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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탕 님의 서재입니다.

자수성가 했는데 빙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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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탕
작품등록일 :
2024.02.21 15:08
최근연재일 :
2024.04.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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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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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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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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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얼어붙은 꽃봉오리

DUMMY

#037화





세 번째 선택받은 자, 로즈 엘리펜타.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죽은 신의 세계>에서 마법사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다.

모든 주인공 중, 모든 기본 스탯과 재능이 뛰어나다.

그러나 그녀의 특성 [나태]는 그 재능을 모두 깎아먹고도 남는다.

실제 게임 안에서도 로즈가 일정량 이상 움직이면 [무기력]이라는 상태이상에 빠져 플레이어의 조작을 거부하거나 마법 위력이 감소하는 등의 핸디캡이 있다.

어쨌든, 만사 귀찮은 고양이처럼 어슬렁 거리는 그녀는 노력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녀의 나태는 스승 할리가 죽은 뒤 100년 동안 계속되었다.

로즈는 할리와 함께 살던 오두막이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렇기에 이처럼 결계를 쳐두고도 얼음 골렘이라는 수호자를 세웠다.

그리고 자신이 마력탈진에 걸릴 것에 대비해 골렘과의 결속을 끊어버린다.

골렘이 로즈의 마력을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력을 받아들이며 성장할 수 있는 독립된 개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게··· 100년 전의 일이라는 거지.’


홀로 남은 골렘은 100년 동안 극지의 충만한 마력을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본래라면 결속이 끊겼다 해도 창조자인 로즈의 [소환 해제]에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100년간 성장한 골렘의 ‘격’은 이미 로즈를 아득히 초월했다.

본래 로즈가 할리의 오두막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은 게임 시나리오의 중반부.

중반부에도 로즈는 골렘의 소환을 해제하지 못하고 제 손으로 싸워 부수는 선택을 한다.

게다가 나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로즈를 이곳에 훨씬 빨리 데려왔고.


“유리─!”

“네!”


콰──앙!


골렘이 주먹을 내지른다.

유리는 빠르게 달려들어 로즈를 낚아채고는 골렘의 주먹을 피한다.

골렘의 주먹이 애꿎은 땅을 내려치자, 발 밑이 크게 진동한다.


“크윽···!”


조팝을 비롯한 기사들이 골렘의 위력에 식은땀을 흘린다.


“모, 모두 전투태세를─!”


조팝의 외침에 기사들이 검을 뽑고 마법사들이 지팡이들 들어 올린다.


“잠깐만요!”


그러나 나의 외침에 모두가 벙찐 채 나를 돌아본다.


“저 골렘은 저 혼자 상대합니다.”

“네, 네?”

“아, 안돼. 저 골렘, 내가 소환했다. 그러니, 내가···!”

“아니야.”


로즈의 말을 끊는다.

조팝과 유리, 기사들은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로즈도 마찬가지고.

모두 힘을 아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지금 내 실력을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너희는 해줘야 할 일이 있으니까, 지금은 가만히 쉬고 있어.”


나는 결계 중심으로 다가오는 골렘을 바라보며 기타를 고쳐맸다.


딩, 디리링, 딩─.


곧바로 펼치는 [즉흥연주].

연주하는 ‘릭’의 키워드는 나, 신체, 강화, 냉기, 면역.

절반 이상의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에 반해 몸에는 힘이 넘치기 시작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뒤이어 ‘무기’와 ‘화염’의 릭을 연주한다.


우우웅─.


실현될 선율이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그 사이 연주를 하고 있는 내게 다가오는 골렘.

다시 한 번 거대한 주먹을 뻗어온다.


“이든님!”


유리의 다급한 외침이 들린다.

나는 아랑곳 않고 골렘을 향해 기타 줄을 튕긴다.


퍼─엉!


발동시킨 스킬은 [불협화음]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골렘의 주먹에선 커다란 불꽃이 터진다.


“크워어어어!”


충격에 뒤로 비틀거리는 골렘.

그리고 내게 뻗던 손을 들어 올린다.

하지만 손이 있어야 할 자리엔 손이 없다.

불협화음에 깃든 화염의 힘이 골렘의 손을 부수며 녹여버린 것이다.

하지만 골렘에게 감정이란 없다.

그저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할 뿐.

손이 사라진 팔째로 휘둘러 내게 내리친다.

나는 몸을 던져 그 팔을 피해버린다.


쿠웅!


거대한 진동.

[즉흥연주]로 강화시킨 신체로 골렘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행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놈을 유인한다.

그런 내게 달려드는 얼음 골렘.


퍼엉!


[불협화음]을 발동한다.

이번엔 왼쪽 어깨에 터지는 화염.

마찬가지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녀석의 어깨가 녹으며 무너진다.


“쿠어어어!”


허공에 포효하는 얼음 골렘.

그러자 놈의 입에서 거센 바람이 몰아친다.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는 것이 느껴진다.

휘몰아치는 바람은 주변의 모든 것을 얼려버린다.

땅은 물론, 풀과 나무까지 얼어붙는다.

하지만,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크워어!”


냉기 공격이 내게 먹히지 않자, 육중한 몸을 쿵쿵 거리며 달려드는 얼음 골렘.

이번엔 왼쪽 발을 뻗어 나를 짓밟으려 한다.


쿠웅!


나는 뛰어올라 발을 피하고, 골렘의 다리에 올라탄다.

그리고는 기어올라갔다.


“그워어어!”


양손이 없는 골렘은 나를 떨어뜨리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흔든다.

나는 강화된 신체로 여유 있게 녀석의 어깨 위로 올라갔고.


“끝이다, 이놈아.”


녀석의 머리의 바로 앞에서 화염의 기운이 깃든 [불협화음]을 사용한다.


━━──!


그러자 예상치 못한 거대한 폭음이 귀를 때린다.

그보다 더한 충격이 터지며 나는 뒤로 멀리 튕겨져 나간다.

그대로 풀밭에 굴러 떨어진다.


“크허윽!”


나가떨어진 충격도 만만치 않지만, 문제는 다른 쪽이다.

예상보다 강한 폭발의 중심에 있던 탓인지, 몸이 뜨겁다.

화상을 입은 듯했다.

신체를 강화하지 않았다면 죽었을 지도 모른다.


“이든님!”


주변에 자욱이 깔린 수증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저 멀리 유리가 달려오는 것 같았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수증기가 흩어지고 상반신이 완전히 파괴되어 작동을 정지한 얼음 골렘이 보인다.

“이, 이든님! 얼른 포션을···!”


유리가 달려와 내 입에 포션을 넣어준다.

유리가 포션을 마시기 쉽게 고개를 받쳐준 덕에, 로즈와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저런 골렘을 혼자서 해치우시다니···!”

“방금 폭발은··· 웬만한 마법사도 일으키기 힘든 수준 아닌가?”


골렘의 몸이 빠르게 상전이 되며 발생된 폭발이었지만, 기사들은 단순히 내 힘으로 일으킨 마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든, 무모해.”


그때, 로즈가 멍한 표정으로 다가와 나를 내려다본다.


딱!


경쾌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자, 하반신만 남아 작동을 멈춘 골렘의 모습이 흐려진다.

마치 눈으로 흩어지듯 반짝이며 허공으로 흩어지는 골렘.

별무리처럼 반짝이며, 그렇게 사라진다.

그리고 그 광경아래, 로즈가 로브의 후드를 내리며 내게 다가온다.

쏟아져내리는 하늘색 머리칼과, 살짝 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는 특이한 귀.

푸른색 눈동자와 눈처럼 하얀 피부.

인형이라 착각할 것 같은 모습이지만, 생기 있는 붉은 입술이 그녀가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 붉은 입술이 천천히 움직인다.


“할아범과, 똑같아. 무모해.”


나는 그 말에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된 것은 아니다.

팔과 다리엔 화상이 남아있지만,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새 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생명의 전주곡]을 사용하면 좋겠지만, 이미 마력이 거의 바닥이다.


“어쨌든, 이제 들어갈 수 있게 됐잖아. 오두막에.”


로즈가 자신의 스승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이곳.

로즈는 100년 동안 이곳에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왔다.

사랑하고 존경했던 스승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유리, 기사들에게 포션을 나눠주고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난 로즈랑 여기 들어갔다 나올 테니까.”

“저도 따라갈게요!”

“아냐, 너는 여기 있어. 만에 하나 밖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여길 지켜줘.”


그리고는 로즈를 돌아본다.


“그럼, 숙제부터 해결해야지. 내가 찾는 답도 거기 있거든.”


로즈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나와 로즈는 오두막의 문 앞에 섰다.

로즈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오두막의 문고리를 잡았다.

조팝과 유리는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조팝, 유리, 우리 없는 동안 고생 좀 해줘!”


그리고 오두막에 들어선다.

100년이나 지났기에, 사람의 흔적이라곤 남아있지 않는 허름한 공간.

이곳에서 로즈는 스승 할리와 함께 살았겠지.

나는 익숙하게 할리의 책상 앞에 다가간다.

그리고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 두꺼운 책 한 권과 반지 하나가 들어있었다.


“할리의, 일기장.”

“맞아.”


나는 로즈를 보며 웃었다.

로즈는 그런 나를 보며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일기장을 펼쳤다. 그러자 일기장에서 하얀빛이 터져 나왔다.

빛 속에서 놀라는 로즈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꺼졌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로즈는 천천히 눈을 떴다.

몸의 감각이 이상했다.

중력이 없는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듯한 이상한 기분.

주변은 어둡다. 그 어둠 속에서 무수한 작은 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밤하늘을 유영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


후우웅!


그때 세상이 한껏 일그러진다.

그리고 익숙하지만 그리운 풍경이 펼쳐졌다.

나이 지긋한 갈색 수염을 가진 남자가 푸른 머리를 가진 작은 소녀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어린 시절, 할리에게 마법을 배우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미 백 년도 더 된 과거.


‘흐응, 흥, 흐응.’


남자는 콧노래를 부르며 마력을 이용해 허공에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자! 이것 봐! 로즈! 수식을 이렇게 바꾸면 마력을 더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

‘나, 마력 많아. 그런 수식, 부족한 할아범만, 필요.’

‘이익! 마력이 넘쳐난다 한들 한 줌의 마력이라도 아껴 써야 할 순간이 올 거다! 자만하면 안 돼!’

‘할아범, 열등감, 추해.’

‘이 건방진 꼬맹이가!’


로즈와 할리는 서로 머리끄댕이를 잡고 볼을 꼬집으며 투닥거리기 시작한다.

로즈는 그 장면을 보며 오히려 가슴이 미어진다.


화아악!


이번엔 다른 장면으로 바뀐다.


‘멍청이 할리가 또 왔구만.’

‘우리 로즈가 아파! 감기에 걸린 것 같은데 약을 좀 받을 수 있겠나?’

‘멍청이 할리! 아무런 도움도 못되면서 또 손만 벌리러 왔군!’


고열을 내는 어린 자신을 등에 없고 극지의 마을을 전전하며 구걸을 하는 할리.

그러나 할리는 제 몫을 못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할 뿐이었다.


‘괜찮아, 로즈···. 괜찮을 거야.’


할리는 힘들게 숨을 헐떡이는 로즈를 달래듯 천천히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다시 또 사위가 일그러지며 장면이 바뀐다.


‘도와주세요···. 배고파요···.’


길거리에 누워 신음하는 한 어린아이.

누구도 아이를 신경 쓰지 않지만 할리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자신의 품 안에 있던 말린 고기와 빵을 아이에게 건넨다.


‘할아범, 그건···.’

‘걱정 마라 로즈. 네가 먹을 건 남겨뒀으니까.’


그 말은 자신이 먹을 식량을 모조리 줘버렸다는 뜻이었다.


‘멍청한 할리, 또 제 먹을 걸 다 내놓았군.’

‘그거 아나? 할리는 거절을 못해. 얼마든지 부려먹을 수 있다네.’


로즈는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다.

자신이 들었으니 분명 할리도 그 말을 들었을 텐데, 할리는 오히려 콧노래를 부른다.

항상 매일같이 부르는 익숙한 콧노래.


‘매일, 똑같은 노래.’


화악!


다시 바뀌는 장면.


‘할아범, 어디 가?’

‘극지가 위험해. 마물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할아범, 위험해.’

‘하지만 막지 않으면 사람들이 죽을 거야. 도와야 해.’

‘인간, 할아범 싫어해. 할아범, 왜 자꾸 도와줘?’


항상 사람들에게 조롱받던 할리.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도왔다.


‘날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상관이 없어. 도울 가치가 있으니까 돕는 거야.’

‘이해, 못해.’

‘언젠간 날 이해할 순간이 올 거야, 로즈.’


그렇게 말하고 나가버리는 할리.

로즈는 그 말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날 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할리를 찾으러 로즈가 밖을 나선다.

한참을 헤매던 로즈는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얼음꽃 하나를 발견한다.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로즈.

한참을 달려가서야 로즈는 막대한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할리를 발견한다.


‘할아범···!’


로즈는 할리를 향해 뛰어간다. 창백한 할리의 얼굴. 쓰러진 할리의 앞엔 수를 셀 수 없는 마물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다.

그 한가운데 솟아오른 거대한 얼음.

그것은 마치 꽃봉오리를 닮아있었다.

로즈는 할리의 한쪽 손에 끼워져 있는 금색 반지를 보며 단번에 상황을 파악한다.

할리의 마력으로는 이런 큰 규모의 마법을 시전 할 수 없다.

그는 죽을 각오로 자신의 생명력을 끌어다 대마법을 시전해 마물들을 막은 것이었다.


‘로즈, 왔느냐···.’

‘할아범···. 멍청해! 인간, 죽으면서, 구해줘?!’


로즈의 눈이 금방 젖어든다.

뚝뚝 흘러내리는 눈물.

로즈는 흉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할리의 머리를 안아 든다.


‘인간을 너무 미워하지 마라.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야, 나약하고 무지하기 때문이지.’

‘인간, 나빠, 할아범, 바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로즈를 할리는 그저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래, 아직은 이해할 수 없겠지.’


할리는 꺼져가는 숨을 간신히 붙잡으며 로즈의 손을 잡는다.


‘하아, 평생을 노력했지만··· 쿨럭. 결국, 이 마법을 완성해내지 못했구나.’


거대한 얼음의 꽃봉오리를 바라보는 할리.

할리가 기침을 하며 피를 토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 말을 잇는다.


‘네게 부탁이 있다.’


눈물 젖은 로즈의 눈이 할리를 내려다본다.


‘내 평생 노력해도 닿지 못했지만, 네 재능이라면 가능하겠지. 그러니··· 로즈··· 네가 이 마법을 마저 완성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싫어···! 할아범이, 할아범이, 살아서 완성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로즈.

할리는 제 손에 끼워진 반지를 빼 그녀의 손에 쥐어준다.

할리의 피 묻은 입가가 희미하게 웃는다.


‘사랑한다, 내 제자, 내 딸.’


그 말에 말문이 막힌 로즈를 보며 천천히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할리.

그 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희미해진다. 이윽고 끝나는 그의 콧노래.

로즈는 목이 찢어져라 통곡한다.

그렇게 로즈의 오열은 몇 날 며칠 계속되었다.


슈우웅!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주변이 눈부시게 빛을 발한다.


***


“흑, 흑, 흐윽···.”


오두막 안, 그 일기장을 두고 로즈는 무너져 내렸다.

감정표현이 무디고 딱딱한 로즈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흑, 흐윽.”


백 년이다.

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로즈는 이곳을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그렇구나.”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이곳에 오지 않은 이유는 하나다.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재능이 없는 할리는, 그럼에도 평생 노력했다.

힘이 없는 할리는, 그럼에도 목숨을 바쳐 사람을 구했다.

어린 로즈에겐 그런 할리의 노력과 희생이 덧없게 느껴졌겠지.

그렇게 할리의 죽음은 로즈의 족쇄가 되었다.


‘노력은 의미 없는 것이다.’

‘능력 이상의 것을 바라보면 부서지기 마련이다.’


할리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로즈의 상처를 들춰내는 행위다.

억지로 감추고 외면하는 것을 바라보게 하는 행위다.

그녀에게 있어서 할리의 반지도 마찬가지다.

할리를 떠올리는 것이 싫었기에, 그의 유품인 반지를 서랍에 처박아 둔 것이다.


“미안하다. 다시 마주 보게 해서. 그래도 부탁할게.”


상실은 아픔이다.

물론 누구나 겪는 슬픔이다.

살다 보면 몇 번이고 겪는 아픔이다.

그렇다고 그 슬픔의 크기가 작아지지 않는다.

그 아픔에 익숙해지라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하루 만에 극복하고 일어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백 년이 지나도 직시하지 못한다.

고통이 싫어서, 상처를 마주 보지 못한다 해서, 그 사람을 한심하다거나 나약하다 비난할 수 없다.

아픔은 소중한 것이다.

아프다는 것은, 소중했다는 뜻이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아프지도 않았겠지.

그렇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로즈의 아픔은 로즈만의 것이다.

혹여 내가 경험했던 아픔이라 해도, 로즈를 이해할 수도, 로즈의 아픔을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치부할 수도 없다.

나는 그저 조용히 기타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현을 튕겼다.


딩─디리링─.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부드럽게.

로즈는 기타 소리를 듣더니 들썩이던 어깨를 멈춘다.

그리곤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퉁퉁 부운 푸른 눈. 흰자위는 붉게 충혈되어 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담담히 바라보며 그저 계속 연주한다.

할리가 항상 흥얼거리던 그 콧노래.

백 년 전의 로즈가 지겹도록 들었을 그 노래를 천천히 연주한다.

말로는 전하지 못하는 위로를 음악으로 전한다.

로즈는 가만히 눈을 감고 나의 연주를 듣고만 있는다.

경쾌하고 발랄한 멜로디가, 조금은 서글프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연주는 짧았다.

그러나 로즈는 여전히 할리가 부르던 콧노래를 떠올리듯 한참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참의 시간이 지나, 천천히 눈을 뜬다.

몸을 일으켜 할리의 일기장을 집어드는 로즈.


“결심이 들었어?”


그러나 그 얼굴엔 조금의 불안함이나 걱정은 없다.

백 년의 긴 애도를 마친 로즈의 얼굴은, 한 없이 서글프고, 한 없이 홀가분해 보였다.

할리가 남긴 마지막 유언을 받아들이고, 사랑해마지 않던 스승의 희생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볼 준비가 된 것이다.

희미하게 미소 지은 로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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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8화. 가짜 신 24.04.03 1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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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5화. 해적 소탕 24.03.31 11 0 13쪽
55 54화. 해적 소탕 24.03.31 12 0 12쪽
54 53화. 어비스 24.03.30 12 1 12쪽
53 52화. 어비스 24.03.30 12 1 12쪽
52 51화. 어비스 24.03.29 16 1 14쪽
51 50화. 어비스 24.03.28 11 1 12쪽
50 49화. 어비스 24.03.27 12 1 15쪽
49 48화. 어비스 24.03.26 12 1 16쪽
48 47화. 나를 죽여줘 24.03.25 13 0 13쪽
47 46. 나를 죽여줘 24.03.24 12 1 13쪽
46 45. 나를 죽여줘 24.03.24 16 1 15쪽
45 45. 나를 죽여줘 24.03.23 18 1 12쪽
44 44. 폭풍 날개 용병단 24.03.23 16 1 14쪽
43 43. 폭풍날개 용병단 24.03.22 16 1 13쪽
42 42. 얼어붙은 장미 24.03.21 16 2 13쪽
41 41. 얼어붙은 장미 24.03.20 16 1 12쪽
40 40. 얼어붙은 장미 24.03.19 15 1 13쪽
39 39. 얼어붙은 장미 24.03.18 19 1 19쪽
38 38. 얼어붙은 꽃봉오리 24.03.17 17 1 12쪽
» 37. 얼어붙은 꽃봉오리 24.03.17 18 1 17쪽
36 36. 얼어붙은 꽃봉오리 24.03.16 20 1 14쪽
35 35. 미인의 계략 24.03.16 22 1 13쪽
34 34. 미인의 계략 24.03.15 2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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