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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아지박이 님의 서재입니다.

반로환동이 너무 많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통무
작품등록일 :
2021.12.15 15:43
최근연재일 :
2022.01.22 23:5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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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6,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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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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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 기괴(奇怪)

DUMMY

탕마검노 정명수의 장례 겸 제사는 생각보다도 더 빨리 끝났다.


애초에 장례에서 가장 중요한 묫자리 선정부터 염습까지 이미 정천 혼자서 끝낸 뒤였기에 정가장에서 할 만한 의례가 없던 것도 한 몫 했다.


그 이면에는 탕마검노의 죽음으로 인한 잡음이나 외부의 간섭을 막기 위한 정치적 공작이 있기도 했지만 어쨌든 탕마검노의 정치적 후계자와 무공적 후계자가 합심했으니 탕마검노의 제사는 가문 내에서 조용히 치러졌다.


그렇게 5일간 이어진 장례가 끝나자 평안한 정가장을 어지럽혔던 미꾸라지가 더 넓은 강과 호수(江湖)를 향해 길을 떠났다.


목적지는 개봉, 무림맹의 본부가 있는 곳이자 수많은 무림의 명숙들과 젊은 용봉들이 모이는 번화가였다.


***


긴 장대 위에서부터 시작된 등불이 고수의 눈으로도 끝을 쫓기 힘들 만큼 길게 늘어져 사람들이 신나게 먹고 떠드는 번화가를 밝게 비췄다.


빛 아래에서는 여러 개의 공을 휙휙 던지고 받고 하며 입에서는 불을 뿜어내는 곡예꾼들이 환호성을 키웠고, 그 옆에서는 달짝지근한 물엿이 발린 사과가 붉게 빛나며 거리의 사람들을 유혹했다.


달달한 향기의 뒤편에서는 호재를 맞은 도박장들과 홍등가의 사람들이 손이나 아랫도리를 놀렸고, 밤이 깊어 열기가 뜨거워 졌을 때, 사천당가와 벽력문의 사람들이 춘절 용으로 준비했던 폭죽을 거하게 터트려 주변의 귀신을 내쫒았다.


시장 상인들은 폭죽 소리보다 크게 외치며 관광객들을 끌었으니 그야말로 거대한 축제의 한복판이었다. 다른 축제와 다른 점이라면 축제라면 한 번쯤은 있을 법한 무림인들의 행패가 그닥 적었다는 것이다.


시골에서는 나 무림인이요, 나 고수요 하던 이들도 칼을 다소곳하게 착용하고 주위를 그저 구경하기에 바빴다.


이곳은 개봉.


지나가다가 보는 사람들 중 하나는 절정의 무인이요, 운이 좋거나, 혹 나쁘면 화경의 무인들과 지나칠 수도 있는 무의 도시였으니까.


그런 개봉에서 제 무기를 마음껏 과시하며 시장을 구경하는 부류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저것 봐, 화산의 행렬이다...!”

“해남파도 이번 용봉지회 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이군!”


첫 번째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로 대표되는 거대 문파들의 일원으로써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고...


‘거 참, 무기를 조금 놓고 올 걸 그랬나?’


두 번째는 자신이 몸에 패용하고 있는 무기가 워낙 많아서 조심하고 있음에도 사람들과 툭툭 걸리는 경우다.


정천은 조금 부끄러워졌다.


사실 산이나 관도를 걸을 때는 어쩐 일인지 사람들이 제 주위로 오려고 하질 않아서 잘 몰랐지만, 총 13개나 되는 무기들을 수레도 아니고 제 몸에 붙이고 다니는 이상 교통 체증을 일으키는 체질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몇 번이나 따가운 시선이나 시비를 받아왔던 정천은 어울리지 않게 깊숙이 고개 숙여 사과하고는 일을 무마했다.


아무래도 이 상태로는 축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정천은 제 짐을 맡겨놨던 객잔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찰나... 일이 터졌다.


툭, 정천의 길다란 창간이 아리따운 소저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말 그대로 스치고 지나갔다고 할 법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 소저의 옆에 술을 한잔 걸치고는 자기를 과시하고 싶었던 사내가 붙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소저. 제가 이런 축제에 익숙치 않아서."


"익숙치 않다? 그게 아리따운 소저의 몸을 희롱하고 나올 말입니까?"


눈으로 보는 것까지 희롱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었지만, 한 척의 키 차이 때문에 소저의 모습을 본다고 해도 정수리가 고작이었던 정천은 일을 대충 뭉개고 넘어가려 했다.


세상에 가장 쓸데 없는 일이 술 마시고 옆에 여자를 낀 남자의 시비를 받아주는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감한 정천은 주위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시선을 받고는 몸을 슬슬 빼냈다.


"죄송하지만 급한 일이 있어서..."


턱.


하지만 이 인파 속을, 그것도 온갖 무기를 덕지덕지 달고서 빠져나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남자는 정천의 창간을 잡아 길을 막을 수 있었다.


"사과하고 가시오."


정천은 짜증이 났지만, 그와 동시에 기이한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악의라고 하기엔 너무 말랑하고, 호의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금 미심쩍은 시선이 정천과 술 취한 남자 사이로 들어섰다.


"사과는 아까 하였습니다만, 정중한 사과를 원하신다면... 죄송합니다 소저, 제가 몸에 달고 다니는 무기가 많아 소녀의 옷깃을 스쳤습니다."


"진정성이 없잖소, 진정성이!"


뚝, 주위의 호객행위가 잠시 멈췄다. 무림인이고 평민이고 상관없이 싸움 구경은 퍽 흥미진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천에게 가해지는 의미심장한 시선도 같이 강해졌다. 사람의 눈이 몰리지만 않았더라도 기세로 누르고 갈 길을 가려고 했던 정천의 상황이 마땅치 않게 되었다.


"그러면 제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길 가다가 옷깃을 스친 것 만으로도 어찌 더 사과를 해야 한단 말입니까."


"허허, 희롱을 하지 않았소 희롱을!"


정천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허벅지에 내걸린 단검을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더니, 이 무림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희롱으로 바뀌었습니까?"


"아니 이 사람이...!"


이제는 문답무용, 정천은 저 얼간이가 무슨 뒷배를 믿고 저렇게 안하무인하게 구는 줄 모르겠지만 팔 한 쪽이라도 날아가면 천천히 회상할 기회가 있으리라 결심하고는 왼쪽 옆구리에 걸린 도끼를 꺼내들려 했다.


"이 일은 네가 먼저 자초했으니 가문의 어른들에게..."


턱!


누군가 도끼를 허리에서 꺼내려고 하는 그 찰나에 정천의 손과 남자의 팔을 동시에 움켜쥐었다.


흰 도포와 깔끔한 도관을 쓴 청년의 손아귀는 정천이 쉽게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억세었고, 그 입가에 미묘한 웃음이 걸려 있는 것이 이 상황이 너무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청년의 태양혈은 크게 부풀지 않았음에도 정천은 저 청년에게 제 할아버지에게서나 느낄 법한 위압감을 느꼈다.


"허허, 이러면 쓰나. 무림의 젊은... 킥, 동도들이 말이야."


신기하게도 청년이 정천과 남자 사이의 다툼을 말리자 주위의 구경꾼들은 더 눈이 밝아져서 앞으로의 전개를 궁금해 했지만 조금 더 멀리서 지켜보던 의미심장한 시선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아쉬움?'


먼 거리에서도 전해지는 감정에 정천이 의문을 가질 찰나, 남자의 다른 쪽 손이 청년의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갔다.


"넌 또 누구... 아아악!"


시건방진 짓을 하려는 남자의 팔목에 청량한 기운이 들어찼다. 물론 남자의 의지대로 들어찬 것은 아니었고, 청년의 내공은 남자의 팔에 들어가 마음껏 난동을 부렸다.


"천대주가 자식 교육 하나는 제대로 못 시킨 모양이군. 입이 이렇게 험해서는... 쯧쯧."


그는 청년같은 외모로 참 장강의 앞물결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런 고루한 사고방식은 청년이 쉽게 익힐 수 있는 게 아니건만 그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에게 익숙하게 훈계했다.


"...그리하여 인생이란 것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니 장차 자네의 친구가 되거나 귀인이 될만한..."


문제는 훈계하는 것이 어찌나 익숙한지 예와 의에 대한 주제로부터 시작해서 장강의 물결이 푸르고 황하의 물결이 누런 이유까지 강의를 시작하고 있었으니, 싸움을 구경하려던 사람들 중 대다수가 제 갈길을 가고 도가의 사람들만이 강의에 감동하여 남아 있었다.


"알겠나? 그리고 주정은 내 배출해 놓았으니 천천히 갈 길 가시게나. 그리고 소저도 이런 일이 있을 때 아녀자로써 잘 보필을 해야만 하니 이는 남자가 양이요 여자가... 이런, 말이 너무 길어지겠구려. 아무튼 잘 가시오."


술에서 깬 남자는 자신의 앞에 있는 청년이 최소한 절정의 고수라는 사실을 깨닫고 옆에 있는 여자를 챙기며 자리를 후다닥 빠져나갔다.


"그래도 제 여자는 챙기는군. 머저리 중에서도 최악은 아니었어."


그렇게 짧은 논평을 마친 청년은 이내 정천에게도 말을 건냈다.


"자네도 조금 심했네. 아무리 저 아해가 그런다고 해도 어찌 사람 팔을 자르려 하는가."


뜨끔하기보단 소름이 돋았다. 저 청년의 말은 정천의 투로를 꿰뚫어봤다는 소리였으니까.


"당신은 누구인데 그런 말을 하시오? 나를 아는가?"


정천이 묻자,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쩌렁쩌렁한 웃음소리만이 넓게 퍼졌다.


"크하하하! 자네 등 뒤에 있는 무기들이나 치우고 발뺌을 하시게. 그 눈깔 나간 거지가 아닌 이상 누가 자네를 모르겠나."


등 뒤의 무기? 정천은 다시 한 번 무언가를 물어보려 했지만 청년은 나타났던 것보다 더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는 자신이 떠난 자리에 의념을 남겼다.


[오랜만에 붕우를 보니 반갑군. 다른 이들도 이번 용봉지회의 피로연에 나가고자 하니, 자네도 최소한 15명 이내에 들게나. 장원은 못하더라도 탐화는 노리겠지? 쉽진 않을 게야.]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긴 청년이 떠나갔다.


이 때라도 정천은 개봉을 떠났어야만 했다. 청년이 떠난 뒤 제 객잔으로 가서 무기에 특별한 의식을 치룰 것이 아니라 이 축제만 구경하고서 떠났어야만 했지만...


정천은 그것을 몰랐다.


작가의말

연재시간 9시 정도로 늦춰야 겠네요..

글은 2시간이면 써지는 데 뭔가 8시에 하니까 걸리는 게 많아요.


아니면 차라리 일요일에 시간을 내서 비축분 하나 내야 할 것도 같네요.


그리고 이벤트도 공지에 올려야 할까요? 추천이 너무 늘어나면 어쩌지...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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