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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전선의 미친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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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철인
작품등록일 :
2024.05.08 13:01
최근연재일 :
2024.07.0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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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 전환 : 2일 남음

작성
24.06.0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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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엘프 수호자

DUMMY

엘프 수호령은 세계수가 낳은 최초의 정령으로 이 정령의 책무는 모든 엘프의 보호였다.

엘프 수호령과 계약한 엘프는 영생토록 살며 엘프를 지켜야하는 의무를 지게 됐다.

그리고 한 명의 고귀한 엘프가 그 의무를 감당했다.

하지만 장생종인 엘프도 마모되는 세월은 어쩔 수 없었다.


엘프는 원래 유명한 장생종으로 기나긴 삶을 살았다.

하지만 수호령의 계약자는 그런 엘프의 삶조차 찰나로 치부할 정도로 유구한 시간을 이 세상에서 보냈다.

실질적인 의미로 무한을 손에 넣은 것이다.

세상에 퓨리온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는 무한을 손에 넣지 못 했다.

그러기에 그들은 무한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없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신포도 이론에 불과했다.

오직 퓨리온만이 무한이란 것이 가질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수호령은 퓨리온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위기에 빠진 엘프에게로 이끌었다.

이번에 엘프 암살자를 만난 일도 다르지 않았다.

분명 ‘했던 말 주워담기’를 얻기 위한 여행이었거늘 결국 그가 마주한 것은 한 영지의 영주를 암살하려다 사로 잡힌 엘프 암살자였다.

그는 암살자조차 엘프라는 이유로 지켜야하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했다.


‘지긋지긋하다.’


그는 자신의 맹세를 무르고 싶었다.

수호령과 계약해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빠진 자신을 구원하고 싶었다.

퓨리온은 안식을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눈앞의 인간은 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게 정말인가?”


만약 자신에게 ‘했던 말 주워담기’를 줄 수 있다면 엘프 수호자는 모든 걸 희생할 각오가 있었다.

그는 이제 쉬고 싶었다.


“적어도 가능성은 제시할 수 있습니다.”


아이젠은 일단 공수표를 던졌다.

아직 아이젠의 손에 했던 말 주워담기는 없었다.

어쩌면 평생이 지나도 아이젠의 손에 그 전설의 스크롤은 손에 들어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런 실낱같은 희망도 아쉽겠지.’


“퓨리온, 당신에게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건 했던 말 주워담기의 복원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뿐이오.”

“고작?”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오.”

“알지. 하지만 말만 앞서는 인간은 너무나 많이 봐 와서. 그들은 최선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 해. 아니면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나는 다를 거요.”

“흐음.”


퓨리온은 고민에 빠졌다.

그런 사람을 본 적 없다고 말하기엔 퓨리온은 보통 사람과 다른 ‘예외적인’ 사람을 너무도 많이 봐왔다.

그토록 긴 시간을 살았다.


‘문제는 이자를 믿을 수 있느냐인데.’


퓨리온은 고민에 잠겼지만 결론은 금방 나왔다.


“내게 바라는 건?”


영원을 경험하고 있는 퓨리온에게 아이젠의 삶은 찰나에 불과했다.

그동안 그가 최선을 다하든 다하지않든 곁에서 지켜보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퓨리온의 질문에 회색 눈의 인간은 깊은 욕망을 드러냈다.


“엘프 수호자라면 모든 엘프의 아버지지요.”

“그렇지.”

“그렇다면 모든 엘프가 당신에게 복종한다고 봐도 무방합니까?”

“물론.”

“그렇다면 아인 연합의 엘프들을 모두 빼낼 수도 있겠군요.”

“빼내달라?”

“정확히는 그들이 아인 연합을 떠나 베르너 령에 정착하길 바랍니다. 저를 돕는 건 덤이고요.”

“바라는 게 그건가? 조금 과한 요구군.”


아이젠은 지금 퓨리온에게 아인 연합의 모든 엘프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들어주기 어려운 요청이었다.

엘프가 머무는 세계수의 숲은 아무데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요?”

“불가능하진 않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과한 요구일세.”

“과하지 않습니다.”

“...”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결코 과하지 않습니다.”


아이젠의 눈에 이채가 깃들었다.


“저는 제 인생을 걸고 당신께 요청하고 있습니다. 평생에 걸쳐 했던 말 주워담기를 복원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그런 의미입니다.”

“자네가 내게 거짓을 말하는 거면?”


퓨리온의 말에 아이젠은 헛웃음을 지었다.


“엘프 수호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머저리도 있습니까?”

“...”

“그런 멍청이들을 얼마나 보셨는진 모르겠지만 저는 제 목숨 가지고 장난치지 않습니다.”


장난칠 대상이 따로 있지라고 아이젠은 덧붙였다.

퓨리온은 아이젠의 태도에 미소지었다.

이 인간 영주의 말은 믿음직하게 들렸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가 자신의 염원을 들어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물론 퓨리온의 예감은 거의 항상 어긋났지만.


“그러니 다시 한번 요구하겠습니다. 아인 연합의 엘프들을 베르너 령으로 이주시키고 그들이 저를 돕도록 설득해 주십시오.”


그리고 퓨리온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엘프들이 이주하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엘프들 입장에서야 이주가 고단하고 껄끄럽겠지만 그것은 퓨리온이 상관할 바 아니었다.

그의 의무는 엘프를 지키는 것이었지 그들의 삶 자체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더구나 엘프 수호자라는 말이 너무나 무력하게도 그의 마음엔 동족에 대한 사랑이 식은지 오래였다.

자신의 삶조차 의무로 움직이고 있는 마당에 다른 감정이 어디 있겠는가?


“설득이라니.”


퓨리온은 결정을 내렸다.


“명령하면 그만일세.”


* * *


트리스는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아이젠의 두 손을 꼭 잡을 것만 같은 부담스러운 눈빛이었다.


“그게 정말인가요? 영주님?”

“물론일세. 메이지 트리스. 앞으로 퓨리온 경이 마법부에 많은 조언을 해주실 거야.”


퓨리온은 일단 아이젠의 요청에 따라 마법부의 고문 자리에 앉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탑주.”

“헤헤, 벌써 탑주라뇨. 어쨌든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트리스는 퓨리온의 합류에 신이 났다.

지식을 갈구하는 그녀의 입장에서 상상도 할 수 없이 긴 세월을 살아온 엘프는 신비하면서도 반가운 존재였다.

더구나 엘프 수호자라니!

트리스 입장에서 퓨리온은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지식의 보고였다.


“그리고 마법부 인원을 증원할 예정일세.”

“그게 정말인가요?”

“그래, 그리고 자네에게 그 선발권을 위임하지.”

“제... 제게 인사권을 주신다고요?”

“그래.”


트리스는 또다시 감격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리액션 보는 맛이 일품이군. 이라고 아이젠은 생각하며 다음 말을 덧붙였다.


“마탑주의 사람으로 인원을 채워야 마탑이 잘 굴러가지 않겠나?”

“영주님!!”


트리스는 아이젠을 끌어안을 기세로 달려왔다.

아이젠은 능숙하게 그녀를 밀어냈다.

그냥 내버려두면 자신에게 키스를 할 기세였다.

흠, 이정도로 반응할 일인가?


“이럴 때가 아니지!”


아이젠에게 밀려난 트리스는 낙심하지 않고 곧장 다음 일을 생각했다.


“지금 당장 편지를 돌려야겠어요!”

“생각나는 사람이 있나보군?”

“그럼요! 모두 능력있는 친구들이에요. 흐흐흐.”

“자네가 능력있다고 한다면 정말 괜찮은 실력을 가졌겠군.”

“저만 믿으세요! 괴팍해서 쫓겨난 사람들이지만 실력은 충분하거든요!”


어딘가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트리스는 산뜻하게 집무실을 뛰쳐 나갔다.

아무래도 사람을 구인하는데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진 않았다.


‘잘못 들은 거겠지?’


괴팍한 사람을 데려온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귀의 착각이 분명했다.

트리스가 나가자 퓨리온이 아이젠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걸로 됐나?”

“예, 요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말 말게. 애초에 내게 마법부 고문을 권유한 것 자체가 자네의 최선이었겠지.”

“눈치 채셨습니까?”

“물론.”


아이러니였지만 아이젠이 퓨리온에게 했던 ‘했던 말 주워담기’를 복원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의 첫걸음은 다름이 아니라 퓨리온에게 마법부 고문직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퓨리온의 박학다식함은 그 전설의 스크롤을 복원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퓨리온은 기꺼이 그 자리를 받아들였다.


“고문직은 내게 익숙한 일이지. 식객으로 밥만 축내는 것보단 낫겠지.”

“그 암살자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걱정하지 말게. 내 전언을 전할 사자로 보냈으니까.”


아이젠을 암살하려 했던 엘프 암살자는 자연스럽게 감옥에서 나오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자유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

퓨리온이 아이젠에게 협력하기로 했고 엘프 수호자의 협력은 곧 모든 엘프의 협력을 의미했다.

그 엘프 암살자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하루 아침에 아이젠의 사람이 됐다.


“혹여라도 내게 약속한 것 이외의 협력은 바라지 말게. 그건 내게 유쾌한 일이 아니니.”

“잘 알고 있습니다.”


평온한 말투였지만 퓨리온은 확실한 경고를 남겼다.


“엘프들이 당장 이주할 필요는 없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제가 원하는 순간에 이주했으면 좋겠군요.”

“이주할 날은 미리 말해두게. 세계수를 옮겨 심는 건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되는 것이 아니니.”

“새겨듣겠습니다.”

“그럼 이제 뭘 할 건가?”

“잠깐 중지된 토너먼트를 계속 진행해야지요. 퓨리온 경께서도 관전하시겠습니까?”

“난 됐네.”


퓨리온은 지극히 권태로운 표정으로 사양했다.

토너먼트는 이 시대에 가장 흥미로운 구경거리였지만 그에게 기사들의 싸움같은 건 이제 흥미거리도 아니었다.


* * *


“하아.”


스파르틴의 시장이 된 하멜은 요즘 부쩍 한숨이 잦아졌다.


“그러니까, 또 기사들이 왔다갔단 말이지?”

“정확히는 도시 근처까지만 왔다가 그냥 들어갔습니다.”

“불사조 깃발 틀림 없고?”

“그렇습니다. 들어와서 쉬다 가라고 해도 사양하더군요.”

“하아.”

“왜 그러십니까?”

“그게 문제야. 대접을 거부하는게 문제란 말일세.”


하멜은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베르너 성에서 아이젠 남작이 토너먼트를 개최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소문이었다.

하멜은 눈치껏 아이젠에게 토너먼트 후원 명목으로 돈을 보냈고 자신의 정치적 감각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베르너 령의 영주는 그걸로 만족하지 못했다.


“영주님의 호위 기사인 로이스 경이 토너먼트에 우승하고 기사단장이 됐다지?”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로이스는 아이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당당하게 토너먼트에 우승, 그리고 기사단장에 임명됐다.

그 이후 아이젠이 취한 조치는 단순하면서도 아주 효과적이었다.

치안 순찰.


‘그것도 거의 매일 같이 말이야!’


사실 빈도로 따지자면 그렇게 많진 않았지만 이제껏 그런 치안 유지 활동을 경험한 적 없는 하멜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치안 순찰은 마치 아이젠이 언제든 내가 너희들을 찾아갈 수 있다고 경고를 하는 것 같았다.

그가 다시 온다면 스파르틴이 또 무얼 내줘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지 않도록 해야지.’


더 큰 걸 빼앗기기 전에 알아서 공물을 바친다.

그것이 하멜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아이젠이 스파르틴에 가장 원하는 건 자명했다.


“이주 신청자 더 없나?”

“꽤 있습니다. 하지만 조공들이 빠져나간다고 숙련공들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인간 고용하라 그래! 무슨 조공까지 드워프가 필요한가?”


하멜은 역정을 내며 그들의 불평을 일축했다.

그런 투정을 들어주기엔 하멜의 위치가 위태로웠다.

그는 성지에서 일어났던 그 끔찍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스켈레톤이 무덤을 파고 나와 움직이는 건 두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이주를 서두르게. 보석이나 금품도 같이 보내고. 물자도 넉넉히 보내!”

“알겠습니다.”


비서는 하멜의 말에 고개를 연신 숙이며 집무실을 나섰다.


‘다른 도시 놈들도 마찬가지겠지?’


하멜을 위안하는 건 그나마 아이젠에게 뜯어먹히는 것이 스파르틴만은 아닐 것이란 예상뿐이었다.


‘광산을 더 채굴해야겠어.’


아무래도 아이젠의 욕심을 만족시키려면 도시 개발을 서둘러야할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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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인 연합 1 +2 24.06.06 6,070 138 14쪽
34 출진 +6 24.06.05 6,160 148 14쪽
33 향수 +3 24.06.04 6,293 141 15쪽
» 엘프 수호자 +2 24.06.03 6,519 139 13쪽
31 했던 말 주워담기 +2 24.06.02 6,635 150 17쪽
30 암살자 +3 24.06.01 6,764 146 16쪽
29 암살 모의 +3 24.05.31 7,227 147 16쪽
28 데스 나이트 +2 24.05.30 7,523 173 13쪽
27 상징 +11 24.05.29 7,589 169 15쪽
26 귀환 +5 24.05.28 8,025 165 14쪽
25 흑마법사 토벌전 6 +5 24.05.27 7,921 175 15쪽
24 흑마법사 토벌전 5 +10 24.05.26 7,741 179 14쪽
23 흑마법사 토벌전 4 +4 24.05.25 7,904 169 14쪽
22 흑마법사 토벌전 3 +4 24.05.24 7,808 172 12쪽
21 흑마법사 토벌전 2 +4 24.05.23 8,009 171 14쪽
20 흑마법사 토벌전 +2 24.05.23 8,387 18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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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도시 순회 5 +3 24.05.21 8,539 184 17쪽
17 도시 순회 4 +1 24.05.20 8,989 182 13쪽
16 도시 순회 3 +1 24.05.19 9,565 189 14쪽
15 도시 순회 2 +1 24.05.18 10,187 203 13쪽
14 도시 순회 +6 24.05.17 10,757 224 13쪽
13 마법부 +5 24.05.17 10,859 210 13쪽
12 베르너 성 +3 24.05.16 11,154 2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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