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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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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6.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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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역 1번출구-두 번째 기억 소멸

DUMMY

배왕은 어느덧 시총 3조의 중견 플랫폼 기업이 되어있었고


이에 더해 프랜차이즈 사업까지 운영하는, 태홍에겐 군침이 도는 먹잇감이었다.



<태홍> “배왕을 인수하려 해도 배왕 김민수가 동의를 안 하면 말짱 도루묵이에요.


또 김민수가 동의한다고 해도 시총 3조는 너무 비싸.”



<지후> “그러니까 김민수가 인수합병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그리고 시총을 적절한 값으로 후려치자 그 말씀이시죠?”



<태홍> “역시 허 국장님은 척하면 척이라니까. 그래서 내가 허 국장님을 좋아해요.”


<지후> “이번엔 사진 조작하는 것으로 하지 말았으면 해요.


물론 극사실주의 그림 그린다고 눈이 아프고 팔이 아파서 그런 건 아니에요.


필요하면 팔이 부러져도 그려야죠.”



사실 지난 IMF때 X 매트 공장에 걸렸다던


“경축, IMF 구제금융”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린 사진이나


그 후 회귀한 도림에게 선물로 보낸


신풍역 1번 출구에서 태휘와 정인이 걸어 나오는 사진 모두 지후의 극사실주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지금 도림이 갖고 있는 신풍역 1번 출구 사진도 지후의 그때 그 그림이었다.



<태홍> “무슨 생각이 있는 거예요?”


<지후> “있죠. 있는데, 약간 불법이긴 한데


성공만 하면 회장님께서 배왕 정도는 거저 주우실 수 있을 겁니다.”



<태홍> “그렇다면야 뭐. 근데 그 ‘약간 불법’이라는 게 목에 생선 가시처럼 걸리네?


나는 국장님을 사진 좀 잘 찍어달라고 부른 건데,


사진 안 찍고 ‘약간 불법’을 자행할 거라면 그것을 선택하는 이상으로 내게 득이 돼야 해요.


적어도 그림 때보다 위험은 적어져야 해요.”



<지후> “물론이죠. 회장님께 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배왕을 얻는 데 그림보다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이쯤이면 득이 된다고 할 수 있으려나?


확실히 하시죠. 이 일에 회장님은 전혀 개입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그저 나중에 자연스럽게 배왕만 차지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지후는 그의 계획을 태홍에게 말하였다.


태홍은 처음에 적잖이 놀랐지만,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이미 20년 전에 마비가 된 심장(양심)이 이제 와 다시 뛸 까닭이 없었다.






- 2021년 2월




도림은 집에 혼자 있었다.


유정의 일, 태휘와 윤정의 일, 정인과 지후의 일, 상속 문제 등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무엇보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인지 후 상속회복이


기간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후로는 숨 쉬는 족족,


마치 폭우 속에 전소해 버린 집 –


그래서 홍수 중에도 떠내려갈 건덕지조차 없는 그런 집 앞에서


하릴없이 울고 있는 소녀의 비탄의 냄새가 나는 듯 했다.


이럴 거면 전생에는 왜 데려갔느냐며 하릴없이 천반산 목소리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저 위안을 삼자면, 유정의 상속 문제는 해결이 요원해졌지만


그녀 자신의 상속 문제는 뜬구름만큼은 손에 잡혀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서 그녀는 현관문 가까이 나갔다.



<도림> “누구세요?”


<배달> “예, 왕족발 시키셨죠? 배왕 배달왔습니다.”


<도림> “안 시켰어요. 잘못 오신 거 같네요.”


<배달> “여기가 맞는데, 시켜놓고 안 시켰다고 하시면······.”



밖에서 배달원의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림> “아니, 안 시켰다니까요.”



도림은 현관문을 열며 짜증을 한 사발 퍼부으려고 했다.


하지만 밖의 배달원은 배왕의 배달 옷을 입고 배왕 배달 가방을 들고


입에는 두 겹의 마스크를 하고 손에 칼을 쥐고 있었는데,


문이 열리자 그는 도림을 위협하며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도림> “왜, 왜 이러세요?”



도림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림> “우리 집엔 가져갈 건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적선을 하셔야······.”



배달원이 칼을 든 손을 높이 쳐들자 도림이 고개를 피하며 비명을 질렀다.



<배달> “훔쳐갈 게 왜 없어? 여기 신도림이 있는데.”


<도림> “제 이름을 어떻게 알죠?”


<배달> “찍었는데 그 이름이 맞긴 맞는가 보네.”



그는 도림을 칼로 위협하며 구석으로 몰았다.



그리고 도림의 비명이 온 방 안에 가득했다.



그가 떠나간 자리, 도림은 나신의 몸으로


머리와 배, 손과 팔에(註1) 칼을 맞아 온몸에 혈흔이 낭자했다.


거의 가사상태에 이른 그녀는 2시간쯤 뒤 엄마가 와서 119를 부르기까지 피를 흘렸고,


병원에서는 하마터면 실혈사할 뻔 했다고


너무 늦지는 않았지만 깨어나는 것은 좀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후는 이 일로 크게 화를 내고 있었다.



<지후> “개자식, 칼빵만 몇 대 놓고 오랬더니 어디서 성폭행이야 성폭행이!


아무리 비대면 언택트라지만 욕구를 그런 식으로 풀다니!


그러니 일을 깔끔하게 처리할 마음이 없었던 게지.


망할 자식 같으니!”



지후는 배달원의 ‘욕구’ 때문에 도림의 숨통을 끊어놓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배달원이 신속하게 경찰에 잡혔고


경찰은 그가 배왕의 배달원이라고 또 신속하게 밝혀주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웬만한 대기업의 이런 불미스러운 일은 대개는 경찰도 잘 드러내지 못하기 마련인데,


지후로서도 뜻밖이었다.



그 덕에 지후는 준비했던 기사를 Q 신문에 올렸다.



한편 이 일로 배왕의 주가는 곤두박질쳤으며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1조가 날아갔고 주식은 거래정지가 됐다.



<지후> ‘이번 사건, 아주 잘 됐어.


사람들이 살인보다는 강간에 더 잘 반응하거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더라구.


덕분에 사건을 더 자극적으로 내보낼 수 있게 됐으니, 처음에 욕한 건 미안해.


교도소에 배왕 족발 많이 넣어 줄게.’



지후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신문사의 일’로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어도, ‘태홍과의 일’로는 아주 씁쓰레했다.


뒷일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후>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혼수상태인데. 못 깨어날 수도 있지.’



배왕을 차지하고자 하는 태홍의 일은 잘 되었어도,


도림을 없애 위험을 제거하려던 그의 일은 아직 미정이기 때문에


이 일이 ‘재주’만 넘다 끝나는 건 아닌가 싶은 불길함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아 그를 괴롭힌 것이었다.


다만 그렇게 걱정하던 마음도 ‘혼수상태’라는 말 앞에서 적당히 씻겨나갔다.






- 2021년 3월




X 그룹은 배왕을 인수했다.


태홍은 ‘배달의 王足’의 ‘足’을 ‘族’으로 고쳐


고객을 왕족(王族)처럼 받드는 회사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X 그룹의 네임밸류 때문인지 다시 주가는 오르기 시작했고


시가총액도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 2021년 4월




도림은 40여 일간의 혼수상태 끝에 간신히 깨어났다.


실눈을 뜨고 엄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도림> “엄마.”


<엄마> “그래, 도림아, 엄마야. 엄마. 이제 정신이 좀 드니?”



도림의 엄마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도림> “배가 끊어질 것 같아. 머리도 너무 아프고.


여기가 어, 어디야? 난 왜 이렇게 아픈 거야?”



<엄마> “도림아, 기억 안 나니? 하나도 기억 못 하겠어?”



도림의 기억은 H 법무법인 회의실에서


태휘의 환생으로 가장해서 정인을 나무라던 때에 멈춰 있었다.


그 이후로는 마치 진탕 마신 술에서 겨우 깼을 때처럼


오랜 잠에 빠졌다가 겨우 깨어난 듯한 느낌이 있었을 뿐, 그 직전 일은 기억에 없었다.


하룻밤 잠과는 차원이 다른, 마치 초등학교 6학년 때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가 깨어났다고 들은 그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도림은 울었다.


다 큰 나이라지만 울지 않고 견디기에는 머리와 배, 그리고 온몸에 고통이 너무 컸다.


게다가 또다시 겪는 ‘기억소멸’이 몸서리쳐질 만치 서럽고 억울했다.



<도림> ‘전생에서 업을 해결하면 이생은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 하지 않았던가요?


이게 편한 건가요?


아니면 전생의 업을 해결 못 한 건가요?


그때 천반산에서 내게 수고했다 말했던 건 뭔가요?


아들 문제니 삼춘 문제니 채정인, 허지후 문제니, 다 참았어요.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그녀는 천반산 목소리에게 따졌다.


그리고 속으로 목놓아 울었다.



<엄마> “도림아, 울지 마라. 의사 선생님한테 진통제 좀 처방해 달라고 말했다.”


<도림> “엄마, 나 물 좀.”



엄마는 물을 한 컵 떠다 주었다.



<도림> “엄마, 나 아파서 우는 게 아니야. 이 인생이 하도 기가 막혀서 우는 거야.”



그러고는 그만두었다.


도림의 입장으로는 ‘나이 어린’ 엄마지만


딸이 ‘기가 막히다’ 하는 말을 듣고 기막혀할 엄마를 생각하니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어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도림> “엄마, 나 병원에 왜 왔어? 언제 왔어?”


<엄마> “기억 하나도 안 나니?”



도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어디 산에서 굴렀나 봐.”



엄마는 대충 둘러댔다.


그 끔찍한 일을 딸에게 말해 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차라리 딸이 기억 못 하는 것이 다행이다 싶기까지 했다.



<도림> “거짓말. 어디 산?


진짜 산에서 굴렀으면 무슨 산에서 굴렀다고 말했겠지.


근데 우리 집 근처에 산 없어.


게다가 요즘 같은 때에 산에 갔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집에 콕 틀어박혀서 나돌아다니지를 않는 때에 산에서 굴렀다고?”



<엄마> “진짜야. 네가 기억이 없으니 모르는 모양이지만,


그래서 머리도 다치고 배도 다치고 팔도 다치고 손도 다치고 한 거야.”



<도림> “그간 나 문병은 누구 왔다 갔어?”



도림은 자신을 해코지한 자가 누구인지 어떤 목적인지 알기 위해


누가 다녀갔는지를 물었다.





=== 주석


註1. 손과 팔에 칼을 맞는 것은 일종의 방어흔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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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풍역 1번출구-두 번째 기억 소멸 23.06.14 8 0 10쪽
70 신풍역 1번출구-배왕(배달의 王足)에 군침 흘리는 태홍 23.06.13 8 0 10쪽
69 신풍역 1번출구-정인의 태휘 살해 고백 23.06.13 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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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2... 23.06.08 8 0 10쪽
59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1... 23.06.08 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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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거울-Z 보육원의 그 아기 23.06.05 1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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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도림의 바다-아기를 두고 다시 천반산으로... 23.06.04 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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