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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800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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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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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거울-거울로 보고 싶은 세 가지...

DUMMY

5. 거울





- 1 -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온 도림은 슬며시 눈을 떴다.


한밤중인 듯 주변은 어두웠다.


매일같이 잠결에 들고 꿈결에서 깨는 잠과 같지 않게 아주 깊은,


그리고 아주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만 같았다.


마치 초등학생 때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는 그때 그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던 때와 느낌은 비슷했다.



<도림> “여기가 어디지?”



도림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어두운 가운데 벽을 더듬었다.


그리고 형광등 스위치를 찾아 올리니 주위가 반짝 하고 밝아졌다.



<도림> “내방이구나.”



전생에서 돌아온 도림은 고맙게도 그녀의 방으로 떨어져 있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꿈결과도 같은 과거의 기억들을 되짚어갔다.


윤정의 삶, 그리고 도림의 마음으로 산 윤정의 삶이 꿈같은,


하지만 생생한 기억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도림> “잠을 아주 오래 잔 것 같아.”



그녀는 툭 내뱉었다.


옆에는 거울 하나와 사진이 두 장 놓여 있었다.



무심결에 거울을 집어 들었다.


거울을 보니, 이윽고 천반산에서의 그 가물가물한 기억도 조금씩 되살아났다.


그 거울을 천반산의 목소리가 주었다는 것도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때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었다.









<소리> - 보고 싶은 것을 딱 한 번 볼 수 있는 거울을 네게 줄 터이니, 꼭 필요할 때 쓰도록 해라.










<도림> “그 ‘한 번’이란 게, 보고 싶은 걸 한 번씩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다는 건가요,


아니면 딱 한 가지를 여러 번 볼 수 있다는 건가요?


그도 아니면 오직 한 가지를 단 한 번만 볼 수 있다는 얘기인가요?”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웃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었다.



<도림> “거울에도 시력이 있고 거울에도 기억이 있다지.


그리고 거울은 세상 모든 것을 본다지.


그이(천반산 목소리)의 말은 그 뜻이겠지?


같은 바다에 두 번째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를 기억할 텐데,


그 생각을 하자면 내가 이리 기가 막힌데 거울은 또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군대 두 번 갔다 왔다면 그 심정이 지금과 같을까?


칫, 우습네. 군대 갈 나이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면서.”



도림은 허허로이 웃었다. 그리고 갑자기 레안드로스(註1)를 떠올렸다.



사랑을 위해서였다고는 하나, 같은 바다에 빠지기로는 그녀보다 먼저인 이가 곧 레안드로스였다.


대신 ‘사랑의 올무’에 걸려 연인 헤로를 온전히 사랑한 그는 죽었지만,


정인으로 인하여 ‘사랑의 올무’ 따위에는 애초에 걸릴 수가 없었던 그녀는 살았으니


정인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헛웃음이 났다.



그렇다고 그녀의 바다가 고요하고 평온하기만 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도림> “그간은 풍랑이 이는 거친 바다에서 이리저리 표류하기 일쑤였지.


살기는 내 의지로 살아간 것 같은데 꼭 그이(천반산 목소리)의 뜻대로 됐던,


그걸 표류가 아니면 뭘로 설명할 거야.


그 바다의 악어(정인), 상어(지후), 그리고 표류한 섬의 식인종(병록, 해월)한테서 가까스로 살아났거든.


그 모습을 거울은 모두 지켜보았고, 또 기억하고 있을 테지.”



궁금했다.


거울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또 그녀는 어떤 것을 보여 달라고 해야 할지.


그녀는 거울을 요리조리 돌려보았다.


핏기 없는 모습도 들어오고 억지로 미소 짓는 얼굴도 들어왔다.



<도림> “설마 내 얼굴 봤다고 ‘땡, 이제 그만, 기회는 한 번 뿐입니다’ 이러는 건 아니겠지?”



그녀가 보고 싶은 것은 딱 세 가지였다.



첫째는 윤정이 어떻게 죽었는지였다.



회귀한 도림의 삶에서 아기를 F 보육원 앞에 놓아두고 도림은 천반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니 1997년 12월 그녀가 회귀한 때로부터 2001년 2월경 천반산으로 향하던 때까지는


윤정의 생은 도림이 바꾸었기 때문에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겠지만,


윤정이 F 보육원 앞에 아기를 놓아둔 이후의 생은 바뀌지 않은 셈이 되는 것이었다.



도림의 생일이 2002년 6월이니 윤정이 오래지 않아 죽었으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거울은 알려줄까.






둘째는 윤정이 사망한 2001년 2월 무렵부터 도림이 태어난 2002년 6월까지, 그녀는 어디에 있었는가였다.



김윤정의 육체와 회귀한 신도림의 육체가 다른데


두 육체가 보고 느낀 서로 다른 것을 도림이 지각하고 자각하고 기억하니,


실상 육체는 ‘쓸모없는’ 거적때기에 불과하고


어떤 영혼 같은 게 있어서 두 육체의 연결점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육체에서 발가락이 하나 떨어져 나가도


그 육체를 지각하는 ‘영혼’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으니 ‘거적때기’라는 말은 적확했다.


진정 영혼이란 게 있다면 윤정이 죽고 도림이 태어나기까지 그 영혼은,


어디 구천을 떠돌았는지, 아니면 영혼의 지하 감옥 같은 게 있어서 거기 감금돼 있었는지,


그도 아니면 인력사무소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처럼 다음 생 대기 순번 기다리고 있었는지,


또는 다른 차원에서 놀고 있다가 사람들이 4차원으로 통하는 문이라고 말하는,


어디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곳으로 떨어졌는지, 그녀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또한 거울은 알려줄까.






셋째는 잃어버린 5년이었다.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기억상실증에 빠져도 절정에 다다르면 뜬금없이 기억이 되살아나곤 하는데,


도림으로 치면 이는 가당치도 않은 얘기였다.


그 ‘험난한 바다’에 갔다 왔어도 기억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전생에서 샤토 피작 마시고 잃어버린 기억이라고 회귀한 생에서 굳이 살려 주지 않는데,


5년의 기억을 되살려 줄 리가 만무했다.



이 또한 보자 하면 거울은 보여줄까.






보고 싶은 것이 이렇게 많은데, 그중에 골라서 딱 한 가지만 보여주겠다니


참으로 얄미운 ‘천반산 목소리’였다.



<도림> ‘아예 아무것도 안 보여준다는 것보다는 낫지.’



도림은 체념했다.



한편 옆에는 사진도 두 장 있었는데,


그 사진은 그녀가 태휘의 죽음 전에 받았던 사진,


곧 신풍역 1번 출구를 지나가는 태휘와 정인의 사진,


그리고 신도림역의 7번 출구 역명판을 찍은 사진이었다.



<도림> “거울이나 하나 더 주지, 이런 건 뭐 하러 주셨데.”



그녀는 사진을 치워버렸다.



신도림역 역명판 사진은 몰라도 신풍역 사진은 그녀에겐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 사진을 받아들고 태휘가 죽을까 싶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기를 수차례 했었다.


그런데도 돌아오는 대답은 관내에 그런 성매매 업소는 없다는


‘앵무새 붕어빵 먹는 소리’ 같은 대답뿐이었다.


그러니 사진에 대한 감정이 좋을 까닭이 없었다.



<도림> “그이(천반산 목소리)가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 사람을 왜 염장을 지르려고 하지?”






이튿날 도림은 오랜만에 유정을 찾아갔다.


물론 오랜만이라지만 유정에게는 그간 시간이 멈춰 있었으니 엄정히는 ‘오랜만’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회귀한 첫날 그랬던 것과 같이 ‘인지부조화’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그 3년 넘는 기간을 못 본 얼굴, 그녀의 마음은 유정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치고 있었다.



전생에서의 경험을 생각하자면, 유정에게도 전생이 있겠거니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가 집중한 것은 다른 지점이었다.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깨어났을 때처럼,


그리고 아기였다가 처음 세상을 자각할 때처럼,


전생의 기억이 이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전생에서의 삶은 내가 산 삶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녀 자신으로 말하자면 김윤정도 ‘나’였고 신도림도 ‘나’이지만


전생의 기억이 없을 때는 김윤정은 ‘나’와 무관한 사람이었다는 것,


그러니 지금 신도림의 삶도 내생의 ‘나’와는 무관한 사람,


즉 ‘나’가 아닌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고,


그녀는 반드시 내생의 ‘나’가 될 것이므로


비록 ‘지금’을 살고 있어도 그녀는 신도림과도 무관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도림> ‘<나>란 무엇일까.’



궁금한 지점은, ‘나’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데 얼굴을 꼬집으면 ‘나’가 아프고


슬픈 영화를 보면 ‘나’의 눈시울이 시큰하다는 것이었다.



기억이 누적되지 않으면 시간도 누적되지 않기 때문에,


기억이 단절된다면 언제나 그 시점으로부터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그녀는 진작부터 깨닫고 있었다.



궁금했다. 유정에게도 ‘누적된’ 전생의 기억이 있는지. 그래서 물었다.



<도림> “오빠, 오빠도 전생을 기억해?”


<유정>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무슨 전생 같은 게 있다고. 오빤, 그런 거 안 믿어.”



참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전생을 다녀왔는지 여부도 모르는 마당에 전생을 기억하느냐고 묻다니.



<유정> “그건 그렇고, 갑자기 웬 전생 타령이야?”


<도림>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오빠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어.


여태 나한테 오빠의 과거에 대해 얘기해 준 적 없잖아. 엄마도, 아빠도.”



도림은 얼떨결에 둘러댔다.


하지만 둘러댄다고 둘러댄 그 말이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과거를 알자고 전생까지 소급하는 것은 누가 봐도 지나쳤다.





=== 주석


註1.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레안드로스는 아비도스의 청년으로, 아비도스는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헬레스폰토스 해협(다르다넬스 해협)의 아시아 쪽 도시이다. 해협 건너편 세스토스라는 도시에 헤로라는 아프로디테 신전의 여사제가 살았는데, 레안드로스는 이 헤로에게 반하여 매일 밤 이 해협을 건너가 그녀를 만나곤 했다. 그러다 폭풍이 일어 바다가 사나워진 어느 날 밤, 레안드로스는 기력을 잃고 쓰러져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이튿날 바닷가에 밀려온 레안드로스의 시신을 보고 헤로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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