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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님의 서재입니다.

족쇄를 벗어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용설란
작품등록일 :
2018.05.04 23:33
최근연재일 :
2018.08.08 19:00
연재수 :
70 회
조회수 :
10,435
추천수 :
74
글자수 :
395,495

작성
18.06.1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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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독특한 만남

DUMMY

슬슬 이 도시도 볼거리가 다 떨어져 갔다. 슬럼가도 대체적으로 다 둘러봤으며, 대략적인 맛집도 찾아갔었다.

마지막으로 광장이나 한번 더 둘러보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노골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부끄러운 듯 적나라한 그 시선은 내 몸 끄트머리를 흘끔 보다가, 한가운데로 시선을 옮기고, 내가 뒤를 돌아보면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마치 겁 많은 고양이 같은 시선이었으나, 그것도 오늘로 끝이었다. 적당히 도시를 걷다가 검문을 받고 도시 밖으로 나섰다.

역시나 그녀는 도시 밖까지 따라오진 않았다. 그래도 몇 번 더 으름장을 주어서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진 않았으니 괜찮겠지.

오늘도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줄리엣을 떠올리다, 요청대로 한번 쓱 웃고는 발을 뗐다.


* * *


확실히 타토르는 새로운 도시였다. 하지만 새로운 것도 매일 보면 그저 평범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행을 다녔는데, 목적지 없이 발 가는 대로 향하는 여행은 정확히 반반의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정말로 지루하거나, 굉장히 독특하거나.

이번에는 후자였다. 으슥한 드코 산맥 근처를 가고 있는 도중에 상단으로 보이는 일행과 마주쳤던 것이다. 그것도 수인으로 이루어진 상단이었다.

클라우스를 생각게 하는 쫑긋거리는 귀를 보다가 이들을 무시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러자 나를 눈치챈 수인, 그라치아족들이 내게 송곳니를 드러내며 그르렁거렸다.

어, 음.

생각해보니 아인들은 인간에게 그렇게 좋은 감정이 없었다. 특히 그라치아족이라면, 프레도 섬의 해적한테 툭하면 납치되니 좋을 리가 없지.

상단 중에 호위병으로 보이는 자들은 전신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들이 무기를 뽑고 나에게 겨누었다.

그들 중에서도 유독 커다란 체격의 호위병이 선두로 나오면서 조금씩 포위망을 형성했다. 그 호위병은 한쪽 팔이 없는지 갑옷의 왼팔 부분이 힘없이 덜렁이고 있었다.


“음, 반갑습니다?”


싸늘하네.

증오하는 시선을 이렇게 받은 적은 또 처음이었다. 이런 맹목적인 감정을 가진 상대한테는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결심해 손을 움켜쥐자 호위병들도 무기를 다잡아 내게 겨누었다. 어떻게 하면 무난히 넘어갈까 생각하면서 서로 쳐다보던 순간, 시야가 어두워졌다.

다급히 위를 올려다보니 거대한 바위가 떨어지고 있었다. 나와 호위병을 덮을 만큼 큰 바위에 모두 싸움은 뒤로한 채 그곳을 벗어났다.


-콰왕.


땅이 떨릴 정도로 큰 충격이 생기고,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모두가 뒤엉켰다.

그때 갑자기 허공에서 사람이 튀어나오더니 내 손을 붙잡으려고 했다. 반사적으로 손목을 꺾으려다, 붉은색 눈을 보고 힘을 풀었다.

이내 여성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여성의 몸에서 마나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마나가 나를 감싸려는 순간 내 몸의 마기와 부딪혀 상쇄되었다.


“어, 어?”


굉장히 당황한 여성이 울상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그에 화답하듯 웃음을 띠며 말했다.


“우연이네요. 이런 곳에서 다 보고.”

“예? 아, 예. 오랜만이에요.”


내 페이스에 잠깐 휘말렸던 여성이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소리쳤다.


“이, 이럴 때가 아니에요. 빨리, 도망을. 그, 근데 왜 이게...”


또 횡설수설하는 여성을 놔두고 뒤에서 칼을 내리치는 호위병의 팔을 잡아 꺾었다. 그러자 몸을 지켜줘야 할 갑옷이 오히려 호위병의 팔을 억세게 압박했다.


“크. 크으.”


그런 호위병을 들어 근처에 덤벼드는 다른 호위병에게 집어 던졌다. 아무래도 동료를 죽일 순 없었는지 그들은 무기를 버리고 호위병과 같이 뒤로 날아갔다.

원래 평화적으로 할 생각이었는데 이 여자 때문에 다 꼬였잖아.

더 피를 보기 싫어 성대를 변형시켜 크게 울부짖었다.


-크아아!


마기가 실린 고함에 뒤쪽에 있던 그라치아족의 꼬리가 쑥 내려갔고, 호위병들도 겁에 질린 듯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그나마 커다란 호위병은 정신을 빠르게 차려 내게 덤벼들었으나, 한쪽 팔만 가지고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금세 호위병을 제압하고는 위에 깔고 앉았다. 그리고 침음하는 호위병의 투구를 벗겼다. 그러자 늑대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델리키아족으로 보이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왜 덤비십니까? 깡패 새끼도 아니고.”

“크, 크으. 괴물. 넌 괴물이다.”


면전에서 그러니까 좀 슬프네.


“평화롭게 없던 일로 하고 지나갑시다. 괜찮죠?”

“인간, 죽인다. 가증스러운, 인간.”


다른 이들이 겁에 질렸을 때, 이 자는 혼자 분노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제정신이 아닌 것은 매한가지였다.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주위에 있던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그중 가장 먼저 정신이 돌아온 큰 호위병은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놔라, 인간.”

“싫다, 수인.”

“빨리 놔라. 죽여버리기 전에.”

“아유, 무서워라.”


어차피 대화는 통하지 않겠다싶어 저 멀리에 있는 상단 인원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는 중에 근처에 있던 여성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저... 그... 어... 한, 한스 씨?”

“예?”

“그, 도, 도망가야 하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안절부절못하는 여성을 무시하고 상단 쪽에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이번엔 그라치아족 중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족장님을 놓아줘라.”


그는 약간 어눌하지만 유창한 어휘를 구사했다. 상단주 같은 옷을 입은 그를 잠깐 쳐다보다가 응답을 해줬다.


“왜 먼저 덤비셨습니까?”

“...인간은 위험하다.”

“그랬다가 내가 다 죽이면 어쩌려고 했습니까?”


반 진담, 반 농담으로 던진 거였지만, 실제로 그것이 가능한 무력을 지닌 내가 얘기하니 진담처럼 들렸는지 상단주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그러자 밑에서 울분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굴복하지 마라! 이럴 거면 차라리 다 죽여라, 인간!”

“족장! 안 된다!”


벌써부터 신파극을 벌리려는 두 수인은 서로 죽이라며 내게 난리를 피웠다. 심지어 저 멀리에 있는 다른 수인들도 다급히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차라리 나를...”

“제발 우리 족장님만큼은...”

“이 악마!”


내가 뭘 했다고 이렇게 달려들어? 그들은 나를 붙잡고 엉엉 울고 있었다. 여태까지의 울분을 나한테 풀려는 작정인지 머리도 잡고 몸도 붙들고 아주 난리가 나셨다.

뿌리치려면 진작 그럴 수 있었다. 팔 한번 휘두르면 죄다 나가떨어질 테니까.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분노보다는 슬픔이 가득한 눈. 자기들만이 알아듣게 튀어나오는 목소리는 증오가 자리 잡고, 내 피부를 뚫지도 못해 본인들의 손이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어떻게든 족장을 살리려하는 그들에게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슬럼가에서 보았던 약간의 편린만으로도 그들이 이곳에서 받았을 박해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이곳은 힘없는 자들에게 친절하지 않았고,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유 없는 괴롭힘을 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옆에서 경악하며 어떻게든 나를 구하려는 여성에게 손을 내밀어 제지했다.

뭐, 이 정도로 너네 기분이 풀린다면야, 한번 마음껏 해봐라.


* * *


이런다고 그들 마음속에 가득한 독기가 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아무리 건드려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나에게 질린 그들은 결국 진이 빠져 다들 주저앉았다.


“으으...”


덕분에 내 밑에 깔려있던 족장도 괴로움을 표했으나, 그래도 튼튼해 보이니 괜찮을 것 같았다.


“이제 좀 진정되셨습니까?”

“으, 괴물.”


어째 아까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 같은데. 심지어 옆에 물러서 있던 여성도 좀 떨고 있었다.


“그럼, 왜 이딴 짓을 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야... 네가 족장을 죽인다고...”

“그건 당신 족장이 한 소리 아닙니까? 난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없는데요.”


내 말에 곰곰이 되짚어보던 상단주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다. 미안하다.”

“사과하지 마라, 리오! 루푸스 부족의 긍지를 버릴 셈인가!”


갑자기 족장이 쌩쌩해지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신 차리라고 누르고 있던 목을 조금 더 눌러주자 고통에 족장의 눈이 조금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걸 보고 말을 건넸다.


“이제 좀 헤어집시다. 알겠죠?”

“끄, 끄으. 인간, 죽인다.”

“왜 그렇게 인간을 싫어합니까?”

“인간이 내 부모를 죽였고, 내 친구를 잡아갔으며, 내 동족을 팔아넘겼다.”


싫어할 만하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수인은 오순도순 살던 내 부모를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였고, 멀쩡히 결혼하고 잘 살던 내 누나를 죽였으며, 채 한 살도 되지 않은 내 조카를 죽였다. 매한가지 갔지 않냐? 응?”

“무, 무슨...”

“농담이다.”

“윽. 우릴 모욕하는 것인가!”

“너흰 그냥 지나가고 있던 날 덮쳤지. 그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제로 다른 수인이 마을을 덮치지 않았다는 보장이라도 있나?”

“먼저 우리를 공격한 것은 인간이지 않은가!”

“글쎄. 내 입장에선 나를 먼저 공격한 건 수인인데, 안 그래?”

“장난치지 마라!”


하아.

말이 안 통하니 답답하고, 그 마음을 달래려 절로 목걸이에 손이 갔다. 으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줄리엣?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어져 있는 족장과 눈을 마주쳤다. 그의 황갈색 눈과 마주치자 족장이 몸을 움찔 떨었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피는 피를 부른다.”

“그게 어쨌단 말이냐!”

“복수를 할 거면 대상자한테만 해라. 엉뚱한 사람 마구잡이로 죽이지 말고. 그딴 짓을 하면 네가 그렇게 싫어하는 인간이랑 다를 바가 없지.”


내 말에 족장이 충격을 먹은 얼굴이 되었다. 된 건가? 털로 가득해서 표정을 파악하기가 좀 힘들었다.

이렇게 충격에 휩싸여 있을 때가 제일 빠지기 좋을 때다. 일어서서 어벙하게 주위를 맴돌고 있는 여성에게 눈짓을 한 뒤 차분히 수인에게서 멀어졌다.

등 뒤에서 조그만 발소리가 들렸다. 그 보폭이 불규칙적인 것에서 망설임이 느껴졌다. 발걸음 하나에도 이렇게 성격이 드러날 줄이야.

조금 멀어지자 그들이 서둘러 본인의 족장에게로 달려갔다. 잠시 그 안에서도 감도는 따스함을 생각하다 다시 발을 뗐다.


* * *


“그래서, 언제까지 따라오실 겁니까?”

“네? 아니, 그. 죄, 죄송합니다.”


흘끔 여성의 짐을 훑어보았다. 급하게 나왔는지, 아니면 애초에 짐이 없었는지 가벼운 배낭 하나만을 멘 그녀는 여전히 검은색 천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다시 봐서 반가웠습니다. 그럼.”

“자, 잠시만요!”


다급하게 나를 부르던 여성은 입술을 짓이기더니, 이내 결심을 한 듯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실 수 없나요?”

“싫습니다.”

“아, 그, 그렇죠? 역시 그런 거죠?”


툭 고개를 떨구고 다시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든 그녀를 잠깐 지켜보다가 목걸이를 만지며 말을 걸었다.


“농담입니다. 마나 유저를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그쪽이 좋아할지는 모르겠다만.”


알마는 만나기 싫어할 테니, 오랜만에 도미니나 만나러 가야겠다. 나름 주위 사람들을 잘 챙겨주던 도미니이니 이 여성도 잘 챙겨주리라.


“테, 테리지아예요.”


내가 말한 그쪽을 오해했는지 여성이 자기소개를 했다.


“네, 한스입니다. 반갑습니다.”


손을 내밀자 테리지아가 잠깐 주저하다가 본인도 손을 내밀었다. 대강 몇 번 그 손을 흔들다가 놓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저, 한, 한스 씨!”

“예?”


-꼬르륵.


“혹, 혹시 먹을 것 있, 있나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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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이제 그만 놔줘 18.05.31 130 0 18쪽
30 어벙한 암살자 18.05.30 124 0 14쪽
29 한밤중의 손님 +2 18.05.27 175 0 13쪽
28 만찬 18.05.26 140 1 15쪽
27 뜻밖의 조우 18.05.25 146 1 14쪽
26 마법사 알마 18.05.24 151 0 13쪽
25 유적 18.05.23 148 2 16쪽
24 새 출발 18.05.22 118 1 13쪽
23 짜잔~! 18.05.21 143 2 15쪽
22 녹스 18.05.20 170 0 14쪽
21 소집 18.05.19 168 1 14쪽
20 용병 생활 18.05.18 170 1 14쪽
19 삶의 방식 18.05.17 181 2 16쪽
18 용병길드 라스지부 18.05.16 165 1 14쪽
17 테네벨 18.05.15 16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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