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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탕 님의 서재입니다.

자수성가 했는데 빙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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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탕
작품등록일 :
2024.02.21 15:08
최근연재일 :
2024.04.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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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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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067

작성
24.03.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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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5. 나를 죽여줘

DUMMY

#045화





“이번 일은 황실에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보고가 될 겁니다. 아마 황실에서 두 분을 부를지도 모르니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카르보는 그렇게 말하며 극지성을 떠났다. 이 정도는 예상한 일이었다.

본래 극지의 몬스터 침공은 공략하라고 만든 설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모 게임에서 깨지 말라고 데려다 둔 초강력 필드보스를 꾸역꾸역 공격대를 모아 어떻게든 공략한 의지의 민족이다.

그럴 줄 알고 [극지의 수호자] 업적을 얻은 후 헤렌디아 황실에서의 연회 이벤트로 연결되게끔 시나리오를 짜뒀다.


“이 몰골로 갈 수 없으니 얼른 공작령에 들러야겠네.”


나를 포함한 병력들은 척박한 극지 생활과 대규모 전투로 인해 모두 지쳐있었다. 얼른 돌아가서 사업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도 확인하고 싶고.

복귀를 위해 마차에 짐을 싣는 라스테일 공작가의 인부들.


“이대로 극지를 떠나도 괜찮은 것이냐?”


조팍과 함께 온 마리가 내 옆으로 와 걱정스럽게 물었다.


“당분간은. 아마 조팍은 여기 남을 거죠?”

“이제야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시는군요. 예, 저는 극지에 계속 남을 생각입니다. 이번에 황실 마법사단으로 들어오란 제의를 받긴 했지만, 제가 극지에 남지 않으면 누가 여길 지키겠습니까! 하하하!”


그렇게 말하며 웃어 보이는 조팍.

말은 저렇게 하지만 원래 루테란 출신이었던 조팍은 다른 나라의 군대에 들어가는 것이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겨났음에도 꽤나 애국심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저는 그렇다 치고 로즈님은 의외입니다. 황실 마법사가 몇 번이나 부탁을 했는데도 단번에 거절하더군요.”

“의외랄 게 있나요?”


나는 이미 라스테일의 마차에 올라 문을 열어둔 채 고양이마냥 졸고 있는 로즈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로즈의 성격상, 황실 마법사단 같은 곳은 적성에 맞지 않겠지.

게다가 이미 내가 약을 쳐둔 상태였다.


‘로즈, 넌 여기 남을 거야?’

‘난, 극지, 나간 적 없어.’

‘그럼 나랑 같이 가자.’


로즈는 나의 말에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나랑 갈 곳이 있어. 너의 부모님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아? 할리가 어쩌다 널 키우게 됐는지도.’


원작에서의 로즈는 극지를 떠나 여행을 하다 출생의 비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할리의 유언을 지키며 각성하는 이야기를 따르지만···.

나로 인해 할리 이벤트를 먼저 끝내버렸으니 그 중간의 공백을 메꿔주어야 했다.

다행히 로즈는 내 제안에 승낙했고, 일단 공작령에서 잠시 지내기로 했다.


“아무튼, 조팍이 있으면 극지는 괜찮을 거야. 그 사이에 실력도 꽤 늘은 모양이고.”

“예, 로즈님의 도움으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술식을 바꾼 것 만으로 마법의 효율성이 아득히 높아졌죠. 적은 마력으로 더 다양하고 강력한 마법을 펼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아무래도 할리의 유지는 잘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나는 조팍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마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스름도 두고 갈 거야.”

“어스름···? 괜찮겠나?”

“응, 어차피 저 정도로 크면 공작령에서 키우기도 부담되고···.”


나는 저 멀리 하늘을 날고 있는 어스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사이 내 두 배가 훌쩍 넘는 크기로 자란 어스름.

아무리 극지의 몬스터가 대량으로 토벌되었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몬스터는 다시 발생할 것이다.

어스름의 입장에선 이곳에 남아 그 몬스터들을 잡아먹으며 지내는 게 성장에 도움이 될 터였다.


“그래···. 이든 네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마리는 언제나처럼 더 묻지 않고 수긍했다.

그리고 다음날, 모든 채비를 마치고 극지성을 떠난다.

공작령으로 향하는 마차 안, 돌아올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에 미묘한 감정을 안고 있다.

내 옆에 앉아 창밖을 보며 작은 감정의 변화를 보이고 있는 로즈.


“오오···.”


창밖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연신 감탄을 보이며 가만있지 못하고 있다.


“하긴, 로즈님은 백 년 넘게 극지에서만 살고 있다고 하셨죠?”

“응.”


그런 로즈가 귀엽다는 듯 엄마 미소를 하며 흐뭇하게 바라보는 유리. 로즈는 창밖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한다.

저래뵈도 로즈가 유리보다 백 살이나 많은데 바뀌어버린 포지션에 괜시리 헛웃음이 나온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로즈가 하프엘프라는 사실은 여전히 놀랍군.”


유리의 옆에 앉아있던 마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요정족이라고 불리는 엘프는 정기가 충만한 숲에서만 서식지를 꾸리고 산다. 그리고 그런 숲은 이 대륙에 루테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엘프가 보기 어려운 존재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헤렌디아는 번성한 국가인만큼 수많은 이종족들이 나라를 거쳐간다.

다만 수도에서 떨어진 북부에서만 생활해 온 마리 입장에서는 이종족이라는 존재가 익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엘프는 수명이 500년 이상이 된다 들었다. 하프 엘프도 같은가?”

“아니, 내가 알기로 200에서 300년쯤?”

“역시, 피가 섞이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인가.”


마리는 그렇게 말하며 로즈의 쫑긋한 귀를 구경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나저나, 이제 할 말이 있어.”


나는 그런 마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갑자기 진지한 태도에 마리는 나를 바라본다.


“그래. 나 또한 지금까지 그냥 넘어갔지만, 보는 눈이 많아 그냥 넘어갔다. 대체 넌 내가 없는 사이 무슨 일을 하고 다닌 것이냐? 게다가 갑자기 후계자의 자리를 내게 넘기겠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지 제대로 이해를 시켜줬으면 좋겠군.”

“그거에 대해서 말해주려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모든 말은 절대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안돼.”


내가 그렇게 말하자 로즈가 창문을 닫더니 들고 있던 지팡이를 가볍게 휘두른다.


“소리, 차단 결계야.”

“고마워 로즈.”


나는 로즈의 센스에 감사를 보내며 입을 열었다.

먼저 마리가 가장 궁금해할 아르웬과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물론 내가 다른 세상에서 이든의 몸에 들어왔다느니 하는 말은 모두 빼고, 적당히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은 아르웬에게 들었다는 정도로 양념을 쳤다.

그리고 이 사태에 가장 중요한 사안을 언급한다.


“지금 황태자 노아 헤렌디아는 실종 상태야.”

“그럴 수가···!”

“뭐라고요?”

“요 몇 년 황태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알고 있지? 황실에서는 황태자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막고 있지만, 사실 황태자는 행방불명 상태지.”

“그, 그렇다면 국가 재난 상황인 것이 아닌가?”


마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황제는 이 일을 크게 키울 수가 없어. 왜냐면 황태자는 제 발로 도망간 거거든.”


마리와 유리는 나의 말에 숨을 삼켰다.

몇 년 전, 아르웬은 황제 라이오넬 헤렌디아에게 야만족의 나라라 취급받는 파락투의 침공을 미리 알린다.

그로 인해 파락투의 침공을 최소한의 손실로 막아내게 되고, 아르웬은 황제의 신임을 받으며 황궁에서 지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아르웬이 황궁에 들어가기 위한 행동이었다.

황궁에 들어간 아르웬은 황태자 노아 헤렌디아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황제 라이오넬 헤렌디아의 궁극적인 야욕과 괴물 같은 실체를 털어놓는다.

그로 인해 노아 헤렌디아는 검제 티리안의 도움을 받아 황궁에서 도망치고, 이를 알게 된 라이오넬은 검제 티리안과 예언자 아르웬을 반역자로 낙인찍게 되는 것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네가 해온 일을 생각하면 믿지 않을 수는 없군. 그래, 네 말이 진짜라면 이 이야길 우리에게 하는 의도는 뭐지?”


마리가 묻는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아르웬의 유지를 이어 황태자 편에 서서 황제를 몰아낼 거야.”

“무···!”

“네?!”

“······.”


그간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았던 로즈까지 다소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지금 네가 하는 말은 반역을 일으키겠다는 뜻이다.”

“맞아.”

“내가 당장 널 고발하면 넌 그대로 사형이야.”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하지만 안 그럴 거잖아.”


제 가문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마리 라스테일. 그녀는 제 입으로 제 혈육이 반역을 할 거라는 말은 하지 못한다.

그 행위는 곧 라스테일이 반역자의 가문으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


예상대로 마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꼭 가문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다. 마리는 기본적으로 선하고 정의로운 인물이다.

세계정복이라는 야욕을 실현시키기 위해 인간의 길을 벗어난 황제.

물론 기본적으로 충의를 지키는 라스테일 가문의 일원으로서 황제에게 감히 직접 반기를 들 수는 없지만, 대의를 위해 움직이겠다는 나를 굳이 나서 방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굳이 그 어려운 길을 걸으려는 이유가 있는 것이냐?”


하지만 그럼에도 마리는 원치 않았다.

제 혈육이 그 대의를 위해 가시밭길을 걷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의 말에 마리는 뭔가를 말하려다 다시 입을 닫았다.

마리는 이 말의 의미를 알고 있겠지.

몰랐다면 어쩔 수 없다.

몰랐으니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라이오넬 헤렌디아의 야욕을.

또한 그 길이 멸망을 부른다는 것을.

그리고 그걸 막을 방법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내게 왜 굳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냐? 그런 이유로 내게 후계자를 넘긴 것이었나? 너는 대의를 위해 희생해야 하니, 나를 앉히려고 황제와 예언자를 죽이겠단 거래를 한 것이냐?”


마리의 목소리가 떨린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가문을 떠나야 한다.

후계자라는 자리에 묶여서는 계획을 실천할 수 없다. 게다가 만약에 내가 하는 일을 황제가 먼저 눈치채기라도 하면 라스테일은 피바람이 불겠지.


“나는 라스테일 공작가의 후계자로 묶여있을 수는 없어.”

“그런 이유로 내게 후계자를 양보한다고? 그래서 네가 그 고생을 해가며 여자로 태어난 내가 작위를 이을 수 있도록 준비해 왔다는 것이냐? 그렇게 하면 내가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했나? 나는 인정할 수 없다. 나는···!”


마리의 감정이 점점 격해진다.

마리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나 또한 알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제 엄마를 닮아 총명했던 마리 라스테일.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지휘와 통솔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인품 또한 훌륭했다.

그렇기에 망나니인 제 동생 대신 능력을 인정받아 내심 후계자가 되기를 원했다.

망나니인 제 동생은 가문의 수치라고 여겼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은 그 수치라 여겼던 동생이 ‘나는 더 위대한 일을 해야 하니까 그냥 너나 해라.’라며 후계자의 자리를 넘겨버리고 있는 것이다.

프라이드가 높은 마리로서는 자존감이 깎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약해. 그렇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해.”


마리가 나를 바라본다.


“누나의 도움. 헤렌디아 최초의 여공작, 라스테일의 공작 마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건 그 누구도 아닌 누나만이 할 수 있어. 아버지도 못해.”


그렇기에 믿음을 준다.

내가 너를 믿고 의지하고 있노라고.


랄프 라스테일은 거짓말에 서투르고 보기보다 민감하다.

완고하고 딱딱한 성격 탓에, 내가 이 사실을 털어놓는 순간 멘탈이 터져버릴 것이다.

게다가 사람 속을 꿰뚫어 보는 황제는 그런 불안한 모습을 빠르게 눈치챌 것이다.


‘그렇기에 마리만이 할 수 있다.’


가문을 제대로 지킬 수 있으면서 냉철한 이성을 지닌 사람.

필요하다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도 할 수 있는 사람.

내 대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나를 내칠 수 있으면서도, 뒤로는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사람.

나의 말에 붉게 달아올랐던 마리의 얼굴이 다시 제 색을 찾는다.


“그게 무슨···.”

“나를 죽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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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1화. 가짜 신 24.04.06 7 1 13쪽
61 60. 가짜 신 24.04.05 7 0 14쪽
60 59화. 가짜 신 24.04.04 8 0 12쪽
59 58화. 가짜 신 24.04.03 12 0 13쪽
58 57화. 가짜 신 24.04.02 12 0 12쪽
57 56화. 해적 소탕 24.04.01 14 0 13쪽
56 55화. 해적 소탕 24.03.31 10 0 13쪽
55 54화. 해적 소탕 24.03.31 12 0 12쪽
54 53화. 어비스 24.03.30 12 1 12쪽
53 52화. 어비스 24.03.30 11 1 12쪽
52 51화. 어비스 24.03.29 16 1 14쪽
51 50화. 어비스 24.03.28 11 1 12쪽
50 49화. 어비스 24.03.27 12 1 15쪽
49 48화. 어비스 24.03.26 11 1 16쪽
48 47화. 나를 죽여줘 24.03.25 13 0 13쪽
47 46. 나를 죽여줘 24.03.24 12 1 13쪽
46 45. 나를 죽여줘 24.03.24 16 1 15쪽
» 45. 나를 죽여줘 24.03.23 18 1 12쪽
44 44. 폭풍 날개 용병단 24.03.23 15 1 14쪽
43 43. 폭풍날개 용병단 24.03.22 16 1 13쪽
42 42. 얼어붙은 장미 24.03.21 16 2 13쪽
41 41. 얼어붙은 장미 24.03.20 16 1 12쪽
40 40. 얼어붙은 장미 24.03.19 15 1 13쪽
39 39. 얼어붙은 장미 24.03.18 18 1 19쪽
38 38. 얼어붙은 꽃봉오리 24.03.17 17 1 12쪽
37 37. 얼어붙은 꽃봉오리 24.03.17 17 1 17쪽
36 36. 얼어붙은 꽃봉오리 24.03.16 20 1 14쪽
35 35. 미인의 계략 24.03.16 21 1 13쪽
34 34. 미인의 계략 24.03.15 2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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