


“니아케 수믹 백작에게는 대강을 이야기 해주었지만,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네...어차피 떠나기 전에 지휘부들과 함께 자리를 가지겠지만, 헤레니즈 백작에게 먼저 말하는 이유는.. 내가 떠나기 전에 그대가 마케도르 후작을 이어 총리대신의 자리에 올라주어야 하겠기에 그러는 것이라네...”


“제가.... 부총리에 오른 지 일 년도 되지 않았는데...그 정도로 상황이 급박한 것입니까?”


“테베 공작이 귀환하는 대로 바로 떠날 정도로...상황이 너무 급해졌어...그리고 그곳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르게 될지도 모르니...지금 이 기회가 아니면 마케도르 후작을 그만두게 하기도 힘들어지겠지...이곳의 토착 세력이 뿌리가 깊고도 널리 퍼져있지만, 테베 공작을 필두로 한 병권은 우리가 확실히 장악하고 있으니, 저들이 불만을 가진다고 한들 쉽게 반발하지는 못할 것이니, 마음을 굳세게 먹고 테베 공작이이나 수믹 백작과 힘을 합쳐 헤쳐나간다면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이야...카르마의 동맹인 테라와 나가슈에도 내가 특별히 부탁을 해 두었으니, 외부의 위험에 대해서도 걱정할 부분은 없을 것이네...”

루한이 말을 마치고 저녁에 만날 마케도르에게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 지 생각에 잠겼다.


“북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제가 알 수 있겠습니까...”

헤레니즈가 자신이 모르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카르마와는 직접적으로 연관 된 일은 아니지만, 결국은 영향을 미칠 일이겠지...북국에는 고대의 시절부터 수백 년 마다 한 번씩 거대한 흑룡이 카라트를 넘어와서 에우리아를 내습하는 일이 있어왔다네....그동안 에르피안들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면서 흑룡들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을 몇 번이고 막아왔지만, 그런 일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세상에 괜한 혼란만 불러일으키는 일이라 생각하고 단속했던 탓이었지...그 일이 조만간 또 벌어지게 되었지만, 이번의 내습은 예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전갈이 왔다네...루네시스 비의 마법과 나의 검이 필요하다는 부탁을 받았어...아난드라의 도움을 받고 모른 체 할 수도 없거니와...크게 보아서는 에우리아 전체의 위급과도 관련이 있으니...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 되고 말았지...”


루한이 상황을 약간 윤색하여 돌려 말했지만, 그 이 야기만으로도 헤레니즈가 크게 놀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그 일을 두 분 전하께서...책임을 지신단 말입니까...이일은 모든 마스터가 협조를 할 만큼 엄중한 일이 아닌지...”


“카라트를 넘을지도 모르는 일이라...일반적인 마스터가 가 보았자 아무 소용도 없을뿐더러...이 일에는 루네시스비의 도움이 더 절실한 일이라네...그리고 테베 공작과 테라의 국왕까지 같이 모두 자리를 비워버리면...그 자체가 혼란의 원인이 되지 않겠는가...설령 드레곤이 세상에 출현 하더라도, 세상의 질서는 그와 관계없이 돌아가야 하겠지...”


루한이 저녁에 마케도르 후작을 불러 근래에 보기 힘든 엄중한 어조로 비상시국을 설명하고, 그에 대처한 인사이동을 한 틈의 물러섬도 없이 말하자, 마케도르 후작이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전하의 의중을 충분히 알겠습니다...만일의 사태까지 염려하시고 고뇌 끝에 내리신 결정이신데, 제가 어찌 전하의 의중에 반할 수 있겠습니까...모든 것은 전하의 뜻하신 대로 될 것이옵니다...비록 제가 직을 물러나겠지만, 카마프라의 불만 세력들은 제가 다독이며 헤레니즈 총리가 국정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밖에서도 응원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겠사옵니다.

부디 두 분 전하께서 북국의 일을 무사히 마치시고 귀환하시기를.. 아누께 기원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세상을 멸망시킬 아누를 처리하러 가는 나의 안전을 아누에게 기원한다...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군...’

루한이 속으로 피식 웃으며 마케도르에게 고맙다는 사례를 하며 차를 들었다.


병을 핑계 삼고 물러나는 마케도르의 후임으로 헤레니즈가 새로운 총리로 임명되고, 이틀이 지나서 눈이 또 내리는 한 겨울의 늦은 밤에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제인이 백석궁의 정문을 밀어 젖히며 본궁의 이층으로 올라왔다.

이미 정문을 들어설 때부터 감지했던 제인의 기운이었기에 루한은 물론이고 시아라가 차를 준비하면서 곧 들어설 제인을 기다리며 시녀들을 물러나게 하였다.


“루한...도대체 무슨 일이야...서신에서 뭔가 다른 느낌을 받고 쉬지 않고 달려왔어.”

제인이 목소리를 높이려다가, 옆에서 곤히 잠든 이엘라를 보고는 다시 조용히 물었다.


“...일단 목이라도 축이고..천천히 이야기를 하더라도 시간은 충분해.”

루한이 제인의 빈 잔에 차를 부어주며 담담하게 말했다.


루한의 평소보다 더 담담한 목소리를 들으며,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면서 제인이 마음을 다스리고 루한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루한이 조용히 설명하는 말을 숨도 쉬지 않고 듣고 난 제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그동안 잠잠하던 아누의 봉인이....마치 기다렸다는 듯이....그런데 왜..루한과 시아라가 이 세상이 멸망하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고...무슨 책임이 있다고...”


“아누의 본체를 옮기기 위해서는...아누에 종속되지 않은 다른 차원의 사람이 해야 하고...시아라만이 화이트 홀을 열수 있지...현자의 방에서 나에게 일어난 현상을 보더라도...결국 이 일을 해결할 적임자는 이미 정해진 것이지...그리고 우리가 가고나면, 이엘라를 보살펴 줄 사람은 제인 말고는 없지 않겠어?”

흔들리는 눈빛으로 루한과 시아라를 번갈아 쳐다보는 제인에게 루한이 조용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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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277화. 창조 23.10.04 182 5 20쪽
276 276화. 돌아온 블루문 23.10.03 166 5 16쪽
275 275화. 성령의 목소리 23.10.03 156 3 16쪽
274 274화. 검은 악마를 마주하다. 23.10.02 158 4 16쪽
273 273화. 루한의 정체 23.10.02 159 4 15쪽
272 272화. 마인으로 변한 마스터 23.10.01 156 3 16쪽
271 271화. 불타는 아얀프라 23.10.01 154 3 15쪽
270 270화. 검은 악마의 진격 23.09.30 156 4 17쪽
269 269화. 검은 악마 23.09.30 174 4 16쪽
268 268화. 아누의 유희 23.09.29 167 5 16쪽
267 267화. 아누 23.09.29 160 5 15쪽
266 266화. 세계수와 아라트 23.09.28 171 5 17쪽
265 265화. 에리두의 결계 23.09.28 160 5 16쪽
264 264화. 북쪽의 여정 23.09.27 164 7 17쪽
263 263화. 영원한 이별 23.09.27 166 6 19쪽
» 262화. 운명에 따르는 결정 23.09.26 173 8 20쪽
261 261화. 스태프의 빛 23.09.26 173 6 17쪽
260 260화. 이엘라의 탄생 23.09.25 176 7 18쪽
259 259화. 왕의 귀환 23.09.25 187 6 17쪽
258 258화. 노비에타를 접수하다. 23.09.24 199 7 15쪽
257 257화. 운명의 흐름 23.09.24 196 7 15쪽
256 256화. 새로운 생명 23.09.23 197 7 15쪽
255 255화. 바깥의 존재 23.09.23 191 5 17쪽
254 254화. 엔키 엘 아시드 23.09.22 188 6 17쪽
253 253화. 현자를 만나러 가다. 23.09.22 195 5 18쪽
252 252화. 족쇄를 풀다. 23.09.21 196 7 17쪽
251 251화. 전쟁의 마무리 23.09.21 195 3 15쪽
250 250화. 감춰진 진실 23.09.20 189 6 16쪽
249 249화. 결투의 조건 23.09.20 189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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