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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탕 님의 서재입니다.

자수성가 했는데 빙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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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탕
작품등록일 :
2024.02.21 15:08
최근연재일 :
2024.04.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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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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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3,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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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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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상에 이런 개망나니가 있나

DUMMY

#003화






디리링, 디리링, 방 안에 울려 퍼지는 고운 음색.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이든 라스테일의 몸은 어떤 코드든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빠르게 코드 전환을 해도 깔끔하고 정확한 소리가 났다.

어디 그뿐인가. 박자감각도 타고났다.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리듬이 무너지는 일이 없었다.


“저기, 도련님.”

“응?”

“이 악기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어, 기타.”

“아··· 대체 이 기타라는 건 언제 연습하신 거예요? 1년 넘게 이든님 옆에 있었지만 악기연습 하시는 걸 본 적이 없는데요.”


옆에서 하루 온종일 기타를 치고 있는 나를 보며 피터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하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을 치던 놈이 기타를 치고 있으니 이상하게 여길만 하다.

기타를 잘 다루게 된 것에 눈이 멀어 이런 의심을 사게 될 걸 염두에 두지 못했다.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말문이 막힌다.


“아! 그러고 보니 라스테일 공작부인께서 악기를 다루셨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기도 하고···.”

“어···! 어! 맞아! 엄마한테 배웠어. 어렸을 때, 어렸을 때.”


다행히 피터가 타이밍 좋게 던져준 정보를 덥썩 물어버린다.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 공작부인께서 꽤 오래전에 돌아가셨잖아요? 도련님이 7살 때였나?”

“원래 어렸을 때 배운 게 더 기억에 잘 남는 법이야. 조기교육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깐.”

“하긴, 저는 모르지만 공작부인께서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도련님께서 그 재능을 물려받으셨나 봐요.”

“어, 뭐, 그런 셈이지.”


그런 설정이 있었나?

내가 기억하는 라스테일 공작부인은 오래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설정이다.

스토리에 영향을 주는 인물이 아니기에 그것 말고 다른 서사를 부여하진 않은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노래도 곧잘 하셨다던데···.”

“노래?”


피터의 말에 뭔가가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음악이 S급인 이든이라면 노래도 잘하지 않을까?!

꿀꺽, 침을 삼킨다.

기대감에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적당한 음계를 잡아 소리를 내본다.

일단 2옥타브 파.


“아~.”


복부에 꽉 잡혀있는 호흡.

이 호흡은 적당한 압력을 타고 성대를 지난다.

그리고 연구개를 돌아 입천장을 타며 단단하고 안정적인 소리를 낸다.

정확히 한 점으로 쭉 뻗어나가는 소리.


‘이거다.’


원래 세계에서도 노래를 잘하고 싶어 보컬 트레이닝을 받기는 물론, 발성에 관련된 책과 영상이라면 모조리 찾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따라 하고 연습해도 좀처럼 안정적이고 듣기 좋은 소리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음역의 폭은 또 얼마나 좁았던가.

이번엔 음역대를 높여본다.

2옥타브 솔.


“아~.”


2옥타브 라.


“아~.”


2옥타브 시.


“아~.”


3옥타브 도···!


“아~!”


완벽하다.

전혀 힘들이지 않고 고음역을 깔끔하게 소화해 냈다.

이거라면··· 그 노래를 부르는 게 가능할지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뒤진다.


“어? 뭐 찾으세요?”

“응, 펜 좀 찾으려고.”

“아! 저한테 있어요.”


피터는 제 품에서 깃펜을 하나 꺼내 내게 건넨다.


“혹시 메모할 종이 같은 건 없어?”

“어··· 그건 없는데. 가져올까요?”

“아냐, 됐어.”


나는 마침 내 책상에 놓여있는 액자 하나를 발견한다.

액자 속 웬 여자의 초상화를 빼 뒤집었다.

다행히 뒤쪽은 백지다.


“어? 도련님! 그건···!”

“쉿, 조용히 해. 집중해야 하니까.”


옆에서 무슨 말을 하려던 피터를 만류하고, 내가 기억하는 가사를 쭉 써 내려간다.


“음, 좋아.”


잠시 뒤 가사를 다 쓴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지금의 나라면 평생소원이었던 이 노래를 완창 할 수 있을 터.


“아아! 흠! 흠!”


적당히 목을 풀고 천천히 노래를 시작한다.


“이대로, 널 보낼 수는 없다고. 밤을 새워, 간절히 기도했지만.”


자고로 남자라면 이 노래를 노래방에서 한 번쯤 불러봤을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고음과 그 고음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하는 헬난이도의 노래.

수많은 남자들이 이 노래에 도전했다가 좌절한 채, 쉰 목을 부여잡고 노래방을 나왔다는 썰은 드물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절절하고 가슴에 사무치는 슬픔을 노래한 희대의 명곡. 바로 만년의 사랑이었다.


“만년이 가도! 난 너를 잊을 수 없어! 사랑했기 때! 문~ 에~! 사랑했기 때! 무운! 에에에에에!”


약 5분이 안 되는 시간.

나는 이 노래를 완전히 몰입해서 끝까지 완창 했다.


“크흡···!”


감격스럽도다! 감격스럽도다!

평생의 소원이었던 이 노래를 이렇게 깔끔하게 소화하다니···!

이든의 몸은 음이 올라가면 올라가는 대로, 내려가면 내려가는 대로 귀신같이 가장 편한 소리길을 찾아낸다.

본능적으로 호흡량과 공명점을 적절하게 찾아 조절하는 것이다.


비록 너무 열창한 나머지 침이 튀어 가사를 적은 종이가 조금 젖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와···!”


옆에 있던 피터가 박수를 친다.


“대단해요! 도련님! 태어나서 이렇게 절절한 노래는 처음 들어봐요!”


피터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 씩 웃어 보인다.

이렇게 보니 순진하고 좋은 녀석이다.

나중에 듣고 알았지만 그 폭력적인 이든도 피터는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고분고분하면서도 망나니인 이든을 편견 없이 대하는 특유의 친근함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 것이다.

물론 녀석에게 주어진 [노예근성]과 [친화력] 특성의 영향이겠지만···.


“그런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형식의 음악이네요. 저도 음악을 많이 들어본 건 아니지만요.”

“그···렇겠지.”


당연한 이야기다.

아무리 여러 가지 현대적 요소를 녹였다 해도 이 세계는 엄연히 중세를 배경으로 한다.

마공학이 발달한 국가인 아이론포트면 모를까, 이곳 헤렌디아는 특히 중세적 배경이 강하다.

이런 세계에서 현대의 음악은 지나치게 낯설게 들릴 수밖에 없다.


물론 나만의 음악을 추구하며 유유자적하게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멸망을 막기 위해 강해져야 하고 그러려면 이 세계의 음악에도 익숙해져야만 한다.


‘음유시인의 스킬은 정해진 악보에 맞게 발동되니까. 이 시대의 여러 음악을 접하고 배워야 해.’


나중에 창작하는 경지에 달하면 현대 음악도 적용해 볼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어려웠다.

게다가 다른 문제도 있었다.


“아··· 습.”


아까부터 아려오는 감각에 손 끝을 내려다보니 희미하게 피가 맺혀 있다.


“왜 그러세요?”

“아니, 얼마나 했다고 벌써 피가 나···?”

“피요?!”

“호들갑 떨지 마, 별거 아니니까.”


일단 별일 아니라며 피터를 달래긴 했지만, 사실 나도 당황스럽다.

물론 기타를 사 온 후 반나절 내내 연습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타 줄을 처음 짚어보는 몸이라 해도 피가 나다니···.

그뿐만이 아니다.

뭐랄까, 아까부터 몸이 무겁고 나른하다.

마치 하루종일 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아무래도 체력의 문제인 듯했다.


“하··· 체력을 기르기는 해야겠지.”


체력뿐만이 아니다.

나중에 배울 음유시인의 스킬은 모두 마력을 재화로 사용한다.

아무리 능력이 강해도 스킬 한두 번 쓰고 텅 빈 깡통이 되어버리면 무의미하다.


‘그러니 어떻게든 기초 스탯을 단련해야 된다.’


하지만 [열등생] 특성이 마음에 걸린다.

이 [열등생] 특성은 캐릭터의 성장에 강력한 브레이크를 거는 마이너스 특성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검의 초식 하나를 익힌다고 가정해 보자.


평범한 사람은 이 초식을 익히는데 100번을 연습해야 한다면, [열등생] 특성을 가진 나는 400번, 500번 이상을 연습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나마 스탯이 S급이면 [열등생] 특성처럼 성장에 제약을 거는 효과가 무시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갖고 있는 S급 능력은 음악이 전부.

그렇다고 이 상태로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멸망을 막기 위해서 성장은 필수다.


시기상 시나리오의 초반부다.

성장할 시간은 아직 충분한 편이다.

그렇기에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본다.

예나 지금이나, 저 세계나 이 세계나 가장 중요한 건 기초다.

기초부터 다져야 한다.


“피터.”

“네?”

“서재 좀 가자.”

“···예?”


피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세상에 이든님이 서재를 찾는 날이 오다니···.”

“그 말만 벌써 열여섯 번째거든?”

“책을 들여다보신 적이 있어야 말이죠···.”


같은 말을 하며 나는 피터와 함께 공작성 서재로 들어온다.

서재라기보단 도서관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공간.

열을 맞춰 줄줄이 서있는 거대한 책장에 책이 빼곡히 꽂혀있다.

서재에 들어가자 몇몇 사람들이 나를 보고 눈이 튀어나올 듯 식겁한다.


“이, 이든님?!”

“이든님이 서재에 오시다니···!”

“세상에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음, 책을 너무 오래 읽었나. 이젠 헛것이 보이는군···.”


아무래도 망나니였던 내가 서재에 온 것이 꽤나 기겁할 일인 모양이다.

신경 쓸 일은 아니기에 필요한 책만 얼른 찾아서 나가기로 한다.

다행히 금방 음악 서적을 모아둔 책장을 찾았다.

그 책장에서 몇 가지 참고가 될만한 책을 뽑는다.

그중엔 여러 음유시인들의 연주곡집도 있었다.

이거라면 연습하기에 아주 딱이다.

추가로 ‘마나 감응의 이해’라는 책과 ‘북부 약초학’이라는 책도 꺼내든다.


“약초학 책이요? 그건 어디다 쓰시게요?”

“기다려 봐.”


나는 그 자리에서 약초학책을 펼쳐 넘기며 페이지를 빠르게 넘긴다.

그리고 몇몇 페이지를 접은 뒤 피터에게 넘겼다.


“혹시 이 근방에 약초꾼들을 모아줄 수 있겠어?”

“네, 어렵지 않죠. 그런데 약초꾼들은 왜요?”

“약초꾼들한테 여기 있는 약초들을 최대한 많이 모아 오라고 해줘. 사례는 충분히 할 테니까.”


대충 방 안에 있는 금붙이 몇 개 주면 되겠거니 하며 부탁한다.


“네··· 알겠어요. 며칠 걸릴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괜찮아.”


피터는 갸웃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피터에게 준 약초들은 이름하야 ‘성장 비약’을 만드는 재료들이었다.

게임 <죽은 신의 세계>에는 쉽게 알 수 없는 히든 아이템의 제조법이나, 숨겨진 업적 특성 등이 존재한다.

이 ‘성장 비약’도 숨겨진 히든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성장비약은 캐릭터에 한해 단 한번, 모든 스탯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다.

체력과, 힘, 마력 등 스탯을 올리는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그러나 이 비약은 마시는 것만으로 모든 스탯을 크게 올려줄 수 있었다.

기초 스탯이 바닥인 데다 [열등생] 특성으로 인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내겐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포션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밤그늘 눈결정 꽃’은 마침 북부지방에서 구할 수 있었다.


‘라스테일 공작령의 뒷산에만 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강해지기 위한 훈련 루틴을 짰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연무장으로 나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비록 5kg짜리 아령을 들고 갓 태어난 아기사슴의 다리처럼 호달달 떨어대긴 했지만.

역시 연무장에서도 나의 존재는 단연 돋보이는 듯했다.


“도련님이 운동을···?!”

“이, 이럴 수가!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나?”


수많은 기사들의 놀란 시선을 받아야 했으니까.

그리고 ‘마나 감응의 이해’를 읽으며 체내의 마력을 느끼기 위해 명상을 했다.


“도, 도련님이 책을 읽으시다니···!”

“지금 명상을 하고 있는 건가?! 그 망나니가?”


물론 시종들이 식겁을 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다.

그리고 당연히 음악 연습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음유시인들의 연주곡집을 연습하며 이 세계의 음악에 적응해 나갔다.

그렇게 일주일 후, 내 눈앞에 갑자기 시스템이 나타났다.


띠링!


「클래스 음유시인(Bard) 전직 퀘스트.

수락하시겠습니까? 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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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0. 가짜 신 24.04.05 9 0 14쪽
60 59화. 가짜 신 24.04.04 10 0 12쪽
59 58화. 가짜 신 24.04.03 15 0 13쪽
58 57화. 가짜 신 24.04.02 13 0 12쪽
57 56화. 해적 소탕 24.04.01 16 0 13쪽
56 55화. 해적 소탕 24.03.31 13 0 13쪽
55 54화. 해적 소탕 24.03.31 14 0 12쪽
54 53화. 어비스 24.03.30 13 1 12쪽
53 52화. 어비스 24.03.30 12 1 12쪽
52 51화. 어비스 24.03.29 16 1 14쪽
51 50화. 어비스 24.03.28 11 1 12쪽
50 49화. 어비스 24.03.27 13 1 15쪽
49 48화. 어비스 24.03.26 14 1 16쪽
48 47화. 나를 죽여줘 24.03.25 16 0 13쪽
47 46. 나를 죽여줘 24.03.24 15 1 13쪽
46 45. 나를 죽여줘 24.03.24 16 1 15쪽
45 45. 나를 죽여줘 24.03.23 18 1 12쪽
44 44. 폭풍 날개 용병단 24.03.23 19 1 14쪽
43 43. 폭풍날개 용병단 24.03.22 17 1 13쪽
42 42. 얼어붙은 장미 24.03.21 18 2 13쪽
41 41. 얼어붙은 장미 24.03.20 16 1 12쪽
40 40. 얼어붙은 장미 24.03.19 17 1 13쪽
39 39. 얼어붙은 장미 24.03.18 19 1 19쪽
38 38. 얼어붙은 꽃봉오리 24.03.17 18 1 12쪽
37 37. 얼어붙은 꽃봉오리 24.03.17 20 1 17쪽
36 36. 얼어붙은 꽃봉오리 24.03.16 22 1 14쪽
35 35. 미인의 계략 24.03.16 23 1 13쪽
34 34. 미인의 계략 24.03.15 2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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