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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아지박이 님의 서재입니다.

반로환동이 너무 많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통무
작품등록일 :
2021.12.15 15:43
최근연재일 :
2022.01.22 23:59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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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글자수 :
166,778

작성
22.01.15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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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 반로환동이 너무 많다.

DUMMY

정천은 14쌍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무시하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제일 멀쩡해보이는 사람은 신승 거사다... 하지만....’


그를 볼 때마다 뱃속 어딘가가 욱신거리고, 거사도 차마 정천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거사와 같이 간다고 해 봐야 좋은 영향은 없으리라.


‘그러면 제갈민 대협?’


그녀는 얼굴의 절반을 화려한 부채로 가리고 있었다. 뛰어난 명인의 수묵화가 입과 코를 대신하고 있었지만 매끄럽게 구부러진 눈매가 그녀의 표정을 암시했다.


정천은 조심스레 고민하는 척 하며 그녀의 감정을 살폈다. 그녀는 귀여운 짓을 한다는 듯 부채를 약간 살랑거렸다.


‘모르겠다.’


산 속에서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온 정천이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더 끈적거리는 것으로 봐서는 좋은 느낌은 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오금이 약간씩 떨렸다.


‘그러면 결국...’


낭왕(狼王) 조용범.


스스로를 정천의 대부라고 칭하는 낭인계의 우두머리.


이미 비무에 정신이 팔려서 남궁가주의 뒤통수를 친 전적이 있었지만, 그 외에는 마땅히 멀쩡한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정천은 시무룩한 눈, 뚱한 얼굴, 혹은 스쳐 지나가는 뱀처럼 끈적한 시선을 지나 덥수룩한 수염 대신 매끈한 턱을 쓰다듬고 있는 잘생긴 청년의 앞에 멈춰섰다.


“이 불초말학이 여러 고인들을 견주고 선택하는 것도 참으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 제 생각에는 역시 대부와 먼저 지내며 여러 가지를 배우고 싶습니다.”


정천이 낭왕의 손을 들어 올렸고, 품위를 아는 이들은 조용히 헛기침을 하며 낭왕에게 눈치를 줬지만 염치 없는 이들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절규했다.


“끼에에에엑! 안돼! 화경이 아니어도 되니까 한 번만 붙어보자!”


“내 도법을 뺏어가 놓고 어딜 도망가! 어딜 도망가냐고!”


그들 못지않게 실망한 눈초리를 보내는 제갈민과 여성진이 있었지만, 정천은 눈을 꾹 감고 그들의 시선을 무시했다.


“하하하하! 그래! 역시 우리 대자(代子)가 무재 만큼이나 현명하구나! 저 술 취한 호랑말코나 주름 숨긴 할망구들을 따라가면 제 명에 못가는 법... 커헉!”


그리고 낭왕은 정천을 맡자마자 몸소 한 가지 교훈을 가르쳐 줬다.


걸선녀, 검후, 제갈민 셋 중 누구와 함께 있더라도 ‘할망구’같이 나이를 과시하는 단어는 쓰면 안된다고.


뼈다귀와 칼집, 부채에 한 대씩 맞았지만 미소를 잃지 않은 낭왕은 웃으며 선언했다.


“자! 그럼 우리 대자한테 신경 끄쇼! 내가 알아서 무림의 법도나 뭐.. 으이? 거 다 교육 시킬 테니! 나중에 화경에 오르면 선물과 함께 비무나 함께 하러 오라고! 으하하하!”


낭왕은 그대로 정천은 낚아 채 강을 뛰어 도망가려고 했지만, 미리 준비하고 있던 이팔위가 허공에 있는 발판을 밟는 것처럼 손쉽게 허공에서 몸을 뒤틀며 낭왕을 쫓아갔다.

턱...!


“안되지. 애초에 자네가 손수 키운 제자도 아닌데 이렇게 털도 안 벗기고 홀랑 먹으려 하나?”


낭왕은 허공이나 물 위에서 이팔위를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곤륜파의 절기, 운룡대팔식(雲龍大八識)을 익힌 무인에게는 공중이건 물이건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기묘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지만 낭인의 무공을 배운 그에게는 해당 사항 없는 소리였으니까.


“알겠으니까 이만 좀 비켜봐. 내 손으로 돌아갈 테니까.”


“누굴 믿고? 걱정 마시게나. 데려다 주지.”


“오냐. 한 번 붙어 보자.”


쾅!


결국 둘이 한 수를 나눈 끝에, 이팔위는 덜렁거리는 낭왕의 목덜미를 잡고 강을 건너 천명누각이 있었던 터에 돌아왔다.


정천은 두 노괴가 공중에서 한 수 맞붙는 동안 그냥 표물처럼 가만히 있었다. 괜히 잘못 움직였다가 장법 하나 맞으면 자신의 손해 아닌가.


낭왕이 잡혀오자 신승이 혀를 차며 놀려댔다.


“거 참 뭔 일로 입 바른 소리 하나 했더니만, 개 버릇 남 못 주는 구만.”


“조용히 좀 하시게 땡중. 아니, 머리도 안 민 땡중이 땡중인가? 아하. 안 밀어도 머리가 곧 맨들맨들해 질 것 같아 안 밀고 있는 건가?”


꺼헉...!


거품을 물고 있는 신승을 뒤로하고 낭왕이 모두에게 물었다.


“그리고, 얘랑 아무런 관련 없는 외인들이 왜 우리 대자에게 신경쓰는 게냐? 거 신선하고 색다른 후기지수를 원하면 니네가 직접 키워 이놈들아!”


낭왕도 알고 있었다. 제 친우들 중에서 제자를 정상적으로 키울 수 있는 놈은 한 둘도 없다는 것을.


오죽하면 문파의 장로들이 화경의 고수가 가르침을 준다고 할 때 뒤로 슬그머니 물러서겠는가.


“저거 다 알면서 그러네. 우리가 애한테 손대면 그게 학대지 교육이냐? 그리고 지금 키워서 뭐 또 20년 기다리라고?”


청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남궁가주와 무선자, 야율표기가 경험담을 나눴다.


“저번에 애 하나를 봐 줬더만 애가 기겁을 하고 나를 피하더라고.”


“거 마보만 삼일 밤낮 동안 시키면 어떻게 하나? 그 시간에 호랑이 잡아서 대련이나 시키지.”


“왜 그렇게 무르게 가르치지? 중원에도 절벽은 있지 않았나?”


기본적으로 천재는 남을 잘 가르치는 이들이 아니었다. 잘 가르칠 수 있어도 이 괴팍한 노인네들은 제자가 손 쉽고 바르게 고수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제자에게 원하는 것은 극한과 극기!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노인들은 멀쩡한 방법으로는 제자를 수련 시킬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저 꼴 좀 보시게. 저 얼간이들이 언제 이렇게 유망한 후기지수를 가르치면서 재미를 보겠나?”


낭왕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유심히 지켜봤던 후기지수에게 한 수를 가르쳐준 뒤로 다시는 그 놈을 보지 못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했다.


“그래도 뭐 어쩌라고! 애는 내 대자야!”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큰 걸 바라는 게 아닐세. 생각해보시게. 탕마검노의 무공이 어떤 것이었는지. 과연 그 무식할 정도로 익혀야 될 게 많은 무공을 자네 혼자 숙달 시켜줄 수 있겠나?”


“아니 그건...”


마교대전 당시 같이 싸워보기도 하고, 몇 번 목숨을 빚지거나 갚아주기도 했던 그들은 서로의 무공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그 중에는 진심을 다해 바라면 검에서 벼락이 튀어나오거나, 극성에 달하면 모든 체액이나 체취가 꽃 냄새가 나는 무공, 혹은 살집이 곧 내공이 되는 무공 등, 특이한 무공도 있었다.


그리고 개중에서도 탕마검노의 무공은 특별히 더 기이한 것이었다.


검, 창, 편, 도, 궁, 추.


최소한 여섯 가지의 무기를 극한까지 다룰 줄 알아야 대성할 수 있다는 무공.


말 그대로 검으로 바다를 가르거나, 도로는 번개를 쪼갤 정도로 능숙해져야지 대성할 수 있다는 소리는, 사실 대성하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그게 가능하려면 화경의 경지에 올라 아주 높은 경지에서 무기의 숙련을 쌓거나 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는데, 문제는 무공을 대성하지 않고 화경에 오르기가 더 힘들었다.


문제가 꼬리의 꼬리를 무는 듯한 그 모순적인 무공에 소싯절 낭왕은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 구한 전대 고수의 무공을 탕마검노에게 건넸을 지경이었다.


탕마검노라는 희대의 천재가 특별한 것이었지, 그의 무공은 저잣거리에서 내다 판다고 해도 사지 않을 정도로 대성 하기도 힘들고 익히기도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그래도 얘가 그 빌어먹을 무공을 익혔지만, 이미 화경의 벽을 마주했으니까 나 혼자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낭왕도 마음 속으로 깨닫고 있었다.


마교대전이라는 흉악하고도 무자비한 스승을 만나 경지에 오른 탕마검노와 달리, 낭왕 혼자 정천의 스승을 맡는다면 정천은 벼락을 두 번 맞아도 화경의 경지에 오를 수 없으리라.


“내 자네의 마음도 이해하네. 하지만 생각해보시게. 자네의 욕심 때문에 백도의 동량이 화경의 벽에서 좌절한다면 이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끄으응...”


세상에는 상대가 어찌 되건 상관 없이 자신의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 행동하는 이들이 넘쳤다. 그리고 그런 망종들이 넘쳐나는 진흙탕 같은 곳을 우리는 강호라고 부른다.


하지만 진흙 속에서도 연꽃이 피는 법. 낭왕은 결국 정천을 독점하길 포기했다.


“좋아. 그럼 세 달이면 적당하겠지. 대충 세 달이면 수련이나 강호 경험을 쌓아줄 수 있겠지.”


낭왕은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선자와 야율표기가 반발해서 외쳤다.


“너무 길다! 두 달!”


“사실 두 달도 길지. 나는 한 달이면 검의를 숙달 시켜줄 수 있소.”


“지 혼자 두 달 동안 비무 하려는 놈이랑, 해일 속에 한 달 동안 던져 놓는 놈은 말 꺼내지도 마!”


하지만 여럿 반발이 일어났다. 요점은 세 달 동안 돌아가면 마지막 순번은 2년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달이면 진짜로 충분하지 않나? 아니면 대충 한 달 내외로 잡으면 어떤가?”


“그냥 두 달을 기한으로 정하고, 대충 하오문이나 개방을 부려서 위치를 알려주면 원하는 놈이 찾아가는 형식은 어떤가?”


결국 또 난장토론이 열렸다. 하지만 광기와 광기가 붙어 있으면 더 큰 광기를 낳는 법.


난장토론의 끝에 정천을 신강으로 보내서 마기에 휩싸인 무인들과 싸우게 하자는 결론이 나오자, 신승이 몸소 신강 소리를 꺼낸 청진과 마인 소리를 꺼낸 무선자를 후려치고 토론의 중간 중간 나온 쓸만한 의견들을 모았다.


“일단 한 사람이 전담으로 맡아서 후기지수를 교육하고, 그 기한은 두 달로 정한다. 다음 전담은 그 전 전담이 정한다. 단, 중복해서 전담을 맡을 수는 없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성격이 원만해서 인간관계가 좋은 소향과 검후가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 뒤 행적을 하오문이나 개방에 맡기고, 개방에 맡길 경우 마땅한 금액을 지불한다. 맡은 바 일을 성실히 처리한다는 조건 하에, 전담이 아닌 회원도 후기지수 곁에 붙어 교육할 수 있다.”


가장 세력이 커서 할 일이 없는 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마지막으로, 한도 이상의 비무는 엄금한다. 다만, 말릴 사람이 두 명 이상 있다면 화경의 벽을 넘지 않았더라도 지도 비무를 할 수 있다. 또한 이 자리에 없는 이들에게는 이 모든 일을 비밀로 한다.”


청정하고 신선한 후기지수와 검을 맞대보려는 무공광들이 미소 지었다.


제 머리에서 휘날리는 흑채를 부여잡고 울먹이는 신승을 제외하고, 이 자리의 모두가 미소지었다.


정천도 여러 고인들이 희희락락하는 중에 대놓고 얼굴을 찌푸릴 수 없어 결국 미소지었다.


그렇게 모두가 미소 짓고 신승과 무림맹주만이 울상을 지었던 파란만장한 피로연이 끝났다.


새싹 주위로 거칠게 부는 바람은 불타는 천룡비무장을 떠나 파란만장한 모험담을 사랑하는 낭왕에게로 넘어갔다.


작가의말

선작이... 30이 늘어? 감사합니다.


월요일 날 2편 올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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