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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전선의 미친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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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철인
작품등록일 :
2024.05.08 13:01
최근연재일 :
2024.07.06 08:2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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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046
유료 전환 : 2일 남음

작성
24.05.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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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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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글자
13쪽

도시 순회 6

DUMMY

“...”

“...”


무거운 침묵이 돌았다.

아이젠은 눈을 돌려 실험실 곳곳을 살폈다.

흑마법사의 지하실은 실험체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뻔히 보이는 고문 도구로 가득했다.

그리고 고문 당한 사람의 시신도 아주 많았다.

전쟁에 익숙한 네크로맨서와 기사조차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몰골의.


“방음 처리까지 했군.”


지하실 벽면에는 마법진 따위가 덕지덕지 그려져 있었다. 비명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치를 한 것이다.

벽과 바닥에 찌든 피 냄새는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고 계속해서 코끝을 찔렀다.

아이젠은 구역질을 간신히 참아냈다.


“네크로맨서가 시체를 보고 구역질하게 만들다니 솜씨가 제법이군.”


아이젠은 빈정거리듯 내뱉곤 마음을 정돈했다.

속에서부터 들끓는 분노를 간시히 씹어 삼켰다.

이런 비인륜적인 실험을 하는 흑마법사들과 네크로맨서들이 한때는 같은 취급을 당했다는게 억울할 정도였다.

네크로맨서의 윤리 중 하나가 사람을 언데드로 만들기 위해 살인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제국에서 네크로맨서를 공인하기 전에 전통으로 자리잡은 규약이었다.


“바로 쫓을까요?”

“늦었네. 미리 발을 뺀 게 분명해.”


지하실에 시체와 고문 도구들은 있었지만 실험을 기록한 서책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흑마법사가 급하게 도망간 것이 아니라 챙길 건 다 챙기고 도망갔다는 소리였다.

토벌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 놈들이었다.


‘그러니까 여태까지 살아남았지.’


생존 본능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더욱 예민하다고 해야 할까?

이번 일은 작전 실행 전까지 알고 있던 사람이 극히 적었는데도 꼬리를 자르고 도망갔다.

감이 좋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도주였다.

하지만 아이젠은 흑마법사를 이대로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아이젠은 장기가 텅텅 빈 채로 죽어버린 렉톤을 향해 걸어갔다.


“일어나라. 렉톤.”


아이젠이 읊조리자 렉톤의 눈에 녹색 빛이 번쩍하고 점멸했다.

용병의 죽은 눈에 녹색 안광이 번들거렸다.


“끄르륵, 끄륵...”


생전에 되살아나는 계약을 하지 않은데다 시체 상태도 좋지 않아 렉톤은 제대로 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주술 부족의 전사들이 차라리 더 다루기 쉬울 정도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아이젠은 죽은 자의 강렬한 의지를 믿었다.


“잘 들어라. 렉톤. 넌 처참하게 죽었다. 흑마법사의 실험체로 말이야.”

“죽었... 윽... 실험...... 흑마법사! 흑마법사!!!”


렉톤의 시체는 어물어물거리더니 흑마법사를 부르짖으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원한을 갚고 싶나?”


아이젠의 나직한 말이 렉톤의 시체의 눈에 이채가 돌아왔다.

로이스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젠이 시체를 다루는 모습은 전장에서 본 적 있긴 했다.

주술 부족의 전사들은 이지가 없는 그냥 시체였고 기사들은 데스 나이트로 만들었기에 아이젠의 실력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누더기 같은 시체에 지성을 다시 불러 일으키다니?

문외한이 봐도 놀라운 일이란 걸 모를 수 없었다.


“으으으... 너는... 기사 아이젠...?”

“그렇다. 너를 고용하기로 했던 기사 아이젠이다.”

“어떻게... 나를... 살렸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닐세. 중요한 건 자네의 원한을 내가 갚아줄 의향이 있다는 거야.”

“뭘... 원하나...?”

“자네를 이렇게 만든 자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게. 무엇이든 좋네. 이름, 생김새, 무슨 실험을 했는지, 어디로 갔는지. 아는 대로 말하게.”

“정말... 복수를... 해 줄 건가...?”

“네크로맨서의 이름으로 약속하지.”

“...내가 아는 건... 그리 많지... 않다...”

“괜찮아.”


애초에 렉톤은 납치된 피해자였다.

흑마법사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고 해서 탓할 순 없었다.


“나를 납치한... 그자의... 이름은... 골란...”

“골란?”


아이젠의 이마가 꿈틀거렸다.


‘여기까지 도망쳤나?’


골란은 아이젠도 이름을 들어본 자였다.

남부 전선에서 사막 부족에게 협력하던 흑마법사로 사막 부족들이 제국에 밀릴 기미가 보이자 그들을 상대로 대규모 생체 실험을 감행하고 도주했던 자였다.

문제는 그가 지금 북부에 도착했고 아이젠의 얼굴을 알아보고 도망쳤단 것이었다.


‘뒷골목에 들렀을 때 날 알아본 것 같은데. 하지만 어떻게?’


이건 아이젠이 예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아이젠과 마주친 흑마법사들 중에 살아남은 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이젠은 전장에서 흑마법사들을 마주친 족족 그들의 숨통을 끊어놓았으니까.

단 한 번도 자비를 베푼 적이 없었다.

즉, 아이젠과 골란은 마주친 적이 없단 소리였다.


‘설마...’


흑마법사 사이에서 아이젠의 인상착의가 공유되고 있다고 해도 알아보기란 어려웠다.

그런데 아이젠을 정확히 알아보고 내뺐다?

그렇다면 아이젠의 얼굴을 어디선가 정확히 확인했단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젠의 얼굴이 크게 노출된 사건은 단 하나뿐이었다.


‘빌어먹을 재판.’


수도에서 벌어진 촌극으로 아이젠의 초상화가 제국 전역에 배포된 적이 있었다.

그게 반역 죄인에 대한 처우였으니까.

골란도 어디선가 그 초상화를 본 것일지도 모른다.


“골란이 어디로 갔는지 들은 게 있나?”

“북... 북으로...”

“북이라.”


아티나는 베르너 령의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였다.


‘다른 도시로 넘어갔을 확률이 크군.’


아마 베르너 성으로 향하는 멍청한 짓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도시 순회를 나섰기 때문에 일정에 변화는 없을 것 같았다.

세무조사를 하는 동시에 골란을 추격하는 수밖에.


“정보 고맙네. 큰 도움이 됐어. 남은 건 내게 맡기고 편히 쉬게.”

“고... 맙... 다...”


렉톤의 눈에서 녹색 빛이 사라지고 장기가 적출된 몸이 슬라임처럼 무너졌다.


“병사들을 불러와서 여길 정리하게. 피해자들의 장례식과 보상 절차를 진행하고.”

“알겠습니다.”


아마 여길 치울 병사들은 악몽을 꾸겠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아이젠은 급격한 피곤함을 느꼈다.

그래도 흑마법사의 이름을 알아낸 건 중요한 성과였다.


“도시 순회 계획을 변경해야겠네.”

“그렇게 위험한 자입니까?”

“남부에서 대규모 생체 실험을 했던 자일세. 아무래도 인원을 둘로 나눠야할 것 같군.”


원래는 다른 도시의 시장들에게도 깜짝 선물을 줄 생각이었지만 그럴 여유는 사라졌다.


“골란이 여기 있었다는 걸 알았으니 다른 도시 사정도 뻔하네. 분명 흑마법사들이 암약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아마 골란과 함께 도시에서 도망칠 것이 뻔했다.

이미 베르너 령의 도시들엔 흑마법사들이 종양처럼 퍼진게 확실했다.

다행인 점은 아이젠이 그 사실을 알았고 종양을 도려낼 집도의 역할을 할 생각이 가득하단 점이었다.


“세무조사도 중요하지만 흑마법사 토벌은 영지의 사활이 걸린 문제일세. 긴장을 늦추지 말게.”

“알겠습니다.”


주술 부족을 앞에 두고도 능글맞기 짝이 없던 아이젠이 진중하게 말하자 로이스도 사태의 위급함을 바로 알았다.


아이젠은 시청에 돌아오자마자 우선 시장부터 만났다.

아무리 급해도 일단 벌인 일은 깔끔하게 마무리지어야 했다.


“시장, 내게 무엇이든 요구하라고 했었지?”

“그랬지!”


시장은 갑작스럽게 반말을 하는 아이젠을 보고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토너먼트에 우승했다고 감히 고드프리도 존댓말을 하는 자신에게 반말이라니.

안하무인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는 능숙한 정치인.

이 정도 모욕은 참아줄 수 있었다.


“그럼 내게 인사부터 하게.”

“그게 무슨...”

“시장, 인사를 드리게.”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고드프리 경?”

“이 분께서 베르너 령의 새로운 주인일세.”


고드프리의 나직한 말에 아티나 시장은 고드프리와 아이젠의 얼굴을 번갈아보다 전말을 깨닫고 앓는 소리를 냈다.


“끄아아아아...”


이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우선 체포된 흑마법사들은 전부 교수대로 보내졌다.

트리스는 탐지 스크롤을 사용하여 시장이 횡령한 자금을 확실하게 추적했다.


“생각보다 심하게 해쳐먹었군.”


아이젠의 나직한 말에 시장은 손발이 덜덜덜 떨렸다.

그의 목숨은 이제 바람 앞에 촛불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장, 자네가 살 방법은 하나뿐일세. 뿐만 아니라 시장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줄 수도 있네.”

“그... 그게 무엇입니까?”


아티나 시장은 벌벌 떨며 대답했다.


“재산을 전부 내놓게.” “히끅.”


아이젠의 나직한 말에 시장은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시장이 뭔가 말을 꺼내려 했지만 아이젠은 표정으로 입을 열지 말라고 말했다.


“자네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야. 첫 번째, 전재산을 내놓고 시장직을 유지하며 앞으로 성실하게 납세를 한다. 두 번째, 자네는 사형, 자네 가족은 노예로 팔리고 자네 재산은 몰수. 어떤가?”


아이젠의 태도는 트리스를 설득할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유능한 사람을 살살 굴릴 때와 죄인을 처벌할 때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오히려 불공정한 처사였다.


“내놓겠습니다... 전부!”


아티나 시장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는 나름 관대한 처우이기도 했다.

그동안 횡령한 금액은 성을 하나 짓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그렇게 큰 부정을 저질렀는데 시장직을 유지해 준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아이젠이 믿을만한 사람이 없고 또 지금 흑마법사 때문에 급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젠은 힘들게 새로운 사람을 찾느니 기존에 있던 사람의 목줄을 채우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아티나 시장은 앞으로 횡령이나 부정은 꿈도 꾸지 못하리라.


* * *


아이젠이 아티나에서 마지막으로 처리해야 할 일은 바로 용병들이었다.


“설마, 베르너의 새로운 영주님이셨을 줄이야.”


시청으로 찾아온 용병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사에게 고용되는 줄 알았던 용병들은 순식간에 영주에게 고용된 끗발 좋은 용병으로 신분이 수직 상승했다.

이 업계에서 영주에게 고용된 적 있다는 경력은 누구나 알아주는 법이었다.


“자네가 이끄는 용병은 몇이나 되나?”

“모두 13명입니다.”

“저흰 10명입니다.”

“7명이지만 전부 베테랑입니다.”

“저희 용병단은...”


아이젠이 용병으로 고용하기로 한 자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용병단을 운영하는 용병대장들이었는데 그들 밑엔 총 50 여명에 이르는 용병들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은 밑에 있는 부하들을 챙길 의무가 있었고 아이젠 역시 그걸 당연하게 받아 들였다.


“미리 말해두지만 계약서에 서명한 순간부터 명령 불복종은 엄히 다스릴 것이다. 알력 다툼은 용서하지 않겠다.”


아이젠의 선언에 용병들은 저마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속닥거렸다.

고용된 입장이었지만 용병들은 부당한 지시나 명령엔 잘 따르지 않았다.

특히 고용주의 실력이 의심됐을 땐 돈을 받아먹으면서도 태업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어쨌든 돈보다 목숨이 더 중요하긴 했으니까.


“영주님이나 다른 기사님들이 지휘하신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영주 밑에서 배짱을 부리거나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용병은 별로 없었다.

거기다 실력까지 증명했다면 더더욱!


“계약금으로 은화 100개를 줄 것이고 일급으로 두당 은화 1개씩 줄 것이다. 그 외엔 실적으로 판단하겠다.”

“알겠습니다.”


파격적이라고까지 할 순 없었지만 나름 괜찮은 금액이었다.

거기에 실적에 따라 돈을 더 주겠다니 용병들로선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더구나 영주 밑에 고용된다는 건 전쟁 용병들로 장기 계약을 의미했다.

일거리가 없어 노는 것보단 차라리 조금 덜 받더라도 꾸준한 수입이 있는 것이 용병들 입장에선 백배 나았다.


“내일 아티나를 떠날 것이다. 오늘은 휴식하고 장비를 점검하도록. 아침에 취한 채로 나타나면 책임을 물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어지간한 고용주였다면 용병들은 엿이나 먹으라면서 술을 퍼마셨겠지만 상대는 영주였다.

진짜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기에 용병들은 그날만큼은 술을 먹는 대신 장비에 기름을 먹이는 것으로 저녁을 보냈다.

폭풍전야, 곧 토벌전의 시작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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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했던 말 주워담기 +2 24.06.02 6,647 151 17쪽
30 암살자 +3 24.06.01 6,781 148 16쪽
29 암살 모의 +3 24.05.31 7,243 150 16쪽
28 데스 나이트 +2 24.05.30 7,541 174 13쪽
27 상징 +11 24.05.29 7,610 171 15쪽
26 귀환 +5 24.05.28 8,046 165 14쪽
25 흑마법사 토벌전 6 +5 24.05.27 7,938 175 15쪽
24 흑마법사 토벌전 5 +10 24.05.26 7,757 180 14쪽
23 흑마법사 토벌전 4 +4 24.05.25 7,922 170 14쪽
22 흑마법사 토벌전 3 +4 24.05.24 7,823 173 12쪽
21 흑마법사 토벌전 2 +4 24.05.23 8,026 172 14쪽
20 흑마법사 토벌전 +2 24.05.23 8,404 183 14쪽
» 도시 순회 6 +2 24.05.22 8,287 178 13쪽
18 도시 순회 5 +3 24.05.21 8,550 184 17쪽
17 도시 순회 4 +1 24.05.20 9,003 182 13쪽
16 도시 순회 3 +1 24.05.19 9,578 189 14쪽
15 도시 순회 2 +1 24.05.18 10,199 203 13쪽
14 도시 순회 +6 24.05.17 10,772 224 13쪽
13 마법부 +5 24.05.17 10,876 210 13쪽
12 베르너 성 +3 24.05.16 11,174 213 14쪽
11 서명하게 +4 24.05.15 12,010 250 14쪽
10 작위 수여식 +4 24.05.14 12,995 237 16쪽
9 북부 데뷔전 3 +8 24.05.13 13,381 23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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