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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죽람(藍仙竹籃)

혈마의 후예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남채화
작품등록일 :
2019.03.30 21:27
최근연재일 :
2019.09.08 23: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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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343
글자수 :
15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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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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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팔장 건목고엽 3

DUMMY

두 명의 복면인은 악종기의 칼에 피떡이 되어 쓰러지고 만다. 악종기가 자신의 상처를 살피는 사이에 정신을 차린 조수형은 조백에게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아직도 조가장을 물려받고 싶지 않느냐.”

조수형의 말에 조백의 눈엔 복잡함이 어린다. 이제는 거절도, 수락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탓이다.

“너의 결정에 따라 내가 다음에 할 말이 결정된다.”

“저는······.”

조수형의 손이 매섭게 조백의 두 뺨을 때린다.

“무도의 길을 걷겠다며 원하는 것을 거침없이 말하던 기개는 어디 갔느냐!”

“소자는 조가장을 물려받고 싶지 않습니다.”

조백은 그렇게 말하고 굵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조수형은 애틋한 표정으로 아들의 눈물을 닦아준다.

“그래. 나의 조가장을 네가 물려받는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없겠지만. 스스로의 것을 만들고 싶다는데 막을 순 없지.”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어느새 상처를 지혈하고 다가온 악종기가 조수형의 말을 끊고 나선다.

“오히려 지금밖에 시간이 없을 지도 모르지.”

조수형은 그렇게 말하고는 하려던 말을 이어나간다.

“소화산 정상의 소소정을 기억하느냐.”

소소정(素昭亭)이라는 말에 조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곳에 길이 있다.”

[하하하하하하!]

순간 내공이 실린 웃음이 사방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조수형과 송운록은 피 한 사발을 토하고 그대로 주저앉는다. 조백의 입가에도 실낱같은 핏줄기가 보인다. 악종기만이 이를 악물고는 칼을 쥔 손에 힘을 더한다. 하지만 낯빛은 창백하기 이를 데 없다.

웃음소리의 주인은 바로 풍대인.

그는 냉정한 표정으로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는데, 그 모습이 사뭇 기괴했다.

조백일행 앞에 나타난 풍대인은 웃음을 멈추고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창백하고 앙상해 보이는 풍대인의 손이 소리 없이 뻗어 나온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살짝 내려찍는 시늉을 한다.

가공할 장력의 파도가 위에서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백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마교의 절세무학 수라벽파장(修羅劈破掌).

악종기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압사한다.

모두가 경악스러움에 빠져 있는 사이에 조수형이 일어서 자세를 바로 한다.

잔기침조차 없다.

조수형은 입가의 핏자국은 신경도 쓰지 않고, 신중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조수형은 풍대인의 코앞에 서서 인상을 쓴다. 고통이나 상대를 겁박하고자 쓰는 인상이 아니다. 그것은 귀찮음이었다.

“고작 돈 몇 푼에 이런 번잡한 일을 벌이는가.”

조수형의 말에 풍대인이 답을 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조수형이 내민 손바닥에 그만 말을 멈추고 만다.

마교에서 지고무상한 위치에 있는 풍대인이 고작 상인인 조수형의 기세에 밀린 것이다.

“내가 상단을 꾸리지 않은 것은 공평한 배분을 위함이었지. 그리고 몰래 이득을 본다고 해서 제제를 가한 적도 없다.”

조수형이 섬서의 상권을 장악한 후에 일찌감치 상단을 꾸렸다면, 조가장의 부는 지금의 몇 배나 되는 규모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다가오는 골칫거리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조수형은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서 동업자들과의 균형을 조절하고, 또 약간의 우선적 발언권을 얻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수형의 상재이며, 다른 동업자들보다 그의 말에 무게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수형은 조가장으로 오는 이득도 갈등도 관리할 수 있었다.

조수형이 두 아들의 인생 역시 관리할 생각을 품었던 것은 단순히 그의 성격 탓이었을까. 아니면······.

순수하게 조수형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기대하고 있던 풍대인은, 그의 눈에서 어떠한 계산이 끝난 것을 알아차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돈이 목적이라면 주지.”

“돈은 이미 충분히 얻었소. 지금 하는 것은 뒤처리인 것이지.”

뒤처리라는 말에 조수형은 박장대소한다. 어쩐지 처연한 웃음의 끝에 가벼운 토혈이 이어진다.

“내가 이런 형편없는 눈을 가진 자와 동업을 했다니.”

가벼운 비난에 풍대인은 표정의 변화 하나 없다.

“훗날 이 일을 떠올리며 후회나 하지 마시오.”

조수형의 말에 풍대인은 이제야 이죽거리며 답한다.

“조가장은 오늘 불길 속에 재가 될 것이오. 내가 후회한다 하더라도 조장주는 그것을 보지 못하겠지.”

조수형은 풍대인의 말에 바로 대답하려다가 창백해진 얼굴로 비틀거린다. 그는 부러진 관목에 기대며 입을 연다.

“그건 두고 볼일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상인으로서의 충고랄까. 훗날 이와 같은 번잡한 일을 또 벌일 때는, 충분함이 아니라 부족함을 관리해야 할 것이오.”

풍대인은 그게 무슨 뜻이냐며 되물으려 했으나, 이내 멈추고 만다. 조수형은 관목에 기댄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풍대인의 시선은 그제야 이 자리에 없는 조백과 송운록을 찾는다.


한편 조백은 눈물을 흘리며 달리고 있었다.

소화산 정상의 소소정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백의 친모인 차예현이 그곳에서 눈을 감은 이후로, 조수형이 그곳을 부숴버렸기 때문이다.

조백은 당시에 조수형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내가 이곳을 부숴버린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속에 있는 소소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을 계속 입 밖으로 내뱉으면 이 일을 기억하며 슬퍼하겠지.”

조수형은 그 이후로 조백의 앞에서 단 한 번도 소소정을 비롯해 차예현의 이름을 꺼낸 적이 없었다.

당시 조백은 어린 나이였지만 이러한 극약처방 덕에,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견뎌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조백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낼 시간조차 없었다.

순간 조백은 발을 헛디디면서 바닥을 구른다. 조백에게 거의 끌려오다 시피 했던 송운록역시 꼴사납게 바닥을 구른다.

먼저 몸을 일으킨 것은 송운록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울고 있는 조백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다.

조백은 송운록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진정이라도 된 듯 표정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맨손으로 눈가를 한번 훑어내고는 손을 내뻗는다.

바로 그때 조백의 무표정한 얼굴이 경악과 공포로 뒤덮인다.

조백은 물이 흐르듯 검을 뽑으며 잔설무흔(殘雪無痕)의 초식을 펼친다. 잔설무흔은 빙설검법의 가장 빠른 초식. 황급히 펼친 것 치고는 평소의 기량을 웃도는 쾌검이 뿜어져 나왔다.

[푸슥.]

맥 빠지는 기이한 소리와 함께 조백의 검은 어떠한 힘에 의해서 튕겨져 나간다.

시시한 바람 빠지는 소리와는 다르게 조백이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팔이 산산조각 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의 격통.

조백은 고통스러운 표정도 숨기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조공자의 성취가 벌써 잠류지(潛流指)를 막아낼 정도일 줄은 몰랐소이다.”

풍대인은 경탄하는 표정으로 조백을 바라본다. 확실히 조백의 성장속도는 놀라운 수준이다. 풍대인은 잠류지를 펼쳤던 손을 거두며 잠시 다른 생각을 한다.

‘본교로 거둬들여도 괜찮을 만한 인재다.’

풍대인은 조백을 마교로 끌어들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아니다 무의미한 일이야.’

풍대인은 헛된 생각을 접고는 조백을 향해 수라벽파장을 펼친다.

무시무시한 위력이 담긴 장력의 파도가 조백을 덮친다. 악종기가 압사 당했을 때 보다 몇 배는 높은 수준의 위력.

말 그대로 사람이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강맹한 위력. 조백이 서있던 자리에는 작은 피보라가 일었다가 사라진다.

이것은 매우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무엇보다도 수라벽파장을 펼친 풍대인이 가장 놀랐다.

풍대인은 어안이 벙벙하여 자신의 손을 쳐다본다. 조백의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지만, 이토록 강력한 공격을 할 생각은 없었다.

풍대인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수라벽파장을 펼치려는 순간 기이한 살기를 느꼈지만, 그것은 매우 찰나의 일이고, 또한 살기는 미약해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만큼 약했다.

그러나 순간 뿜어져 나온 미약한 살기는 풍대인으로 하여금 전력을 폭발시키게 만들었다. 무인의 경각심을 절묘하게 부추기는 살기를 뿜어져 나온 것이다.

무의 궁극에 달한 절대자가 존재한다면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풍대인은 설마 자신을 농락할 만한 고수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흥분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을 마친 풍대인은 송운록을 물끄러미 보더니 그를 향해 잠류지를 날린다. 송운록은 고통스러운 표정과 함께 가슴을 부여잡으며 쓰러진다.

풍대인은 귀빈원을 향해 몸을 날려 사라져버린다.


쓰려졌던 송운록이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송운록은 자신의 가슴팍이 시뻘겋게 변한 것에 놀라 황급히 손으로 더듬거린다.

하지만 가슴팍의 통증은 어느새 사라진 뒤였고, 붉은 자국도 물감이 옅어지는 것처럼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송운록은 혈마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쉰다. 조백이 피보라가 되어 죽었다고 생각했을 땐 정말 놀랐지만, 혈마의 행적을 떠올리면 조백은 지금 누구보다도 안전할 것이다.

“그냥 안 유명한 고수이겠거니 했더니만. 진짜 혈마였다니.”

송운록은 왠지 혈마의 눈에 띈 조백의 인생이 안타깝다고 여겼다.

송운록은 고개를 흔들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귀빈원 쪽에서는 흙먼지가 장력의 파도를 따라 용권풍처럼 몰아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은빛 섬광이 용처럼 춤춘다.

다른 반대쪽에서는 검은 연기와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남의 처지나 생각해줄 상황이 아니지.”

송운록은 살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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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십일장 용호쌍격 2 19.09.08 162 1 13쪽
29 십일장 용호쌍격 1 19.08.17 240 3 13쪽
28 십장 칠할강변 3 19.08.10 295 3 13쪽
27 십장 칠할강변 2 19.08.03 396 4 13쪽
26 십장 칠할강변 1 19.07.27 452 3 13쪽
25 구장 혈마잔양 2 19.07.20 486 5 11쪽
24 구장 혈마잔양 1 19.07.20 493 4 12쪽
» 팔장 건목고엽 3 19.07.13 540 6 10쪽
22 팔장 건목고엽 2 19.06.08 613 8 14쪽
21 팔장 건목고엽 1 19.06.01 685 10 9쪽
20 칠장 일일연마 3 19.05.25 681 11 11쪽
19 칠장 일일연마 2 19.05.18 716 9 11쪽
18 칠장 일일연마 1 19.05.18 753 12 10쪽
17 육장 오해중첩 3 19.05.11 770 10 8쪽
16 육장 오해중첩 2 19.05.11 755 12 13쪽
15 육장 오해중첩 1 19.05.11 810 12 11쪽
14 오장 득오거보 3 19.05.04 934 13 12쪽
13 오장 득오거보 2 19.05.04 919 17 10쪽
12 오장 득오거보 1 19.05.04 967 16 11쪽
11 사장 화향취호 3 19.04.27 993 16 7쪽
10 사장 화향취호 2 19.04.27 1,041 16 11쪽
9 사장 화향취호 1 19.04.27 1,237 12 12쪽
8 삼장 명약관화 3 19.04.13 1,261 16 10쪽
7 삼장 명약관화 2 19.04.13 1,276 14 12쪽
6 삼장 명약관화 1 19.04.13 1,456 17 10쪽
5 이장 틈결지벽 2 19.04.06 1,577 17 19쪽
4 이장 틈결지벽 1 19.04.06 1,774 15 13쪽
3 일장 고량자제? 3 19.03.31 1,863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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