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남선죽람(藍仙竹籃)

혈마의 후예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남채화
작품등록일 :
2019.03.30 21:27
최근연재일 :
2019.09.08 23:0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8,752
추천수 :
343
글자수 :
155,951

작성
19.05.04 06:00
조회
919
추천
17
글자
10쪽

오장 득오거보 2

DUMMY

조백이 조수형의 방에 도착했을 때 마침 식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짧은 문안인사가 오간다. 기화홍은 말없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조백을 바라보고 있었고, 조수형은 무엇인가를 직감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점심은 먹었느냐.”

“아니요. 아버지도 드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그래서 좀 과하게 먹어볼 작정이다. 같이 먹을 태냐.”

조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대답한다.

몇 가지 화려한 음식들이 탁자위에 놓여지고, 조백은 조수형과 기화홍이 먼저 한 술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조백의 젓가락이 움직이려는 찰나.

“흉흉한 소문이 돌더구나.”

기화홍의 말에 조백은 살짝 굳은 상태로 대답한다.

“소자가 안 그랬습니다?”

이는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조백이 어릴 적부터 장난이 심하면, 혼을 내는 것은 기화홍 이었기 때문.

조수형은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린다. 애틋하지만 동시에 어린 아이의 재롱을 보는 것과도 같은 표정이다.

다만 기화홍은 조수형의 표정을 보지 못했는지 한 번 더 묻는다.

“그럼 누군가는 그런 소문을 내고 다닌단 말이냐?”

조백은 젓가락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어머니께서 원하시면 이 자리에서 천지신명께 맹세라도 하겠습니다.”

조백이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말하자 기화홍의 눈빛이 한층 더 차가워진다.

“제가 조가장을 물려받게 된다면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소자는 감당치 못할 것 같군요.”

그러한 상황이란 조수형을 비롯해 조위홍과 기화홍까지 죽은 다음을 말하는 것.

기화홍은 조백의 결연한 의지를 본 것인지 차가운 눈빛이 살짝 풀어진다. 조백은 이것을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의자에서 일어나 조수형을 향해 무릎을 꿇는다.

조수형은 무슨 일인지 알고 있었기에 승낙할 준비를 하고 조백의 말을 기다린다.

“소자가 가야할 길은 무공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목부교를 사부로 모시고 무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조백은 그렇게 말하고 “조가장의 명성에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따위의 말을 하려는데.

“그러도록 해라.”

조백은 당황하여 결연한 표정도 잃은 체 조수형을 바라본다.

“무의 길을 걷도록 해라.”

“예?”

“싫으냐?”

“아버지!”

조백은 그렇게 말하며 벌떡 일어나서 조수형을 끌어 앉는다.

조수형은 요 며칠 깊은 고민을 했었다.

예전에 조위홍을 화산파에 보낼 때와 별반 다름이 없는 고민이었다.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는데, 조수형은 자신이 조위홍에게 너무 엄격하게 대했다는 것이다. 조위홍이 처음 화산파에 입문한다 하였을 때 얼마나 강하게 반대를 했던가.

결국은 조수형이 뜻을 꺾고 조위홍을 화산파로 보냈지만 그 과정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그러한 싸움들 때문에 조수형은 부자간의 사이 역시 소원해 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조백의 마음을 돌리겠다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보다는, 돌아올 조위홍과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수형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조백의 얼굴을 마주보며 말한다.

“이제 곧 무림의 협사가 될 사람이 눈물이 너무 많구나.”

조백은 억지로 헤헤 거리고 웃으며 두 눈에 맺힌 기쁨의 눈물을 대충 닦아낸다.

“그래 흥분을 좀 가라앉히어라. 체한다.”

“아뇨. 바로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사부님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조백은 말을 내뱉자마자 방 밖으로 튀어나가 버린다.

다시 방안에 차분함이 자리 잡는다. 한참을 젓가락 소리와 음식을 씹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더니.

“그렇게 뾰루퉁해 할 것 없소.”

조수형의 말에 기화홍은 답이 없다.

“이미 아홍과 소원해 졌는데, 그런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소. 더욱이 아직 어린 아이니······.”

“그렇죠. 아직 아이이니 마음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지요.”

기화홍의 답에 조수형은 그녀를 지긋이 바라본다.

“최근에 내 마음이 번잡하여 그대의 마음을 보질 못했구려. 이것 참 부덕한 일이야.”

조수형은 그렇게 말하고는 무엇인가 결심한 듯 진중하게 입을 연다.

“내 말재주가 당신을 감화시킬지 알 수 없으니. 당신을 바쁘게 하는 수밖에 없겠구려.”

조수형의 말에 기화홍의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이 드러난다. 그것은 고운 이마에 살짝 패인 주름으로 어떠한 표정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여운장을 비롯해 도박장들의 권리를 부인께 위임하도록 하겠소. 한번 바쁘게 지내보고 훗날 다시 이야기 합시다.”

조수형의 이 말은 단순히 도박장들의 운영권을 위임하는 것이 아니다. 훗날 조위홍에게, 혹은 기화홍에게 조가장을 전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인 것이다.


*** *** ***


조가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객잔에서 혈마와 송운록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송운록과는 달리 혈마는 생선요리를 몇 점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침 그의 시선이 향한 쪽에는 조가장의 대문이 시원하게 보인다.

“흐음. 선근이 있군.”

혈마가 입을 열자 송운록은 음식을 씹다 말고는 그를 쳐다본다. 동굴에서 나와 이 객잔에 자리 잡은 지 벌써 이 십 일째.

혈마는 그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송운록은 혈마가 말없이 구해온 돈으로 객잔에서 풍족하게 지냈기에 딱히 별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선근(善根)이요?”

“그래.”

“누가요? 저 말입니까?”

“집중력이 그리 형편없어야 쓰겠나. 조백이란 아이 말이다.”

송운록은 조백이라는 말에 혈마의 시선이 닿는 곳을 슬쩍 쳐다본다. 그에겐 저 멀리 조가장의 대문이 언뜻 보일 뿐이다.

다만 송운록은 혈마를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딱히 의심을 하지 않는다.

그간 혈마가 홀연히 사라졌다가 나타난다던지, 번잡한 길거리에서 아무도 혈마를 발견하지 못한다던지 하는 기이한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 혈마가 혈마 본인이라고 믿는 것은 아니지만.

‘망상 벽이 있는 고수겠지 뭐.’

송운록은 그렇게 생각하다 말고 묻는다.

“선근이 있으면 좋은 것 아닙니까.”

선근이 있다는 것은 전생의 업으로 타고난 선함이 있다는 뜻. 송운록의 물음에 혈마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보통 선근이 있으면 마공을 익히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럼 혈······. 어르신의 마공도 그런 약점이 있습니까?”

“있겠지.”

혈마는 두 눈을 몇 번 깜빡거리고는 이제야 송운록을 쳐다본다.

“나의 혈마잔양신공을 익히는데 선근은 꽤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혈마잔양신공(血魔殘陽神功)이라는 말에 송운록이 인상을 찌푸린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마공의 이름을 지으신 겁니까? 그런 삼류 같은 짓을 하시다니.”

그것은 명백한 비웃음.

혈마는 달리 화를 내지 않고 담담하게 대꾸한다.

“본교의 전통이다.”

“그럼 제가 마교에 입교한 다음 교주자리를 이어받으면 송운록신공이 후대에 남는 겁니까?”

“그렇게 되겠지. 그럼 어디 한번 날 죽여 볼 테냐?”

혈마의 말에 송운록은 잠깐 움찔 했지만, 이내 농담임을 알아채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나저나 그럼 선근이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걸림돌을 뛰어 넘는 것은 스스로가 할 일이지. 더욱이······.”

“더욱이 뭐요?”

“저 아이는 재액을 당할 운 또한 있다.”

재액(災厄)이라는 말에 송운록이 놀란 눈을 하자 혈마는 가볍게 손을 휘둘러 그를 안심시킨다.

“명줄 또한 긴 아이니 성급하게 굴 필요 없다. 정 위험할 정도면 내가 직접 개입하면 되는 일이지.”

혈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조가장쪽을 유심히 바라본다. 송운록은 배도 부르고 호기심도 동하여 그런 혈마를 향해 슬쩍 묻는데.

“그래서 인연이 좀 느껴지십니까?”

혈마는 그 질문에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그래. 저 아이 스스로가 야기한 것도 있고, 타인에 의해 떠밀린 것도 있다. 내 생각 이외로 저 아이와 나의 인연은 깊다.”

“그럼 제자로 삼으실 겁니까?”

송운록의 물음에 혈마의 눈에 혈광이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송운록으로서는 인지할 수 없을 수준의 속도로 사라졌기에, 그는 그러한 변화는 눈치 체지 못하고 잠깐의 불길한 느낌만을 받았을 뿐이다.

“나 혈마는 천지신명께 고하는 바이니. 조백이라는 아이를 나의 후예로 삼아 무공을 전수할 것을 맹세한다.”

혈마의 목소리는 제법 크고 웅대한 것이어서 송운록은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본다.

마교가 사라진지 백년이 되었지만 혈마라는 이름은 여전히 금기. 혈마를 언급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번잡한 객잔 안에서 아무도 혈마와 송운록에게 관심을 주는 이가 없었다.

“천지신명이요?”

혈마는 묘하게 웃을 뿐 송운록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말로서 내뱉었으니 준비를 해야겠군.”

“무슨 준비 말입니까?”

“나는 잠깐 다녀올 곳이 있으니. 너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한 번 정도는 저 아이와 접촉하도록 해라.”

혈마는 그 말만을 남기고 신기루마냥 사라져 버리고 만다.

송운록은 굳이 혈마를 찾지 않고 객잔의 점원을 불러 남은 음식을 치우게 했다. 그리고는 이층에 마련해둔 방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린다.

“심심한데. 여운장에나 가볼까.”

송운록의 중얼거림이 끝나자마자 한 가닥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스친다.

“괜한 짓거리 하지 마라.”

그것은 혈마의 목소리.

송운록은 깜짝 놀라 유난을 떨면서 주변을 살핀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혈마가 말을 한 것은 틀림이 없었다.

송운록은 등줄기의 식은땀을 느끼며 허공을 향해 입을 연다.

“술은 마셔도 됩니까?”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송운록은 방안으로 들어서며 중얼거린다.

“비싼 걸로 두병씩 마셔야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혈마의 후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합니다. 19.12.27 40 0 -
30 십일장 용호쌍격 2 19.09.08 162 1 13쪽
29 십일장 용호쌍격 1 19.08.17 240 3 13쪽
28 십장 칠할강변 3 19.08.10 296 3 13쪽
27 십장 칠할강변 2 19.08.03 396 4 13쪽
26 십장 칠할강변 1 19.07.27 452 3 13쪽
25 구장 혈마잔양 2 19.07.20 486 5 11쪽
24 구장 혈마잔양 1 19.07.20 493 4 12쪽
23 팔장 건목고엽 3 19.07.13 540 6 10쪽
22 팔장 건목고엽 2 19.06.08 613 8 14쪽
21 팔장 건목고엽 1 19.06.01 685 10 9쪽
20 칠장 일일연마 3 19.05.25 681 11 11쪽
19 칠장 일일연마 2 19.05.18 716 9 11쪽
18 칠장 일일연마 1 19.05.18 754 12 10쪽
17 육장 오해중첩 3 19.05.11 770 10 8쪽
16 육장 오해중첩 2 19.05.11 755 12 13쪽
15 육장 오해중첩 1 19.05.11 811 12 11쪽
14 오장 득오거보 3 19.05.04 935 13 12쪽
» 오장 득오거보 2 19.05.04 920 17 10쪽
12 오장 득오거보 1 19.05.04 968 16 11쪽
11 사장 화향취호 3 19.04.27 993 16 7쪽
10 사장 화향취호 2 19.04.27 1,041 16 11쪽
9 사장 화향취호 1 19.04.27 1,237 12 12쪽
8 삼장 명약관화 3 19.04.13 1,261 16 10쪽
7 삼장 명약관화 2 19.04.13 1,277 14 12쪽
6 삼장 명약관화 1 19.04.13 1,456 17 10쪽
5 이장 틈결지벽 2 19.04.06 1,577 17 19쪽
4 이장 틈결지벽 1 19.04.06 1,774 15 13쪽
3 일장 고량자제? 3 19.03.31 1,863 17 12쪽
2 일장 고량자제? 2 19.03.31 2,045 2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