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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죽람(藍仙竹籃)

혈마의 후예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남채화
작품등록일 :
2019.03.30 21:27
최근연재일 :
2019.09.0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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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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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사장 화향취호 2

DUMMY

섬서성 화음현. 화산(華山).

도화봉(圖花峯)에서는 연화봉이 훤히 올려다 보인다.

화산파의 여러 건물들이 연화봉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도화봉에서 장엄하게 솟은 연화봉을 보고 있노라면, 화산파의 기개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화산파의 문하들은 도화봉 중턱에 작은 암자를 세우고, 연무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피정처(避靜處)라 이름 붙였다.

피정처에서는 여러 명의 화산문하가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이미 무림에서 뛰어난 명성을 얻은 이도 있었고, 아직 출도조차 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늙수그레한 노인이 한쪽 구석에서 빗질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라 할 수 있다.

그때 피정처로 한 마리의 매가 날아든다. 그 매는 자연스럽게 한쪽 구석에 있는 홰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오영휘는 비응(飛鷹)쪽으로 다가가 다리 쪽에 묶인 전서통을 푼다. 그리곤 홰 옆의 항아리에서 꺼낸 날고기 한 점을 매에게 주고는 전서의 내용을 살핀다.

전서의 내용을 읽던 오영휘는 누군가를 부른다.

“위홍아.”

오영휘의 부름에 조위홍이 검을 휘두르다 말고 재빨리 달려온다.

“사부님.”

“일전에 동생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있었지.”

“조백말입니까.”

조위홍의 얼굴에 그리움과 반가움이 솟아오른다.

“착한 아이죠. 말썽꾸러기이긴 합니다만······.”

“사형의 전서에 따르면 무공에 상당한 재능이 있다는구나.”

“예?”

“게다가 그 아이의 시비는 쾌검에 상당한 재능이 있다고 한다.”

조위홍은 두 소리 모두 처음 듣는 것이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조위홍은 조백의 시중을 든다는 하인의 이름조차 몰랐다.

다행히 조위홍은 혼란스러운 감정을 해소하고 밝은 미소를 띤다. 결국 자신의 동생이 지닌바 자질이 뛰어나다는 뜻 아니던가.

문득 조위홍은 조가장을 떠난 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의 곁에 계속 있었다면 ‘내가 동생의 재능을 알아 볼 수 있었을까.’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그리움에 젖어든다.

반면 오영휘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지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다. 한참을 고심하던 오영휘는 생각을 정리한 듯 표정을 풀며 조위홍에게 묻는다.

“태허구검은 어느 정도 익혔느냐.”

“이제 홀로 수련할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오영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재차 말한다.

“오늘부터 조가장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검을 쥐는 것을 금한다. 오직 태허구검의 구결만을 참오하도록 하여라. 어쩌면 옥녀검법과 천류무궁검법에 입문해야 할지 모르니 말이다.”

오영휘의 말에 조위홍은 깜짝 놀란다.

화산파의 십종의 검학 중에서 칠절매화검법을 제외한 구종의 검법을 배운다는 것은 여러모로 큰 의미가 있다. 조위홍은 그 의미를 잘 알기에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하며 되묻는다.

“진정으로 말씀하시는 겁니까?”

오영휘는 조위홍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는데, 의외의 사람이 와서 다른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구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어느새 다가온 비질하던 노인이 오영휘에게 묻는다. 잡일을 하는 노인의 물음이었지만, 오영휘는 뜻밖에도 공손하게 대답한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부님.”

비질하던 노인은 뜻밖에도 검절 매포벽 본인이었다.

화산파 제일의 고수.

천하제일검.

천하팔절의 수좌.

이러한 수식어가 붙는 절세의 고수가, 소탈한 모습으로 비질을 하고 있던 것이다.

매포벽은 근심어린 제자의 얼굴을 살피더니 이번엔 사손인 조위홍을 쳐다본다.

이제 막 소년티를 벗은 조위홍의 얼굴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초롱초롱한 두 눈에는 설렘과 근심이 뒤섞여 복잡하게 얽혀들고 있다.

매포벽은 오영휘에게 재차 묻는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오영휘는 마지못해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는 전서의 내용과 자신의 의중을 간략하게 이야기한다. 매포벽은 오영휘가 말을 마치자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이것은 큰일이다. 장문인과의 상의 하에 진행해야 하지 않느냐.”

“바로 장문인께 찾아갈 생각이었습니다.”

“서른이 넘지 못한 아이에게 구종검법에 입문시키는 것은 과한 짐을 지우는 일이다.”

“제자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잘 감내할 수 있을 겁니다.”

매포벽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어깨를 당당히 펴고 조위홍을 바라본다.

순간 매포벽의 기도가 변한다. 지금까지는 그는 초로의 늙은이 같았지만, 단순히 어깨를 편 것만으로도 무형의 검기를 뿜어대고 있다.

조위홍은 그러한 기세에 숨이 턱하니 막히는 것만 같았다. 조위홍은 마치 태산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것처럼 매포벽과 시선을 맞춘다.

매포벽은 자신과 시선을 맞추는 사손(師孫)을 바라보며 인자하게 웃는다.

“조 사손께서는 본파의 구종검법에 입문한다는 진의를 알고 계신가.”

조위홍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대답한다.

“알고 있습니다.”

“읊어보라.”

“화산파의 십종검학중에서 매화칠절검을 제외한 구종검법을 익힌다는 것은, 차후에 화산파의 장문인 자리에 오를 자격을 얻는 다는 뜻입니다.”

그렇다.

화산파의 문하들 중에서 구종의 검법을 익힌 자는 육합구소신공에 입문하고, 매화칠절검을 익힐 권리를 부여받는다.

당대에 그러한 권리를 부여받은 사람은 단일찬을 포함이 오직 세 명으로, 모두 조위홍보다 한세대 위의 사람들이다.

조위홍의 대답을 들은 매포벽은 오영휘를 쳐다본다.

매포벽이 조위홍을 바라볼 때는 위엄이 있었으나, 위압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오영휘를 바라 보는 모습은 다분히 위협적이다.

오영휘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날카로운 검기에 전신이 낭자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딱히 내색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매포벽이 내뱉은 말이 무엇보다도 폐부를 깊이 찔러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치졸한 일이다.”

“······. 이 제자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 일에 찬성할 수 없다. 하지만 장문인의 허락을 받아온다면 반대도 하지 않겠다.”

매포벽은 단호히 말하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 비질을 하던 쪽으로 돌아간다.

오영휘는 사부를. 아니 화산파 제일의 고수를 실망시킨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해졌다.


구등명은 옥녀지 옆에 앉아 무공구결을 명상하고 있었다. 그가 명상하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육합구소신공(六合九素神功)이 아닌 조양신공(朝陽神功)이었다.

조양신공 또한 화산파의 상승무공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육합구소신공에 비하면 빛이 바래는 편이다.

그의 육합구소신공에 대한 성취는 육성 정도의 수준이지만, 조양신공은 십성을 넘어 극성에 도달해 있다. 이것은 구등명의 천성이 조양신공에 알맞기 때문일 것이다.

무림에는 태산노조가 남긴 천성적공(天性積功) 이라는 격언이 존재한다.

이것은 오래전 절대고수였던 태산노조가 남긴 말의 일부로서, [절세의 신공을 쫓기보다는 천성에 맞는 무공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말에서 기인한 것이다.

구등명 역시 그러한 천성적공의 격언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조양신공을 연마해 왔다.

그렇게 구등명은 조양신공의 구결에 대해 명상하며 동시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평정을 깨는 사람이 나타난다.

“장문인. 긴히 아뢸 일이 있습니다.”

오영휘는 구등명의 대답이 들려오기를 기다렸다. 구등명은 대답은커녕 감은 눈조차 뜨지 않는다.

“조가장과 관련된 일입니다.”

조가장이 언급되자 구등명은 눈을 천천히 뜬다.

맑고 깊으며 동시에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자 오영휘는 오한이 이는 것 같았다.

오영휘는 예전에 매포벽이 해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와 사제사이의 실력 차는 종잇장과도 같이 얇은 것이다. 내가 우연히 명성을 얻어 검절이 되었을 뿐. 사제가 작정하고 나를 뛰어넘고자 한다면 나는 검절의 자리를 내줘야 할지도 모르지.

천하팔절이 속한 문파들은 모두가 이럴 것이다. 천하팔절을 키워낸 문파라면 드러나지 않은 천하팔절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앞으로 사람을 대할 때 명성과 세력을 보지 않고 사람 자체를 보도록 하여라 그것이······.”

오영휘가 매포벽이 해준 이야기의 뒷부분을 마저 떠올리기 전에 구등명이 입을 연다.

“회장(會場)으로 가자꾸나.”


연화봉의 상궁(上宮)은 대대로 화산파의 장문인의 거처다. 본래 상궁은 그 이름과는 달리 옥녀지(玉女池)를 끼고 있던 작은 암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화산파가 점점 성장해 가면서 상궁도 그에 걸맞게 변화해 왔다. 장로들과 대소사를 논하기 위해 회장을 짓고, 방문한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다실을 덧붙였다.

이러한 과정을 오랫동안 거치다보니 상궁은 이름과 걸맞는 규모가 되어 있었다.

구등명은 오영휘가 한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에 빠져든다. 그리고 내뱉은 말은 매포벽과 같았다.

“이것은 치졸한 일이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화산파와 조가장이 조위홍을 통해 협력하며 얻은 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향력이다.

조가장이 화산파와 관계를 맺으며 섬서성 일대의 상권에 화산파가 개입할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일시적이었다.

조가장에서는 화산파에서 보내오는 인력(人力)을 한사코 거절했다.

막대한 금력에는 항상 부나방이 꼬이기 마련인데, 조수형은 그것마저도 이용할 정도로 수완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러니 화산파의 인력을 수용할 리가 없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구등명은 안달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검절의 수제자이자, 다음 대의 화산파 장문인이 될 단일찬을 사정사정해서 식객으로 보냈으니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 조위홍이 구종검학에 입문하게 된다면 화산파와 조가장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질 수밖에 없다. 어린 제자에게 과한 짐을 지우는 일이니 치졸한 일이지만 말이다.

“필요하다면 해야지.”

구등명의 말에 오영휘는 무언으로 긍정한다.

“이번일로 조가장을 본파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될 것이다. 두 형제 모두 화산파에서 거둔다면 그보다 확실한 관계가 또 어디 있을까.”

구대문파의 선두에서, 남궁세가를 누르고 천하제일의 문파가 된 화산파. 구등명은 그러한 것을 상상하다가 문득 한 가지 소문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조장주가 조백에게 조가장을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있다던데······.”

구등명의 말에 오영휘는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 전 부터 그런 소문이 돌더군요. 게다가 최근에 도박장과 전당포를 들락날락 거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뜻밖에도 야심이 있는 모양이군. 내가 알기로는 위홍이 그 아이도 진중하니 괜찮은 아이로 알고 있는데.”

오영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호재로군. 만약의 상황에서 중재를 나설 수도 있겠어.”

구등명은 조위홍과 조백이 조가장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것을 머릿속에서 그려본다. 그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들기며 생각을 정리한다.

“조백이라는 아이에게 미리 무공비급을 몇 권 보내두는 것도 괜찮겠군.”

“장경각에 들려 몇 권을 추려보겠습니다.”

구등명은 회장에 홀로 남아 상념에 빠진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화산파가 천하제일의 문파가 되는 것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마치 손에 닿을 것만 같은 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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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십일장 용호쌍격 2 19.09.08 162 1 13쪽
29 십일장 용호쌍격 1 19.08.17 240 3 13쪽
28 십장 칠할강변 3 19.08.10 295 3 13쪽
27 십장 칠할강변 2 19.08.03 396 4 13쪽
26 십장 칠할강변 1 19.07.27 452 3 13쪽
25 구장 혈마잔양 2 19.07.20 486 5 11쪽
24 구장 혈마잔양 1 19.07.20 493 4 12쪽
23 팔장 건목고엽 3 19.07.13 539 6 10쪽
22 팔장 건목고엽 2 19.06.08 613 8 14쪽
21 팔장 건목고엽 1 19.06.01 685 10 9쪽
20 칠장 일일연마 3 19.05.25 681 11 11쪽
19 칠장 일일연마 2 19.05.18 715 9 11쪽
18 칠장 일일연마 1 19.05.18 753 12 10쪽
17 육장 오해중첩 3 19.05.11 770 10 8쪽
16 육장 오해중첩 2 19.05.11 755 12 13쪽
15 육장 오해중첩 1 19.05.11 810 12 11쪽
14 오장 득오거보 3 19.05.04 934 13 12쪽
13 오장 득오거보 2 19.05.04 919 17 10쪽
12 오장 득오거보 1 19.05.04 967 16 11쪽
11 사장 화향취호 3 19.04.27 993 16 7쪽
» 사장 화향취호 2 19.04.27 1,041 16 11쪽
9 사장 화향취호 1 19.04.27 1,237 12 12쪽
8 삼장 명약관화 3 19.04.13 1,261 16 10쪽
7 삼장 명약관화 2 19.04.13 1,276 14 12쪽
6 삼장 명약관화 1 19.04.13 1,456 17 10쪽
5 이장 틈결지벽 2 19.04.06 1,577 17 19쪽
4 이장 틈결지벽 1 19.04.06 1,774 15 13쪽
3 일장 고량자제? 3 19.03.31 1,862 17 12쪽
2 일장 고량자제? 2 19.03.31 2,045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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