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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죽람(藍仙竹籃)

혈마의 후예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남채화
작품등록일 :
2019.03.30 21:27
최근연재일 :
2019.09.08 23: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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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5,951

작성
19.03.3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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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일장 고량자제? 3

DUMMY

조백은 정오가 조금 지나서 조가장으로 돌아왔다.

그가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하녀 한명이 곧바로 따라 들어온다. 그녀가 들고 있는 쟁반 위에는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그릇이 놓여있다.

“공자께서 이렇게 행동하면 소녀가 잘릴 수도 있습니다. 공자님 식사 대접하는 일이 제 주된 업무랍니다.”

하녀는 조백에게 핀잔을 주고는 그릇을 탁자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둔다. 그리곤 말없이 조백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하녀 소혜의 눈빛은 굉장히 냉정하고 착하고 가라앉은 것이 조백을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지 않겠지만, 조백은 악종기보다 소혜의 눈빛을 더 무섭게 느낀다.

그래서 조백은 품속의 십상생배를 꺼내기도 전에 다가와 뜨거운 그릇을 양손으로 들어올린다. 그리고 단숨에 들이키려고 얼굴에 가져다 대려는데······.

“식혀 드셔야죠.”

조백은 건성으로 그릇에다 대고 입김을 후후 분다. 그리곤 뜨거운 인삼차를 술처럼. 아니 냉수처럼 단번에 들이킨다.

“어떠신지요?”

“써.”

“그렇다면 잘 끓여 졌군요. 이게 다 공자의 건강을 위해서랍니다.”

소혜는 그렇게 말하고는 민첩하게 방을 나가버린다.

조백은 쓴맛과 뜨거움이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침상의 머리맡에 둔 검은색의 상자 쪽으로 다가간다.

향나무로 틀을 짜고 옻칠을 몇 번이나 하여 까맣게 윤기가 나는 상자를 열자 두 개의 술잔이 담겨져 있다. 그 술잔에는 각각 거북이와 두루미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으로 한 벌이 갖춰졌군. 이제 아버님께 선물로 드릴 수 있겠어.”

조수형은 젊었을 적 낭인으로 떠돌다가 시골여인인 차예현과 혼약을 맺었는데, 이 두 술잔이 바로 그때 사용했던 예물이다.

조백은 우연찮은 기회에 이 술잔들이 원래 열 개가 한 벌임을 알게 되고는 모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성립포에 한 번에 다섯 개가 들어 왔을 때는 정말 기뻤었지. 그러다가 남은 세 개를 못 모아서 돌아버리는 것 같았지만 말이야.”

조백은 품속에서 꺼낸 술잔을 천천히 상자 안에 집어넣는다.

비록 조백은 어머니인 차예현의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술잔을 보고 있노라면 자애로운 차예현의 얼굴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조백은 상자를 조심스럽게 닫아 원래 있던 곳에 놓고 잠시 울적한 기분에 취해 있었다. 누가 갑작스럽게 방안으로 들어오거나 하지 않는 이상 조백은 한참을 우울함에 취해 있었을 것이다.

[탁!]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에 조백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소리의 정체는 바로 악종기가 골랐던 패검에서 난 소리였다.

“아. 들뜬 기분에 내가 그냥 가지고 왔었지.”

조백은 탁자 옆에 기대어 놨던 패검을 집어든다. 기분이 달라지자 느낌도 다른 듯 패검은 굉장히 묵직했다.

검이 뽑히자 스르릉 거리는 소리가 방안에 은은히 퍼진다. 보통 장식용인 패검을 만들때는 보통의 검과 같이 단조(鍛造)방식으로 만들어 날을 세우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이 패검은 거푸집에 쇳물을 들이부어 만든 것이었다. 당연히 날도 서있지 않고, 보통의 검보다 무거우며 검보다는 검모양의 쇠막대기에 가깝다.

조백은 패검을 검집에 넣지도 않고 대충 바닥에 내팽겨 친다.

애초에 악종기는 도법의 고수며, 검으로 병기를 바꾸는 일을 단행한다 하더라도 전당포에서 검을 구입할리는 없다.

조백은 순간 패검을 신중히 고르던 악종기의 얼굴이 생각났기에 패검을 다시 집어 들어 검집에 집어넣는다.

이번엔 악종기가 고른 무공비급을 꺼내든다.

조백은 먼저 삼절검법의 비급을 펼쳐본다.

검을 휘두르는 여러 장의 그림과, 그에 따른 설명이 적혀있다.

애초에 초식도 세 가지 밖에 없고 극도로 단순한 초식들이다. 그렇다 보니 조백은 몇 분 지나지도 않아 삼절검법의 비급을 완독할 수 있었다.

조백은 횡소천군의 식대로 패검을 뽑아 휘둘러본다.

이 패검은 보통의 장검보다 무겁고, 조백의 근력 역시 형편없는 수준. 당연히 횡소천군을 펼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자세가 달라서 그런가.”

조백은 이번엔 똑바로 서서 한손에 패검을 들고 횡소천군을 펼친다.

비급에 그려져 있는 것처럼 양 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서서 오른발을 한발 앞으로 내딛으며 검을 좌에서 우로 벤다.

패검이 기운차게 공기를 밀어내는 붕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조백은 만족스럽지 않은지 인상을 찌푸리며 비급을 좀 더 살핀다. 단순한 동작에 단순한 그림과 설명. 더 살필 것도 없지만 조백은 횡소천군에 적힌 설명을 잠자코 곱씹는다.

조백은 이번엔 좀 더 천천히 움직인다.

방금 전과 동일하게 보법을 밟고 동일하게 검을 휘두른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검을 휘두를 때 허리가 함께 돌아가며 힘을 싣고,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합세하여 위력을 배가시켰다는 점이다.

“속도가 너무 느린 거 아냐?”

조백은 왼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린다.

그러더니 자신의 왼손을 마치 처음 보는 물건마냥 바라보고는 패검을 양손으로 잡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횡소천군이 펼쳐진다.

[팡!]

허공을 때리는 소리가 처음과는 확연히 다르다.

약간의 만족감을 느낀 조백은 손등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대충 문질러 닦는다.

다만 조백은 방금 전 세 번의 상황이 무엇이 다르고 어느 것이 정답인지 알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패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고는 오행장의 비급을 펼쳐본다.


한편 조백은 꿈에도 몰랐으나 이러한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반쯤 열려진 창문 저 멀리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악종기는 확신에 차있다.

‘조백의 자질은 조위홍 못지않다.’

[똑바로 서서 앞으로 한걸음 내딛으며 검을 좌에서 우로 휘두르시오.] 따위의 설명을 가지고 횡소천군을 완벽히 펼치는 사람은 없다.

초식이 단순하기 때문에 거기에 쾌속함을 더하거나, 위력을 증가시키는 등의 변주가 가능하다. 보법과 동작을 조금 더 추가함으로서 횡소천군은 손쉽게 직단천지(直斷天地)나 송풍약류(松風躍流)와도 같은 초식으로 변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검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적과 나사이의 간합을 재는 등의 상승의 무리를 터득하기에도 알맞다.

이렇다보니 역설적이게도 삼절검법이 삼류무공으로 이름 높은 것이다.

삼절검법 이후의 체계적 수련을 받을 수 없는 삼류 무인인들은 당연히 등한시한다. 확고한 체계가 잡혀 있는 명문에서는 삼절검법에 파고들 필요가 없으니 등한시하게 마련.

“대공자는 스물의 어린 나이에 매화검수로 발탁되었지.”

악종기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인상을 찌푸린다. 무려 십년을 조백의 그림자마냥 따라다니며 호위해왔다. 어떻게 자신이 조백의 자질을 알아차릴 수 없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악종기가 무서운 얼굴로 혼란스러워 할 때 저 멀리서 작은 인기척이 악종기의 귓가를 간지럽힌다. 조백의 직속 하인인 소혜가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장주님께서 오늘 저녁식사에 악대협을 초대하셨습니다.”

악종기는 소혜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소혜는 그것이 익숙한지 “그럼.”이라고 짧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왔던 길로 가버린다.


몇 십 명이 와서 식사를 해도 될 것만 같은 굉장히 넓은 방.

하지만 이 방은 넓이에 비해 꾸밈의 정도는 초라했다. 한쪽에 놓인 침상과 그 옆에 작은 서탁. 그 맞은편 벽에 자리를 잡은 낡은 원형 탁자가 전부인 이곳은 바로 조수형의 거처이자 집무실이다.

누구도 섬서성 제일의 부자인 조수형의 방이 이렇게 형편없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다.

“화홍은 속이 좋지 못하다고 하여 오지 않았네.”

조수형의 나이는 올해 육십이지만, 아직까지 기화홍과의 금슬이 좋은 듯 그녀의 이름만을 친근하게 불렀다.

조수형과 악종기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식사를 시작했고, 매우 고요하게 식사가 끝이 난다. 하인들이 다과를 내올 때 쯤 조수형이 입을 연다.

“인삼차라네. 아백(조백의 어릴 적 이름.)이 막 태어 났을 땐 매우 허약했거든. 당시에 인삼차를 달여서 마시던 것이 버릇이 되었지.”

조수형이 말한 내용은 악종기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또한 차예현이 조백을 낳고 반년만에 명을 달리한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아이는 날 때부터 건강했던 아홍(조위홍의 어릴 적 이름.)과는 너무도 달랐지.”

조수형은 그렇게만 말을 하고 다시 입을 다문다.

“오늘 한 자루 패검과 무공비급들을 샀다고 들었네.”

“그렇습니다.”

악종기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짧게 대답한다.

“손안에 쥔 여린 꽃과 같이 키웠지. 너무 방종하게 키운 것도 사실이나, 지어미를 닮아 심성이 착하여 삐뚤어지지 않았다네.”

조수형은 잔잔하고 또 두서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러고 보니 이번 달이 자네의 계약 종료일이지? 내 계산으로는 자네의 빚은 지난달에 모조리 탕감되었을 걸세.”

조수형은 악종기가 젊었을 적 자신의 도박장에서 돈을 탕진하던 시절을 떠올리는 듯 눈을 지그시 감는다.

조가장에 고용된 무인들이 숫자는 백명에 이른다. 악종기가 그들 전부를 알지 못하지만, 그들 중 태반이 채무관계로 엮여 있음은 짐작하고 있다.

“이번 달부터 자네가 버는 돈은 모조리 자네의 것이지. 그러니 내가 주는 급료가 너무 적다하지 말고 아끼시게.”

조수형의 말에 악종기는 고개를 한번 끄덕인다.

“보통 무인들은 큰돈이 들어오면 무엇에 쓰나. 도박하는 자들은 내 많이 보지만······. 자네는 이미 도박을 끊지 않았는가.”

“딱히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조수형은 악종기의 거치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보통 무기를 바꾸는 경우도 많이 있더군. 그러고 보니 자네의 거치도도 제법 낡았구먼.”

조수형의 말에 악종기는 도의 손잡이를 슬쩍 쓰다듬는다. 조가장에 위탁한 이후로 본래의 용도로 사용한 적이 드문 편이다. 실제로 낡기도 낡았으니······.

“그러고 보면 후사를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도 자식이 둘 있지만 아홍은 화산파에 빼앗긴 거 같아 영 마음이 탐탁지 않다네.”

악종기의 눈에 광망이 스쳐지나간다. 조수형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손안에 쥔 꽃은 참으로 여리지. 언젠가 만개하여 꽃잎이 날아가 버릴 것은 알지만, 그때가 되기 전에 나비가 꼬이는 것은 원치 않는다네.”

조수형은 그렇게 말하고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선다. 악종기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별 말 없이 그의 집무실을 나선다. 하지만 집무실을 나서는 악종기의 표정은 그야말로 흉신악살과도 같다.

조수형과 저녁식사를 하기 전가지만 해도 악종기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체 어떠한 벽이 나의 눈을 가리고 조백의 자질을 감추고 있었나.”였다. 악종기는 뒤이어 가장 최근에 자신의 거치도가 피맛을 봤는지 떠올렸다.

무려 십 일 년전이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의 피를 거치도의 먹이로 삼았던 것이 벌써 십 일 년전.

악종기의 실력은 일류의 무림인으로서 절정으로 가는 길목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연이은 실전과 칼날 끝의 생활 같은 긴박함은 악종기의 실력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조가장에서 악종기와 같은 고수. 그것도 상대와 싸우게 되면 반드시 피를 보는 무시무시한 고수가 조백의 호위가 될 필요가 있었나?

악종기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조백이 태어날 시점에 조가장은 이미 조위홍을 통해 화산파와 연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물며 악종기가 조가장에 고용되었을 때는 사실상 조가장은 섬서성의 패자와 다름이 없었다.

십 년 전부터 섬서성에서는 누구도 조가장의 비위를 거스르는 자가 없다. 조가장의 부를 보고 달려드는 부나방 같은 자들조차 없을 정도니.

조백의 자질을 숨기고, 무림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조백을 가로막고 있는 벽은 다름 아닌 악종기였다. 악종기의 실력과 명성이 바로 거대한 벽인 것이었다.


작가의말

토요일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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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십일장 용호쌍격 2 19.09.08 162 1 13쪽
29 십일장 용호쌍격 1 19.08.17 240 3 13쪽
28 십장 칠할강변 3 19.08.10 295 3 13쪽
27 십장 칠할강변 2 19.08.03 396 4 13쪽
26 십장 칠할강변 1 19.07.27 452 3 13쪽
25 구장 혈마잔양 2 19.07.20 486 5 11쪽
24 구장 혈마잔양 1 19.07.20 493 4 12쪽
23 팔장 건목고엽 3 19.07.13 539 6 10쪽
22 팔장 건목고엽 2 19.06.08 613 8 14쪽
21 팔장 건목고엽 1 19.06.01 685 10 9쪽
20 칠장 일일연마 3 19.05.25 681 11 11쪽
19 칠장 일일연마 2 19.05.18 716 9 11쪽
18 칠장 일일연마 1 19.05.18 753 12 10쪽
17 육장 오해중첩 3 19.05.11 770 10 8쪽
16 육장 오해중첩 2 19.05.11 755 12 13쪽
15 육장 오해중첩 1 19.05.11 810 12 11쪽
14 오장 득오거보 3 19.05.04 934 13 12쪽
13 오장 득오거보 2 19.05.04 919 17 10쪽
12 오장 득오거보 1 19.05.04 967 16 11쪽
11 사장 화향취호 3 19.04.27 993 16 7쪽
10 사장 화향취호 2 19.04.27 1,041 16 11쪽
9 사장 화향취호 1 19.04.27 1,237 12 12쪽
8 삼장 명약관화 3 19.04.13 1,261 16 10쪽
7 삼장 명약관화 2 19.04.13 1,276 14 12쪽
6 삼장 명약관화 1 19.04.13 1,456 17 10쪽
5 이장 틈결지벽 2 19.04.06 1,577 17 19쪽
4 이장 틈결지벽 1 19.04.06 1,774 15 13쪽
» 일장 고량자제? 3 19.03.31 1,863 17 12쪽
2 일장 고량자제? 2 19.03.31 2,045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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