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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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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6.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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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도림의 바다-아기를 두고 다시 천반산으로...

DUMMY

<정인>- 죽지 마세요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길 빕니다.


부군께서 불의의 사고로 그렇게 되시고 슬픔에 잠겨 계실 줄로 압니다.

그런데 시부모님께서 위로는 못 해주실 망정 별 이유도 없이 얼굴을 싹 바꾸셨지요.

그분들이 지금 사모님께서 느끼시는 인생의 온도만큼 차갑고 냉담해지신 이유가 궁금하실 겁니다.

궁금하시기보단 어이없으실지도 모르겠네요.


아들이 죽어서?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따지고 보면 도태휘 사장님은 아동 성매매 업소에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짓을 하다가 돌아가신 건데,

그 책임이 김윤정 사모님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분들이 없애려는 것은 뱃속의 아기, 그 아기입니다.


부디 처신, 잘 하시기 바랍니다. 꼭 살아남으세요.




- 2000년 8월. 아직 상복을 벗지 않은 채정인 드림.










도림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접어 봉투 안에 집어넣었다.



<도림> ‘괜찮아, 괜찮아. 이런 편지가 올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잖아.’



하지만 알고 있었어도 적응은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정인이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 꼭 살아남아. 넌 내 손에 죽어야 해.






- 2001년 1월(회귀한 신도림의 생)




1월 말 도림은 출산을 했다.


그녀는 생전 처음 해 보는 출산에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경험을 하고는 죽다 살아났다.


차라리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겠지 싶었다.



<도림> “아직······ 살아 있네.


신곡에 지옥의 제10원(註1)이 있다면, 그리고 거기서 벌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하루를 빼지 않고 아이를 낳는, 그리고 영원히 아이를 낳아야 하는 사람들일 거야.”



아기는 예쁜 남자 아기였다.


하지만 퇴원을 하고 친구 집에 돌아왔을 때도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진정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기 할아버지와 할머니, 즉 병록과 해월을 피해 다녀야 했다.


그리고 아기를 보호해야 했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기는 너무 부담이 됐다.



게다가 그 사흘 뒤 그녀는 친구를 통해 또 편지를 받았다.










- 축하합니다


득남을 축하드립니다.


지금까지 잘 버텨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시부모님께서 윤정 씨가 계신 곳을 아셨고, 이제 곧 들이닥치실 것입니다.

대책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다시금 당부드립니다.


아기와 함께 꼭 살아남으세요.




- 2001년 2월. 아직 상복을 입고 있는 채정인 드림.










도림은 어느 밤에 바구니에 아기를 폭 싸 안고 집을 나왔다.


전년도(2000년) 여름엔 이때쯤 해서 정인 등을 ‘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휘가 또다시 ‘정인의 손’으로 보이는 알 수 없는 손길에 사망하는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아서 실패했다.


물론 그(태휘)가 2000년 7월 죽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번엔 그(태휘)가 ‘당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그것도 비단 정인만 아니라 어떤 ‘세력’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차마 예정했던 것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윤정의 때와 마찬가지로 아기를 안고 조용히 도망칠 수밖에,


그녀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도림은 택시를 타고 F 보육원에 이르러 그 앞에 바구니를 놓고


새어 나오는 보육원 불빛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도림> “저 안은 훈훈하겠지? 아가, 엄마가 금방 올게. 조금만 기다려 줘.”



그녀는 바구니를 열고 아기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도림> ‘이제 다시는 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오는구나. 엄마는 엄만가보다.’



그러는 사이 아기의 이마에 눈물 한 방울 뚝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 길로 돌아서서 어느 밤거리를 걸었다.



바구니에 넣어 둔 쪽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 2001년 1월 28일 출생. 엄마 이름: 김윤정.

신도림의 이름으로 찾으러 오면 아기의 비밀을 알려 주세요.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처음에 그녀는 ‘신도림이 찾아오면 아기를 내어주세요’라고 쓰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내생으로 가야 했다.


그래서 ‘신도림의 이름으로 찾아오면 아기의 비밀을 알려 주세요’라고 썼다.



워낙에 급히 휘갈겨 쓴 글씨라, ‘김윤정’의 ‘윤’은


‘ㅠ’의 ‘재출점’(註2)과 받침 ‘ㄴ’이 붙어 있었고, ‘ㄴ’은 ‘정’의 ‘ㅈ’과 붙어 있었다.






도림은 궁금해졌다.



그녀의 생일이 2002년 6월이므로 오래지 않아 분명코 죽을 것이다.


그러나 전생에서, 아기를 보육원에 맡겨놓은 뒤 근처 길을 걷는 이 순간 이후가 기억에 없었다.



지금 그녀는 천반산으로 가야 했다.


그래야 신도림의 생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건너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구천을 떠돌게 될지 아니면 신도림 아닌 전혀 알 수 없는 다른 사람이 될지,


또는 어디 개나 고양이, 지렁이나 구더기 같은 다른 생물이 될지.


그런데도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도림> ‘여기 이대로 남아 있으면 어떻게 죽는지 알 수 있을까?’



그녀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도림> ‘그이(천반산 목소리)가 그래 줄 리가 없지.


샤토 피작을 마시고 취했을 때조차 그 짧은 순간 기억을 되살려 주지 않았는데,


하물며 죽어서 기억이 소멸하는 상황에서


그 전 순간을 기억하게 해 줄 리가 없지. 행여나.’






그녀는 체념하고 천반산으로 길을 잡았다.


누군가에게 잡히기 전에 빨리 가야 했다.


혹시 누군가에게 잡힌다면 강제로 구천을 떠도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도림> ‘따라오는 사람 없겠지?’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 *


산에 도착하니, 죽도관문에는 전생으로 회귀하기 전 그 홀로그램 벽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벽 안으로 들어가 가쁜 숨을 내쉬며 안도하고 있을 때 드디어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한편으로는 안심도 되고 반갑기도 했다.






<소리> “도림아, 수고했다.”


<도림> “정말 힘들었어요. 이제 내생으로 가는 건가요?”


<소리> “그렇다.”


<도림> “이리로 오기 전에 말씀하셨던 ‘업’은 해결했나요? 이젠 학폭에 시달리지 않고 제 인생을 살 수 있는 건가요?”


<소리> “글쎄다.”


<도림> “당신 말 듣고 제 인생을 찾기 위해 이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약속과 다르잖아요?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여고생이 임신도 해 봤고 출산도 해 봤어요.


뼈가 으스러지는 줄 알았다구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그것 뿐이면 말도 안 하죠. 사람 죽는 것도 봤어요.


그 무시무시한 꼴을 당하게 했으면 편하게는 아니어도 최소한 약속은 지키셔야죠!”



<소리>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너 하기 나름이다.”


<도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소리> “너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도림> “뭔가요?”


<소리> “어차피 너는 내생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이생에서의 기억을 가지고 갈 것이냐, 아니면 지우고 갈 것이냐. 너의 선택에 달려있다.”


<도림> “장난하세요? 지금 기억이 이렇게 또렷한데 당연히 기억을 가지고 갔겠죠. 그럼 또 시험을 해 볼까요? 기억을 지우고 가고 싶습니다. 지워 주세요.”


<소리> “알겠다. 자, 문을 열고 가거라.”



하지만 도림은 순간 겁이 났다.



이생에서의 기억을 지우고 간다면 전생으로 회귀한 이유는 둘째치고 전생으로 왔었다는 사실,


회귀한 전생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조차도 모를 것이므로


분명코 또다시 윤정의 생으로 돌아올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회귀한 도림이 ‘가공한’ 윤정의 생으로.



<도림> ‘그렇게 되면 내생으로 건너가더라도 나는 여전히 학교폭력에 시달릴 거고,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회귀했던 기억은 없을 테니 여전히 원인을 알고 싶어 하겠지.


그래서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면 기어이 또다시 회귀를 선택할 거야.


굳이 학교폭력이 아니라도 원인을 알고 싶을 만큼 괴로운 일들은 많을 테니까.


그러면 윤정이로 겪었던 고통과 내가 회귀해서 겪었던 고통까지 떠안고


나는 끝도 없이 절망하겠지?’



도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안돼!” 하고 소리 질렀다.



<도림> “자, 잠깐만요. 기억을 가지고 갈게요.”


<소리> “잘 생각했다. 여기 너에게 줄 선물이 있다. 가지고 가거라.”



도림은 목소리가 주는 물건들을 받아 챙겼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서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한 발짝 발을 내딛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도림은 어느 구석진 방 어두운 곳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 주석


註1. 신곡에 나오는 지옥은 지표의 제1원부터 제9원까지 역원뿔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제1원에서 제9원으로 갈수록 고통의 크기는 커진다. 제10원이란 제9원보다 더 깊은 곳으로 도림이 임의로 상정한 것이다.


註2. 훈민정음에서 사람(ㅣ)과 땅(ㅡ)으로 사각의 우주를 그렸을 때 하늘(ㆍ)이 하나인 것을 초출자라 하고 둘인 것을 재출자라 한다. 그러므로 ‘ㅜ’는 초출자이고 ‘ㅠ’는 재출자이다. ‘재출점’이라는 말이 있는 것은 아니고 재출자인 ‘ㅠ’의 오른쪽 점을 지칭하기 위해 작가가 임의로 만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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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1... 23.06.08 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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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거울-Z 보육원의 그 아기 23.06.05 10 0 10쪽
53 거울-거울로 보고 싶은 세 가지... 23.06.05 9 0 10쪽
» 도림의 바다-아기를 두고 다시 천반산으로... 23.06.04 9 0 10쪽
51 도림의 바다-태휘의 죽음 23.06.04 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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