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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812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6.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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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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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사진-저희 엄마가 국가사업을 하나 맡았어요...

DUMMY

그리고 마스크를 도림의 코 가까이로 가져가는 시늉을 하다가


도림이 질색을 하자 그만두었다.



<유정> “그나저나 저번에 허지후를 조심하라고 했던 말은 뭐야? 도태홍 회장은 또 뭐고?”


<도림> “너 아기 때 F 보육원에서 Z 보육원으로 옮겼다는 건 알고 있지?


그때 옮긴 이유가 뭐야?


F 보육원 할아버지는 너를 해코지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옮겼다고 했잖아.”



<유정> “그럼 그 사람들이 허지후랑 도태홍이라는 말이야?”


<도림> “그렇지.”


<유정> “근데 넌 그걸 어떻게 알아?


넌 나보다 1년 늦게 태어났잖아?


사실은 1년 먼저 태어났다고 해도 아기가 그런 걸 안다는 건 너무 이상해.


누가 알려줬어? 어떻게 알았어?


네 주위엔 이 일에 관여한 사람들이 있는 거야?”



<도림> “그건 나중에 말해 줄게.


하지만 확실한 것은 20년이 지난 지금 널 노리는 사람들이 다시 나타났고,


또다시 네 목숨을 노린다는 거야.”



유정은 “풋” 하고 웃었다.



<유정> “나같은 놈 목숨이 뭐 대단하다고.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20년이나 지난 일 가지고


그 고매하신 분들이 구정물에 발을 담그실까?


도림아, 걱정도 팔자다.


그나저나 내 목숨값은 얼마나 쳐 준대? 백 원? 천 원? 아니면 거금 만 원?


솔직히 노리면 좀 어떠냐?


만 원 쳐 주면 그걸로 먹고 죽은 귀신도 되고 좋지.”



<도림> “내 말을 허튼소리로 알아듣는구나?


좋아. 네 맘대로 해.


하지만 너에게 가족이 있다면, 그래도 그럴 수 있어?”



<유정> “누구? 보육원 할아버지? 쳇.


난 처음부터 고아였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혼자야.


나의 불행을 내 아들,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


그나저나 이런 얘긴 그만하자.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얘기나 하면서 시간 보내고 싶지 않다.


배고픈데 뭘 좀 먹을까?”



<도림> “여긴 그래도 공원이라고 물건값이 다 비싸.


조금만 걸으면 조금은 싸게 먹을 수 있어.


밖으로 나가자.”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 물을 부어놓고 익기를 기다리며 창밖 풍경을 내다보았다.


도림은 꼭 그때 생각이 났다.


2018년 해주에게 당하고 천반산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기 전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으며 바깥 풍경을 보던 때.



그때 그녀는 ‘나를 찾지 말라’는 글을 썼었다. 유서처럼.



<도림> “해주는 뭐하고 있을까? 갑자기 생각나네.”



도림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유정> “해주? 글쎄. 어디 물리학과 들어갔단 얘기는 들리는 것 같던데.


나중에 어디 로스쿨 들어갈 생각인가 봐.


엄마가 빵빵하니 뭐.


우리 같은 사람은 언감생심이지.”



<도림> “그런 천하의 쓰레기가 뭐가 된다고?


내가 편의점에 앉질 말았어야 했다.


그냥 비싸더라도 공원 안 매점에서 먹을 걸 잘못했어.”



<유정> “왜 그래? 몇백 원은 하찮다는 거야? 그리고 네가 나오자고 했어.”


<도림> “그러네. 내가 과민한가 봐. 그나저나 넌 앞으로 뭐 하고 살 거야?”


<유정> “글쎄. 금방 풀릴 줄 알았더니 벌써 2년째고, 군대나 갈까 봐.


좀 겁이 나긴 하는데, 다 가는 거 일찍 갔다 와도 좋지 뭘.


차라리 작년에 그냥 입대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도림> “그게 낫겠다.”



도림은 누군가 장학금을 준다고 하면 절대로 받지 말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되묻는다면 설명하기가 곤란해 그만두었다.


유정의 입장이라면 장학금을 받아 기반을 닦는 것도 나쁜 선택지는 아닐 터였다.


달리 본다면 천하의 허지후라도 쉽사리 장학금을 주겠다고는


말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있었다.


‘뜬금없이’ 장학금을 받을 이유가 유정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걸 허지후라고 쉽사리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 5 -




유정은 도림과 헤어지고 보라매공원 산책로를 걸었다.


꽃은 졌지만 우거진 벚나무 길이 여름 저녁 산책길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만, 공원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는 어느 벤치에 앉아 새삼스레 옷 소매를 내려다보았다.



<유정> “이게 그렇게 시커먼가?”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니, 그는 비로소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은 사람들도


땟국물은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정> “‘어두운 색’과 ‘땟국물’의 차이가 이런 거구나.”



그는 새삼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비웃음 또는 자조일지도 모를 그 미소.



그때 한 여자가 그의 앞에 섰다.


그의 ‘땟국물’과는 비교도 안 되는 희고 깔끔한 옷을 입은 여인이었다.


그는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내 눈을 둘 곳이 없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해주> “선배.”



여자가 그를 불렀다.



<유정> “누구······?”



그는 머뭇거렸다.



<해주> “나예요, 해주.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유정은 해주라는 말에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의 ‘몰골’을 해주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선배’라고 부르는 사람 앞에서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유정> “해주라고? 네가?”


<해주> “네에. 이게 얼마 만이에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자신의 ‘꼴’을 보고도 이렇게 말하는 그녀에게 유정은


뭐라고 해야 할지 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해주> “옆에 앉아도 되죠?”



그녀는 대답도 듣지 않고 벤치 유정의 옆에 앉았다.



<유정> “대학 다닌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정말 세련됐다.


게다가 정말 예쁜걸.


아 참, 이런 말 하면 요즘은 실례인가?”



<해주> “괜찮아요. 예쁜 걸 예쁘다고 말 못 하는 것이 이상한 거죠.


소문 들으신 모양인데, 전 J 대학 물리학과 다녀요.


사람들이 그러데요.


여자가 무슨 물리학이냐.


근데 그게 뭐 어때서요?


남자가 공부하면 E=mc^2이고 여자가 공부하면 E=wc^4인가요?(註1)


공부를 거기로 하는 게 아닌데 사람들 참 이상하죠?”



유정은 생각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도림은 해주가 참 천박하다고 말했었다.


물론 그때는 도림이 해주에 대한 원한 같은 것이 있어서 그리 말하는 줄로 생각하고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 보니 도림의 말대로


그녀가 참 천박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겠는 것이었다.


공부를 성기로 한다는 발상을 하다니.



<해주> “그나저나 선배는 전공이 뭐예요?”


<유정> “난 유리학과.”



유정의 말은 ‘유리걸식’의 ‘유리’를 공부한다는 뜻이었다.



<해주> “그런 학과가 다 있었어요? 처음 듣는 학관데······.”


<유정> “특수학교엔 특수한 학과들 많아. 그나저나 여기엔 어쩐 일이니? 이 근처 살아?”


<해주> “그런 건 아니구요, 신대방역 가던 길이었어요. 집이 2호선 라인에 있다 보니.”


<유정> “그렇구나. 그나저나, 너도 올해 입학했을 텐데, 친구들은 만나봤니?”



유정의 말은 2020년 입학한 학생들이


사실상 비대면으로 집에서만 공부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2021년에 입학한 해주 역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해주> “만나기야 했죠. 근데 수업 시간엔 잘 못 만나요.


교수님들보다 애들이 학교 나가기를 싫어하거든요.


무서워한다고 해야 하나.


그건 선배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런 걸 물으세요?”



<유정> “우리랑 다르구나. 우린 학과가 학과인지라 비대면으론 절대 못 하거든.”


<해주> “선배, 배고프지 않아요? 같이 저녁이라도 하실래요?”


<유정> “너 집에 간다며?”


<해주> “집이야 맨날맨날 가는 곳인데, 하루쯤 늦게 간다고 큰일 나지 않아요.


하지만 선배는 너무 오랜만이잖아요. 반갑기도 하고.”



<유정> “미안한데, 내 수중에 돈이 없다.”


<해주> “별 걱정을 다 하세요. 제가 살게요.”



유정은 극구 사양했지만, 계속 권하는 것을 또


무턱대고 뿌리치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 하여


두 사람은 근처 돈가스집으로 옮겨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군대 얘기가 나왔다.



<해주> “선배는 군대 언제 갈 거예요?”


<유정> “그게 궁금해?”


<해주> “그냥요. 제 친구들은 학교에 있어 봐야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으니까


지금 다녀오겠다고 다들 나서거든요.”



<유정> “나도 곧 갈 생각이야.”


<해주> “잘 됐다. 저희 엄마가 요즘 국가사업을 하나 맡았어요.


요즘 하두 어수선하다 보니 청년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잖아요.


돈은 돈대로 똑같이 내는데 수업도 못 받는다고.


또 나라에서 수업도 못 받게 한다고.


물론 이건 좀 어폐가 있긴 하죠.


비대면 수업까지 못 받게 한 건 아니니까.


그래도 ‘대면 수업을 못 받게 한다’는 말보다 ‘수업을 못 받게 한다’는 말이 훨씬 세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선배도 같은 입장이니 이해하실 거라 믿어요.


아, 선배는 다르다고 했나?


아무튼 이해해 주세요.


어쨌든 그래서 이 불만을 되도록 줄이려고 나라에서도 노력을 하는 거예요.


군대로 뺄 수 있는 사람들은 군대로 빼려는 거죠.


근데 그냥 오란다고 가나요?


이번에 저희 엄마 사업으로 오는 군인들은 월급을 100만 원씩 주기로 했다더군요.


하필 지금 TO가 둘이 남았는데,


어때요 선배? 지원해 보시지 않겠어요?”



<유정> “군대에 2명 더 간다고 달라질 게 있니?


형평에 어긋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나라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해주> “남은 TO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다른 데서도 다 나름의 사업을 하겠죠.


저는 엄마가 맡은 사업만 말을 하는 거예요.”



<유정> “너희 어머니 변호사 아니시니? 변호사가 왜 이런 사업을?”


<해주> “그건 저도 몰라요. 아무튼 엄마가 맡으셨어요.”


<유정> “나는 싫다. 나중에 구설에 오르고 싶지 않아.”


<해주> “누가 봐도 선배가 구설에 오를 일이 없는데 왜 그러세요?


설사 구설에 올라도 나라가 오르는 거지?”



<유정> “나라가 구설에 오르면? 너희 어머니는 구설에 안 오를 것 같니?


그런 사업을 어머니께서 순수한 마음으로 하실 거란 생각이 안 든다.”



<해주> “지금 우리 엄마 흉본 거예요?


좋아요. 싫으면 마세요.


남들은 들어가지 못해 안달이 난 자린데, 굴러온 복도 차 버리는 선배는!”



하지만 유정은 말은 이렇게 해도 마음은 혹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어차피 갈 거라면, 한번 지원해 보고도 싶었다.


설사 떨어진다고 해도. 어차피 올해 안에 갈 생각이었고,


코로나 시대 동가식 서가숙을 군대에서 극복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 주석


註1. mc^2의 m은 man의 m이고 wc^4의 w는 woman의 w이다. 한편 2와 4는 전통혼례의 교배례에서 남녀간 절하는 횟수에서 따온 것인데, 여자가 4회를 먼저 절하면 남자는 2회 절한다. 불평등한 요소이다. 이는 조선 말기의 유습으로 종법이 강화되어 생긴 풍습이라고 한다.(김용옥 저, 여자란 무엇인가, 73쪽 참조) 물론 소설에서 해주가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말했을 리는 없고 그냥 되는대로 지껄였겠지만, 작가가 이렇게 쓴 의미를 굳이 찾자면 그렇다는 것이니 적당히 읽으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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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신풍역 1번출구-정인의 태휘 살해 고백 23.06.13 7 0 10쪽
68 신풍역 1번출구-신풍역 가는 길 23.06.12 8 0 9쪽
67 거울-아줌마, 나 도림이예요... 23.06.12 9 0 16쪽
66 거울-정인, 도태휘를 듣다... 23.06.11 8 0 10쪽
65 거울-도림, 정인을 만나다... +3 23.06.11 13 1 10쪽
64 거울-아기를 찾는 비밀 이름 23.06.10 8 0 10쪽
63 거울-그를 해코지하려 했던 사람들 23.06.10 8 0 10쪽
62 거울-두 개의 기사 23.06.09 8 0 10쪽
61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3... 23.06.09 8 0 10쪽
60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2... 23.06.08 8 0 10쪽
59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1... 23.06.08 8 0 10쪽
58 거울-도림 곁에 살아있는 전생의 인연들 2... 23.06.07 7 0 10쪽
57 거울-도림 곁에 살아있는 전생의 인연들 1... 23.06.07 9 0 10쪽
56 거울-절망, 그리고 또 다시 천반산으로... 23.06.06 9 0 10쪽
55 거울-이오카스테의 저주 23.06.06 10 1 10쪽
54 거울-Z 보육원의 그 아기 23.06.05 10 0 10쪽
53 거울-거울로 보고 싶은 세 가지... 23.06.05 9 0 10쪽
52 도림의 바다-아기를 두고 다시 천반산으로... 23.06.04 9 0 10쪽
51 도림의 바다-태휘의 죽음 23.06.04 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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