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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869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6.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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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사진-그 이름은 신도림이에요, 그렇죠?

DUMMY

원장은 그가 젊었을 때 듣고 보았던 간첩조작사건들이 죽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를 잡고 지나간 것은 용렬한 두려움이었다.



<노인> “그러면 그 아기만 말해 주면 되는 거요?”


<지후> “그럼요. 물론입니다.”


<노인> “그 녀석, 벌써 20년이 됐구만.


그때 바구니 안에 강보에 싸인 채로 우리 보육원 앞에 버려진 걸 주워와서 키웠는데,


시간이 이렇게 지났으니 지금은 독립했지.


이제 우리 나이로 21살일 텐데, 어디서 독립해서 잘 살고 있겠지.


어쩌면 가정을 이루었을 수도 있고 군에 가 있을 수도 있고.”



<지후> “그때 그 아기 말이에요. 보육원에서는 언제 나갔습니까?”



지후는 아기의 이름을 알기 위해 이리저리 질문을 했다.


그런데도 원장은 아기의 이름만큼은 말하지 않고 그의 질문 공세를 잘 피해 나갔다.



<노인> “아기 이름을 알고 싶은 모양인데,


아기 엄마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만


아기 비밀을 알려 주라고 신신당부를 했지.


그 이름을 모르시는 걸 보니 아기의 이름에 허락된 사람은 아니로군.”



원장은 지후가 아기 이름에 대한 미련을 버릴 생각이 없어 보이자,


기어이 쪽지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지후> “아 참, 그랬죠. 그 이름을 먼저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지후는 마치 처음부터 그런 쪽지가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말을 했다.



<지후> “아기 엄마 이름은 김윤정이잖아요.”



그는 당연히 엄마 이름일 거라고 생각하고 ‘김윤정’을 말했다.



<노인> “맞아. 김윤정이 엄마 이름이야.


근데 아기에 대해서 알려 드릴 순 없어.


그건 세상이 다 아는 이름이거든.


이만 돌아가.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건 다 알려 줬으니까.”



<지후> “신도림! 그 이름은 신도림이에요. 그렇죠? 맞죠?”



지후는 그 이름이 ‘신도림’일 거라고 찍었다.


현재 그 아기의 엄마 또는 아빠가 환생했다고 주장하는 이의 이름이


‘신도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원장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넋을 놓고 한동안 지후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지후> ‘뭐야, <신도림>이 맞아?


근데 그게 가능해?


아기 이름에 다가갈 수 있는 이름으로 내생의 이름을 적어놓고 갈 수가 있다고?


지금 신도림이가 도태휘가 아니라 김윤정의 환생이라는 거야?


······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환생이라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근데 설사 김윤정이 환생했다고 해도 신도림을 어떻게 알고.


······


정신 차리자.


근데 정말 신기하네. 어떻게 <신도림>을?’



그는 김윤정이 어떻게 ‘신도림’을 적어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도림이 김윤정의 환생이라면 김윤정 사망을 도림이 기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왜 아직 김윤정 사망을 모르는 것처럼 구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였다.



물론 그는 몰랐다.


잠들기 몇 분 전처럼 죽기 직전 얼마간은 기억이 없다는 것을.



<지후> “자, 이제 아기 이름을 알려 주시죠.


언제 와서 언제 나갔는지, 그리고 어디로 나갔는지까지.”



<노인> “그건 알려줄 수 없어.


20년 전에도 그랬지만, 아기를 해코지하려는 것이 분명한 사람한테


아기 이름을 알려줄 순 없지.”



<지후> “20년 전에는 그냥 기자였는데 지금은 Q 신문 편집국장이 됐습니다.


F 보육원 기사로 Q 신문 독자들이 좋아하실 것이 없는지 궁금하군요.


F 보육원은 나랏돈 지원을 많이 받으시죠?


저한테 말이에요, 고성능 먼지떨이가 하나 있는데······.”



이 말을 듣고 원장은 눈빛이 흔들렸다.



<지후> “먼지떨이는 잠겨 있어요.


곧 작동할 것 같지만 아직은 그래요.


그리고 멈춘 걸 작동시키는 열쇠도, 작동한 걸 다시 잠그는 열쇠도 아기 이름이에요.


잘 생각하시죠.”



지후는 원장에게만 들릴만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능청스럽게 웃었다.



<노인> “그럼 아기 이름만 알려 드리면 되는 거요?”


<지후> “물론입니다. 대신 한 번에 바른대로 말씀하셔야 합니다.


만약 없는 이름을 대신다거나 하시면······.”



<노인> “김유정이야. 김유정”


<지후> “허허.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바른대로 말씀하시라니까요.


도태휘의 아들이 어떻게 김 씨가 돼요?”



<노인> “믿거나 말거나 김유정이야. 난 말했으니 약속은 지켜.”



지후는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원하는 조건의


‘김유정’이라는 사람이 있는지 조회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경찰은 그런 사람이 딱 한 사람 있다고 회신해 왔다.



<지후> “원장님, 고맙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지요.”



지후는 전화를 받은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바로 보육원 밖으로 빠져나갔다.


더는 볼 일 없다는 듯이.






한편 유정은 학교를 졸업하고 마땅한 거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었다.



학교를 다닐 때에야 기숙사에 살았다지만,


졸업한 뒤에는 하다못해 고시원조차도 ‘방값’을 내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에 돈을 벌기란 만만치 않았다.


더욱이 입을 옷도 변변찮은 사람에게 알바 자리란,


면접을 통과하기 힘든 만큼 얻기 어려운 자리였다.


그저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TV가 있는 곳이면


도쿄 올림픽을 보며 거기 출전한 선수들에게 감정 이입하며 부러워하는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지금은 여름이라 그나마 버틴다지만,


겨울은 또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한 속도 답답했다.


작년(2020년)도 마찬가지지만,


더욱이 4차례에 걸친 대유행 때문에 사람들이 유독 조심을 해서 힘들었는데,


이번 겨울도 버티기 힘들 거라는 예상은 비껴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불길한 예상은 늘 적중하듯이.






- 4 -




유정은 오랜만에 도림을 만나고 싶어졌다.


그간 사람 만나는 것이 꺼려져서 되도록 혼자 생활하였지만,


아무리 ‘유리걸식’을 하여도 뛰는 심장을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그는 도림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정> “도림아.”


<도림> -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유정> “으응.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어떻게 전화 한번을 안 하니?”



유정은 다소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도림> - 미안해. 바쁜 일들이 많았어.



유정이 마지막으로 전화했던 것은 도림이


배왕 배달부에게 그 험한 꼴을 당하고 병원에 혼수상태로 누워있던 때였다.


그 후 약 4개월여에 바쁠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그는 생각했다.



한편 도림은 그 기억이 없으므로 유정에게 엄마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알 수 없었다.


혹시라도 아니라면 좋겠지만, 자신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은 부디 몰랐으면 했다.


그것은 여자친구의 입장이 아닌 엄마의 입장으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유정> “다쳤다더니 몸은 어때? 난 너 신문 난 거 보고 정말 놀랐어.”


<도림> -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럭저럭 괜찮아.



도림은 ‘잃어버린 30일’이 괜히 억울했다.


하물며 신문에 그녀가 어떻게 났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유정> “퇴원은 했니? 퇴원했으면 한번 만날까?”


<도림> - 그 전에 뭐 하나만 물어볼게. 혹시 주위에 허지후라는 사람 만난 적 있어?


<유정> “그게 누군데?”


<도림> - 아직 안 만났구나? 다행이다.


혹시라도 그 사람 만나면 나한테 바로 전화해. 꼭.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다 기억해 두고.



<유정> “왜 그러는데?”


<도림> - 그냥 그렇게 해. 설명하기 힘들어.


그리고 도태홍 회장 알지?


그 사람하고 엮일만한 일이 있으면 그것도 나한테 말해.



<유정> “너 아직도 엄마 놀이 하는 거니?


너 말하는 게 너무 이상해.


그리고 그런 거 아니라도 그냥 만나서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 거잖아.


말하는 걸 들어보니 내용은 안 가볍지만,


꼭 전화로 그래야 되겠어?”



<도림> - 그럼 만나자. 우리 자주 만나던 장소 알지? 사흘 뒤 5시에 거기서 만나.


<유정> “알았어. 그때 만나. 기다릴게.”


<도림> - 나랑 만나는 거 절대로 아무한테도 발설하면 안 돼.


이건 특별히 부탁하는 거니까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엄마 놀이 같은 거 절대 아니야.



도림은 신신당부를 하고 끊었다.


아무래도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러 가능성에 대비를 해야 했다.


그러자니 자연 유정과 만나는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고


장소 또한 노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한편 사흘 뒤 두 사람은 보라매공원 연못(註1)에서 만났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아서 부담이 될 법도 하겠지만,


도림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지후와 같은 ‘불순한’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지켜 줄 거라 믿었다.



<유정> “도림이 너, 머리를 크게 다쳤던 모양이구나?”



유정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대신 아파 줄 수 없는 것이 오히려 미안하다는 말투였다.



<도림> “지금은 다 나았어. 걱정하지 마.”



도림도 유정이 괜히 걱정하는 것이 싫었다.



<도림> “아유, 이거 봐. 까마귀가 형님 하자고 덤비겠네.”



도림은 한국의 어머니들이 어린 아들에게 했던 말,


“까마귀가 형님, 형님 하겠다”는 말을 유정에게 꼭 한번은 해보고 싶었다.



<유정> “차라리 까마귀 동생이라도 있어 봤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요즘은 때가 때인지라 사람도 쉽게 만날 수가 없어.”



그는 새카만 마스크를 벗어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유정> “여기 냄새가 얼마나 향기로운지 알아? 한번 맡아볼래?”



그리고 마스크를 도림의 코 가까이로 가져가는 시늉을 하다가


도림이 질색을 하자 그만두었다.





=== 주석


註1. 이번 답사 때에는 신림선 공사 가림막 때문에 연못은 확인하지 못하였다. 공원의 지난 사진들을 확인하다 보니 연못이 있어서 이 장소를 선택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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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신풍역 1번출구-배후가 누굽니까? 23.06.14 7 0 9쪽
71 신풍역 1번출구-두 번째 기억 소멸 23.06.14 9 0 10쪽
70 신풍역 1번출구-배왕(배달의 王足)에 군침 흘리는 태홍 23.06.13 9 0 10쪽
69 신풍역 1번출구-정인의 태휘 살해 고백 23.06.13 7 0 10쪽
68 신풍역 1번출구-신풍역 가는 길 23.06.12 8 0 9쪽
67 거울-아줌마, 나 도림이예요... 23.06.12 10 0 16쪽
66 거울-정인, 도태휘를 듣다... 23.06.11 10 0 10쪽
65 거울-도림, 정인을 만나다... +3 23.06.11 14 1 10쪽
64 거울-아기를 찾는 비밀 이름 23.06.10 8 0 10쪽
63 거울-그를 해코지하려 했던 사람들 23.06.10 10 0 10쪽
62 거울-두 개의 기사 23.06.09 8 0 10쪽
61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3... 23.06.09 9 0 10쪽
60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2... 23.06.08 8 0 10쪽
59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1... 23.06.08 8 0 10쪽
58 거울-도림 곁에 살아있는 전생의 인연들 2... 23.06.07 7 0 10쪽
57 거울-도림 곁에 살아있는 전생의 인연들 1... 23.06.07 9 0 10쪽
56 거울-절망, 그리고 또 다시 천반산으로... 23.06.06 9 0 10쪽
55 거울-이오카스테의 저주 23.06.06 10 1 10쪽
54 거울-Z 보육원의 그 아기 23.06.05 11 0 10쪽
53 거울-거울로 보고 싶은 세 가지... 23.06.05 9 0 10쪽
52 도림의 바다-아기를 두고 다시 천반산으로... 23.06.04 10 0 10쪽
51 도림의 바다-태휘의 죽음 23.06.04 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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