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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님의 서재입니다.

족쇄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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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작품등록일 :
2018.05.04 23:33
최근연재일 :
2018.08.08 19:00
연재수 :
70 회
조회수 :
10,480
추천수 :
74
글자수 :
395,495

작성
18.06.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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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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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각자의 목적지로

DUMMY

성벽을 따라 돌며 마수가 들어온 것으로 예상되는 구멍을 찾아 그곳을 통해 빠져나갔다. 징그러울 만큼 가득한 마수가 밖에 가득했지만 내 괴성 한방에 길을 터주었다. 그리고 위에서 떠들던 애들도 입을 다물었다. 한결 낫네.

잘 깔린 도로가 다 파괴된 모습을 보며 마수가 적은 곳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광활한 사막 지대가 나타났다.

지평선이 끝까지 아무도 없는 그 광경에 다리를 멈추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내 위에 탔던 사람들이 하나둘 밑으로 내려왔다.

모두가 내려온 뒤 나도 내 몸을 줄이고 다시 사람 형태로 돌아오..려다 멈췄다. 생각해보니 내 옷이 없잖아. 클라우스 때는 전혀 말을 안 해서 눈치를 못 챘지만 두 번은 안 되지.


“아저씨, 왜 그래?”


옷. 옷 줘. 그런 내 애처로운 눈빛을 알아먹지 못한 줄리엣은 그저 내 대가리를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옷이 없어서 그런 거 아냐?”


시몬이 눈치 빠르게 내 걱정을 캐치해줬다.


“아! 근데 우리 짐을 다 놓고 와서 아무것도 없는데?”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봤지만 정말로 옷 한 벌 들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슬럼가 사람들은 급하게 도망쳤는지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고, 피로 물든 드레스나 정장을 입은 나머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잠깐, 짐? 큰일 났다. 그들의 유품을 두고 왔는데.

그런 내 마음과는 별개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의논을 시작했다.


“왕녀님, 이제 어쩌죠?”

“...고국으로 돌아가야지. 우선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럼 저자들은 어찌합니까?”


슬럼가 사람들을 보며 얘기하는 기사에게 왕녀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일단은 그들에게 물어보아야겠구나.”


그렇게 말한 왕녀가 슬럼가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내 위에서 신나던 모습은 어디 가고, 피와 무기를 보고는 서로를 지키듯 뭉쳐있던 그들은 왕녀를 보고 웅성거렸다.

그러다 결국은 나와 닮은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데쿠스 왕국의 안젤리나 왕녀라고 한다.”

“상급 용병 가온입니다.”

“그래, 가온. 우리는 데쿠스 왕국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그대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런 왕녀의 질문에 가온이 잠깐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보며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다면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안될 것은 없지. 다만 조건이 몇 가지 있다. 그것을 지킨다면 데쿠스 왕국으로 귀화할 수 있도록 해주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데 옆에서 줄리엣이 나를 툭툭 치더니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저씨, 무슨 일 있어? 좀 불안해 보이는데.”


그런 줄리엣의 말에 잠시 내 뜻을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다가 모래에 앞발로 글씨를 썼다.


-물건을 두고 왔어.

“무슨 물건?”

-유품.

“어... 하지만 아저씨. 힘들 것 같은데?”

-그렇지.


살짝 삐뚤어진 글씨를 잠시 쳐다보던 줄리엣은 내 턱 밑을 긁적여주었다. 개 취급을 받으니까 기분이 묘하네.

그사이 대화를 끝낸 왕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를 찡그리며 쳐다보던 왕녀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한..스, 맞느냐?”

-예.

“세상에. 흠흠. 어찌 되었건 나를, 그리고 우리를 지켜주어서 고맙다. 그대가 아니었으면 모조리 죽었을 테지.”

-괜찮습니다.

“그래서 그대는 이제 어떻게 하겠느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왕녀와 동행하려는 가장 큰 이유였던 유스투 기사단은 아마 그 소란 속에서 죽었을 것이다.

문득 허탈함이 들었다. 비록 포기하려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렇게 끝이 나다니.

어쨌든 왕녀와의 거래는 모두 끝마쳤다.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왕녀와 동행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왕녀가 다시금 말을 건넸다.


“괜찮다면 우리를 데쿠스 왕국까지 데려다주지 않겠느냐? 보수는 주도록 하마.”


그 말에 옆에 있던 줄리엣을 쳐다봤다. 내 시선에 줄리엣이 입을 열었다.


“괜찮지 않을까?”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맙구나.”


* * *


어느새 저물고 있는 해를 보며 지금은 야영을 하기로 했다. 그에 필요한 재료들을 분담해서 모으기로 했는데, 줄리엣은 대형견 크기의 내 위에 올라타서 주변을 돌았다.


“편하다. 아, 말을 못했지. 근데 아저씨, 털은 아닌데 되게 푹신하다.”


내게 계속 재잘대는 줄리엣의 말만큼 줄리엣의 팔에 땔감이 모였다. 적당히 모아서 돌아가니 가온이 사냥감을 잡아놓았다.

알마가 그런 땔감에 자신의 기계로 불을 붙였다.


“나는 이러려고 이걸 만든 게 아닌데...”

“어허! 같이 씁시다. 알마 양반.”


그렇게 줄리엣과 알마가 대화하는 동안 가온이 고기를 구웠다. 상당히 능숙한 게 많이 해본 솜씨였다.


“우리 형은 원래 뭐든 잘해요.”


그런 모습에 아이들이 가온 대신 으쓱거렸다. 다만 아쉽게도 마법과 사랑에 빠진 알마와 시몬, 그리고 내 털에 몸을 파묻는 줄리엣과 말을 못하는 내가 그것에 반응을 해주는 일은 없었다.

가온은 아무 말 없이 많은 양의 고기를 굽고는 모두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고기는 약간 노린내가 날 뿐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문제는 밤이었는데, 약간의 불은 사막의 추위를 견뎌내기엔 턱없이 부족했었다. 그것을 견디기 위해 줄리엣이 의견을 냈다.


“아저씨, 몸집을 아까처럼 키워줘.”


줄리엣의 말에 따라 몸을 키워 둥글게 몸을 말았다. 그러자 내 몸은 훌륭히 매서운 바람을 막아주었고, 그곳에 사람들이 들어와 서로의 온기를 공유했다.

줄리엣은 내 목덜미 부분에 몸을 묻고 내게 속삭였다.


“잘 자, 아저씨.”


* * *


내 발로 한 달이 지나자 드코 산맥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무려 절반을 절약하니 왕녀가 살짝 놀란 눈치였다.

드코 산맥에서는 내 몸집이 들어가기엔 모자랐기에, 나는 다시 대형견 크기로 몸을 줄였다. 그러자 잽싸게 줄리엣이 내 위에 올라탔다.


“크. 너무 편해. 중독될 것 같아.”

“치사하다! 나도 타고 싶다!”


쩝.

그동안 몇 마디 말이 없던 기사들과 왕녀는 드코 산맥을 보더니 조금씩 말을 꺼냈다. 목소리에서 긴장이 살짝 풀린 게 느껴졌다.

물론 드코 산맥 자체도 충분히 컸기에 조금 더 가야 했지만, 팔부능선은 넘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드코 산맥을 빠삭히 아는 알마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기를 또 며칠. 마침내 라스 성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어찌어찌 들어가 왕녀의 신분으로 영주의 환대를 받았다. 그리고 겨우 옷을 받아 인간으로 돌아오자 줄리엣이 살짝 실망한 느낌이었다.


“아쉬워라. 이제 아저씨 씻겨주지도 못하고, 타지도 못하네.”

“근데 늘 하던 그건 못했는데 괜찮아?”

“응? 아, 괜찮아. 요새 좀 텀이 늘어났어.”

“그래? 다행이네.”


그렇게 영주 성에 며칠 쉬면서 여독을 푼 우리는 드디어 헤어질 준비를 마쳤다. 안토니가 마련해준 마차에 올라타기 전에 왕녀가 내게 말을 건넸다.


“한스, 여태까지 고마웠다. 그대가 아니었다면 내가 여기까지 살아있지도 못했겠지.”

“아닙니다.”

“결국 그들의 한을 풀어주지 못했구나. 하지만 걱정 말거라.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해줄 테니까.”


내가 이랬었을까? 왕녀에게서 언뜻 보인 불꽃을 씁쓸하게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몸조심하십시오.”

“정말로 같이 가지 않겠느냐?”

“예.”

“...그래.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면 보답을 해주마.”


그런 나에게 이번엔 클라우스가 다가와 마지막 말을 뱉었다.


“한스. 나는 잊지 않았다. 약속은 꼭 지켜라.”


번뜩이는 황갈색의 눈동자. 그 안에 담긴 감정.

왕녀에게 옮은 걸까. 아니면 나에게 옮은 걸까. 그도 아니면 원래 이랬을까. 어느 쪽이든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아직도 털어내지 못한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약간은 털어냈던 순간 느꼈던 공허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래. 잘 가라.”


왕녀를 시작으로 모두가 마차에 타기 시작했다. 왕녀가 슬럼가의 사람들까지 챙긴 덕분에 그들도 마차에 탈 수 있었다. 물론 기사들은 호위를 해야 했지만.

가온이 아이들이 신나게 마차에 타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짓다가 내게 와서 한마디를 던졌다.


“고맙다. 네 덕분이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참으로 따스한 것이었다. 클라우스와는 반대로. 예전만큼 괴롭지는 않았지만 씁쓸함은 감출 수 없었다.


“정말 아끼시나 봅니다.”

“응? 아이들? 뭐, 그렇지. 내 친동생 같은 애들이다.”

“조심히 가십시오.”

“다시 한번 고맙다.”


그렇게 마차가 출발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몸을 돌렸다. 옆에서 알마가 내게 질문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저는... 마을을 한 번 보려고 합니다.”

“그래. 그럼 난 내가 살던 곳으로 가겠다.”

“여태 고마웠습니다.”

“...뭘.”


이렇게 애매하게 끝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알마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다. 그런 알마에게 시몬이 다가가 말했다.


“나도 알마를 따라가기로 했어. 이번에 마석은 많이 모았으니까 연구나 좀 하려고.”

“그래?”

“응, 줄리엣. 또 보자. 한스, 너도.”

“또 봐.”

“또 보자.”


내 반말에 시몬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다가 이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 그들을 송별하고는 다시 라스 성으로 들어갔다.


“아저씨, 여긴 또 왜?”

“짐을 잃어버렸으니 맡겼던 돈이나 찾아야지.”


아르키 길드는 세 왕국 모두에 지부를 두고 있다. 따라서 한 지부에서 돈을 맡기면 소정의 보수를 받고 보관해주며, 그를 다른 지부에서 받아갈 수도 있었다. 은행의 역할이랄까.

다만 용병증이 날아가면서 용병 길드에 맡겨놨던 돈을 찾기가 힘들다는 게 문제였지만, 다행히 이곳 라스 지부에서는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재건한 용병 길드는 그전과 그닥 다른 게 없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눈 밑 점이 눈에 띄는 엘린이 보였다. 라울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며 그녀의 대기줄에 섰다.

내 차례가 되자 날 알아본 엘린이 반색을 했다.


“와! 한스, 오랜만이네요. 줄리엣도 오랜만이야.”

“오랜만입니다. 엘린.”

“그러게.”


잠깐 인사를 나눈 뒤 용건을 꺼냈다.


“사실 맡겨뒀던 돈을 찾으러 왔습니다.”

“아, 그래요? 잠시만요. 그래도 규정이니까요. 용병증 좀 주실래요?”

“그게... 용병증을 잃어버렸습니다.”

“네? 어, 그럼 돈을 드리기가 힘든데...”


잠시 고민을 하던 엘린은 이내 우리에게 돈을 건네주었다.


“혹시 어디 가서 제가 해줬다고 하진 마세요. 알겠죠?”


눈을 찡긋 깜빡여주는 엘린에게 웃으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신 김에 용병증도 재발급 받으실래요?”

“예, 그렇게 해주십시오.”

“잘됐네요. 이번에 아르키 본부에서 새 물건이 들어왔거든요. 무려 개인 식별을 해준데요. 마법이란 참 신기해요. 그쵸?”


그러면서 엘린은 우리에게 손가락으로 지문을 찍게 했다. 와, 지문 인식 도구라니. 재발급이라 그런지 순식간에 나와 줄리엣의 용병증이 나왔다.


“아, 부지부장님은 이번에 아르키 본부 소속이 되셨어요.”

“그렇습니까?”

“네. 갑자기 그렇게 떠나버려서 다들 놀랬다니까요?”


그렇게 엘린과 몇 마디 더 나누며 정보를 얻은 뒤 용병 길드를 나섰다.


“이제 볼일은 다 봤어?”

“응.”

“그럼 갈까?”

“그래.”


문득 내가 너무 독단적으로 하나 싶어 줄리엣에게 갈만한 곳이 있냐고 물어보려다가,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잡담을 하며 우리도 라스 성을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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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즐거운 여행 18.06.07 119 0 14쪽
35 모르겠다 18.06.06 130 0 12쪽
» 각자의 목적지로 18.06.03 120 0 12쪽
33 도주 18.06.03 110 0 12쪽
32 난장판 18.06.01 126 0 13쪽
31 이제 그만 놔줘 18.05.31 130 0 18쪽
30 어벙한 암살자 18.05.30 124 0 14쪽
29 한밤중의 손님 +2 18.05.27 176 0 13쪽
28 만찬 18.05.26 141 1 15쪽
27 뜻밖의 조우 18.05.25 147 1 14쪽
26 마법사 알마 18.05.24 152 0 13쪽
25 유적 18.05.23 149 2 16쪽
24 새 출발 18.05.22 118 1 13쪽
23 짜잔~! 18.05.21 143 2 15쪽
22 녹스 18.05.20 171 0 14쪽
21 소집 18.05.19 169 1 14쪽
20 용병 생활 18.05.18 171 1 14쪽
19 삶의 방식 18.05.17 182 2 16쪽
18 용병길드 라스지부 18.05.16 165 1 14쪽
17 테네벨 18.05.15 162 2 12쪽
16 또라이 18.05.14 17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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