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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죽람(藍仙竹籃)

혈마의 후예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남채화
작품등록일 :
2019.03.30 21:27
최근연재일 :
2019.09.0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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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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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구장 혈마잔양 1

DUMMY

구장 혈마잔양


-혈마잔양신공.-


“눈을 떠라.”

혈마의 목소리에 조백은 거짓말처럼 눈을 뜬다.

조백은 정신이 몽롱하여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았다. 몸에 아무런 힘이 없어서 움직일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혈마잔양신공의 원류는 소수마공에서 시작된다.”

혈마가 혈마잔양신공이라는 마공의 연원을 지루하게. 또 한참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조백은 어쩔 수 없이 혈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혈마가 하는 이야기의 요점은 소수마공과 천왕탁탑장. 그리고 오래전 마교에 의해 사라진 살막의 단천검법. 이 세 가지 무공을 천마신공의 마종본원(魔宗本源)의 이념에 따라 합쳐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소수마공의 유령과도 같은 기괴함과 천왕탁탑장의 견고함. 거기에 단천검법의 강력한 암경이 한데 섞이니 혈마잔양신공이라는 희대의 마공이 탄생한 것이다.

“먼저 소수마공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혈마의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조백은 정수리로부터 발끝까지 번개가 관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몸속이 지글거리면서 터져나갈 것 같은 통증에 조백은 비명을 지르고 바닥을 구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소수마공의 유령경에 대해 말해보거라.”

유령경(幽靈經)이라는 말에 조백은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고 외치고 싶었으나, 정작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음과 같았다.

“형체도 없는 떠도는 그림자를 소수로 모은다. 찬 것에서 시작하여 뜨거운 것을 쫓으니 마음을 죽이는 공포의 흐름이다.”

무형부영 응집소수(無形浮影 凝集素手)

시음종양 포류살심(始陰從陽 怖流殺心)

조백은 자신도 모르게 소수마공의 유령경에 가장 중요한 십육자 구결을 읊은 것이다.

혈마는 그 이후로 소수마공의 중요한 구결들을 물었고, 조백은 꼭두각시처럼 그것에 답했다.

“천왕탁탑장은 서역의 대수인과 일맥상통하는 무공이지. 그러나 다른 두 개의 것과는 격이 떨어진다. 천왕탑신의 구결만 알면 되겠어.”

혈마의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조백은 또다시 번개를 맞은 것과 같은 통증을 느낀다. 통증이 조백을 휩쓸고 지나가자, 조백은 이제 천왕탑신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천왕탁탑장은 본래 불가에서 전해진 무공으로, 그중 천왕탑신(天王塔身)의 구결은 금강불괴와도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는 구결이다.

조백이 천왕탑신의 구결에서 굳건한 마음가짐(堅剛立心)에 대한 구결을 강제로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일일연마.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조백의 귓가로 그리운 목소리가 스쳐지나간다. 목소리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으나, 조백은 몸을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아주 잠깐이지만 선뜻한 기운이 그의 단전에서 일렁인다.

“단천검법의 가장 중요한 것은 단천이라는 두 글자라고 할 수 있다.”

혈마가 묵묵히 자신이 할 말을 끝내자, 조백은 또 한 번의 격통을 경험한다.

그러나 세 번째가 되자 조백도 조금은 익숙해졌다.

오히려 그 고통 속에서 자신의 뇌리를 스치는 문자의 홍수에 몸을 맡기기까지 한다.

단천(斷天)이라는 단어를 구성하는 연절류단(聯絶流斷)부터 시작해서, 단천검법의 구결들은 조백의 뇌리에 각인된다.

단천검법의 구결의 끝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온다.

[······의 형과······. 한상기공. ······를 익힐 수 있다.]

목소리는 방금 전과는 다르게 훨씬 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조백이 한상기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그의 단전에서 차가운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움직이려 하지 마라.”

그러나 그 미약한 기운은 혈마의 한마디에 너무나도 간단히 흩어져 버리고 만다.

“이제 너는 나의 후예로서 혈마잔양신공에 입문하게 될 것이다.”

후예라는 말에 거부반응이라도 일으키듯 조백은 한상기공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조백의 노력에 응답한 한상기공은 천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좀 전보다 한 차례 더 차가워진 한상기공은 단전으로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힘을 비축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반응을 알아차린 혈마는 조용한 말투로 그를 꾸짖는다.

“이것은 나의 다짐과 같은 것으로 너의 기호 여부와는 무관한 일이다.”

혈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앞서 있었던 세 번의 통증을 합한 것보다도 강렬한 통증. 그리고 수많은 문자의 홍수가 조백을 관통한다.

범람하던 문자의 홍수는 어느새 스스로 정렬하여 문장을 만들고 자신의 내용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뜻밖에도 조백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이것은 마치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은 즐거움이었다.

문자들은 한 가지 마공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조백은 마음속으로 그 마공이 무엇이냐며 물었고, 문자들은 순순히 이름을 말해주었다.

혈마잔양신공(血魔殘陽神功)

극성에 도달하면 잔양지기를 이용해 상대를 핏물로 만들어 버리는 극악무도한 마공. 전신이 피와 같은 붉은색으로 화하며, 천하를 발아래 둘 수 있는 절세의 마공.

조백은 그 내용이 너무 잔악무도하여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린다. 그러나 문자들은 조용하게 혈마잔양신공의 구결로 변하며 조백의 주변을 맴돈다.

그 속에는 다소 변화하였으나 소수마공과 천왕탁탑장. 그리고 단천검법의 구결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백이 세 가지 다른 무공을 떠올리자, 문자들은 그가 떠올린 무공구결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조백은 깨닫지 못했지만 어느새 한상기공의 구결 또한 떠올라 조백의 주변을 나비처럼 날아다닌다. 심지어 문자들은 주입된 것을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전혀 새로운 것으로 변하기도 한다.

십육자 구결을 강조하던 소수마공은 어느새 자신을 모두 드러내고 있다. 천왕탁탑장은 천왕탑신의 구결 속에서 천왕탁탑장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기 까지 한다.

단천검법 또한 조심스럽게 단흔일선보를 보여주기에 이른다.

이러한 변화들 속에 한상기공역시 빙설검법과 한음지를 꺼내든다. 합쳐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더니 전혀 새로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중간 중간 흠결이 있었으며, 그것이 다 차있었다곤 하더라도 불완전한 것이었다. 차갑고 투명하며, 조백을 향해 뻗어있는 고드름과도 같은 문자들이다.

조백은 그 문자의 배열을 기억하며 다시 보려고 하는데, 혈마잔양신공의 구결들이 격렬하게 진동하며 다른 구결들을 부수기 시작한다.

혈마잔양신공의 구결들이 그렇게 조백의 뇌리에 완전히 각인된다.


혈마는 옅은 성공의 미소를 띤다.

처음 해보는 심령금제였으나 무공의 전수는 성공적인 수준이었다.

보통 이러한 심령금제는 시전자의 노련한 만큼 받아들이는 자의 포용력 또한 중요하다.

조백의 포용력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었다.

심령금제로 상대의 기억을 극도로 억제하고 기억력을 증대시키는 경우 여러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그중 가장 심한 것이 바로 정신이 파괴되어 백치가 되는 것.

그래서 이 심령금제의 이름은 낙혼구유안법(落魂九幽眼法)이라는 끔찍한 이름까지 붙어있을 정도다.

“이 정도라면 조금 더 주입시켜도 되겠군.”

혈마는 돌 의자에 앉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혈마는 마교백팔공의 상위권에 속하는 마공들을 먼저 떠올린다.

만마겁천수, 마화신권, 구음백골조, 자전검강, 맹룡도 등등.

혈마는 주저하지 않고 마공의 구결을 조백의 머릿속으로 집어넣는다.

혈마잔양신공을 전수할 때와 같은 조심스러움은 사라진지 오래. 막무가내로 다양한 마공들이 조백의 머릿속으로 퍼부어진다.

조백은 아무런 반작용 없이 마공들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상황은 혈마의 예상조차도 벗어난 일이었다. 그의 심상 세계 속에서 혈마잔양신공의 구결에 심취해 있는 상태였다.

방금 혈마가 들이부은 다른 마공의 구결들은, 조백의 눈길을 잠깐 끄는 것에 그칠 뿐. 이내 그의 기억의 저편으로 흘러가버린다.

마치 책을 적당히 훑어봐 내용을 파악하는 듯 한 광경이다.

혈마의 미소가 조금 짙어진다.

그리고 정사를 불문하고 수많은 신공절학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소림의 백보신권이나 무당의 태청검법처럼 구대문파의 무공. 대막의 홍사도법이나 남림의 흑표십자권같은 새외의 절기들.

그리고 절전되었다고 알려진 유가(儒家)의 백옥일원지나 만상신공. 속가(俗家)의 천뢰신도. 사도(邪道)의 영사탈혼장같은 절학들.

심지어 오래전에 혈마가 취미로 복원해본 전진의 기공 등등. 정말 수많은 무공들이 조백의 머릿속에 강제로 입력되고 있는 것이다.


혈마는 만족의 미소를 띄우며 조백에게 걸어둔 심령금제를 해소한다.

조백은 홀린 듯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기억은 천천히 돌아올 것이다.”

혈마가 입을 열자 조백의 시선이 그를 향한다.

조백의 두 눈은 반짝거리고 있었으나 아직 심상세계의 잔상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도 잠시 조백은 눈을 몇 번 깜빡이는 것으로 완전히 정신을 차린다.

정신을 차린 조백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아버지!”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기억은 누군가의 뒷모습.

조백의 심장이 요동을 친다.

눈물이 멈추질 않고, 눈앞의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싶은 파괴적인 욕구가 솟구쳐 오른다.

그때 혈마의 두 눈에 살짝 붉은 기가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진정해라.”

조백에게 걸린 심령금제는 풀렸지만, 낙혼구유안법은 여전히 잘 통했다. 혈마의 한마디에 조백의 표정은 눈물범벅의 무표정으로 변한다.

조백은 얼굴에서 뭔가 흘러내리는 감촉에 손으로 얼굴을 만진다.

손에 묻어나는 물기가 눈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대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으나, 그것이 무엇으로 인한 눈물인지 알아차리는 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이는 조백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낙혼구유안법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혈마는 그러한 조백의 모습을 잠자코 바라본다. 낙혼구유안법으로 한 번 더 진정을 시킬까 하다가 이내 다른 생각을 떠올린다.

“그래. 이럴 때 좀 두들겨 두는 것도 좋겠지.”

조백은 혈마를 쳐다본다.

혈마의 중얼거림에 반응한 것으로, 조백의 눈에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하다.

“너의 아비는 내상을 감당치 못하고 죽고 말았다. 눈도 감지 못한 안타까운 것이었지.”

“시끄러워!”

“너의 어미는 아마 불타 죽었을 것이다. 아들이 독살당한 것을 감당치 못했기 때문이랄까.”

“으아아악!”

조백은 괴성을 내지르며 혈마를 향해 달려든다.

그것은 상처를 입은 맹수가 달려드는 것 같은 흉포한 모습이었다.

혈마는 코웃음을 치며 손을 들어 손가락을 퉁긴다.

마치 노인이 손자에게 꿀밤을 때리는 모습이었으나, 조백의 이마에 시뻘건 손가락 자국이 생기며 그대로 뒤로 튕겨져 나간다.

“조위홍이라는 그 아이는 제법 안타깝지. 아마 죽는 순간까지도 무슨 일인지 몰랐을 것이야.”

조백은 다시 몸을 일으키며, 이를 악문 체 말한다.

“그 이름을 말하지 마!”

“너의 사부와 너를 따르던 시비 역시 안타깝지. 너를 위해 스스로 함정에 걸어들어갔으니 말이다. 그들의 죽음은 필연적 일이다.”

조백의 두 손이 저절로 뻗어 나와 가슴 앞에서 십자로 교차한다.

흑표십자권. 표아섬풍의 초식이 그림과도 펼쳐진다.

그뿐이 아니었다.

혈마가 조백의 머릿속에 퍼부은 온갖 무공들이 조백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혈마는 나직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 사람은 맹렬하게 공격하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느긋하게 피하고 있다.

혈마는 마치 팔랑거리는 나비에게 길을 비켜주듯. 아니 마치 무게라고는 없는 공기방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유령······. 유령경. 소수마공!’

조백은 소수마공에 대해 떠올리고, 그러한 생각은 이내 혈마잔양신공에 이르게 된다.

순간 조백의 양손에서 혈광이 뿜어져 나온다.

“그래! 나의 후예라면 혈마잔양신공을 써야지.”

혈마가 호기롭게 말하자 조백은 혈광이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살기를 내뿜는다.

“나는 그 따위 것을 원하지 않아!”

조백의 외침에 혈마는 담담하게 답한다.

“말하지 않았느냐. 너의 기호여부와는 무관한 일이다.”

혈마는 그렇게 말하며 왼손을 뻗는다.

그의 손바닥위에 작고 투명한 붉은 구슬이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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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십일장 용호쌍격 2 19.09.08 162 1 13쪽
29 십일장 용호쌍격 1 19.08.17 240 3 13쪽
28 십장 칠할강변 3 19.08.10 295 3 13쪽
27 십장 칠할강변 2 19.08.03 395 4 13쪽
26 십장 칠할강변 1 19.07.27 452 3 13쪽
25 구장 혈마잔양 2 19.07.20 486 5 11쪽
» 구장 혈마잔양 1 19.07.20 493 4 12쪽
23 팔장 건목고엽 3 19.07.13 539 6 10쪽
22 팔장 건목고엽 2 19.06.08 613 8 14쪽
21 팔장 건목고엽 1 19.06.01 685 10 9쪽
20 칠장 일일연마 3 19.05.25 681 11 11쪽
19 칠장 일일연마 2 19.05.18 715 9 11쪽
18 칠장 일일연마 1 19.05.18 753 12 10쪽
17 육장 오해중첩 3 19.05.11 770 10 8쪽
16 육장 오해중첩 2 19.05.11 755 12 13쪽
15 육장 오해중첩 1 19.05.11 810 12 11쪽
14 오장 득오거보 3 19.05.04 934 13 12쪽
13 오장 득오거보 2 19.05.04 919 17 10쪽
12 오장 득오거보 1 19.05.04 967 16 11쪽
11 사장 화향취호 3 19.04.27 993 16 7쪽
10 사장 화향취호 2 19.04.27 1,040 16 11쪽
9 사장 화향취호 1 19.04.27 1,236 12 12쪽
8 삼장 명약관화 3 19.04.13 1,261 16 10쪽
7 삼장 명약관화 2 19.04.13 1,276 14 12쪽
6 삼장 명약관화 1 19.04.13 1,456 17 10쪽
5 이장 틈결지벽 2 19.04.06 1,577 17 19쪽
4 이장 틈결지벽 1 19.04.06 1,774 15 13쪽
3 일장 고량자제? 3 19.03.31 1,862 17 12쪽
2 일장 고량자제? 2 19.03.31 2,045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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