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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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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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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진에 대한 몇 가지 가정

DUMMY

7. 사진





- 1 -




한때는, 그렇게 만나고 싶어 노심초사했던 어린 시절의 단편을 담은 사진이


그저 ‘비누곽’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했던 적이 있었다.


가령 입학식 사진이나 소풍 가서 찍은 사진 등은


‘내가 아닌 인격’이 살아낸 어린 시절의 파편일 뿐이라고 치부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도림은 그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아무리 많아도 비누 없는 비누곽은 의미 없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도림은 거울이 들려준 이야기들을 듣고 그런 생각을 했다.



과거의 도림은 현재의 도림과 다른 사람인가.


또 기억을 공유하지 않는 미래의 도림은 현재의 도림과 다른 사람인가.


이것은 비단 도림의 어린 시절과 도림의 지금,


그리고 도림의 장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도림의 전생, 도림의 현생, 그리고 도림의 내생에도 관철되는,


원칙이라면 원칙일 수도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이야 전생의 기억이 회복되어 윤정과 도림은 같은 사람,


즉 같은 ‘나’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윤정의 기억이 없을 때에는 아무리 윤정이 남긴 ‘비누곽’을 들여다본다고 해도


그녀는 윤정이 자신과, 같은 사람(동일인)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설사 신풍역 1번 출구 사진을 아무리 들여다본다고 해도,


별 의미 없는 사진으로 치부하고 던져버렸을 게 뻔했다.


사진에 찍힌 사람들은 ‘나’와는 무관한 사람들일 테니까.



어색했다.



<도림> “분명히 전생에서는 내가 김윤정으로서 지각하고


김윤정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그 모든 것을 기억하는 김윤정의 생을 살았을 텐데.


기억이 단절된다고 나와 다른, 나와 전혀 무관한 인격이 되어 버린다?”



어린 시절 잃어버린 5년의 기억이 있어서 망정이지,


그것마저 없었다면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대단히 어려운 사건이 될 뻔 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그녀가 보는 사진은 특별한 사진이었다.


기억에는 있으니 평소 생각하던 ‘비누곽’과는 다른 사진이지만,


무슨 의미인지를 전혀 알 수 없으니 ‘비누곽’과 특별히 다를 것도 없는 그런 사진이었다.


말하자면 잃어버린 5년의 뒷다리를 열심히 긁어대지만,


시원한 느낌은 조금도 없는 그런 사진.(註1)



즉 X 매트 공장에 걸렸다는 플래카드 사진과


지후가 주었다는 신풍역 1번 출구를 빠져나가는 태휘와 정인의 사진,


또 태휘의 시신 사진이었다.


그리고 윤정의 기억이 회복되었어도 여전히 기억에 없는 윤정의 시신 사진이 그랬다.



<도림> “아, 머리 아프다. 내가 아닌 사람이 찍었던(註2) 사진을 보고


그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사진을 찍었는지를 맞히는 것만큼 높은 난이도(註3)야.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를 이어주는 실 노릇을 해주어야 할 사진이,


도리어 나를 혼란 속으로 밀어 넣고 있어.”



그러다 그녀는 뭔가를 깨달은 듯 무릎을 탁 쳤다.



지금까지는 사진의 텍스트를 봐 왔지만,


굳이 사진의 텍스트만 ‘실’이나 ‘열쇠고리’ 노릇을 하란 법은 없었다.



<도림> ‘그렇지. 사진 컨텍스트(Context)도 얼마든지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도림은 지후의 첫 번째 특종부터 풀어나가기로 했다.



지금은 어디에서 뭘 하는지도 모르는 당시 공장장. 이름도 모르는 사람.



궁금했다.



정말 그 사람은 당시 문제가 됐던 플래카드를 공장에 걸었을지.


걸었다면 왜 걸었는지.


태휘에게는 한사코 부인했다 하니, 또 그 사진을 찍었다는 자가 허지후라 하니


괜히 의심스럽기만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먹기까지였다.


이내 도림은 막막함에 휩싸였다.



전생에서야 정인을 알아보기 위해 심부름센터를 ‘애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무엇보다 그녀가 외관상 ‘젊은 여자’라는 것이 두려움이었고


또 지금 벌이가 없는 상태에서 심부름센터는


‘애용’하기에 너무 비싸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또 그녀를 주시하고 있을 지후의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간다면,


이전 배왕 배달부 사건처럼 그녀 자신이나 당시 공장장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는 것 역시 위험요인이었다.



그러다 그녀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설사 1997년의 그를 만난다고 해도 그에게 얻을 대답은


플래카드를 붙였다거나 붙이지 않았다는 것,


그 외에 붙였다면 왜 붙였는지와,


붙이지 않았다면 왜 그런 기사가 나가게 됐는지에 대한 추측


정도를 들을 수 있었던 반면에,


그녀가 그를 찾은 이유를 설명하는데 애를 먹을 것이 확연했다.


전생에서 왔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 뻔했고,


생판 처음 보는 여자에게 그런 것을 대답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의 지금 입장에 따라 원래의 사실이 가공될 것인데,


그의 대답에서 ‘가공되지 않은 사실’만을 추려내기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더욱이나 ‘그들’의 손길이 당시 공장장에게만 미치지 않았으리라는 가정은


너무 순진한 것이었다.



그러자니 얻는 것에 비해 들이는 노력이 너무나 크다는 계산이었다.



하여 그녀는 그냥 가정하기로 했다.






우선 그가 해당 플래카드를 걸었다면


왜 2년이나 지난 1999년에 논란거리가 되었는지가 문제였다.


2년 동안은 어디에 넣어두었다가 1999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갑자기 꺼내 들었는지.


또 그가 플래카드를 걸지 않았다면


그와 같이 정교한 사진을 지후는 어디서 어떻게 입수했을지.



그 사진으로 태휘는 경영권을 내놓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물론 그것이 진심인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일보 후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결국 그 일로 목숨까지 잃고 말았다.



도림은 짚이는 바가 있었다.


최근 태홍이 배왕을 인수할 적에, 배왕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었다.


시총은 바닥을 쳤고 X 그룹은, 아니 도태홍은 그것을 헐값에 인수했다.



혹시 도태홍이 그 사진의 배후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도림> “도태홍이 X 매트를 장악하고, 사실상 ‘상속’한 것이 2002년이니까,


······


따지고 보면 1999년부터 사전 정지작업을 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거야.


그리고 상속의 방점은 소유자와 진정한 상속자를 죽이는 거였겠지.


그런 마당에 진정한 상속자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도태홍뿐 아니라 누구나 발악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허지후도 내 아들 기사를 낼 수 없었던 거 아닐까?”



만약 그녀의 추리가 맞다면 태홍은 용케도 형의 재산을 ‘상속’해 갔겠지만,


문제는 태홍에게는 ‘상속권’이 없다는 것이었다.(註4)


다만 그녀가 상속의 무효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난점이었고,


그나마 법적으로 상속회복청구의 소밖에 허용되지 않는다면(註5)


기간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다.





=== 주석


註1.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도림은 윤정의 기억이 회복되어서 두 인격체(윤정, 도림)가 동일인이라는 것을 자각하기 때문에 윤정이 남긴 ‘사진’(A)도 윤정이 전생의 그녀인 것을 몰랐을 때 바라보았을 사진(B)과 조금은 다르겠지만, 그렇다고 그 사진의 의미를 도무지 알지를 못하니 사진 B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도림은 A는 비누가 들어있는(되살아난) 비누곽, B는 비누가 없는 비누곽이라고 생각한다.


註2. 문법적으로는 누군가 찍어주는 사진에 찍히는 것이니 피동사를 써야 맞지만, 일상적으로 사진 찍는다고 말할 때 피동사를 쓰지 않으므로 이렇게 썼다. 문법적 엄밀성을 추구하시는 분들은 ‘찍혔던’으로 이해하시면 된다.


註3. 어려운 정도를 나타내는 ‘난도’(難度)가 맞는 말이지만, 구어에서는 무의식중에 ‘어려움과 쉬움의 정도’를 나타내는 ‘난이도’(難易度)를 더 많이 쓰므로 ‘난이도’라는 단어를 썼다.


註4. 민법 제1004조[상속인의 결격사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한 자는 상속인이 되지 못한다.

제1호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한 자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생각을 해 본다.

1. 유정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사산한 경우.

이 경우는 태휘의 직계존속인 병록과 해월이 모든 것을 상속한다.

2. 유정이 정상적으로 태어난 경우.

태휘가 사망함으로써 태아였던 유정이 모든 것을 상속하고, 실제로 태어나 생존했으므로 그 상속은 확정된다. 후에 유정이 사망하더라도 그 재산은 어머니인 윤정이 모두 상속받게 되고, 혹시라도 윤정 사망 후에 유정이 사망한다면 직계존속인 병록과 해월이 유정의 재산을 상속받겠지만, 이 경우에 병록과 해월은 유정을 살해하려 했으므로 상속자격이 박탈되고, 이 사실을 알고서, 또는 이에 가담하고서 상속재산을 인수한 태홍은 재산을 취득할 수 없다. 더욱이 유정은 현재 생존해 있으므로 병록과 해월의 유정으로부터의 상속은 개시되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이렇게 구성된다. 실제는 위 2처럼 사건이 진행됐지만 법적으로는 위 1처럼 의제돼 있다. 그러므로 도림은 위 2처럼 진행돼 왔음을 주장하고 증명하여 상속을 회복해야 하고, 태홍은 이를 막아야 한다.

태홍에게는 어느 경우든 상속권은 없다. 순위가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병록과 해월의 ‘상속’과 그 ‘상속재산의 인수’를 거의 모든 생각이 온통 ‘상속’에만 매몰돼 있는 도림의 입장에서 ‘사실상의 상속’이라 표현한 것이고, 이를 ‘상속권’이라고 말한 것이다.


註5. 특별법, 일반법의 법리에 따라 상속에 관한 법은 특별법이 되고 부당이득에 관한 법은 일반법이어서 상속에 관한 법에 의한 청구가 막힌다고 부당이득에 관한 법에 의한 청구까지 막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허용되는지는 별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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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1... 23.06.08 8 0 10쪽
58 거울-도림 곁에 살아있는 전생의 인연들 2... 23.06.07 7 0 10쪽
57 거울-도림 곁에 살아있는 전생의 인연들 1... 23.06.07 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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