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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808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6.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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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거울-이오카스테의 저주

DUMMY

노인은 ‘신도림’이라는 이름을 여태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신도림’이란, 아기를 맡긴 사람이 아니라면,


또는 아기를 맡기도록 시킨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아기의 엄마라고 하기에 도림은 너무 어렸다.


아니, 어려 보였다.


심지어 유정보다 어려 보였다.


설사 한두 살 많다고 해도 쪽지에 ‘비밀이름’으로 적어 두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러자니, 도림도 대답이 궁색해졌다.



자신이 아기의 엄마라고 하면 영락없이 ‘미친년’ 소리를 들을 것이고,


전생에서 아기를 맡겼다고 하면 꿈꾼단 소리를 들을 테고,


누가 시켜서 맡겼다고 하면 태어나지도 않은, 또는 고작해야 한두 살 먹은 사람이


어떻게 심부름을 하느냐는 소리를 들을 것이 뻔했다.



그런 까닭에 그녀는 너무 일찍 찾으러 온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한 10년쯤 뒤에 찾아왔다면 나이라도 속일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그녀의 아기라고 우격다짐이라도 해 볼 수 있었을 텐데.



<도림> “그 아기가 신도림과 관련이 있나요?”


<보육> “그건 말해 줄 수 없어.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도림> “그럼 방금 전 신도림을 어떻게 아느냐는 말씀은 왜 하신 건가요?”


<보육> “우리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 중에


‘신도림’이란 이름과 관련이 있는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아까 말한 대로 김유정이라는 아이는 있어 본 적이 없어.”



도림은 확신했다.


노인의 말은 그녀의 아기가 이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시인이라고.


다만 한푼어치라도 관련이 없다면 아기가 신도림과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없다는 애매한 대답은 하지 않았을 것이니.


이제 유정을 통해서든 누구를 통해서든 김유정이 여기에서 자랐다는 것,


그리고 F 보육원에서 이리로 옮겨온 이유만 알면 될 터였다.



<도림> “할아버지, 확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제가 신도림이에요.”


<보육> “내게 확인시켜 줄 수 있나?”


<도림> “아직 주민등록증 같은 건 없지만, 학생증으로도 확인이 된다면 한번 보시죠.”



그녀는 지갑에서 학생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과연 학생증에는 도림의 얼굴에 ‘신도림’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예상대로 노인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보육> “학생은 언제 태어났나?”


<도림> “2002년 6월, 월드컵의 아이죠.”


<보육> “그럼 자넨 아니야. 유정이는 2001년생이거든.”



도림은 애써 웃음을 머금으려 하였다.



<도림> “설마 제가 2000년에 태어났으면 유정이를 낳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노인은 뭔가에 홀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보육> “자네, 누군가? 도깨비인가?”


<도림> “도깨비라뇨. 이제 알려 주시죠. 신도림이 찾아오면 아기의 비밀을 알려 주라고 적어놨을 겁니다.”


<보육> “그래. 그렇게 적혀 있었지. 하지만 안 돼.


아기보다 어린 엄마라니, 말도 안 돼.


그 쪽지가 어떻게 학생 손에 들어가게 됐는지,


아니 그 쪽지의 내용을 무슨 수로 학생이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장난은 그쯤치고 그만 돌아가.”



<도림> “쪽지요? 쪽지는 할아버지께서 아직도 갖고 계실 텐데요?


어디에 보관하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깊숙한 곳에 보관하고 계실 것 같은데,


거기엔 다른 사람 손도 안 탈 것 같은데요.”



노인은 방으로 들어가 금고에 보관한 쪽지를 꺼내 보았다.


쪽지는 17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세월의 때 말고는 누구의 손때도 묻지 않은 모습이었다.



<도림> “할아버지, 유정이는 여기서 자랐습니다. 왜 유정이가 없다고 하셨나요?”


<보육> “그럼 내가 반대로 묻지.


만약 학생이 그 ‘신도림’이라면,


학생은 왜 ‘신도림이 찾아오면 아기의 비밀을 알려주라’고 적어놨지?”



노인은 물어보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이 뭘 적는다는 것인지.



도림은 할 수 없다는 듯 말을 했다.


쪽지를 확인했으니 사실 ‘마지막 퍼즐 조각’도 맞춰지는 셈이었으나,


이 자리를 벗어나려면 노인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아야 했다.



<도림> “실은 유정이는 제 오빠예요.


저희 엄마가 유정이를 낳고 형편이 안 돼 보육원에 맡기면서


‘신도림이 찾아오면 아기의 비밀을 알려주라’고 적어놓고는,


제 이름을 ‘신도림’으로 지어놓으신 거예요.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엄마한테 들었고요.


그리고 엄마는 얼마 전 돌아가셨어요. ······


이제 혈혈단신 세상에 홀로 남은 제가 오빠를 찾으려는 거구요.”



도림은 이 정도 거짓말을 생각해 내고는 내심 상황을 모면했다고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했다.



<보육> “그런데 학생과 유정이는 왜 성이 달라?”



생각지 못한 질문에 도림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도림> “이런 말씀까지는 안 드리려고 했는데, 저희 엄마 이름이 ‘김윤정’이에요.


오빠한테는 엄마는 아기 이름은 안 적어놓고 엄마 이름만 적었어요.


‘김유정’이란 이름은 엄마 이름을 보고 보육원에서 지으신 이름이잖아요?


그러니 동생이랑 성이 다를 수밖에요.”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데는, 노인도 그만 얘기를 안 해줄 도리가 없었다.


유정은 도림의 엄마가 결혼 전에 낳은 아이인가 보다 하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보육> “사실 유정이는, 엄정히 말하면 여기 출신이 아니야.


F 보육원에서 왔거든.


근데 아기를 맡겨놓은 엄마는 안 나타나고


그 할머니, 할아버지쯤 돼 보이는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었나 봐.


유정이를 해코지하겠다는 거지.


이런, 남매지간이라고 했으니 학생한테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겠네.


그래서 F 보육원 원장이 유정이를 나한테 맡긴 거야.


그 밖에는 나도 아는 건 없어.


엄마가 그런 얘기는 안 하시던가?”



노인은 도림의 엄마가 유정을 금세 찾으러 오지 못한 이유도


F 보육원에서 아기를 지키기 위해 말을 안 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가 도림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의 설명이 지금 상황에 모두 맞아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도림> ‘엄마는 바로 돌아가셨나요? 어떻게 돌아가셨나요?’



도림은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녀의 잃어버린 기억 하나를 소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이미 아기의 엄마는 그녀, 즉 도림을 낳은 한참 뒤 돌아가셨다고 말해놓은 터였다.



<도림> “할아버지, 할머니 말고 다른 가족들에 대한 소식은 모르시나요?”


<보육> “금방 나타날 줄 알았던 엄마는 여태 안 나타났고,


그래서 우린 죽었나보다 생각했지.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F 보육원에도 안 나타났나 봐.


근데 학생 말대로 최근까지 살아계셨다면


왜 유정이를 찾으러 안 오셨는지 내가 더 궁금하네.”



<도림> “그러게요. 왜 찾으러 안 오셨을까요?”



도림은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노인에게 깍듯이 인사하고는 Z 보육원을 빠져나왔다.



노인의 말대로라면 병록과 해월은 상속재산에 대한 욕심으로


그녀가 내생으로 간 뒤에도 그치지 않고 아기의 목숨을 원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도림> “욕심은 노망도 비껴가는군.”



도림은 헛물켰다.


어차피 빼앗길 거 아기에게 상속시킨다는 욕심 버리고 그냥 줘 버릴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일었다.


그랬으면 적어도 유정이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죽을 고비를 넘는 일은 없었을 테니.



<도림> “훗, 모를 일이지. 그랬더라도 살아 있는 한은 화근이 됐을 거니까.


나한텐 이미 지난 생일 뿐이니 돌이킬 수도 없고.”






- 3 -




유정은 ‘나이 많은’ 아들임이 분명했다.



다만 숨기고 있을 뿐, 윤정의 기억을 그대로 안고 도림의 생으로 왔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하기에 나이 많은 연인을 ‘아들’이라고 여기는 데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이것은 회귀한 생에서 삼촌 같은 남편을 ‘오빠’라 부르는 데에 거리낌이 있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들’을 받아들이는 것과


아들과 같은 세대(世代)를, 그것도 연인으로 사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도림> “천목(천반산 목소리)님, 어이하여 제게 이런 저주를 내리시는 겁니까?


어떻게 엄마와 아들이 같은 침대 위에 오를 수 있단 말인가요?


제게 이오카스테(註1)의 신탁이라도 있었던 건가요?


그러면 이제 아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매고 죽어야만 한다는 말인가요?


‘업’을 해결하면 편안히 살 수 있을 거라 하지 않으셨나요?


어째서 이런 불행을 제게 내리시는 겁니까?”



그러더니 잠시 뒤 그녀는 실없이 웃었다.



<도림> “신탁? 그런 게 있었을 리가 없잖아.


남한테 자기 재산도 믿고 맡기는[信託] 시대에 ‘운명의 장난’[神託]이라니? ······


그런데 나한텐 왠지 모르게 그런 게 있었을 것만 같아.


나한테만 그런 게 있을 것 같단 말이야!”



도림은 전생에서 그렇게 돌이키려고 했어도 ‘정해진’ 길로 가는 ‘운명’을 생각했다.



<도림> “설령 그렇다 해도 지금 이 때에


오이디푸스가 웬 말이며 이오카스테가 웬 말이야?


천반산 그이도 내게 저주의 신탁 따위가 있단 얘기는 안 했잖아.


맞아. 난 아직 아무하고도 결혼 같은 거 안 했어.


이오카스테라니, 말도 아니지!”





=== 주석


註1.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희곡에서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의 아들인데, 라이오스는 ‘미소년’ 크리시포스를 겁탈하고 자살에 이르게 한 저주로 “아들에게 살해를 당하고 아내는 아들과 결혼을 하게 된다”는 신탁을 받는다. 이오카스테는 라이오스 왕의 아내이면서 동시에 오이디푸스의 모친인데, 오이디푸스는 자신과 결혼한 이오카스테가 그의 어머니임을 알고는 그녀의 황금 브로치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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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2... 23.06.08 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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