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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죽람(藍仙竹籃)

혈마의 후예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남채화
작품등록일 :
2019.03.30 21:27
최근연재일 :
2019.09.08 23: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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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5,951

작성
19.04.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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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삼장 명약관화 3

DUMMY

조백은 침상에 누운 채로 아기처럼 잠들어 있다.

목구곤은 조백의 맥을 짚어 잠시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한다.

“별일 아닐세. 어려서부터 먹어온 인삼차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쌓인 내력이 발경으로 뿜어져 나온 거지. 일반적인 일이고, 또한 흔한 일이지. 좀 더 쉬면 금방 일어날 걸세.”

목구곤은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는 조수형을 바라본다.

부자가 어찌나 닮았는지, 부자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그저 차이가 있다면 희끗한 머리와 눈가의 주름. 그리고 해를 오래 보지 못해 창백한 피부 정도랄까.

조수형은 천천히 다가와 잠에 빠져있는 조백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인삼차가 쓰다고 그렇게 싫어하더니. 미안하구나.”

“무슨 소린가. 기진을 경험했으니 이젠 더 열심히 인삼차를 먹여야 할 걸세.”

조수형이 한참동안 조백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목구곤이 입을 연다.

“자네도 이제 생각을 고쳐먹을 때가 되었네.”

목구곤의 말에 조수형은 특별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어차피 몇 번이나 나눴던 이야기. 조수형이 생각을 바꿀 마음이 없으니 더 이상 이야기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하지만 목구곤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자식이 스스로의 길을 가는 것이지, 자네를 배척하는 게 아니라네. 애초에 조가장도 위홍에게 물려줄 생각 아닌가. 그렇다면 이 아이도 자기 길을 가야지.”

“다칠까봐 그런 거지.”

조수형은 자신도 모르게 대꾸하고는 곧바로 후회한다. 다음에 목구곤이 할 말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자네는 다친 적이 없단 말인가. 정녕 자식을 품에 안고 떠나보내지 않을 셈인가? 조백이 깨어난 다면 나는 의중을 묻고 무공을 전수할 생각이라네.”

뜻밖의 말에 조수형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설산파를 물려주려는 건가?”

“본파는 오래전에 멸문하였지. 그런 짐까지 주고 싶진 않네. 단지 길을 터주는 정도랄까.”

목구곤의 말에 조수형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목구곤은 설산파의 복원에 반평생을 받쳐왔던 사람이다.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쫓아 조가장으로 왔고, 조수형도 그것을 알고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였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악우로서, 친우로서 우정이 생기고 목구곤은 조가장에 영원히 머물기로 약속하였다.

“마음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네. 최소한 시간을 내서 조백의 이야기를 들어보게. 그 이야기를 할 때 눈을 마주하고 진심을 읽고서도······.”

목구곤은 뒷말을 삼킨다. 조수형은 고개를 돌리고 몸도 돌려 문 쪽으로 다가간다.

“생각해보겠네.”

“그래 자식이 있으니. 자식에 대해 마음을 쓰는 것이겠지.”

목구곤은 그렇게 말하며 쓸쓸함을 감추지 않는다.

“그럼 이제 요 녀석을 깨워볼까.”

목구곤은 한상기공(寒霜氣功)을 끌어올린다. 서늘한 기운이 목구곤의 검지 끝에 모이고, 그의 검지가 조백의 명치에 살짝 닿는다.

한상기공이 조백의 사지백해로 퍼지며 잠력의 격발로 손상된 맥을 안정시킨다. 인삼차로 인해 쌓였던 약력으로 인해 한층 달궈졌던 기해혈은 천천히 원래의 온도로 식어간다.

본래라면 이 약력에서 발생하는 기열이 사방으로 퍼지며 안정이 되었을 것이다.

조백이 “으음”하는 신음과 함께 잠에서 깨려 하자 목구곤은 신속하게 손을 거둔다.

“일어났느냐.”

조백이 정신을 아직 차리지 못했는지 멍한 표정이다.

“한집에 사는데도 이렇게 보기 힘들구나.”

“노부교(父交)께서도 잘 지내셨습니까.”

목구곤은 의자의 팔걸이를 툭 치면서 말한다.

“보다시피 잘 지낸다.”

목구곤의 손짓은 별반 다른 뜻이 없는 행동이었으나, 조백의 눈에는 붕대를 감아 놓은 의자의 팔걸이가 보였다.

조백은 처음엔 익숙한 듯 낯선 붕대를 감은 의자를 보다가 탄식을 내뱉는다.

“아!”

“왜 그러느냐. 아직도 머리가 어지러운 게냐?”

조백은 서둘러 손 사레를 치며 말한다.

“아닙니다. 왜 제가 노부교를 피했는지 생각이 나서요.”

조백의 말에 목구곤은 무슨소린가 의아해 하더니, 다시 한 번 의자의 팔걸이를 손으로 툭 하고 친다.

늙수그레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열 두살때 내 방에서 검을 발견하고는 그걸 휘두르다가 이 의자를 잘라버렸었지.”

조백은 당시의 일을 조금 더 명확히 떠올리고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서는 붕대를 가져와 의자에 감아놓고서는······.”

“의자가 아파보여서 붕대를 감아줬다고 변명했었죠.”

조백의 얼굴이 벌게지고 목구곤은 껄껄거리고 웃는다.

“그때의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은 많이 없어졌구나. 그래 듣자하니 검법에 입문했다고?”

검법 이야기가 나오자 조백의 눈빛이 반짝인다.

“검법이라는 거 굉장히 재밌던데요.”

목구곤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백의 말에 동의해준다.

“그래 정말 오래전이지만 나도 검법에 입문할 때의 짜릿함을 잊기 힘들구나.”

“노부교도 검도의 고수셨군요.”

고수라는 말에 목구곤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간략하게 조백에게 왜 기절했는지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조백은 얼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다른 궁금했던 것을 묻는다.

“그럼 노부교의 사문은 어떤 곳인가요?”

무공에 대한 질문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던 목구곤은 뜻밖의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의 사문인 설산파는 감숙성의 서쪽 끝에 있는 문파다. 개파조사는······.”

목구곤은 말을 하다 말고는 잠시 뜸을 들인다.

목이 메는 것 같은 표정이면서, 동시에 애처로운 것 같은 표정이기도 하다.

그러한 모습의 진의를 알 수 없었던 조백은 묵묵히 목구곤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멸문하고 말았단다. 남아있는 사람역시 나뿐이지.”

뜻밖의 내용에 이번엔 조백의 말문이 막힌다.


백 년 전에 발생한 마교의 발호는 그야말로 끈질긴 것이어서, 마교가 자취를 감추기까지는 이십년 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로 인해 무림은 지니고 있던 힘을 많이 소모했다.

설산파는 그것을 기회로 보고 쇠약해진 공동파를 누르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것은 구대문파의 저력을 얕잡아 본 것.

설산파는 공동파와의 힘겨루기에서 몇 번의 작은 승리를 맛보게 된다. 그런 승리에 취해 있을 때 설산파는 공동파의 공격으로 본산을 잃고, 장문지보(掌門之寶)를 파훼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설산파의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장문지보를 잃고 강제로 해산당하는 모습은 비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파 역시 물러설 곳이 없어서 한 최후의 선택.

목구곤의 사부는 당시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사람 중 한명이며, 목구곤에게 끝까지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목구곤은 무명의 사부와 천하를 떠돌며 흩어진 설산파의 무공을 모으고, 또 익혔다. 심지어 공동파의 몇몇 무공을 파훼할 무공까지 창안하는 업적까지 달성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본산을 되찾는 복권(復權)의 기초가 되기엔 부족하였다.


“엄청 외로우시겠어요.”

조백의 말에 목구곤은 고개를 흔든다.

“그렇지 않다. 나는 사부님이 돌아가시고 늘 혼자라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너의 아비가 있고, 조가장이 있어주었다.”

목구곤은 조백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곳에선 나를 봐주는 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번에 그의 손가락은 조백의 심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너를 보살펴주는 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목구곤의 말이 끝나자 잠시 어색한 기운이 흐른다.

노인이 회한을 담아 자신이 깨달은 것을 말했지만, 소년은 아직 어려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어색함을 풀고자 목구곤이 입을 연다.

“네가 마음이 있다면, 나의 무공을 전수해주마.”

무공이라는 말에 조백은 금세 다시 신이 나서 묻는다.

“노부교께서는 무슨 무공을 알고 계신가요.”

“나 원. 벌써부터 무공광처럼 굴지 말거라.”

목구곤은 그렇게 말하며 조백의 머리를 쥐어박는 시늉을 한다. 조백은 장난처럼 거북목을 하며 일부러 헤헤 소리를 내며 웃는다.

“······. 나는 무림을 떠돌면서 여러 가지 무공을 익혔지. 설산파의 무공은 그중에서 오직 세 가지 뿐 이다.

눈과 얼음의 한기로 내공을 연마하는 한상기공.

음풍에 흩날리는 눈과 같다는 빙설검법.

그리고 한음지가 있지.”

한음지(寒陰指)라는 말에 조백은 선뜻 머릿속으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손가락을 이용한 무공이라니 조백으로서는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이름만 거창할 뿐이지.”

목구곤은 그렇게 말하고는 웃는다.

사실 한음지는 공동파의 복마검법을 파훼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다. 한상기공의 침(針)자결과 응(凝)자결. 그리고 빙설겁법의 몇몇 초식을 융합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한음지다.

목구곤은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가 검지만을 편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검지의 끝에서 희미한 김이 솟아오른다. 그리고는 손가락 끝의 색이 희개 변한다.

목구곤이 장난치듯 손가락을 경망스럽게 까딱거리자 조백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만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뻗어나가자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한음지에 격중당한 침상의 기둥에 흰색의 반점이 생겨난다. 조백은 감탄하며 그 반점을 만지려는데 목구곤이 만류한다.

“만지지는 말거라.”

목구곤의 말에 조백은 손을 뻗어 흰색 반점 위를 스치듯 움직인다.

그야말로 스치듯 지나간 것이지만 찬 기운. 아니 뼛속까지 시린 얼음장위를 지난 것 같은 기분이다.

“여름에 꽤 편리하지.”

목구곤은 그렇게 말하고는 탁자위에 있던 찻잔에 손가락을 갔다댄다. 조백은 그가 건넨 하얀 서리가 앉은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 찻물을 홀짝 들이킨다.

머리가 찡할 정도로 시원하고······.

“인삼차군요.”

“배워 볼 태냐?”

조백은 인삼차를 마저 비우고는 힘을 주어 대답한다.

“예!”


작가의말

다음 주 토요일에 봐요.


2019/05/03 장문지보(장문지보) -> 장문지보(掌門之寶)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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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십장 칠할강변 3 19.08.10 296 3 13쪽
27 십장 칠할강변 2 19.08.03 396 4 13쪽
26 십장 칠할강변 1 19.07.27 452 3 13쪽
25 구장 혈마잔양 2 19.07.20 486 5 11쪽
24 구장 혈마잔양 1 19.07.20 493 4 12쪽
23 팔장 건목고엽 3 19.07.13 540 6 10쪽
22 팔장 건목고엽 2 19.06.08 613 8 14쪽
21 팔장 건목고엽 1 19.06.01 685 10 9쪽
20 칠장 일일연마 3 19.05.25 681 11 11쪽
19 칠장 일일연마 2 19.05.18 716 9 11쪽
18 칠장 일일연마 1 19.05.18 754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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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육장 오해중첩 2 19.05.11 755 12 13쪽
15 육장 오해중첩 1 19.05.11 811 12 11쪽
14 오장 득오거보 3 19.05.04 935 13 12쪽
13 오장 득오거보 2 19.05.04 920 17 10쪽
12 오장 득오거보 1 19.05.04 968 16 11쪽
11 사장 화향취호 3 19.04.27 994 16 7쪽
10 사장 화향취호 2 19.04.27 1,041 16 11쪽
9 사장 화향취호 1 19.04.27 1,237 12 12쪽
» 삼장 명약관화 3 19.04.13 1,262 16 10쪽
7 삼장 명약관화 2 19.04.13 1,277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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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장 틈결지벽 1 19.04.06 1,774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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