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806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6.05 20:00
조회
9
추천
0
글자
10쪽

거울-Z 보육원의 그 아기

DUMMY

도림은 얼떨결에 둘러댔다.


하지만 둘러댄다고 둘러댄 그 말이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과거를 알자고 전생까지 소급하는 것은 누가 봐도 지나쳤다.



<유정> “그렇다고 전생을 묻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하지만 그게 궁금하다면 말해 줄 수는 있지.


어릴 땐 상처였지만 이젠 그런 유아적인 감정에 머무를 이유가 없으니까.


오빠는 아빠와 엄마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너도 알겠지만 Z 보육원에서 자랐고,


원장님 말씀으로는 난 어느 날 보육원 바깥에 바구니에서 울고 있었대.


그리고 거기에는 오빠 생일하고 엄마 이름을 적은 쪽지가 있었다는데,


엄마라는 분은 금방 온다고 했다는데 엄마를 본 적은 없어.”



이 말을 듣고 도림은 머리를 뭔가에 맞은 듯 싸한 느낌에 휩싸였다.



처음 유정을 만났을 때 그는 F 보육원 출신이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F 보육원은 도림이 회귀하여 아기를 맡긴 그 보육원이었다.


그런데 지금 유정은 Z 보육원이라고 말한다.


뭐가 바뀐 것일까.



<도림> ‘내가 전생으로 돌아가서 바뀐 것이 유정 오빠 인생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건가?’



도림은 혼란스러웠다.


만약 그렇다면 유정은 그녀의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유정> “당연히 아빠는 쪽지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거고.”


<도림> “그 쪽지라는 것 좀 보여 줄 수 있어?”



도림은 떨리는 목소리로 재촉하듯 말했다.



<유정> “얘가 갑자기 왜 이럴까?


20년 가까이 찾아오지 않는 엄마, 기억하고 싶지 않았어.


한때는 엄마가 남겨주신 ‘유품’으로 여기고 몸에 귀하게 간직하려고 했지.


그래서 원장님께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고.


근데 안 주시더라.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는 의식하지 않게 되더라고.


원장님한테 달라고 하면 혹시 보여주실지도 모르지만, 지금 나한테는 없어.”



<도림> “혹시, 어머니 성함이······?”


<유정> “옛날에 얘기해 줬는데 벌써 까먹은 거야?


김윤정. 김윤정이래.


처음엔 급하게 휘갈겨 쓴 쪽지에 ‘윤’의 ‘ㄴ’하고 ‘정’의 ‘ㅈ’하고 붙어서 ‘김유정’인 줄 알았나 봐.


마침 원장님이 ‘동백꽃’을 좋아하셔서, 본 김에 오빠 이름을 ‘김유정’이라고 지은 거래.”



그는 풋 하고 웃었다.



<유정> “엄마랑 이름이 같은 아들이라니.


근데 나중에 자세히 보니 ‘윤’의 ‘ㅠ’랑 ‘ㄴ’하고 연결된 선이 미세하게 꺾여 있더라는 거야.


그나마 다행이지.”



그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도림은 기억하고 있었다.


회귀 전에 유정은 어머니의 이름이 ‘김유정’이라고 말했었다는 것을.



<유정> “덕분에 오빠 이름도 지하철역 이름 됐으니, 좋은 것 아니니?”


<도림> “아빠는 모르고?”



그녀는 다시금 물었다.



그리고 유정은 짧게 고개를 까닥였다.



유정의 생일은 2001년 1월 28일이었다.


그날은 그녀가 윤정으로 살면서 아들을 F 보육원에 맡길 때


쪽지에 적어넣은 아들의 생일과 같았다.



혼란스러웠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혹시라도 눈앞의 유정이 20년 전 그녀가 보육원에 맡긴


그 아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뒷머리를 세게 후려치고 지나갔다.



<도림> ‘정말 말도 안 되는 줄 알지만······.’



‘김윤정’이라는 이름도 일치했다.


결국 F 보육원이 Z 보육원으로 바뀐 이유만 밝혀진다면······.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말도 안 된다며 떨쳐버리려고 해도 그녀는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도림> ‘이렇게 일치하면서도 오빠, ······ 아니 유정이가 그 아기가 아닐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반가웠다.


한편 대견했다.


앞에 선 유정이 그 아기라면, 그 사실(유정이 그 아기라는 것)만 본다면 그러했다.


그러나 그래서는(유정이 그 아기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신도림으로만 산다면 별일이겠으나, 지금은 김윤정의 기억을 오롯이 가지고 왔기 때문에,


두 마음이 뒤섞여 한 사람을 연인으로서도, 그리고 아들로서도 좋아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저주일 뿐이었다.



<도림> ‘이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요.


전생에 다녀오면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을 거라,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런데 다녀오기 전보다 더한 고통을 내게 주시다니······.


아니면 내가 업을 해결 못 한 건가요?


하지만 어차피 당신이 정하신 흐름으로······, 운명은 흘러갈 거 아니었나요?’



도림은 유정, 곧 그녀가 연인으로 생각하고 ‘오빠’라 부르는 그가 그녀의 아들이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비탄에 휘감겼다.






- 2 -




도림은 거울로 보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생겼다.



천반산의 목소리는 그녀가 회귀한 동안 이생의 시간은 정지해 있을 거라고 했었다.


그런데 F 보육원이 하루아침에 Z 보육원으로 바뀌는 것은 마법이었다.


이제 그것은 유정이 그녀의 아들인지 여부에 대해 맞으면 맞다는,


또는 아니면 아니라는 확신에 이르기 위해 확인해야 할 마지막 조각이 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떤 일에 대한 궁금증으로 뇌가 피곤하기는 처음인 것 같았다.


아니, 잃어버린 5년 다음으로 두 번째인 것 같았다.



<도림> “하지만 이건 발품 좀 팔면 알 수 있잖아.


하찮은 건 아니지만 이런 걸로 한 번뿐인 기회를 날려버릴 수는 없지.”



길을 걸으면서도 느끼는 가위눌림은 일종의 ‘신기원’이었지만,


그녀는 일단 뇌가 피곤하여 매 순간순간이 무기력해지는 것은 감수하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 도림은 신발 끈을 질끈 묶었다.


유정 몰래 Z 보육원에 가 볼 생각이었다.


마치 먼 길을 가는 사람의 마음으로 신은 신발이 헐거워지지 않도록 한 것이지만,


유정이 그녀의 아들이 맞다면 아들과 재회하고 그 사실을 알기까지 17년이나 지나온 길이니


‘먼 길’은 먼 길이었다.



물론 겁도 났다.


사실을 확인한 뒤에는 저주로 마음이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다.


이런 걸 꼭 확인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닌 지 오래였다.


한편 유정이 그 아기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지면


괜한 의심, 괜한 노력, 그리고 또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들’ - 생일이나 엄마의 이름 등 – 로 인한


허탈한 마음을 견뎌내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도 있었다.



Z 보육원은 F 보육원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도림>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도림은 그 밤길을 Z 보육원 원장이나 관련된 사람들이 지나다가


때마침 F 보육원 앞길에 이르러 바구니에 담긴 아기를 주워 갔을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상상’은 처음부터 현실성이 없다고 배제해 두고 있었다.


그러니 만약 처음부터 Z 보육원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어서 이런 곳까지 옮겨오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도림> “계세요?”



Z 보육원에 도착한 도림이 사람을 부르자 안에서 웬 노인이 걸어 나왔다.



<보육> “누구세요? 어떻게 오셨습니까?”


<도림> “어떤 사람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보육> “일단 들어오세요.”



노인은 도림을 안으로 들이고 차를 내주었다.



<보육> “아직 학생인 것 같고 어디 사람을 알아보러 다닐 나이 같지는 않은데······.”


<도림> “네. E 고등학교 학생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오빠가 있는데, 여기서 컸다고 해서요.”


<보육> “허, 여학생이 당돌하네. 학생이면 그냥 좋아하면 되는 것이지 벌써부터 호구조사를 하고 다니나.”


<도림> “호구조사가 아니라 꼭 알고 싶은 게 있어서요.”



도림은 선뜻 말을 하지 못하고 같은 말만 반복했다.



<도림> ‘여기서 유정이가 내 아들인지,


내 아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F 보육원에서 옮겨왔는지를 알고 싶다고 말한다면


미친년 치맛바람이 머리로 불었다고 말하겠지.’



<보육> “누구에 대해 알고 싶은 건가?”


<도림> “김유정이라는 학생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보육> “김유정이라. 그런 학생은 여기서 산 적이 없는데?”


<도림> “네? 유정 오빠가 여기서 자랐다고 말했어요.


근데 본인이 그렇게 말하는데도 정작 할아버지는


오빠가 여기서 산 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보육> “혹시 이름을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아니면 그 김유정이라는 학생이 다른 이름을 댔다면 모르지.


같이 와 봐. 그러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도림> “신도림. 신도림이라는 분이 김유정을 찾습니다. 꼭 좀 알려 주세요.”



도림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쪽지에 남긴 말,


“신도림의 이름으로 찾으러 오면 아기의 비밀을 알려 주세요.”라고 적은 그 문구.



노인은 도림을 보고는 눈이 커지고 입은 떡 벌어진 채로 도시(都是) 다물 줄을 몰랐다.


어떻게 보나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그 눈빛에서 도림은 수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절망으로 빠져들어 갔다.



<도림> ‘정말 그런 건가요.


한편 아니길 바랐어요.


거짓말이래두 내 아기가 아니기를 정말 바랐다구요.


근데 그 바람은 한낱 비누 거품이 되고 말 것만 같군요.’



<보육> “학생이 ‘신도림’이란 이름을 어떻게 아나?”



노인은 ‘신도림’이라는 이름을 여태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신도림’이란, 아기를 맡긴 사람이 아니라면,


또는 아기를 맡기도록 시킨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아기의 엄마라고 하기에 도림은 너무 어렸다.


아니, 어려 보였다.


심지어 유정보다 어려 보였다.


설사 한두 살 많다고 해도 쪽지에 ‘비밀이름’으로 적어 두기에는 너무 어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도림역 7번출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0 사진-저희 엄마가 국가사업을 하나 맡았어요... 23.06.18 9 0 12쪽
79 사진-그 이름은 신도림이에요, 그렇죠? 23.06.18 6 0 10쪽
78 사진-그런 아이, 찾으면 금방 나올 것 같은데... 23.06.17 6 0 10쪽
77 사진-내 조카 녀석 이름이 뭡니까? 23.06.17 6 0 10쪽
76 사진-사진에 대한 몇 가지 가정 23.06.16 8 0 10쪽
75 신풍역 1번출구-도대체 신도림은 누구일까요? 23.06.16 10 0 11쪽
74 신풍역 1번출구-그 녀석, 이 땅에서 발 붙이지 못하게 하세요! 23.06.15 8 0 11쪽
73 신풍역 1번출구-정말... 전생에서 오셨습니까? 23.06.15 8 0 10쪽
72 신풍역 1번출구-배후가 누굽니까? 23.06.14 7 0 9쪽
71 신풍역 1번출구-두 번째 기억 소멸 23.06.14 7 0 10쪽
70 신풍역 1번출구-배왕(배달의 王足)에 군침 흘리는 태홍 23.06.13 8 0 10쪽
69 신풍역 1번출구-정인의 태휘 살해 고백 23.06.13 7 0 10쪽
68 신풍역 1번출구-신풍역 가는 길 23.06.12 8 0 9쪽
67 거울-아줌마, 나 도림이예요... 23.06.12 8 0 16쪽
66 거울-정인, 도태휘를 듣다... 23.06.11 8 0 10쪽
65 거울-도림, 정인을 만나다... +3 23.06.11 12 1 10쪽
64 거울-아기를 찾는 비밀 이름 23.06.10 8 0 10쪽
63 거울-그를 해코지하려 했던 사람들 23.06.10 8 0 10쪽
62 거울-두 개의 기사 23.06.09 8 0 10쪽
61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3... 23.06.09 8 0 10쪽
60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2... 23.06.08 8 0 10쪽
59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1... 23.06.08 8 0 10쪽
58 거울-도림 곁에 살아있는 전생의 인연들 2... 23.06.07 7 0 10쪽
57 거울-도림 곁에 살아있는 전생의 인연들 1... 23.06.07 9 0 10쪽
56 거울-절망, 그리고 또 다시 천반산으로... 23.06.06 9 0 10쪽
55 거울-이오카스테의 저주 23.06.06 9 1 10쪽
» 거울-Z 보육원의 그 아기 23.06.05 10 0 10쪽
53 거울-거울로 보고 싶은 세 가지... 23.06.05 9 0 10쪽
52 도림의 바다-아기를 두고 다시 천반산으로... 23.06.04 8 0 10쪽
51 도림의 바다-태휘의 죽음 23.06.04 9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