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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탕 님의 서재입니다.

자수성가 했는데 빙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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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탕
작품등록일 :
2024.02.21 15:08
최근연재일 :
2024.04.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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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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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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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직 퀘스트

DUMMY

#004화





“헉!”


놀라움에 숨을 삼킨다.

일주일간 운동과 마나 감응 훈련, 음악 연습을 쉬지 않고 해온 터라 온몸에 피로감이 가득하다.

하지만 내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를 보니 그 피로가 싹 날아가는 기분이다.


“드디어 떴다···!”


퀘스트를 받는 데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특히 전직 퀘스트의 경우, 직업에 해당하는 기술의 숙련도가 10을 달성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마나 감응력이나 체력은 고작 일주일로 성장을 보일 만한 부분도 아니지만, 빌어먹을 성장 제한 때문에 별 성과가 없다.

하지만 음악은 달랐다.

연주하면 연주하는 대로, 노래하면 노래하는 대로 실력이 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단순히 음정 박자를 잘 맞추는 것에서 끝이 아니다.

약해야 할 땐 약하게, 강해야 할 땐 강하게, 곡에 대해 확실하게 이해하고 능숙하게 기승전결을 이끈다.


▼ 특기

음악 : S

- 기타 숙련 10

- 가창 숙련 4

- 작곡 숙련 0

···

···

.


그렇게 열심히 숙련도를 올린 결과, 드디어 내 눈앞에 전직 퀘스트가 떠오른 것이다.

사실 게임과 현실이 다를 수도 있다 보니 설마 하기는 했다.

그러나 눈앞에 떡 하니 나타나주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클래스 음유시인(Bard) 전직 퀘스트.

- 수락하시겠습니까? Y/N

- 30초 후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면 자동 취소됩니다.」


나는 바로 Y를 선택한다.


띠링!


「퀘스트 : 음유시인의 길 1

내용 : 상급 음유시인을 만나세요.

기한 : 48시간.

보상 : 마력 +1, 퀘스트 음유시인의 길 2

실패 시 : 음유시인의 길 1 재수행 불가.」


<죽은 신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사소한 퀘스트에라도 실패 리스크가 주어진다.

퀘스트에 이 리스크를 주어주는 것으로 통해 게임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더 몰입하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물론 그 당시엔 내가 이곳에 이렇게 떨어지게 될 줄은 몰랐지···.

어쨌든 주어진 시간은 48시간.

그 안에 상급 음유시인을 만나지 못하면 음유시인 전직 퀘스트는 다시 받을 수 없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이든 라스테일이 망나니라 한들 권력을 쥔 공작가의 후계자다.

설마 공작령에 음유시인 한 명쯤 못 찾을까.

.

.

.

“···네?”


내가 잘못 들었나?


“그게··· 북부다 보니 날씨가 많이 춥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원래 음유시인들이 잘 드나들지 않기도 하고요···.”


벽과 진열대에 쭉 늘어서있는 다양한 악기들.

나무향이 확 풍기는 그 악기점에서 나는 뭉크의 절규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악기 상점 주인장 안드레스는 그런 나를 보며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조졌다.’


공작령 내에 상급 음유시인이 한 명도 없다고···?


“아니! 안 그래도 이 넓은 공작령 내에 음유시인이 한 명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나의 말에 안드레스는 제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게··· 최근 크로월 공작가에서 음유시인들을 좋은 조건에 고용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실력이 있다는 음유시인들은 다 그쪽으로 가버렸죠.”

“크, 크로월? 대체 왜?”

“그, 워낙에 연회를 즐기는 가문이지 않습니까. 악단도 직접 꾸릴 생각인지 저희 쪽에서도 악기를 꽤 사갔더군요.”


크로월 공작령이라면 나도 안다.

확실히 크로월 공작은 직접 악단을 꾸릴 정도로 파티를 좋아한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라스테일 공작령의 음유시인들이 크로월로 몰려들었다는 건 몰랐던 이야기다.

물론 크로월엔 음유시인에 대한 히든 퀘스트가 있을 정도로 음유시인과 연관이 깊은 곳이긴 하다.

하지만 그건 나중 얘기.

일단은 음유시인 전직이 제일 급한 문제였다.


“크로월 공작령은 여기서 마차를 타도 이틀 정도 거리였죠···?”

“예, 그렇지요···.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크로월 공작령입니다.”

“큭, 지금이라도···.”


당장 크로월로 달려갈까 하다가 멈칫한다.

하지만 남은 퀘스트 시간은 이제 47시간.

당장 크로월 공작령으로 달려가도 시간 안에 맞출 수 없다.


“안돼애애액!”

“도, 도련님···! 무슨 일이시길래···?”


초조해진 나는 안드레스의 손을 덥썩 잡았다.


“제, 제발! 근처 가까운 곳에 아는 음유시인 없어요? 진짜 진짜 급한 일인데···!”

“아무리 저한테 그러셔도···.”


안드레스는 그저 식은땀을 삐질 흘릴 뿐이었다.


***


옛말에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다.

일이 안되려면 하는 모든 일이 잘 안 풀리고 예상치 못한 불행까지 생긴다는 말이다.

얼마나 재수가 없는가. 뒤로 넘어졌는데 코가 깨지다니.

정말 불쌍하게 짝이 없다.

그리고 그 불쌍한 그놈이 바로 나다.


“그게 뭔 개소리야?”

“약초를 하나도 못 구했다던데요···.”


해가 저물어 어둑해진 공작령.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침실 안에서 나는 다시 한번 뭉크의 절규를 재현하고 있다.


“저기 내가 잘못들은 게 맞지?”

“음···, 제대로 들으신 것 같은 반응이네요.”

“대체 왜?”


자리에서 일어나 피터에게 다가간다. 일주일 내내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왔다.

게다가 오늘 음유시인을 찾기 위해 하루종일 공작령 내를 샅샅이 뒤졌다.

그 탓에 온몸이 박살날 것 같지만, 어떻게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


피터는 겁을 먹은 표정으로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야, 약초꾼들이 하나같이 뒷산에서 길을 잃었다던데요···?”

“엥? 약초꾼이 산에서 길을 잃는다고? 약초꾼들 제대로 고용한 거 맞아?”

“네! 제가 몇 번이고 확인했는걸요. 다들 경력이 20년 넘는 약초꾼들이었어요···.”

“망했다···!”


심각하다.

몹시 심각하다.


「음유시인의 길

- 남은 시간 : 33 시간」


시시각각 줄어드는 퀘스트 시간.

이대로면 음유시인으로 전직하는 것도 위험해진다.

거기다 ‘성장 비약’을 만드는 것조차 실패한다면 멸망을 막기는커녕 손가락만 빨다가 제일 먼저 사망할게 뻔하다.


초조함에 손톱을 깨물었다.


“아니야, 잠시만. 진정하자.”


물론 라스테일 공작령 뒷산이 ‘뒷산’ 치고 길이 조금 어렵고 험한 것은 맞다.

그렇다한들 경력이 20년이나 되는 약초꾼들이 하나같이 산에서 길을 잃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 약초꾼들이 일주일 내내 길도 못 찾았다고···?”


그때, 한 가지 가설이 내 뇌리를 스친다.


“설마···?”


어쩌면 이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출복을 꺼내 갈아입는다.


“어, 어? 도련님 뭐 하세요?!”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나를 만류하는 피터.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거야. 산에 간다.”

“도련님···! 여긴 북부라고요. 지금 이 밤에 산에 갔다가 길이라도 잃으면 얼어 죽어요. 방금 막 눈도 내리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얼어 죽으나, 이대로 손가락 빨다 죽으나 마찬가지야. 길은 아니까 걱정 말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 세계가 미래에 멸망할 거라는 말을 해봐야 미치광이 취급을 받을게 뻔하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옷을 마저 갈아입는다.


“아무튼 다녀올게.”

“끙, 그럼 저도 따라갈게요. 호위들도 부를테니 좀만 기다리세요.”

“아냐.”


나를 따라 외투를 가져오려는 피터를 막는다.


“나 혼자 다녀올게. 다른 사람들 끌고 가봐야 눈치 보여서 내 맘대로 못 움직일 거 아냐.”

“하, 하지만···.”

“맘에 걸리는 게 있어서 그래. 동틀 때까지 내가 안 돌아오면, 그때 사람들을 불러줘.”


한참 내 표정을 살피던 피터.

날 설득하기는 틀렸다고 판단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지, 진짜 믿어도 되는 거죠···?”

“걱정 마. 해 뜰 때까지는 반드시 돌아올게. 약속해.”


그렇게 당당하게 공작성을 빠져나온다.


***


뽀득, 뽀득.


30분 정도 걸었을까, 나올 땐 조금씩 내리던 눈이 지금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산길 위로 눈이 쌓이는 속도가 살벌할 정도다.

온몸이 욱신거리는 데다 날씨도 쌀쌀하다.

심지어 눈 때문에 걷는데 더 많은 힘이 든다. 경사에 미끄러질까 집중하느라 온몸에 더 힘이 들어간다.

물론 내일까지 기다릴 수도 있었다.


「음유시인의 길

- 남은 시간 : 31 시간」


하지만 내 눈앞에서 계속해서 줄어가는 퀘스트 기한을 보면 자연스레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하아, 하아···.”


숨을 한번 쉴 때마다 허연 입김이 뿜어졌다 흩어진다.

피터가 챙겨준 마공학 등불을 들고 나왔지만, 거세진 눈발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눈 위의 발자국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다.


“하··· 그냥 내일까지 기다릴 걸 그랬나···.”


이렇게 눈이 와버리면 약초도 제대로 캘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갈까 고민한다.

길을 따라왔으니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약초꾼들이 길을 그냥 잃었을 리가 없어.”


촉이 온다.

외면할 수 없는 한 가지 가설을 떠올리며 계속해 산길을 걷는다.


“어? 으아악!”


그동안 너무 무리해 온 탓이었을까.

다리의 힘이 풀리며 눈길에 미끄러진다.

나는 저항할 틈도 없이 산길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아야··· 아야야··· 아파라···.”


눈밭에 널부러진 채로 팔과 다리를 조금씩 움직여본다.

엉덩이가 무척 아프긴 하지만, 다행히 심하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주변을 더듬으며 등불을 찾지만, 미끄러지면서 어디로 던져버린 건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에휴, 내 팔자야.”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굴러 떨어져 버린 탓에 어디가 어느 방향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하···. 내일 다시 와야겠네.”


등불도 잃어버린 판국에 여기서 더 고집부리다가는 진짜 얼어 죽을 수도 있다.

경사진 산길이니 아랫길로만 내려가면 어떻게든 될 듯하다.

조심해서 밑으로 잘 내려갈 수밖에 없다 판단하고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이었다.


“···어?”


어디선가 들려오는 맑은 소리.

쏟아지는 눈 사이로 청량하고 둥근 소리가 아름다운 선율로 엮여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아니, 뛰었다.

나는, 이 소리를 알고 있었다.


“하악, 하악!”


점점 깊어지는 눈밭에 발이 푹푹 잠기고, 평탄하지 않은 길 때문에 몇 번이고 미끄러질 뻔한다.

저질스러운 체력과 피로감에 팔다리가 고통스럽게 삐걱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달린다.

맑은 현악기의 소리가 점점 커진다. 쌀쌀한 북부와는 어울리지 않는 따뜻하고 포근한 음색.

얼마나 달렸을까, 나는 어느새 눈이 그친 것을 깨달았다.

아니, 분명히 눈은 내리고 있다.

그저 ‘눈이 이곳으로 들어오지 못할’ 뿐.


조금 더 달리자, 은은한 달빛을 받아 창백하게 반짝이는 공터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들려오는 소리의 근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20년 경력이 넘은 베테랑 약초꾼들이 대낮에 길을 잃은 이유.

그것은 그들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그들이 이곳에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입장 불가의 결계.”


내가 아는 한, 이 결계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몇 되지 않는다.

뚝, 연주가 멈춘다.

공터에 앉아 갈색 로브를 뒤집어 쓴 한 사람의 뒷모습.

그 사람은 연주하던 류트를 한쪽에 내려놓고 천천히 일어났다.

로브를 걸쳤지만 그 왜소하고 아담한 몸의 실루엣은 가려지지 않는다.


그녀는 후드를 벗으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금빛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린다.

머리칼과 같은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온화한 인상의 여인.

나는 ‘그녀’를 알고 있다.


“아르웬 웨일로스.”

“이제야 만나네. 이든 라스테일.”


그녀 또한, 나를 알고 있다.


「음유시인의 길 1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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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0. 가짜 신 24.04.05 9 0 14쪽
60 59화. 가짜 신 24.04.04 10 0 12쪽
59 58화. 가짜 신 24.04.03 15 0 13쪽
58 57화. 가짜 신 24.04.02 13 0 12쪽
57 56화. 해적 소탕 24.04.01 16 0 13쪽
56 55화. 해적 소탕 24.03.31 13 0 13쪽
55 54화. 해적 소탕 24.03.31 14 0 12쪽
54 53화. 어비스 24.03.30 13 1 12쪽
53 52화. 어비스 24.03.30 12 1 12쪽
52 51화. 어비스 24.03.29 16 1 14쪽
51 50화. 어비스 24.03.28 11 1 12쪽
50 49화. 어비스 24.03.27 13 1 15쪽
49 48화. 어비스 24.03.26 14 1 16쪽
48 47화. 나를 죽여줘 24.03.25 16 0 13쪽
47 46. 나를 죽여줘 24.03.24 15 1 13쪽
46 45. 나를 죽여줘 24.03.24 16 1 15쪽
45 45. 나를 죽여줘 24.03.23 18 1 12쪽
44 44. 폭풍 날개 용병단 24.03.23 19 1 14쪽
43 43. 폭풍날개 용병단 24.03.22 17 1 13쪽
42 42. 얼어붙은 장미 24.03.21 18 2 13쪽
41 41. 얼어붙은 장미 24.03.20 16 1 12쪽
40 40. 얼어붙은 장미 24.03.19 17 1 13쪽
39 39. 얼어붙은 장미 24.03.18 19 1 19쪽
38 38. 얼어붙은 꽃봉오리 24.03.17 18 1 12쪽
37 37. 얼어붙은 꽃봉오리 24.03.17 20 1 17쪽
36 36. 얼어붙은 꽃봉오리 24.03.16 22 1 14쪽
35 35. 미인의 계략 24.03.16 23 1 13쪽
34 34. 미인의 계략 24.03.15 2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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