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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죽람(藍仙竹籃)

혈마의 후예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남채화
작품등록일 :
2019.03.30 21:27
최근연재일 :
2019.09.08 23: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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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글자수 :
15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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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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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구장 혈마잔양 2

DUMMY

그것은 바로 강기로 이루어진 구슬(罡丸)이다.

기(氣)가 응축하여 만들어진 강(罡)을 한차례 더 응집하였으니, 강환에는 경천동지의 파괴력이 담겨있다.

강환은 그 파괴력만큼 사용하기 극도로 까다로운 편이다. 애초에 천인합일의 공력을 지니지 않으면 강환을 만드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설사 강환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심인지경(心印之境)이나 어검술(御劍術)과 같은 지고의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조차 없다.

혈마가 만들어낸 붉은 색 강환은 작은 나비처럼 날아가 조백의 정수리에 내려앉으려 한다.

조백의 두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광이 한차례 더 거세진다.

그리고 천왕탁탑장중에서 탁탑고행의 초식이 펼쳐진다. 본래는 근접한 상대의 어깨를 내리쳐 상대를 무력화 시키는 초식이지만, 조백은 그것을 머리위의 강환을 밀쳐내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빠르고 정확하며 위력적인 방어였으나, 강환은 조백의 손 사이를 농락하는 나비처럼 팔랑거리다가 그대로 정수리에 내려앉는다.

조백은 머리통이 산산조각이 나는 상상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살기에 취해서 맹수처럼 행동하던 조백은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황당한 표정도 잠시뿐. 조백은 자신의 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혈마를 노려보며 다시 달려들기 시작한다.

조백은 이해하지 못했으나, 혈마가 만들어낸 강환은 기존의 상식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파괴력의 총화라 할 수 있는 강환에서 파괴력을 완벽히 제어하고, 혈마 본인이 원하는 용도로 만들어 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일들을 천하의 무림인들에게 알려주고 설명한 다해도 과연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혈마의 손에서 또 다시 강환이 생성된다.

조백은 마치 단흔일선보를 평생토록 익힌 것처럼 능숙하게 펼친다. 살기를 내뿜으며 혈마를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옴에도 불구하고, 굽이 굽은 길을 걸어오는 느낌을 풍긴다.

강환은 주저하지 않고 조백의 복부를 향해 쏘아져 나간다.

좀 전의 나비 같은 모습과는 다르게 쏜살같다.

강환은 여전히 조백의 몸을 파괴하지 못했다.

오히려 강환은 제자리를 찾아 가듯 조백의 배꼽부근에 스며든다.

한편 조백은 이러한 상황을 예상한 듯 주저하지 않고 혈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조백의 신형이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꾼다. 마치 원래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혈마의 뒤를 잡는데 성공한다.

이는 단혼일선보에 이은 소수마공상의 파성비영(波聲泌影)의 수법이 그림과도 같이 펼쳐 진 것이다.

이렇게 무방비로 등을 내주었으니 언제라도 목숨이 다할 것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

혈마가 한 행동은 그저 뒤를 돌아본 것뿐이다.

그의 눈동자에서 낙혼구유안법이 번개처럼 시전 된다.

혈마는 심령금제로 조백이 잠깐 주춤하게 만든 것. 혈마는 조백의 공격 실패를 살짝 비웃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단지 그것만으로 조백의 그림과도 같은 공격은 수포로 돌아간다.

허공을 헛되이 때린 조백의 양손은 그대로 소림의 백보신권을 펼친다. 공격의 실패에 굴하지 않고 당장 할 수 있는 원거리 공격을 펼친 것.

이번에도 백보신권의 비급이 있다면, 그곳에서 그려져 있을 것 같은 그림과도 같은 공격이었다.

혈마는 혈마잔양신공이 가득담긴 백보신권의 권풍을 해소해 버리며 일갈한다.

“언제까지 내가 알려준 무공을 꼭두각시처럼 펼치기만 할 것이냐.”

혈마의 눈에서 흉광이 일며 낙혼구유안법이 펼쳐진다. 혈마는 심령금제로 조백이 혈마잔양신공을 제외한 무공을 펼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혈마의 의도에 반하는 일이 벌어진다.

낙혼구유안법이 발동된 바로 그 순간.

조백은 온갖 신공의 구결을 떠올리며 낙혼구유안법을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천왕탁탑장의 견강입심을 비롯해서, 만상신공속에 포함된 호연지기. 전진의 기공들 속에 포함된 금안정명(金眼正明)과도 같은 구결이 마구잡이로 사용되었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광대하게 하는데 있어 부족함이 없는 구결들. 조백이 동원한 구결들 중에 한 가지라도 깊게 수련한다면, 낙혼구유안법 정도는 깨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마구잡이로 구결의 내용을 기억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일이 아닌 것이다.

조백은 낙혼구유안법에 대한 저항은 실패로 끝나고, 혈마에 의해 가벼운 심령금제가 걸리게 된다.

“혈마잔양신공을 제외하고는 구결만 아는 무공들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때 조백의 눈빛이 빛난다.

맹수처럼 살기에 번들거리는 탁한 눈빛이 아니며, 심령금제에 걸렸다고는 짐작도 할 수 없는 맑은 눈빛이다.

조백은 마음가짐을 달리하며 크고 강하게 진각을 밟는다. 석실 전체를 울리는 강한 진각의 소리에, 혈마는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조백의 손에서 펼쳐지는 초식은 흑수도도.

유연하게 물이 흐르듯 장을 쳐내던 조백은 진각을 재차 밟으며 바로 청죽호세의 초식을 펼친다. 결과적으로 화광만천의 초식까지 폭죽처럼 펼쳐진다.

그야말로 완벽한 오행장이 펼쳐진 것이다.

혈마를 두들겨 패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담긴 완벽한 오행장.

오래전 무명의 소년이 철수존자를 때려죽였을 때 사용했던 오행장처럼, 조백의 오행장 역시 막강한 위력으로 혈마를 향해 날아든다.

천하의 혈마조차 이 일장은 맞아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혈마는 조백의 기개에 감탄하며 오행장을 통해 폭사된 경력을 맨몸으로 받아낸다. 맨손과 맨몸이 격돌했지만 거암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조백은 자신의 공격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손에서 폭사된 힘에도 혈마는 꼼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토록 훌륭한 공격을 보여주다니. 과연 나의 후예다운 모습이다.”

혈마의 잔잔한 목소리에 불길함을 느낀 조백은 황급히 뒤로 물러선다.

결국 석벽에 가로막히자 불안한 표정이 조백의 얼굴 전체에 드리운다.

“이것은 잔양구환장이라고 한다.”

조백이 본 것은 끝없이 펼쳐진 평야와 맞물려 세상을 불태울 것만 같은 저녁노을(殘陽)이었다.

조백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만다.


“눈을 떠라.”

혈마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리자 조백은 천천히 눈을 뜬다.

장소는 이전과 같은 석실.

하지만 조백이 느끼는 정신의 청명함은 기이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아버지를 비롯해 친인들의 죽음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불타오르는 조가장의 모습 역시 기억하고 있다. 그에 따른 슬픔 역시 느끼고 있었지만, 동시에 감내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조백은 평온한 표정으로 혈마를 쳐다본다.

혈마 역시 평온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심살융화 도래사행.”

심살융화 도래사행(心殺融和 到來死行)으로 시작하는 잔양구환장의 구결이 조백의 머릿속에서 절로 이어진다.

혈마잔양신공에서 시작하여 환(幻)의 절정으로 치달은 마공. 조백은 잔양구환장(殘陽九幻掌)의 구결을 음미한다.

혈마의 입에서 구결이 흘러나오는 것이 끝나자마자 조백이 입을 연다.

“나는 당신의 후예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몇 번 말하지 않았느냐. 그것은 이미 결정된 일로, 너의 의사와는 무관한 일이다.”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지고, 혈마가 그것을 끊는다.

“앉아라. 할 이야기가 있다.”

조백은 잠자코 석실 한쪽의 의자에 몸을 맡긴다.

“본래는 본교의 역사 또한 너에게 상세히 전할 생각이었다.”

조백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으나, 눈빛은 거절의 뜻을 표한다. 혈마는 조백의 의사를 알아차렸지만, 상관없이 말을 시작한다.

“본교의 전통은 사부를 해함으로서 교를 이어받는 것이다. 오래전에 나는 이 잊힌 전통으로 사부를 해하고 그의 검인 천마검을 꺾어 잔양마검을 벼려내었지.

나는 무학의 끝을 보고자 마교를 버리고 은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마교는 내가 남긴 것을 파괴하여 새로운 전통을 이으려 할 것이다. 그러니 굳이 마교의 역사 같은 것은 알 필요 없는 것이지.

그리고 너는 나의 후예로서 그들을 박해하고 멸할 권리가 있다.”

혈마의 끔찍한 소리에도 조백은 표정의 변화가 없다.

혈마는 조백 본인이 마교와 원한이 깊은 것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다.

조백이야 말로 마교에 의해 가문이 풍비 박살난 장본인이 아닌가.

혈마는 자신의 연이 조백과 닿아있어서인지, 조백의 연이 자신과 닿아있어서인지 명확히 구분해 낼 수 없었다.

이러한 운명의 장난을 떠올리며, 혈마는 그가 농담처럼 여러 번 언급한 것을 떠올린다.

혈마가 조백을 후예로 삼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결정인 것처럼, 조백이 자신에게 있는 원한을 발견하고 복수를 행하는 것은 조백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네가 지금 심적으로 안정된 것은 오랜 심령금제에 의한 부작용이다. 훗날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게 되면 너는 무의 궁극으로 가는 왕도를 밟게 될 것이다.”

혈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앞섶을 풀어 가슴에 나있는 작은 상처를 보여준다. 그 작은 상처는 회백색의 반점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백은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가만히 있었다.

“그래. 훗날 이것에 대해 깨닫게 되면 길 또한 알게 될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행운을 빌어주마.”

그 순간 혈마의 몸이 조금씩 투명해지기 시작한다.

“너의 정수리와 기해혈에 심어둔 잔양지기는 최후의 순간 너의 목숨을 보호하고자 심어둔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임독양맥을 타통한다면 큰 의미가 없는 일이 되겠지만 말이야.”

혈마는 그 말과 함께 완전히 투명해져 사라지고 만다.

신비롭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우화등선이 아닐까 의심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혹은 조용하고 신비한 최후에 대해 씁쓸함을 느낄 법도 하다.

그러나 조백은 신경도 쓰지 않고 석실을 나갈 생각만을 한다. 그는 어렵지 않게 석실의 문을 여는 방법을 알아내고 석실을 나선다.

짧지 않은 통로를 따라 나가자 절벽의 한복판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백은 아래쪽으로 이어진 천장단애보다는 위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쉬울 것이라 생각하고 절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조백은 익힌 적도 없는 벽호공(壁虎功)이 저절로 펼쳐진다.

조백 스스로 배웠지만 익히지 않은 무공들을 사용하는데 약간의 거부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익숙해져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혈마가 조백의 머릿속에 퍼부어둔 것은 어지간한 대문파의 장경각에 비견될 만한 것들이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절벽을 다 오른 조백은 서서히 지고 있는 태양을 바라본다.

주변의 풍경은 조백이 익숙한 소화산의 풍경은 아니었다. 게다가 알 수 없는 민물의 비린내 같은 것이 조백의 코끝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조백은 주저함 없이 저 멀리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작가의말

여기까지가 혈마의 후예 1권 분량입니다.

다음주부터 똑같이 일주일에 한화씩(죄송.)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9.7.31 농잠처럼->농담처럼 으로 오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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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십일장 용호쌍격 1 19.08.17 240 3 13쪽
28 십장 칠할강변 3 19.08.10 296 3 13쪽
27 십장 칠할강변 2 19.08.03 396 4 13쪽
26 십장 칠할강변 1 19.07.27 452 3 13쪽
» 구장 혈마잔양 2 19.07.20 487 5 11쪽
24 구장 혈마잔양 1 19.07.20 493 4 12쪽
23 팔장 건목고엽 3 19.07.13 540 6 10쪽
22 팔장 건목고엽 2 19.06.08 613 8 14쪽
21 팔장 건목고엽 1 19.06.01 685 10 9쪽
20 칠장 일일연마 3 19.05.25 681 11 11쪽
19 칠장 일일연마 2 19.05.18 716 9 11쪽
18 칠장 일일연마 1 19.05.18 754 12 10쪽
17 육장 오해중첩 3 19.05.11 770 10 8쪽
16 육장 오해중첩 2 19.05.11 755 12 13쪽
15 육장 오해중첩 1 19.05.11 811 12 11쪽
14 오장 득오거보 3 19.05.04 935 13 12쪽
13 오장 득오거보 2 19.05.04 920 17 10쪽
12 오장 득오거보 1 19.05.04 968 16 11쪽
11 사장 화향취호 3 19.04.27 994 16 7쪽
10 사장 화향취호 2 19.04.27 1,041 16 11쪽
9 사장 화향취호 1 19.04.27 1,237 12 12쪽
8 삼장 명약관화 3 19.04.13 1,262 16 10쪽
7 삼장 명약관화 2 19.04.13 1,277 14 12쪽
6 삼장 명약관화 1 19.04.13 1,456 17 10쪽
5 이장 틈결지벽 2 19.04.06 1,578 17 19쪽
4 이장 틈결지벽 1 19.04.06 1,775 15 13쪽
3 일장 고량자제? 3 19.03.31 1,863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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