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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아지박이 님의 서재입니다.

반로환동이 너무 많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통무
작품등록일 :
2021.12.15 15:43
최근연재일 :
2022.01.22 23:59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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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64
추천수 :
365
글자수 :
166,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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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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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6. 반로환동이 너무 많다.

DUMMY

눈 앞에서 지고한 경지의 증거, 강환이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


매화향과 태극이 맞부딪치고, 제왕의 검과 푸른 번개가 쪼개지며, 붉은 용과 바다가 만나 출렁였다.


마치 이곳에서 투선들의 연회가 열리는 것 같았다. 무인이라면 꿈에도 마지 않을 그 광경을 보며, 연회의 1등상 역할을 맡은 정천은 웃거나 할 수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거지?’


차라리 방 안에서 정양을 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난장판으로 상황이 치닿진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미 말려보기도 했으나 저 화경의 고수들은 정천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그저 검과 손을 휘두르며 서로 손속을 나눌 뿐이었다.


이렇게 흥겨운 자리에서 정천의 말에 따라 싸움을 멈출 화경의 고수는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으리라.


정천은 한 시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



“흠, 흠...”


제 거대한 거구와 어울리는 흑색 무복을 잘 차려입은 정천은 머리에 정갈히 쓴 영웅건이 어색했는지 몇 번 만져보다가 헛기침과 함께 발을 옮겼다.


그래도 주변의 사람들이 감히 근처로 다가올 생각을 못하는 것 보니 자신이 잘 차려입긴 한 모양이다... 싶었던 정천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천명누각을 찾았다.


그는 길을 가면서도 옷에 무언가 묻지 않게, 최대한 제 꼴을 다듬으며 누각으로 향했다.


오늘 그가 만날 사람들이 여간 귀한 사람들인가? 기본적으로 명문대파의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다.


비록 그들이 대부분 속가제자이거나 명문가의 방계라는 단점이 있지만, 그 정도 작은 단점은 높은 무위라는 장점이 덮고도 남았다.


그리고 정천은 한 가지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이들일지도 모른다.’


마교대전 이후, 지고한 화경의 경지에 오른 정파와 사파의 거두들은 하나같이 모습을 감췄다.


혹자는 그들이 이미 죽었으리라고도, 혹자는 그들이 깨달음을 정리하고 있으리라고도 하지만 정천은 이미 거두들 중 하나의 행적을 알고 있었다.


‘내 조부처럼 다른 분들도 제자를 키우셨을 수도 있겠지.’


제자 육성!


정천이 느끼기에 이번 용봉지회는 정상이 아니었다.


일단 16강에 나선 대부분의 참가자가 절정이었던 것부터 이상했다.


게다가 자신은 절정 중에서도 군계일학, 절정의 극에 달해 화경의 벽에 마주친 상태였는데도 자신과 이기거나 비등한 참가자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말이 안되는 일이다. 아무리 대전 이후 전체적으로 후기지수들의 수준이 높아졌다지만 절정이라는 게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본선 참가자들이 그 만큼이나 강하다니.


하지만 대전 이후 실종된 고수들이 후계자를 키웠다면? 그리고 그들이 이번에 나왔다면?


대부분의 의문점이 해결된다. 정천은 이보다 더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이 틀렸어도 그냥 이 무림에서는 강한 무인들과 친분을 맺어 놓으면 두고 두고 좋은 일 아닌가.


정천은 그런 생각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에는 사천 당문의 광기가 터져나가고 있었다.


하늘에서 터져나가는 황금과 폭죽, 용봉지회의 끝을 맞아 회광반조하는 무인처럼 미친 듯이 쏴 재끼는 폭죽만으로도 무림맹은 만만치 않은 비용을 들였으리라.


하지만 하늘에서 터지는 폭죽이 작아 보일 만큼 천명누각의 장식과 안에 준비된 요리는 화려하다 못해 사치스러웠다.


‘분명 도사나 스님도 오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자리를 따로 마련해두나?’


심지어 아직 천명누각에 들어간 것도 아니었는데도 주변에는 야명주며, 녹옥이며, 저 비단길 너머에서 왔다는 붉은 보석이나 큼지막한 금강석도 박혀져 있었다.


‘이런 금력을 가졌으니까 후식으로 백년설삼 차를 준비하는 거로군.’


정천은 그제서야 백년설삼을 왜 주는 지 알 것 같았다. 조부께 듣기로, 원래 돈이 남아 도는 사람은 주체를 못하고 일단 소비를 저지르고 본다고 했으니까.


무림맹의 재정각주가 들으면 호통을 칠 생각을 하며 정천은 당당하게 누각 안쪽으로 들어갔다.


의문스럽게도 그곳에는 흔한 하녀 하나 없었으며, 연회에서 시중을 들어야 할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여기가 금지(禁地)라도 되는 것마냥 경비를 서는 무인이나 숙수마저도 보이지 않았기에 정천은 더듬더듬 누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고오오오...


“크흑...!”


약해진 몸으로 버틸 수 없는 압력이 정천의 다리를 눌렀다. 정천은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압력의 중심지를 살폈다.


헝클어진 머리를 벅벅 긁고 있는 무인은 푸른 도포에 무언가를 닦으며 술잔을 계속 들이켰다. 하지만 한량 같은 모습과는 달리 그 탄탄한 육신에서는 압도적인 위압감이 뻗어나왔다.


정천은 그가 누군지 깨달았다.


이번 비무의 우승자. 무당의 새로운 용 독고진선.


그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찡그림이나 노기도 보이지 않았지만, 정천은 저 젊은 용이 극도로 분노했음을 직감했다.


지금 그의 몸에서 퍼지는 위압감은 평소에 보여줄 법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줄은 모르겠으나 저자가 기다리는 사람이 온다면 금새 칼부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아무렴, 독고진선이라는 무인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화경의 무인도 아니고 평소에 내뻗는 기세가 저 정도라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았다. 뭣 때문인진 몰라도 그를 극심히 불편하게 만든 무언가가 있으리라.


쇠약해진 정천은 누각에 다른 참가자들보다 빨리 도착했음에도 기파 때문에 독고진선의 근처로 다가가지 못하고 구석에 조용히 앉았다.


간신히 구석에 자리한 정천은 한 성의 성주도 맛보지 못할 진미를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 그저 위압감에 몇 번 술을 들이킬 뿐이었다.


그리고, 거대한 기파의 충돌이 일었다.


그그그그...


누각으로 심기체 모두가 거대한 거인이 들어오고 있었다.


“오, 진인. 오랜만이군.”


“그래. 비무대 위에서도 못 봤으니 정말 오랜만이긴 하군.”


ㅅ자 모양의 누각의 가장 안쪽에 독고진선이 앉았고 왼쪽 구석에 정천이 앉았다. 그리고 독고진선의 바로 오른쪽에 거대한 기인이 앉았다.


추운 가을의 날씨임에도 얇은 옷차림으로 버티는 거한의 팔뚝은 생긴 것과 어울리지 않게 흉터 하나 없이 깔끔했으며, 그들은 이미 익숙히 봤다는 듯 인사했다.


정천도 어디선가 덩치가 밀린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저 거한과 비교한다면 더 크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 자연스레 술잔을 부딪쳤고, 그 이후로 아무런 말 없이 제 식탁의 음식만 천천히 깨작거리기 시작했다.


음식이 맛있긴 했다. 정천은 조금씩 독고진선과 거한의 기파에 익숙해져 음식을 깨작거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많은 기인이사가 들어왔다.


개중에는 어디선가 봤던 이들도 있었고, 비무대 위에서 본 사람들도 있었으며, 아예 처음 보는 이들도 있었다.


당가의 광기가 하늘 끝까지 닿아 보름달을 가릴 때가 되자, 용봉지회의 끝을 알리는 피로연에 참가하기로 한 14명 모두가 모였다.


그리고, 정천은 죽을 맛이었다.


끄드득... 끄극...


정천의 이빨 사이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그저 상 위의 술잔이 참가자들의 압도적인 기파에 휩쓸려 기이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정천은 약간씩 주위를 흘겨봤다. 다른 사람들의 술잔에서는 그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잠시 눈을 감고 피부에 잠들어 있던 향초의 기운을 깨웠다. 그제서야 조금 살거 같아진 정천은 조용히 술잔을 들어올렸다. 술잔은 그제서야 조용해졌다.


‘백년.. 설삼, 꼭 얻어야 할까?’


훈련을 좋아했던 탕마검노는 가끔 정천의 머리 위에 기왓집같은 바위를 올려놓고 수련을 시키곤 했다. 그러면 머리나 배 쪽에 피가 쏠리는데, 아주 고통스러웠다.


정천은 지금 딱 그 심정이었다. 진수성찬도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 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는 고통에 굳은 표정으로 술잔만 몇 번 들이켰다. 인사고 뭐시고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상태로 저 기파 속을 지나갈 자신이 없었다.


장기를 두거나 자기들끼리 떠드는 몇몇을 제외하곤 모두가 정천처럼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와 또래간의 연회가 처음이었던 정천은 이 연회의 분위기가 젊은이들끼리의 화끈한 연회보다는 원로원의 식당과 비슷하단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차라리 그 때 연회에서 빠져 나갔어야만 했다. 정천은 그렇게 생각했다.


쾅!


“뭐야, 싸움이야? 나도 끼어야지!”


그랬다면 주방에서 남은 음식이나 퍼먹던 전직 낭왕이 남궁가주의 뒤통수를 갈기는 장면을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 아닌가.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


차라리 이 때라도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모든 강호 만민의 궁금증이었던, 화산의 검이 더 센가 무당의 검이 더 센가에 대한 답을 보고 있진 않았을 테니까.


[그럼 걱정 없구만! 다들 술이나 한 잔씩 걸칩시다!]


아니, 최소한 전전대 팽가주가 날라왔을 때 흥이 깨졌다고 나갔어야만 했다.


우르르... 쾅!


번개와 해일. 두 거대한 자연재해가 왜 제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지 정천은 도무지 이해하질 못했다.


그리고 회상이 점차 끝나... 가장 멍청한 짓을 했던 때까지 돌아왔다.


[... 무림말학이 여러 고인분들의 회포를 방해한 듯 합니다....]

아니,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정천이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정천이 눈여겨 본 탈출구에 신승의 여래신장이 떨어졌다.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검후와 싸우다 여래신장의 경로가 꺾였기 때문이었다.


“소협... 이리로, 빨리.”


고민과 혼란에 빠진 정천에게 부드러운 손이 닿았다.


이전번 무림맹의 정원에서 웬 꽃에 갇혀 있었던 중성적인 소년이었다. 그는 용케도 난장판 사이를 기어와 정천의 손을 잡고는 어딘가로 이끌었다.


그곳은 원래 독고진선, 아니 검선이 앉아 있던 자리였다. 그리고 그곳은 탈출구라기보단 이 난장판의 중심에 가까웠다.


“하하, 거기 가만히 있는 것보다 여기가 더 명당이긴 하지. 화화가 참 심성이 고와.”


부채로 실실거리는 제 입을 가린 전전대 제갈가주, 현 원로원주가 소년을 칭찬했다.


그녀의 고운 눈매가 둥그래지자 정천은 잠깐 제 앞에서 부채질하는 여인의 나이가 제 나이의 다섯배는 된다는 것도 까먹었다.


그러나 저 등 뒤의 소년이 자신을 속인 것은 까먹지 않았다.


“저... 대?협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할지...”


“흐하하, 말 참 재밌게 하는구나. 내 이름을 듣고 싶으냐?”


그녀는 조용히 술 한 잔을 비우고 장기판 위의 주인 없는 포를 움직였다.


“절정의 끝까지는 달한 것처럼 보이는데... 어때. 이게 눈으로 보이나?”


정천은 그녀의 손 끝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곳에는 상대의 차를 먹어치우는 포만 보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요, 보이지 않습니다.”


“참하군. 나도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네.”


정천은 점차 이 자리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민일세. 제갈민. 호는 비룡이니 원하는 대로 부르시게. 그리고, 재능있는 후기지수를 보게 되어 반갑네.”


제갈민의 손이 빨라지더니 순식간에 상대편의 사, 병, 포를 지나 왕에게 장군을 걸었다. 그녀는 웃으며 소매자락으로 가려진 손을 내밀었다.


“예... 알겠습니다 제갈민 대협.”


정천이 듣기로 이번 용봉지회에 참가한 미인들에 대한 소문은 단 둘에 대한 소문 밖에는 없었다.


비무가 시작할 때가 되면 데굴데굴 굴러왔기에 흙먼지를 뒤집어 썼음에도 그 미모를 자랑하는 개봉 소속의 연봉(蓮峯)과 그 흑단같은 머릿결과 아름다운 검식으로 유명한 검봉(劍峯).


하지만 눈 앞의 제갈민은 결코 그 둘에 비해 부족하지 않았다. 제각각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딱 그 정도의 차이밖엔 없었다.


정천은 옆에서 터지는 폭죽 때문에 붉그스레해진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옆에서 조그마한 손이 끼어들었다.


“반가워. 나는...”


옆에서 장기를 두고 있던 여인이 끼어들었다.


“화화.”


“맞아! 화화에요. 다른 친구들은 저를 화화공자라고 부르죠.”


정천은 일부러 그 손을 피했다. 이곳이 굉장한 고수들의 떼싸움을 보긴 명당자리였으나. 아직 다 낫지도 않은 몸으로 명당에 와서 더 고통만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나랑은 이야기하기 싫은가?.”


정천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지만 겉으로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저... 8강 때 신승 거사와 싸우다가 몸을 무리해서...”


“아하, 그거 때문에 술잔도 제대로 못 짚고 벌벌 떨고 있었구나? 불쌍해라...”


그 말을 들은 소년은 안심하라는 듯 정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정천의 몸에 막대한 양의 진기가 빨려 들어왔다. 이질적인 진기가 아니라 순수한 몸의 생명력을 추출한 것처럼 진한 생명력이 빨려 들어왔다.


“이 이거...”


텁.


“쉿, 조용히 운기하렴.”


제갈민의 손이 정천의 입을 막았다. 본래 운기행공을 하며 입을 막는 게 상식인 것처럼 소년이 준 생명력도 입을 열면 점차 빠져나갔다.


정천의 몸 속 온갖 근육, 혈도, 심지어는 상처난 단전에까지 생명력이 깃들었다.


이종진기였다면 반발과 함께 주화입마가 왔겠지만 소년이 넘겨준 생명력은 그런 구애를 받지 않고 단전을 치료했다.


“하하, 이젠 조금 괜찮나? 반가우이. 나는... 으음... 내 이름은...”


“화화, 그리고 저번에는 소향... 이라고 하셨습니다. 대협.”


정천의 말에 드디어 기억이 났다는 듯 소향이 너스레를 떨었다.


“아아, 맞아! 자네 저번에 나를 구해준 그 청년이었구만? 아 이거 참 인연이 깊군.”


정천은 일단 감사의 포권지례를 올렸다.


“몸이 많이 상해 있었는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협.”


“뭘, 자네가 나를 구해준 게 있는데. 이건 비밀이지만... 나는 사실 말리꽃을 못 꺾는 병이 있다네.”


나는 그에게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짧게 운기행공을 한 것만으로도 몸에 생긴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근육은 다치고 나아지며 성장하나 혈도와 단전은 다르다. 그들은 한 번 다치거나 망가지면 정천처럼 치료와 회복에 자신 있는 심공을 연공하더라도 치료하는데 오래 걸린다.


하지만 지금 정천은 기사를 목격했다. 단전이 이전보다도 더 견고해져 있었던 것이다.


“작은 선물일세. 그럼, 이제 저 명승부나 천천히 지켜보자고.”


소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난장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검후가 먹던 닭고기를 뜯어먹었다. 그리고는 옆에서 잔 하나를 가져와 술을 들이켰다.


맛있는 고기, 술, 그리고 멋들어진 비무까지.


정천은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길게 이어진 싸움은 반 시진이 지나고 천명누각이 무너지는 소리에 놀라 달려온 무림맹주에 의해 끝이 났다.



****



“아니 어르신들! 저도 사람이에요 사람! 사람 이전에 무림맹주고요! 이러시면 저도...”


“야, 야, 저기 전대 남궁가주 좀 깨워봐. 그리고 선무야 너도 좀 말이 심하다. 우리가 아무리 좀 시끄럽게 놀았어도 그렇게 서운하게 대하냐.”


현직 무림맹주 남궁선무의 생존을 위한 절규가 검선에게는 닿지 않았는지 그는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나이와 배분을 들먹였다.


“그리고 선무야. 한 번 생각해봐라. 네가 막 신나게 연무장에서 놀고 있는데 어린 가솔들이 와서 너를 말리고, 가주님! 연무장을 좀 조용히 써 주십시오! 이러면 너는 어쩌겠냐? 어?”


“아니... 진인, 이게 그런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여긴 천명누각입니다. 천명누각... 개봉의 명물이라고요...”


남궁선무는 결국 최후의 수단을 썼다. 신승을 바라보며 점차 횡해지고 있는 제 머리숱을 가르킨 것이다.


“진인...! 제발 제 사정 좀 생각해 주십쇼... 이 머리를 좀만 봐 주세요. 맹주 된 지 3년 만에 이렇게 빠졌습니다. 진인도 제 고민 아시잖아요...!”


험험, 여러 곳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공유했던 고수들과 현재 진행형으로 공유하고 있는 신승이 검선에게 눈치를 줬다.


“아이고... 그래 알겠다. 그러면 나랑 저기 화산 말코놈이랑 같이 나눠서 낼게. 그럼 되겠느냐?”


“진인... 혹시 여기 수리비가 얼마인 줄은 아십니까?”


“무림 영웅 할인은 해 준 금액일 테니 그닥 신경쓰지 않는다.”


“진인... 아이고, 억...!”


결국 남궁선무는 뒷목을 잡는 시늉까지 한 끝에서야 검선에게 전액 보상해 주겠다는 확언을 들을 수 있었다.


남궁선무가 터덜터덜 돌아간 뒤, 그들은 잠시 다 날라간 천명누각 터에서 대담을 나눴다.


“자, 그러면... 이 천명누각을 날리고 최종 승자가 된 우리 자랑스러운 호랑말코의 말을 듣고, 이번 용봉지회 피로연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더 말 하고 싶은 친우가 있다면 나와서 여래신장 한 번씩 맞고 발언 시작하세요. 없습니까?”


신승이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하자 정천의 의사와 상관 없이 정천의 거처를 정하기 위한 대담이 시작되었다.


“싱싱한 후기지수랑 비무하고 싶어하는 우리 반동회 회원분들의 마음은 제가 잘 압니다. 그런데, 애가 아직 화경은 안 된거 같은데 우리 천천히 생각해보죠. 얘 상대로 힘 조절 하면서 비무할 수 있는 사람만 나와보세요.”


제갈가주와 검후, 걸선녀가 손을 들었지만 검선은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제안합니다. 딱 보니까 애가 싹수도 보이고 하는데. 적당히 저희 옆에 두고 무림의 경험을 쌓게 해주면서 비무는 때 되면 하죠. 어떻습니까?”


검선의 말에 이팔위가 질문했다.


“그렇게 하면 제일 처음 맡는 사람은 누굽니까?”


“그걸 위해서 저 천명누각까지 날렸는데 누구겠습니까?”


청진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 영감탱이야! 그냥 사실대로 말해! 내가 먼저 저 후기지수와 비무해 보겠다. 딱 말을 하라고 그냥!”


“정확히 언제까지 데리고 있겠다는 겐가? 기간 정하고 가세.”


“나는 그냥 절정인 상태에서도 비무해보고 싶은데 안되겠나? 한 번 해 본 입장에서는 저거 물건이던데?”


여러 반발 의견이 튀어나왔지만 검선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젊은 백도의 동량에게 자꾸 나이값 못하고 작업 거시는 분들 있는데 이거 잘못하면 족보가 꼬일대로 꼬이는 일이니까 괜히 젊어진 얼굴로 애 꼬시지 마시고 그냥 가십쇼. 예.”


남궁가주가 손을 들었다.


“우리 미희는 족보 꼬일 걱정도 없는데 괜찮나?”


탁!


“적당히 좀 끼어 이 사람아. 걔 아직 여덟 살이야.”


무선자에게 손을 얻어맞은 남궁가주가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서자 대충 의견이 규합되었다고 여긴 검선이 정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 그럼 이견 없으신 걸로 알고, 이 유망한 후기지수는 제가 먼저 잘 관리하다가 보내겠습니다. 이상 없죠?”


그 때, 남궁가주의 뒤통수를 후렸다가 역으로 제 머리를 맞고는 이제야 깨어난 낭왕이 번쩍 손을 들었다.


“야, 야, 잠시만! 지금 뭐하자는 거야!”


검선은 골머리를 싸매며 물었다.


“너는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내가 쟤 대부(代父)인데 왜 나를 빼 놓고 쟤 처사를 논해! 그리고 애 의견도 들어봐야 할 거 아니야 이 못난 놈들아!”


칼로 대화하고 근육으로 뇌가 이루어진 낭왕이 어쩐 일로 저렇게 정상적인 의견을?


신승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맞는 말 같은데, 우리가 너무 성급하게 일을 벌렸구만. 본인의 의사를 먼저 물어봐도 되었을 텐데 말이야. 그래, 자네 이름이...”


“정천! 내가 딱 기억하고 있지. 애 이름이 참 좋아.”


팽도가 칼을 휭휭 휘두르며 대답했다. 정천은 그제서야 돌아온 발언권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무공광, 치매, 할머니들...


별에 별 정신 이상자들 사이에서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사람을 지지해야만 살길이 트인다. 정천은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일단 극단적인 후보들을 지우고, 정천은 총 세 명의 후보를 골라냈다.


신승 거사, 제갈민 대협, 그리고... 낭왕.


“제 생각에는...”


꿀꺽.


장내의 모든 고수들의 이목이 쏠렸다.


“저는, 이분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작가의말

또 9천자네요


분량조절! 대실패!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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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 구주팔황 복잡기괴(九州八荒 複雜奇怪) +3 21.12.31 195 8 12쪽
11 3. 구주팔황 복잡기괴(九州八荒 複雜奇怪) 21.12.30 213 9 9쪽
10 2. 기괴(奇怪) +1 21.12.29 230 11 14쪽
9 2. 기괴(奇怪) 21.12.28 224 8 10쪽
8 2. 기괴(奇怪) 21.12.27 242 9 12쪽
7 2. 기괴(奇怪) 21.12.25 253 14 11쪽
6 2. 기괴(奇怪) 21.12.24 288 16 10쪽
5 2. 기괴(奇怪) 21.12.23 361 16 10쪽
4 1. 입신(立申) +1 21.12.22 397 13 10쪽
3 1. 입신(立申) 21.12.21 476 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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