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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아지박이 님의 서재입니다.

반로환동이 너무 많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통무
작품등록일 :
2021.12.15 15:43
최근연재일 :
2022.01.22 23:59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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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0
추천수 :
365
글자수 :
166,778

작성
22.01.19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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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7. 협의(俠意)

DUMMY

산적에게 원하는 답을 들은 낭왕은 가볍게 발을 굴렀고, 주변에 있던 산적들의 머리가 땅 속으로 파묻혔다.


“이렇게 원하는 답을 할 놈을 골랐으면 나머지는 후환 없게 처리하거라. 어처피 죽기야 하겠지만... 사람은 죽느냐 사느냐보다 언제 죽었는지가 더 중요하거든.”


“예. 대협.”


정천은 산적들의 머리가 땅 속에 박히며 안에 들어있던 것들을 뿜어냈음에도 눈을 껌뻑껌뻑 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한 낭왕이 물었다.


“명수가 살인도 가르쳤더냐?”


“예. 촌에서 강간과 살인을 일삼던 지주의 목을 치라 하셨습니다.”


낭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살인이란 낙서는 마음에서 지우기 어려운 법이지. 내가 사람을 죽이는 걸 자세히 보지 말아라. 오늘 밤에는 술이나 한 잔 걸치고 자자꾸나.”


낭왕은 제 품 속에 들어있던 지도를 떠올렸다. 하루 걸으면 양성현이 나올 거리니, 바쁘게 걸어 근처에 있는 객잔에 들리면 되겠구나 싶었다.


낭왕은 손을 휘저어 가볍게 산적을 띄웠다. 산적은 공중에 붕 뜬 채로 인간 나침반이 되어 산적 소굴을 안내했다.


“대..협, 돈... 드릴 테니 살려만...”


공중에 붕 뜬 상태로 입만 열 수 있었던 산적은 이대로 간다면 자신은 곧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받아들일 수는 없는 법, 산적은 최대한 낭왕에게 말을 걸며 활로를 찾고 싶었다.


“천아.”


“예.”


그러나 한 산적의 필사적인 노력의 가치란, 낭왕에게는 저 발끝의 먼지만도 못한 것이었다. 아니, 그가 활로라고 여겼던 목숨 구걸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이렇게 짐승이 된 놈을 보거라.”


낭왕은 정천에게 말했다.


“낭인은 강호를 돌아다니고, 낭인은 돈을 번다. 그 과정에서 낭인은 사람을 죽이고, 살갗을 벗기고, 하다하다 암살도 하지.”


그것은 낭왕의 인생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그리고 강해지기 위해 그곳이 진창속이건, 전쟁터 속이건, 뒷간이건 가리지 않고 들어가 임무를 완수했던 낭왕의 인생이었다.


“하지만 낭인은 금수여선 안된다. 돈이 귀하고, 무공이 탐나 길바닥 부평초가 된 신세지만, 낭인은 늑대같은 짐승이 되어선 안돼...”


꾸드득...


낭왕의 손이 점차 주먹의 모습으로 쥐어지자 공중에 뜬 산적의 머리도 같이 오그라들었다.


“낭인 뿐만이 아니다. 무인이란 사람을 베며 짐승이 되어가는 존재다. 하지만 완전한 짐승이 되어서는 안된다. 물론 나도 안다. 그렇게 자기를 절제하는 건 무공의 성취를 얻는 것보다 힘든 일이란 걸.”


“꺼...헉, 살려만...주십쇼 대협...”


낭왕은 삼 초를 세고 주먹을 풀었다. 그리곤 한결 후련해진 목소리로 정천을 불렀다.


“가자. 낭인이, 무인이 짐승이 아니라 사람으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걸 너에게도 전해주마.”


낭왕이 앞장서서 신법을 활용하자 순간적으로 그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한참 앞에 생겨났다.


정천도 똑그곳에는 뭣 모르는 정천이 보기에도 꽤나 큰 산채가 있었다.


목책으로 단단히 둘러쌓인 산채에는 몇몇의 보초도 서 있었고, 큼지막한 연기도 올라오는 것이 작은 마을보다 커 보였다.


“한 50명 정도는 있나? 이 작은 산에서 용케도 저리 컸군.”


낭왕은 산채의 크기를 보고 적당히 견적을 잡았다. 그리곤 둥둥 떠 있는 산적에게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너희들이 잡아간 여인들은 어디에 있지? 불알을 으깨기 전에 말해라.”


산적은 벌벌 떨면서 색색댔다. 낭왕의 살기가 그의 뇌리에 박히자 그의 혀가 뻣뻣히 굳어버렸다.


“산채... 오른쪽... 물 빼는 곳...”


“두목은?”


“중앙... 호랑이 무늬 천막...”


여러 정보를 들은 낭왕은 들고 있던 산적의 숨통을 끊고 산채의 왼쪽으로 향했다. 천천히 몸을 풀고 길게 호흡 낭왕은 정천에게 주의했다.


“이제부터 중요한 부분이다. 네가 강호를 떠돌다가 산채를 보거나, 뒤탈 없이 단체를 마무리해야 할 일이 생겼다면 이렇게 하는 게 가장 좋을 게다.”


낭왕이 들고 다니는 비수가 조용히 하늘을 날았다. 그것은 금새 초번의 목을 꿰뚫고는 조금 더 날아 그 옆에 박혔다.


“따라와라. 절차를 알려줄 테니.”


정천은 번개같이 튀어나간 낭왕을 쫒았다.


“먼저 초번을 죽이거라. 다만 실력이 부족하다면 성벽 근처에 붙어서 틈을 노려라.”


낭왕은 순간적으로 귀식대법을 사용해 제 기척을 완전히 지우고는 산채 근처로 달려갔다.


시전하면 움직이지 못하는 보통의 귀식대법과 달리 낭왕이 개조한 귀식대법은 기척을 숨기는 동시에 움직일 수 있었다.


물론 정천도 최대한 은밀히 움직였지만 속도나 기척을 죽이는 면에서 낭왕의 보법을 따라갈 수 없었다.


[초번을 죽인 뒤에는 빠르게 중앙으로 향해라.]


산채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전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절정의 고수도 듣기 힘들 정도로 미약한 비명도 같이 들리기 시작했다.


[보이는 놈은 죽여라. 다만 아직까지는 은밀하게 죽여야 한다.]


그것은 마치 개가 먹이를 흔드는 것 같았다. 낭왕의 팔이 한 번 휘둘러지면 어김없이 심장이나 비장이 베인 시체가 나뒹굴렀다.


물론, 시체는 꺼억거릴 뿐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소리 없이 움직여라. 네가 100명의 산적들 중 90명의 산적을 죽였어도, 10명의 산적이 도망치면 일은 튼 거다. 도망친 10명의 산적은 다시 100명으로 불어나는 법이니.]


낭왕은 보이는 산적마다 아낌없이 칼과 비도를 휘둘렀다. 그는 산적을 털어먹기보단 깡끄리 몰살시킬 작정으로 칼을 휘둘렀고, 화경의 고수가 마음먹은 이상 이루지 못할 일은 없었다.


그렇게 열 명 정도를 잡아죽인 낭왕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 시선 끝에는 호피 무늬가 새겨진 천막이 보였다. 이 산채의 두목이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흐읍...!”


낭왕이 가볍게 숨을 들이키자 그의 칼에 거친 기운이 솟구쳐 올랐고, 한 순간에 사라졌다.


콰과광!


그리고 호피 무늬 천막이 박살남과 동시에 커다란 굉음이 울려퍼졌다.


“누구냐! 침입자다!”


“두목을 잡았다면 이제 둘로 나뉜다. 인질이 있다면 구하고, 없다면 빠져나갈 궁리를 해봐야지, 하지만 지금은...”


댕댕댕댕댕...!


다급한 종소리가 산채의 모두를 꿈 속에서 깨웠다. 하지만 다급히 일어난 산채의 사람들은 금방 깨달았다.


제 눈 앞에 있는게 지독한 악몽이라는 걸


“...아아악...”

“..려 주세...”


“조금 더 썰어내고 가자꾸나.”


휘익...!


정천도 주위의 있는 산적들의 목을 썰어냈다. 낭왕이 하는 것처럼 비명 하나 지르지 못하게 죽이진 못했지만 창과 활을 이용해 산채를 종횡무진하며 산적들을 쓸어냈다.


“후웁...!”


활시위를 가볍게 당겼음에도 화살은 곧게 날아가 산적의 머리를 꿰뚫었고, 창은 크게 휘두르지 않았음에도 상대의 팔다리를 꿰뚫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 기예를 동시에 펼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천은 창을 든 손으로 시위를 겨눌 수 있었고, 단단한 백금목으로 만들어진 활대로 사람의 머리를 박살낼 수 있었다.


“허허허, 마치 검노의 어릴 적 시절을 보는 것 같구나! 이러니 마치 옛날로 돌아간 거 같아!”


낭왕은 그렇게 말하고는 웃으며 강기를 길게 늘였다. 채찍처럼 늘어난 강기는 순식간에 원을 그렸고, 그 경로에 있던 산적들은 목과 몸이 분리되어 바닥에 엎어졌다.


“도망쳐! 고수다! 고수다!”


산채의 인원 중 대다수가 죽었을 즈음에야 산적들은 정천과 낭왕의 정체를 깨닫고 이를 박박 갈며 도망쳤다.


이 작은 산채에 저렇게 압도적인 고수가 찾아오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


산적들은 무기고 뭐고 챙길 새도 없이 부리나케 도망쳤다. 그것은 산채 외곽에 있던 매음굴을 지키는 산적도 마찬가지였다.


“으아아악!”


산적들이 도망치는 소리가 어찌나 시끄러웠는지 매음굴 구석에서 꼬르륵거리는 배를 부여잡은 여인들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언니, 일어나봐...”


그리고 그들은 금방 소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굳게 잠긴 창고의 문을 가르고 들어온 무인이 그녀들을 안심시켰기 때문이다.


“처치를 긴급히 안 받으면 곧 죽게 생긴 사람 있습니까?”


낭왕의 물음에도 손을 든 여인은 없었다.


‘이상하군.’


낭왕이 보기에, 이 상황은 조금 이상했다.


산채에 끌려온 여인이라면 분명 입에 담기 힘든 짓거리를 밤낮 없이 당했을 터, 흉부와 다리에 큰 상처를 입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꽤나 멀쩡해 보였다.


마치 이 여인들은 여기서 끝까지 가면 안된다는 것처럼.


낭왕의 감이 무언가 수상하다는 경종을 울렸지만, 낭왕은 잠시 덮어두기로 했다.


“일단 밖의 산적을 모두 죽이고 오겠습니다. 절대로 나오지 마시고, 혹시 이 문이 열리면 이 비수를 던지십시오. 거기 빨간 옷 입은 분이 던지십시오.”


얼핏 보기에도 팔이 길쭉길쭉하고 눈 밑이 그나마 맑아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어 뵈는 여인에게 제 내력이 담긴 비도를 던진 낭왕은 그대로 문을 닫았다.


다만 혹시 모를 일을 내비해서 문 앞에 독 발린 단검을 꽂았다.


‘여러 의미에서... 도움이 되겠지.’


낭왕은 문 옆에 서 있던 정천에게 말했다.


“오늘 운수가 좋진 않겠구나. 일단 가서 산적들을 죽이자... 그리고, 너무 힘을 과하게 쓰지 말거라.”


낭왕은 그 말과 함께 다시 뛰쳐나가 도망치는 산적들의 목을 얇게 베어냈다.


이전처럼 검기를 실어 베어낸 것이 아니라 단면은 거칠었고, 목이 베여 바닥을 뒹구는 산적은 고통을 호소하며 죽어갔다.


정천도 창으로 산적의 심장을 찌르고, 몇몇 산적을 죽이며 높은 망루 위에 올랐다.


안 그래도 좋은 눈에 내력을 집어 넣자 정천의 눈은 저 수풀을 뒤지고 도망치는 산적을 관측할 수 있을 정도로 밝아졌다.


퉁...! 퉁...!


특별히 경신법이라도 익혔는지, 아니면 부채주인건지 꽤나 멀리 도망간 산적에게 화살 두 발을 쏘아 명을 끊어준 정천은 금새 다른 산적들을 노리고 활을 쏘아댔다.


스으으으읍...


어지간한 장정의 힘으로도 당기기 어려운 활 시위가 여인의 허리처럼 굽자, 그 안에 바위도 뚫을 수 있는 거력이 담겼다.


퉁!


정천의 화살이 약간씩 휘어지며 목표를 쫒았다. 내력을 불어넣은 화살은 자아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뭇가지를 피하거나, 또는 부수어가며 목표를 쫒았다.


“...끄헉!”


정천의 귀에 닿은 시위가 튕겨져 나간지 삼초도 지나지 않아 이백 보 정도 떨어진 산적이 픽 하고 쓰러졌다.


놀라운 활솜씨였지만 정천은 만족하지 못했다.


“쯧, 나뭇가지가 여럿 부러졌군. 다 피했어야 하는데.”


하지만 푸념도 잠시, 저 앞에 멀리까지 도망간 산적이 보이자 정천은 다시금 숨을 들이키고 활을 겨눴다.


퉁...!


그리고, 산적이 쓰러졌다. 그것은 하나의 법칙 같았다. 정천이 보고 활을 겨눈 표적은, 반드시 쓰러진다는 하나의 법칙.


퉁...!


얼마나 멀건, 중간에 뭐가 있건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퉁...!


그렇게 가지고 있는 열 한 대의 화살을 다 쓸 무렵이 돼서야 정천이 올라선 망루 위로 낭왕이 올라왔다.


“다 끝냈느냐?”


“한 명, 남았습니다.”


퉁...!


“그래... 그럼 일단 따라오거라.”


낭왕과 정천은 높은 망루를 내려오지 않고 망루에서 떨어졌고, 그들은 반쯤 박살난 채주의 천막으로 향했다.


“산적이란 비충(蜚蟲)과 같아 잠시만 눈을 떼도 수를 불리고 무고한 민초들을 괴롭힌다. 하지만 동시에 날짐승과 비슷하여 제가 모은 보물은 땅에 묻어놓곤 하지.”


낭왕은 그 말과 함께 발을 굴렀다.


그러자 내공이 땅 밑까지 뻗어가며 일종의 지도를 그렸다. 나무뿌리, 동면에 든 선충(蟬蟲), 날 잘못 잡고 땅에 들어간 두꺼비... 그리고 땅 속 깊숙이 묻힌 비밀금고까지.


내공이 뻗어나간 모든 자리가 곧 낭왕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자. 땅을 파자꾸나.”


“예?”


“땅을 파자고.”


정천은 낭왕의 눈을 봤고, 낭왕도 정천의 눈을 봤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정천은 조용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귀신 들린 도끼로 땅을 파기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땅에서 금속음이 들렸다. 정천은 묵직한 금고를 퍼올렸다.


“흐흐, 보통 이렇게 땅 속에 묻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만약 저 천막 속에 있었더라도 걱정은 말거라. 산적 두목이란 놈들은 제가 쓰는 무기보다 금고에 더 좋은 철을 쓰기 마련이니.”


하지만 채주가 쓰는 검이나, 이 금고나 둘 모두 화경 고수의 검강 앞에서는 무력했다.


금고에 정문이 아닌 뒷문을 만들어낸 낭왕은 그 안에 자신이 기대하던 금덩어리들이 없던걸 보고 표정을 굳혔다.


“대협, 뭐 없는데요?”


정천이 보기에도 산적 두목의 금고 하면 있어야 할 패물이나 금덩이들은 없고 무슨 퀴퀴한 냄새 나는 책이랑 약간의 죽간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허탕인가?’


물론 여인들을 구하기도 했고, 산적을 쓸어버렸으니 허탕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부수입이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생각했던 정천은 낭왕의 표정이 완전히 굳은 걸 보고 정신을 차렸다.


이 금고 안에 무언가 있다.


“저, 대혀...”


읍.


낭왕이 정천의 입을 막았다. 그리곤 성대를 떨어 전음을 날렸다.


[입을 열지 말아라. 숨도 참아라. 이건 듣는 것도, 보는 것도, 이 앞에서 말하는 것조차 불길한 물건이니.]


경고를 들은 정천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사이, 낭왕은 금고의 안에 있는 무언가가 점차 공기와 닿으며 깨어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오늘 운세가 안 좋을 것 같더라니. 낭왕은 숨을 내뱉으며 검을 거머쥐었다. 화경에 다다른 고수의 손에 쥐어진 검에는 아름다운 별빛이 깃들었다.


일휘파천공(一麾破天功)

심즉참(心卽斬)


-끼에에에엑!


검이 사라지고, 공기가 거칠게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낭왕의 검에 깃든 별빛이 금고와 그 안에 들어있던 짐승을 갈랐다.


정천은 자신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 그건 무지와 공포에서 온 반응이라기보단, 절정고수의 감이 저 소리를 들으면 불행해진다며 경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끼익, 끼에엑...


비명은 한 식경 정도가 지나서야 멈췄다. 정천은 반으로 잘린 금고 속에서 검은 안개가 흩어지는 걸 보고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저건, 무엇입니까?”


낭왕은 정천의 말에 대답해주지 않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잘린 금고 속에 들어있던 죽간과 책을 뒤져보았다.


정천이 흘겨보기로, 그것은 장부였고, 또한 서신이었다. 다만, 그것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보지 못했다.


분노한 낭왕의 손에 짖이겨진 책과 죽간은 더 이상 사람이 볼 수 없는 형태가 되었으니까.


“운수가... 심히 안 좋구나.”


낭왕은 흉신악살이 깃든 얼굴로 천천히 걸었다.


쾌남형에 속하는 그의 얼굴은 찌푸려졌음에도 유쾌한 기색을 버리지는 못했으나, 정천은 오히려 그 분노 속에서 보여지는 미소에 진저리를 쳤다.


낭왕의 걸음은 여인들이 갇혀진 창고 앞에서 멈췄다.


창고 안에서


피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나와라.”


살기를 담은 낭왕의 말에 기괴하게 생긴 무언가가 여인들의 내장이 낀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쫘악...!


괴물의 입이 낭왕을 한 번에 삼키려는 듯 크게 벌어졌다.


그리고 낭왕은 그 입을 조금 더 크게 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쫘아아악!


낭왕의 칼이 괴물의 아가리를 완전히 찢어발겼고, 그 검의 끝에는 괴물의 뇌수가 맺혀 있었다.


일검에 괴물을 참살한 낭왕은 그 뒤에서 덜덜 떨고 있는 여인의 목을 베어내고, 그 여인이 서 있던 자리에서 발을 쿵, 하고 굴렀다.


우르르...


그러자 비밀스러운 통로가 드러났다. 정천은 그 통로가 드러남과 동시에 퍼지는 역겨운 냄새를 참지 못하고 낭왕에게 물었다.


“대협. 이게 대체 무슨...”


“마교.”


턱.


정천의 몸이 굳었다.


마교.


단 두 글자는 그 이름만으로도 강호의 모든 무인들을 멈춰 세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마교의 잔당이다.”


낭왕은 그 말과 함께 그 안으로 들어갔고, 정천은 자신도 모르게 전신에 꽂혀 있는 무기를 한 번 만지고는, 주변에 흩뿌려진 여인들의 시체에 잠시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리고, 마굴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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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4. 등용문(登龍門) +1 22.01.04 164 11 11쪽
14 4. 등용문(登龍門) +1 22.01.03 193 14 16쪽
13 3. 구주팔황 복잡기괴(九州八荒 複雜奇怪) 22.01.01 186 11 15쪽
12 3. 구주팔황 복잡기괴(九州八荒 複雜奇怪) +3 21.12.31 194 8 12쪽
11 3. 구주팔황 복잡기괴(九州八荒 複雜奇怪) 21.12.30 213 9 9쪽
10 2. 기괴(奇怪) +1 21.12.29 229 11 14쪽
9 2. 기괴(奇怪) 21.12.28 223 8 10쪽
8 2. 기괴(奇怪) 21.12.27 241 9 12쪽
7 2. 기괴(奇怪) 21.12.25 253 14 11쪽
6 2. 기괴(奇怪) 21.12.24 288 16 10쪽
5 2. 기괴(奇怪) 21.12.23 360 16 10쪽
4 1. 입신(立申) +1 21.12.22 397 13 10쪽
3 1. 입신(立申) 21.12.21 476 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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