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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아지박이 님의 서재입니다.

반로환동이 너무 많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통무
작품등록일 :
2021.12.15 15:43
최근연재일 :
2022.01.22 23:59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6,745
추천수 :
365
글자수 :
166,778

작성
21.12.30 23:32
조회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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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9쪽

3. 구주팔황 복잡기괴(九州八荒 複雜奇怪)

DUMMY

벌떡...!


정천은 치덕치덕 발라진 고약과 빽빽하게 들어찬 침을 무시하고 몸을 일으켰다. 한껏 무리한 팔과 눈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몸 상태보다는 무기의 상태가 더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어, 어 지금 일어나시면 안됩니다. 몸이 다 아작...“


말리는 의원을 한번 쳐다본 정천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제 무기들을 찾아 나섰다.


칼과 창, 도끼와 검은 제 옆에 있었지만 입고 있던 천잠보의와 수레에 실어 놓았던 무기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제 나머지 무기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의원은 익숙하다는 듯 길을 설명해줬다. 의객당을 지나서 말리꽃이 아름다운 정원 맞은 편에 기절해서 실려온 참가자들의 짐을 맡아놓는 곳이 있다고.


정천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자리에 있던 붕대를 제 등에 감았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무기를 묶어둘 공간을 만든 정천은 천천히 무기들을 붕대에 꽂았다.


익숙한 무게감에 만족한 정천은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의객당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의원의 말대로 말리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특유의 향을 자랑하는 이국적인 화원이 보였다.


평범한 사람보다 민감한 무인의 코에는 너무 자극적인 향기를 내뿜었지만, 그 특유의 향기는 공자의 말을 무시하듯 정도를 지나쳤음에도 아름다운 향을 뿜어냈다.


조부와 함께 산에서 살 적에는 이렇게까지 향기로운 꽃을 보지 못해서일까? 정천은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자신의 무기를 찾으러 가지 못하고 정원에서 꽃을 보고 있었다.


”자네도 이런 거 좋아하나?“


정말 꽃 향기에 홀렸는지 말리꽃 덤불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정천은 귀신에 홀렸나 싶어 내력을 주위에 흘려보냈다. 역시 사람이었다.


”그닥 좋아하진 않소. 어쩌다 꽃 향기가 산들바람에 섞여오면 멈춰설 뿐.“


정천의 대답을 들은 목소리는 재밌는 놈을 본다는 듯 웃어댔다.


”하하하, 대답을 참 성의있게 하는 친구로군.“


”그것보다 이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어떻겠소?“


”미안하군. 내 지금 나오지 못할 사정이 좀 있네.“


”사정?“


무슨 수풀 깊숙한 곳에서 옷이라도 풀어 헤친 것인가? 아니면 무슨 사정이 있겠는가.


”그... 혹시 이 말리화를 조금 떼어내 줄 수 있겠는가? 내가 몸을 일으키면 뿌리부터 뽑힐 것 같으이.“


그제서야 정천은 기감을 더 자세히 뻗쳐 주위의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자 자신의 등을 볼 수 있는 관점에서 이 정원을 살펴볼 수 있었다.


거대한 나무를 중심으로 구성된 정원의 꽃은 말리꽃이었다. 향기롭고 이국적인 꽃은 정원의 곳곳에 흐드러지게 피어 그림으로 그린 듯한 정원의 눈이 되었고, 그 말리꽃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군락 속에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아니... 거기 어떻게 누울 수 있는 게요?“


합리적인 의문이었다. 남자가 누워있는 말리화 군락은 길게 늘어져 남자를 감싸듯 피어 있었는데, 그 사이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법한 구멍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땅에서 솟았느냐 하기도 그런 것이, 땅에 뻗은 말리꽃의 뿌리는 한 줄기도 상하지 않고 싱싱하게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 조금의 사정이 있네. 혹시 괜찮다면 이 꽃들을 다치지 않게 치워줄 수 있겠는가?“


정천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승낙했다. 어처피 무기는 어디로 가지 않는다. 만약 무기를 어디로 도망하게 한 사람이 있더라도 곧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몸이 되리라.


”좋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알려줌세. 잘 듣고 따라하면 될 테니 그리 하시게나.“


남자는 마치 손자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처럼 정천에게 꽃을 상하게 하지 않고 치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정천은 몸에 매달린 단검을 통해 땅을 파고 잔뿌리만 베어내는 등 남자의 방법을 그대로 따랐다.


그렇게 점차 말리꽃 군락이 풀어 헤쳐지기 시작했고, 푸근하기 그지 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더 강해졌다.


”하하하, 꽃을 잘 살피는 것 보니 요즘 보기 드문 젊은이구만.“


젊은 소년의 몸에 늙디 늙은 노인의 영혼을 집어 넣은 듯한 말에 정천은 이질감을 느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이상한 것으로 따지면 이립의 나이도 되지 않아 절정의 벽을 너머 화경의 벽을 보고 있는 자신이 더 이상한 놈 아닌가.


이질감을 무시하고 모든 말리꽃 군락을 해체한 정천의 눈 앞에는 소년이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소녀라고 하기에도 조금 이질적인 사람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고맙네. 내 이름은... 음, 내 이름은...“


하지만 그는 이내 내밀던 손도 거둔 채 자신의 이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이름이라는 게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이름... 이름...“


그렇게 잠시동안 고민하던 소년은 해맑게 웃으며 고백했다.


”모르겠군! 자네 마음대로 부르게. 그래, 말리꽃 때문에 보았으니 소형(素馨)이라 부르게. 그게 좋겠군.“


정천은 이제야 소형을 구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지금 보니 저 소형이라는 소년도 자신을 기절시켰던 주관후라는 광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놈이 아닐까 고민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소형이라 부르겠네. 아무튼 다음부터는 저렇게 꽃 사이에 둘러 쌓여 있진 말라고. 그럼 이만...“


턱.


”하하, 아직 소개도 하지 못했는데 뭐 이리 급한가? 반갑네 내 이름은... 이름... 내 이름은...“


‘정신이 나갔군.’


짧은 감평을 마친 정천은 진짜로 도망가기 위해서 경신법을 발휘했다. 여러 무기를 바꿔가면서 싸우려면 통통 튀기는 듯한 경신법이 필수였고, 그 말은 즉 한 번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소리였다.




”하하,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나? 몸도 성치 않은 것 같은데. 그리고 등 뒤에는 무슨 무기를 그리... 무기..?“


정천은 제 손목을 붙잡은 팔을 떼어내려고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두통을 호소하는 소형이 붙잡은 손을 풀고 제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정말 주관후보다 정신 나간 사람이구나 생각하던 정천은 다시 경신법을 사용하며 몰래 발을 빼내려 했다.


턱.


또 다시 소형에게 잡혀버렸지만.


‘뭐 하는 놈이야?’


용봉지회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기인열전을 차려도 될 만큼 기이하면서도 강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다 하나같이 머리에 꽃이라도 꽂은 것처럼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으음...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나를 구해준 보답은 해야겠지. 잘못하다가는 연회에 참가하지도 못할 뻔 했으니.“


용봉지회는 시작할 때부터 그 막을 내릴 때까지 화려하고도 웅장한 연회와 함께한다. 지역 유지가 열어재끼는 연회부터 서로 의기투합한 세력들이 열어대는 연회까지, 세어 보자면 저 황하의 모래알보다 많은 연회가 개봉을 둘러싸는 것이다.


”보아하니 몸도 성치 않아 보이는데 이리로 와 보겠나?“


정천이 말을 따르지 않자 소형은 한 순간 뛰어올라 정천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소형의 손목에서 올라온 막대한 내공이 푸르른 연기의 형태로 기화해 정천의 온 몸을 감쌌다.


”이 무슨...!“


”쉿, 조용히 하시게. 들이마시면 또 곤란해지니.“


푸른 연기는 천천히 정천의 몸을 감싸더니 이내 몸 속으로 흡수되며 밝은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빛과 연기에 감싸인 정천의 피부가 훈제를 당하는 오리고기처럼 붉어지기 시작했다.


”읍. 으읍...!“


정천이 뭐라 했지만 소형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연기를 내뿜었다. 이내 붉어졌던 정천의 피부가 다시 원래 색을 되찾았고, 그 피부 속에 있던 근육과 혈도의 상처도 빠르게 나아지기 시작했다.


”자, 다 되었네. 앞으로는 싸울 때 몸을 좀 생각하면서 싸우시게나. 다음에 또 다치... 윽... 또 머리가...“


정천은 손을 꽉 쥐어보며 몸 상태를 확인했다.


절호조.


마치 1주일 간 몸 상태를 끌어올리기라도 한 듯, 몸에는 활력이 넘치고 눈에는 다시 총기가 돌아왔다. 게다가 성치 않았던 혈도조차 멀쩡한 상태로 돌아왔다. 말 그대로 시간을 되돌린 듯한 이적이었다.


”...윽, 아무튼 만나서 반가웠고, 도와줘서 고마웠네. 다음에 보세.“


소형은 한 순간에 연기처럼 몸이 흩어지며 사라졌다. 정천은 그 광경을 보고 조금 시간이 흘러서야 자신이 본 것이 신법의 극의 중 하나라던 이형환위의 수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허, 아무래도 내 운세가 심히 꼬였나보군.“


나쁜 운세도, 좋은 운세도 같이 오는 것이 사람 운세라지만, 그 낙차가 너무 크다면 기구한 운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어릴 적의 기억을 되살리며 의객당의 접수처로 향했다. 그렇게 정천은 전신에 온갖가지 무기를 묶어맨 채로 수십 배로 불어나 있을 제 돈을 찾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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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구주팔황 복잡기괴(九州八荒 複雜奇怪) 21.12.30 213 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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