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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님의 서재입니다.

족쇄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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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작품등록일 :
2018.05.04 23:33
최근연재일 :
2018.08.08 19:00
연재수 :
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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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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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글자수 :
395,495

작성
18.06.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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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적일 뿐이다

DUMMY


셰일과 동료들과 함께 피해를 봤다는 장소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멀리서도 풍겨오는 피 냄새에 제대로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그건 수인들도 매한가지인지 다들 표정이 굳어갔다. 잔뜩 힘을 주고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하는 그들에게 제안했다.


-내가. 선두. 선다.


전직 용병이었던 내 말에 셰일이 고개를 끄덕여 선두를 양보했다. 그러나 그의 기대를 배반하는 셈이지만, 나한테는 용병의 지식이 거의 없었다.

애초에 힘으로 마수를 때려잡고 다녔으니 기술로 마수를 사냥하던 다른 용병과는 연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적절한 방법이 있었다.

모두를 멀리 떨어지게 한 뒤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갑작스레 땅이 무너지며 몸이 밑으로 떨어졌다.

팔로 옆의 지면을 밀쳐 하늘로 솟아오르자 내 위치로 정확하게 화살이 날아왔다. 총 셋. 아무래도 삼인 일조로 활동하는 모양이다.

검은 마기가 알아서 몸을 감싸 화살이 튕겨져 나갔다. 곧 몸이 지면으로 떨어져 발로 땅을 밟자 밑에서 그물이 나를 휘감아 올렸다.

공중으로 뜨는 도중에 손으로 그물을 찢어 다시 땅으로 착지하자 당황한 표정의 용병 세 명이 보였다. 그중 하나가 더듬으며 말했다.


“한, 한스...”


빌어먹을.

이름, 아니 떠올릴 필요 없다. 그저 용병으로 충분하리라.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다급히 몸을 빼는 용병 중 하나에게 나뭇가지를 집어 던지자 나뭇가지 끝이 비스듬히 목을 관통했다.


“컥.”


한 번의 도약으로 그 용병에게 도달한 뒤 발로 얼굴을 터트려 마무리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적이 어디로 가는지 살폈다.

양방향으로 찢어져 도망가는 그들에게 각각 돌멩이를 집어 던져 한쪽 다리를 부쉈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떻게든 살려고 기어가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타면서 혹시 있을지 모를 함정을 피하고, 직접 다가가 주먹을 내찔러 심장을 터트렸다.

그렇게 둘을 처치하자 남은 자는 나를 알아보았던 사내뿐이었다.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며 가끔 날아오는 함정을 마기로 요격했다.


“히, 히익.”


겁을 집어먹고 손으로 자꾸만 뒤로 내빼는 용병의 몸을 밟아 고정시켰다. 한 번에 죽이지 못했던 것은 죄책감 때문일까.


“한, 한스! 살려줘! 난, 내겐 아내가, 식량값이 폭등해서, 자식들 먹여 살릴 돈이. 살려줘. 한스! 제발,,!”


그렇겠지.

여태 마수만을 사냥하던 자가 사람을 사냥하기로 결심한 것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겠지. 그만큼의 절박함도 있을 것이고.

발에 힘을 주어 심장을 밟아 터트렸다. 뒤늦게 쫓아와 그 모습을 지켜본 셰일이 내게 물었다.


-...아는 이 아닌가?

“그래.”

-그런데 망설임이 없군.


망설임이 없다고? 흐하. 도대체 어떻게 보면 그렇게 보이는 거냐?

하지만 나는 속에 남아있는 희미한 죄책감과 망설임, 괴로움을 지워버리기 위해 단호히 말했다.


“적일 뿐이다.”


* * *


상당히 많은 용병을 죽였다. 그들 때문에 잠시 활동에 방해를 받던 아인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했고, 게릴라가 없어져 살짝 밀렸던 전선이 다시 밀려났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보인 무자비함이 아인에게 신뢰를 주었다. 사니스의 말대로 나는 스스로의 말을 행동으로 증명해낸 셈이었다.

죽인 용병의 수만큼 아인들이 살아났다. 그들은 내게 감사를 표했으며, 부쩍 그들과의 관계도 가까워졌다.

그러니 이건 의미가 있는 짓이다. 그래야만 했다. 게다가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니,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자위하며 목걸이를 쓰다듬었다. 그러던 중에 언젠가 본 적이 있던 아인이 마을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아인의 무리였다.

이들은 종종 다른 곳에 퍼져있는 아인을 이 마을로 데려오기도 했는데, 아마 이번엔 저들을 데려온 것 같았다.

그들 중 꼬마 아인이 나를 봤는지 신명나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와! 형님!

-오랜만.


내가 그들의 언어를 한 것이 놀라웠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그 그라치아족은 이내 방실방실 웃으며 내게 달라붙었다.


-반가워!

-나도.


그 아이를 시점으로 이번 일행들이 하나, 둘 내게 찾아와 감사 인사를 건넸다. 하나씩 대응해주고 있으니 그들을 데려온 셰일이 놀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는 사이였나?

-형님이 우리를 도와줬어!

-알티, 형님은 남성이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다.

-잉? 진짜?


원래 알고 있던 사인지, 아니면 오면서 친해졌는지 셰일과 일행은 상당히 친밀해보였다. 이 마을에 와서 긴장이 풀려 느슨해진 그들의 입가를 보면 내가 한 짓이 마냥 안 좋은 건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약간 풀렸다.

적당히 그들과 어울리고, 알티에겐 나중에 함께 놀자는 약속까지 해준 뒤에야 해방될 수 있었다.

나와 같이 그들에게 시달려 약간 힘들어 보이는 셰일이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아, 사니스가 부른다.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알았다.


셰일에게 손을 들어준 뒤 나를 부른다는 사니스에게 찾아갔다. 다른 집과 똑같아 족장의 집같지 않은 그녀의 집에 노크를 하자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라.


귀가 좋은지 매번 올 때마다 누가 오는지 알아챈단 말이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열심히 서류작업 중인 사니스의 모습이 보였다. 몇 개의 서류는 파피리오족 언어로, 몇 개의 서류는 대륙 공통어로 적혀있어 눈길을 사로잡았다.


-잠시만 기다려주겠나?


그녀의 말에 입구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아있기를 몇 분. 드디어 사니스가 서류에서 눈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흠, 흠. 좋아. 이쪽 언어로 대화하지. 좀 물어볼 것도 있어서 말이다.”

“그래.”

“일단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네 덕분에 다시 곳곳의 동료와 일족도 데려올 수 있었고, 게릴라도 펼칠 수 있었다. 데쿠스 왕국과의 거래상 끊임없이 스트라스군을 견제해야 해서 말이지.”


고개를 살짝 숙인 사니스는 책상에 놓인 서류 중 하나를 집어 내게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이건 이번에 데쿠스 왕국에서 보내온 문서인데, 우리와 조약을 맺고 싶다더군.”

“조건은?”

“조건은 작전의 참여 및 한스, 너의 조력이다. 특히 네가 꼭 동참해야한다고 했다. 아마 널 아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받는 건?”

“자치권을 인정받은 도시를 세울 수 있게 해주겠다더군.”

“위치는 어딘데?”

“자유도시 타토르.”

“뭐?”

“존망의 위협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타토르가 데쿠스 왕국을 쳤다고 했다. 문제는 타토르에는 초인이 없다는 사실이지. 덕분에 데쿠스 왕국은 명분 좋게 타토르를 집어삼키게 되었다.”


그렇다면 여태껏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대륙 통일을 달성할 수 있게 되는 셈 아닌가? 근데 그걸 뿌리친다고?

내 표정을 본 사니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자치권은 인정받는다지만 사실상 속국이나 다름없다. 아무래도 드코 산맥 너머 관리가 힘든 두 지역 중에 그나마 작은 타토르 쪽을 떠넘기는 느낌이더군.”

“그걸로 괜찮냐?”

“별수 없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


그녀의 말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감돌았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일 것이다. 더 이상 피해를, 누군가의 죽음을 보기 싫어 내린 결정.

처음 만났을 때는 그러지 않았지만, 최근 그녀는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문제에 대해 검토하고, 또 검토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용병의 아인 사냥에 있었다. 그때 내 말을 따르지 않은 것을 상당히 후회했던 그녀는 그 이후로 자신을 잔뜩 채찍질했다.

그녀의 눈가 밑으로 짙게 내려온 다크 서클을 보다가, 나오려던 말을 집어삼켰다. 주제넘은 짓이었으니까.


“어쨌든 두 달 후에 만나기로 되었으니 그렇게 알고 있어라.”

“알았다.”


그렇게 말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의지를 이렇게 보았으니, 나 또한 내 목적을 위해 더 망설일 순 없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자 여전히 그곳에 앉아 무기를 손질하고 있는 셰일이 보였다. 그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셰일.”

-뭐냐.

“거점으로 안내해줘.”

-...준비가 끝났나?

“그래.”

-알았다. 따라와라.


* * *


눈앞에 조그마하게 보이는 가건물과 그곳에서 분주히 돌아다니는 용병들이 보였다. 셰일이 며칠 전 발견했다는 거점이었다.

셰일의 말로 추정해보면 도미니와 크리스티나, 그리고 아르키 본부 소속의 용병 몇몇이 이곳에서 머물며 아인 사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잠시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런 나에게 셰일이 물었다.


-정말 혼자 가도 괜찮겠나?

-괜찮다.

-그럼 우린 안쪽에 있을지도 모르는 동료를 수색하겠다. 몸조심해라.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발을 옮겼다. 하지만 결국 거점은 점점 가까워졌다. 거점에서 날 알아본 용병이 크게 소리쳤다.


“비상! 적습이다!”


아무래도 놓친 몇몇의 용병들을 통해 내가 그들과 적대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이 퍼진 듯했다.

어쨌건 용병의 말에 삽시간에 적들이 경계를 갖췄다. 가볍게 다가가자 아래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이 어느 정도 멎자 바로 용병들이 원거리 무기로 나를 저격했다. 심지어 대형 마수를 잡을 때 썼던 거대한 쇠뇌까지 있었다.

평범한 무기는 그대로 맞아주고, 대형 쇠뇌는 손수 붙잡아 근처의 용병에게 날렸다. 그러자 아래쪽의 땅이 솟아나 쇠뇌를 막아주었다.

일련의 주고받음이 끝난 후 전방으로 크리스티나가 나섰다. 험상궂은 표정을 지은 채 날 노려보던 그녀가 크게 내게 일갈했다.


“한스! 어째서 같은 용병을 죽이는 거냐!”

“...”

“같은 인간을 아인에게 팔아넘겨 그들의 총애를 얻으니 그리도 좋더냐! 이 쓰레기 같은 놈!”


흐하하. 전쟁 중에 적군한테 하는 소리치곤 좀 재밌네.

마기를 갑옷처럼 몸에 감쌌다. 촘촘하게 엮이는 마기를 보고 경악하는 크리스티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 진로를 방해하듯 대지가 올라왔으나 그대로 부수고 나아갔다. 근처에서 내게 칼을 휘두르는 용병의 목을 잡아 크게 주위로 휘둘렀다.

그러자 용병의 머리와 분리된 몸이 근처의 용병을 휩쓸며 날아갔다. 그 용병의 머리통을 크리스티나에게 집어던지자 그녀가 검으로 용병의 머리통을 베었다.

다른 이를 무시하고 크리스티나에게 접근해 팔을 붙잡아 꺾었다. 그러자 그 특유의 유연함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그녀가 고통에 경직됐다.


-깡. 깡. 깡.


그녀를 살리려 용병들이 어떻게든 무기를 휘둘렀으나 마기에 튕겨 나갈 뿐이었다. 그 무의미한 발버둥을 지켜보다가 발로 크리스티나의 정강이를 치자 그녀의 다리가 부러져 저절로 땅에 무릎을 꿇었다.


“윽.”

“한스 씨! 그만둬 주십시오!”


여태 숨어있던 도미니가 튀어나와 무릎을 꿇었다. 그걸 보고 왼손으로 크리스티나의 꺾인 팔에서 뼈를 뽑아내 도미니의 머리에 집어 던졌다.


-푹.


무어라 말하려던 도미니의 미간에 뼈가 꽂히고, 곧 도미니의 신체가 쓰러졌다. 목표를 달성한 인질을 입으로 목을 물어뜯어 마무리 지었다.


“흐억!”


튀기는 피에 질겁한 용병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열심히 움직이는 그 입에 친절히 하나씩 주먹을 먹여주자 곧 조용해졌다.

한동안 이어진 지겨운 학살 끝에, 거점이 정리되었다. 몇 명이 도망치긴 했다만, 그리 큰 변수는 아니기에 쫓지 않았다.

마기를 돌려보내고 근처에 있는 기척을 향해 걷자 셰일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고문을 받고 있던 몇몇 아인의 모습도.

피칠갑을 한 내 모습을 보고 셰일의 표정이 조금 딱딱해졌다. 아니면 내가 벌인 학살 때문이거나.


“끝이다. 돌아가자.”


내 말에 셰일은 묵묵히 나를 따라왔다. 그 뒤의 일행들도 분위기에 따라 조용히 걷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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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전쟁 전의 축제(수정) 18.06.17 104 0 12쪽
» 적일 뿐이다 18.06.16 91 0 12쪽
42 아인의 마을 18.06.15 90 0 14쪽
41 탈퇴하겠습니다 18.06.14 109 0 13쪽
40 아르키 본부 18.06.13 98 0 14쪽
39 독특한 만남 18.06.10 132 0 12쪽
38 슬럼가를 전전하다 18.06.09 116 0 14쪽
37 웃어줘 18.06.08 111 0 13쪽
36 즐거운 여행 18.06.07 119 0 14쪽
35 모르겠다 18.06.06 129 0 12쪽
34 각자의 목적지로 18.06.03 119 0 12쪽
33 도주 18.06.03 110 0 12쪽
32 난장판 18.06.01 126 0 13쪽
31 이제 그만 놔줘 18.05.31 130 0 18쪽
30 어벙한 암살자 18.05.30 124 0 14쪽
29 한밤중의 손님 +2 18.05.27 176 0 13쪽
28 만찬 18.05.26 141 1 15쪽
27 뜻밖의 조우 18.05.25 147 1 14쪽
26 마법사 알마 18.05.24 152 0 13쪽
25 유적 18.05.23 148 2 16쪽
24 새 출발 18.05.22 118 1 13쪽
23 짜잔~! 18.05.21 143 2 15쪽
22 녹스 18.05.20 170 0 14쪽
21 소집 18.05.19 168 1 14쪽
20 용병 생활 18.05.18 170 1 14쪽
19 삶의 방식 18.05.17 182 2 16쪽
18 용병길드 라스지부 18.05.16 165 1 14쪽
17 테네벨 18.05.15 162 2 12쪽
16 또라이 18.05.14 17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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