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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아지박이 님의 서재입니다.

반로환동이 너무 많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통무
작품등록일 :
2021.12.15 15:43
최근연재일 :
2022.01.22 23:59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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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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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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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 입신(立申)

DUMMY

시녀의 도움을 받아서 몸을 한 번 씻어내고 멀쩡한 옷을 받은 정천은 천천히 제 무기들을 몸에 감싸 둘렀다. 모든 준비를 마치자 시녀가 그를 안내했다.


기화요초가 뜸뜸이 핀 정원과 물고기가 살지 않는 연못을 지나, 용 모양을 한 길다란 동상의 입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별채의 접객실로 정천을 인도한 정가장주는 시비가 가져온 따듯한 차를 들이밀며 말문을 이었다.


“그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고?”


“예. 조모님과 사시던 곳에서 임종을 맞이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정가장주는 잠시 눈초리를 빛내며 무언가를 찾더니 이내 부드러운 눈매를 과시하며 정천을 달랬다.


“이 어린 것이 제 할아비의 임종을 홀로 지켰으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고...”


이내 거울에 비춰진 상을 통해 정천의 등까지 살핀 정가장주는 자신이 찾는 것이 없었는지, 시비를 불러 숙수에게 귀한 손님을 대접할 것이니 잘 준비하라고. 정천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일단 뭐라도 조금 먹으면서 할까? 이 숙부가 나이가 들어 몸이 성치 않으니 요즘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더구나. 이야기는 뭐라도 먹으면서 하자.”


게다가 정천이 씻는 도중에 시비가 옷가지를 뒤졌음에도 그가 찾는 물건이 나오지 않자 정가장주는 화려하게 차려진 식탁 앞에서 정갈하게 차려입은 정천에게 질문공세를 날렸다.


어떻게 지냈느냐? 수련이 힘들지는 않더냐? 음식은 입에 맞고? 얼마나 수련하고 내려온 게나? 앞으로 어디로 갈 생각이냐?


매 질문의 끝이 다음 질문의 첫 마디와 이어져 있어서 정천은 그 흐름을 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공통적인 질문들을 통해 제 숙부가 원하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예, 뭐 갈 곳은 없습니다만... 격체전공을 받았으니 어떻게든 되겠지요. 정 아니 된다면 저 천강산 탐사대에 들어가도 되고.”


“어허, 어찌 그러하겠느냐. 격체전공까지 받은 무림의 동량이 할 일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 또한 세간의 비웃음거리가 될 게다. 정 할 일이 없다면 가문의 일을 돕거라. 내 단주 자리를 비워 놓으마.”


정천의 조부, 탕마협노 정명수는 이 무림에서 흔하지 않은 화경의 고수였다. 그것도 어설픈 고수가 아닌 화경의 끝자락에 닿아 있는 고수.


같은 경지 내에서도 개개인마다 큰 차이가 난다는 화경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고수가 싸우다 죽지 않고 제자를 키우다 늙어서 죽었다면 모름지기 해야만 하는 절차가 있는 법이다.


격체전공(隔體傳功).


화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만이 할 수 있다는 대법을 제 후계자에게 걸어서 수십 년 간 쌓인 내공의 정수를 전해주는 것이다.


보통 격체전공을 통해 얻는 내력은 15년 분도 채 되지 않지만, 그 정순함과 위력은 대법을 전수받는 제자의 수준에서는 모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받으면서 전신의 혈도가 열려 생사현관을 타통한 것에 비하는 효용성이 있으니, 이제 목숨이 다한 화경의 고수 하나가 죽기 직전에 제자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었다.


격체전공을 받은 무인이 10년만 정양하여 수련한다면 능히 화경의 문턱을 넘볼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정가장주는 그런 인재를 놓칠 마음이 없었다. 그의 조카가 정가장에 남아서 힘이 되어준다면 정가장은 정양군을 넘어 무림의 한 축이 되는 세력으로 발돋움할 잠재력이 있었다.


아니 그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는 할아버지의 유지를 이어야만 합니다.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숙부.”


어허...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정가장주는 탁자를 툭툭 짚으며 고민하다 시녀를 불렀다.


“그러면... 알겠다. 더 이상 강요하진 않으마. 그럼 용건은 끝인게냐? 일단 아버님의 장례식을 준비해야 하니 가보겠다. 시녀를 불러 네가 묵을 방을 안내해주마.”


“네. 감사합니다 숙부.”


정천은 시녀의 뒤를 쫓아 정가장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계획을 세웠다.


방금 전 상황에서 부모님의 위패를 찾으러 왔다고 말 한다면 분명 그를 빌미로 삼아 이리저리 자신을 내돌리며 이 정가장과 엮을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양상군자의 신세로 부모님의 위패를 돌려받는 게 더 현명하리라.


“정가장은, 참 아름다운 곳이로군요. 제 어릴 때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실 정천은 정가장에 와본 게 이번 처음이다.


“그런가요? 가주님께서 가주위에 오르신 뒤부터 많이 바뀌긴 했지요. 특히 저 먼 사천땅과의 교역이 활발해져서 이국적인 문물도 많이 들어왔고요.”


그러고보니 정가장주의 집무실에도 거대한 용 장식품이 있었고, 바닥에도 다채로운 무늬의 양탄자가 놓여져 있었다. 게다가 이곳저곳에서 고함소리와 수련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정가장은 지금 확실히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특히 건물의 배치가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제 착각일까요?”


“건물의 배치라... 저는 잘 모르겠네요. 사실 정가장에 들어온 지 3년도 안되었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나는 그렇게 시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정보를 얻었다. 밥이 맛있었다. 식당이 저기고, 훈련하는 곳은 여기며, 숙부와 사촌들은 저기서 주로 생활한다...


“그러고보니 제가 정가장까지 와서 큰 불효를 저지를 뻔 했군요. 가문의 사당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칼 들고 다니는 무부도 챙길 법한 이야기를 내뱉었다. 조상님께 드리는 제사. 얼마나 좋은 명분인가?


“아... 저도 잘 모르는데... 제가 총관님께 여쭤보고 올게요.”


장천의 머리도 빠르게 돌아갔다. 총관에게 이야기한다면? 당연히 정가장주의 귀에도 들어가리라. 그렇다면 안하는 것만 못하다.


“하하 괜찮습니다. 하는 일이 많으실 텐데 그런 부탁을 드릴 수는 없지요. 제가 나중에 숙부께 여쭤보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끝내자 내가 묵을 방에 도착해 있었다.


그곳은 귀한 장식이 덕지덕지 붙어 있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느낌이 들었고 방에는 태청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아무래도 도가 쪽 사람이 묵는 숙소 같았다.


“이곳에서 지내시면 되고, 식사는 묘시 초에 한 번, 정오에 한 번, 유시 말에 한 번 있습니다. 그 외에는 아까 부탁드렸던 것들만 제외하면 자유롭게 다니셔도 된다는 가주님의 명이 있었습니다.”


시녀가 물러가자 정천은 방에 짐을 풀고 전낭을 챙겨 시장으로 떠났다.


시장의 사람들은 얼굴에 찌푸림 없이 활력이 돌았다. 그들을 비호하는 정가장에서 사천과의 교역을 뚫어 여러 진귀한 물품들이 들어오니 주변의 상권까지 정양군으로 몰린 것이다.


그 결과 정양군에는 여태껏 볼 수 없었던 활력이 돌았고, 정양군에서 정가장이 가지는 영향력도 다른 중소 세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정천은 그런 자세한 사정까지는 몰랐지만 이곳에서 정가장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드높다는 사실만은 알아냈다.


상인 네 명, 무인 세 명, 그리고 순찰을 도는 병사들 다섯. 꾸준히 자신의 주위를 돌아다니며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는 사람들의 숫자다.


‘어디가서 야행복을 사지도 못하겠군.’


양지의 시장은 이미 정가장의 수중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야행복을 사고 위패를 가져가는 것은 악수다.


그렇다고 해서 할아버지에게 들은 암시장으로 가기에는 암호가 바뀌었을 수도 있고, 암시장마저도 정가장의 수중에 떨어졌을 수도 있다.


결국 정천에게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는 부모님의 위패에 바칠 예물로 여러 가지 음식들과 작은 꽃더미를 사서 다시 태청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저녁 때가 된 것을 보고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모여 밥을 먹고 있었다. 반찬은 적당히 건더기가 있는 고깃국에 풀들을 뜯어먹고 있었다.


정천은 식당에서 밥을 받아 적당히 제 또래의 무인들이 먹는 곳에 가서 앉았다. 정천의 얼굴을 모르는 무인들이 수군거리더니 금세 와서 신상잡기를 물었다.


“소형제, 반갑네. 혹시 어디서 왔는지 물어도 되겠나?”


그는 머리에 붉은 띠를 싸매고 수(秀)자를 새긴 옷을 입은 무인이었다. 나이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것이 딱 정천의 또래 같아 보였다.


“본인은 정씨 성에 천자를 쓰는 사람일세. 내 조부님의 유지를 따라 이곳에 왔네.”


“혹 그 조부라 하심은?”


“똑같이 정씨 성에 명자 수자를 함자로 쓰시오.”


그는 조용히 정명수... 라며 읖더니 자신의 입을 가리고 놀랐다.


“탕마검노 태상가주님?!”


자리가 술렁였다. 화경의 고수인 태상가주가 먼저 졸한 제 맏아들을 대신해 손자를 데리고 심산유곡으로 가서 수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문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와중에 화경의 고수와 단 둘이서 수련을 하고 있다는 태상가주의 손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다. 부모를 잃어 불쌍하다. 태상가주님과 수련하다니 부럽다... 그리고 소가주님께서는 왜 같이 가지 못하셨는가.


그런 소문은 시종들이나 무인들이나 가리지 않고 돌았다. 시종들에게는 재미있는 화젯거리가 언제나 필요했고, 무인들이 서로의 강함을 비교하거나 강자를 추앙하는 것은 일상과 같았으니까.


그리고 정천은 여러 가지를 계산했다. 그의 조부, 탕마검노는 제자에게 무공과 노숙하는 법 만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디 가서 들을 수 없는, 전 참전용사의 무궁한 정치 수법들을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말이 진짜인가? 진짜 태상가주님의 제자라고?”


“말을 조심하게! 그렇다면 저 소형제... 아니 저 분은 자네보다 항렬이 위야!”


뒤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중년의 사내가 일어나서 경고했다. 중년인은 마찬가지로 수(秀)자를 새겼지만 그 태양혈이 불룩하고 한 눈에 보기에도 수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고수로군.’


정천에게 잠시 포권을 한 중년인은 금세 정천에게 다가왔다. 그는 정천에게 여러 가지를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공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저는 수전대의 대주인 정진혁이라고 합니다. 무슨 연유로 이곳까지 들리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곡해한다면 정천의 검처럼 휘어질 수 있고, 받아들이자면 여러 가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에 정천이 씨익 웃었다. 자신이 원하던 인재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조부께서 바라신 일을 행하려 이곳에 왔습니다.”


정천의 말도 마찬가지로 의미심장하기 그지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수전대주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역시, 참으로 뜻 깊은 일을 하시는군요.”


“과찬이십니다.”


정천은 밥을 고사하고 수전대주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밥을 다 먹은 뒤, 노한 정가장주의 호출을 받고 불려나갔다.


작가의말

霜松常靑하는 心情으로 集筆하겠습니다.


잘 보셨다면 推薦 付託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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