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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794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6.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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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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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신풍역 1번출구-그 녀석, 이 땅에서 발 붙이지 못하게 하세요!

DUMMY

지후는 손을 내저었다.



<도림> “가령 말이에요, 먼저 유전자검사를 하자고 하면,


내 아들 머리카락하고 국장님 머리카락을 도태홍의 머리카락인 것처럼 속여서


검사를 진행할 거란 말입니다.


그런 다음에 봐라, 도태홍과 전혀 무관한 사람이 아니냐 그러실 테죠.


그러니 그렇게는 안 돼요.


먼저 기사를 내세요.


연후에 공개된 자리에서 도태홍의 머리카락과


내 아들의 머리카락을 비교해야 맞는 겁니다.”



<지후> “그건 불가합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세요.


어느 날 갑자기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내가 당신 조카일지도 모르니


유전자검사 해서 조카면 당신 재산 좀 나눠 가집시다 하면,


신도림 씨는, 아니 도태휘 사장님은 그렇게 하시겠어요?”



<도림> “하기 싫다는 말을 하는 방법도 가지가지군요.


그럼 이번 강간살인교사(2021년 신도림 건)에 대해 책임을 지세요.


그리고 살인미수와 살인교사(2018년 신도림 건)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시고,


도병록 씨 살인교사, 방조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시죠.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집니다.”



<지후> “자, 잠깐만요. 누가 하기 싫다 했습니까.


일단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죠.


그 정도까진 바라도 되지 않겠어요?”



<도림> “좋습니다. 그 정도는 뭐.


하지만 실망시키지 마세요.


그리고 날 해하려는 생각도 하지 마시고.


전생에서 다 보고 왔는데, 난 국장님이나 변호사님 따위한테 죽지 않아요.”



도림은 짐짓 강한 척을 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했어도 실제 이생에서 장차 벌어질 일들에 대해 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림은 나가면서 정인에게 한 마디 덧붙였다.



<도림> “변호사님이시니까 아시겠지만, 나에 대한 살인죄의 방조범(註1)은 해줍니다.


변호사님 따님 박해주.


편지, 기억하시죠? 날 자살로 몰려고 했던 해주의 편지.


비록 미수에 그쳤더라도 무죄로 ‘방생’되지는 않을 거예요.


염두에 두세요.”



도림은 ‘방면’이란 말 대신 짐승에게나 쓰는 ‘방생’이란 말을 씀으로써


해주에게 극한의 모욕을 안겼다.


그녀가 모멸스러웠던 만큼의 감정을 담아.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정인은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 5 -




그 일이 있은 뒤로 지후는 어떻게든 도림이 말한 책임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


정확히는 도림이 말을 할 수 없을 때까지 미뤄두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러나 획기적인 방도는 나오지 않았고, 나날이 머리만 빠져갔다.



그는 일단 태홍을 만나 보기로 작정했다.


혼자 머리를 싸매고 고심만 거듭하기보다는


부딪치더라도 대화가 오가면 뭔가 타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태홍이 부르지 않았는데도 지후가 먼저 그의 회장실로 찾아가기는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이날 역시 그 ‘흔치 않은 날들’ 중의 하나로,


지후가 먼저 태홍을 찾아가 X 그룹 회장실에서 그와 면담을 하고 있었다.



<태홍> “요즘은 Q 신문 편집국장실보다는 여기가 국장님 집무실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태홍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어 두 사람이 만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는 것은


두 사람 모두 느끼던 터였다.



<지후> “자주 뵈면 좋죠 뭐.”



지후가 대답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인지하는 바와 같이,


두 사람은 자주 만나서 좋을 사이가 결코 아니었다.


언론의 재계 비판 기능 약화와 같은 ‘고상한’ 이유가 아니라도,


말하자면 두 사람은 온갖 범죄와 비리를 ‘공유’하는 ‘범죄, 비리공동체’였기 때문에,


타이타닉 침몰하듯 작은 틈새로 둘 다 침몰할 수도 있음을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잦은 만남이 작은 틈새를


크게 키우는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드러내놓고 말만 하지 않을 뿐이었다.



<태홍> “그렇죠. 근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지후> “혹시 20년 전 일 기억하시나요?”


<태홍>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20년 전 일이 한두 가지도 아니고.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지후> “2001년 2월쯤 됐을 겁니다. 그때 도태휘 사장님 사모님께서 돌아가셨잖아요.”


<태홍> “그랬죠. 안타까운 일이었어요. 근데 그 불행했던 얘기를 꺼내시는 이유가······?”


<지후> “그때 도태휘 사장님 사모님께서 아들을 낳고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돌았었잖아요?”


<태홍> “기억해요. 하지만 결국엔 뜬소문으로 끝났었죠.”


<지후> “근데 그게 뜬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요즘······.”


<태홍> “아니, 뭐예요? 허 국장, 지금 뭐라고 했어요? 그래, 내 조카가 지금 살아 있다는 말인가요?”


<지후> “네. 그럴지도 모른다는······.”


<태홍> “그때 나한테 뭐라고 했어요?


내 조카는 없거나 아니면 있더라도 죽었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요?


내, 그 문제를 깔끔히 해결해 달라고 허 국장한테도,


그리고 그 누구야, 그래 채변한테도 신신당부를 하지 않았나요?


채변 그때 사시 공부한다고 해서 돈도 대 주고?


근데 이제 와서 조카가 살아 있다?


그래, 원하는 게 뭡니까?”



<지후> “그걸 제가 어떻게······.”



지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태홍> “아니, 허 국장하고 채변이 내게 원하는 게 뭐냐는 거예요.


원하는 게 있으니 지금 내게 애교를 부리는 거 아니냐구요?”



<지후> “그런 거 없습니다. 어차피 20년 전 얘기일 뿐이에요.”


<태홍> “그러면 그냥 묻어두면 끝인 얘기인데,


내게 굳이 또 꺼낸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괜찮아요. 말해 봐요.


아니, 그건 그렇고 허 국장은 내 조카가 살아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또 무슨 근거로 그렇게 단정하는 거예요?”



지후는 까마귀 고기를 꿀에 재 먹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못했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하겠지만.


도림의 얘기를 하자면 분명코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것이 뻔했고,


그렇다고 그 살아 있다는 조카가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니라


X 매트의 정당한 상속자라는 점에서 그냥 얼버무리자니


태홍에게 대차게 깨질 게 뻔했다.


그렇다고 두리뭉실하지 않은 명쾌한 대답이 금세 생각나는 것도 아니었다.



<태홍> “다시 한번 기회를 드리지요. 없애세요.”


<지후> “네?”



지후는 흠칫 놀라 태홍을 쳐다봤다.


지후 자신도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를 태홍은


사실일 가능성이 있는 얘기로 받아들이고 ‘대책’을 내놓는 데에


거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기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그 피보다 진한 것이 권력이요 돈이란 것을


새삼 확인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태홍> “말귀 못 알아들으세요?


처음부터 없었던 녀석이면 그렇다고 이실직고하시고,


어디 숨었다가 지금 나타났으면 이 땅에는 발붙이지 못하게 하시란 말입니다.


다시는.”



결국 지후는 신문에 기사를 내면 어떻겠느냐는 얘기는 한 자도 꺼내놓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회장실을 빠져나왔다.


속으로야 개자식, 말자식 욕은 해도


사실 태홍의 말이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 사태가 없도록 해 달라고 20년 전에 태홍에게 부탁을 받았고


그 대가로 정인은 사법시험 준비 자금까지 받아 썼었다.



말하자면 청부살인인 셈이었다.



그러고 보면 청부살인을 지시해놓고 이제 와서 뭐가 그리도 떳떳한지


지후는 한편 괘씸하기까지 했다.



<지후> “역시 돈이란.


도태홍 같은 놈도 목에 핏대 올릴 수 있는 힘을 주는구나.


젠장. 20년 전엔 좆도 아니었던 새끼가.”



1997년 IMF 시절 당시 태휘는 다 쓰러져가는 전기장판 기업의 사장이었고,


태휘의 부모는 그저 그런 평범한 노인들이었다.


그리고 태홍은 직장 다니다가 IMF 맞아 명예퇴직하고


백수건달로 세월을 낭비하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것이 태휘가 죽던 2000년이나 윤정이 죽던 2001년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태휘의 가족들이 좀 더 본격적으로 태휘의 재산을 빼앗으려 들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변화라면 변화였다.


굳이 꼽자면.






지후는 홧김에 서방질할까도 생각했다.


즉 홧김에 기사를 확 내버릴까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뒷감당이 잘 될 것 같지 않았다.


신문사에서도 난리가 날 것이고,


태홍에게도 뭔가 큰 보복을 당할 것만 같았다.



<지후>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자니 그것도 영 밑지는 장사야.


신도림 그년 때문에.


말로는 무슨 고소 나부랭이를 할 것처럼 하지만,


꼭 전생에서 온 귀신처럼 나한테 들러붙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만 같단 말이야.


날 해코지하는 일이라면 신통술을 부려서라도 못 할 것이 없을 것 같이.”



그는 어쩔 수 없이 약속한 기사를 써 내려갔다.










[단독] 충격, X 그룹 도태홍 회장에게 숨겨진 조카가

이 조카는 X 매트의 상속자로 밝혀져


최근 X 그룹 도태홍 회장의 형이었던 X 매트(X그룹의 전신) 도태휘 사장의 아들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

전문가에 따르면 X 매트의 정당한 상속자는 도태홍 회장의 조카이므로,

도 회장이 이를 알고도 X 매트를 편취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대내외적으로 큰 파장이 예상된다.

······










지후는 이 기사를 인터넷에 올렸다가 3분 만에 내렸다.



<지후> “어쨌든 신도림, 네가 해 달라는 대로 나는 했어.”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디 태홍이 이 기사를 못 보았기를 바랐다.





=== 주석


註1. 범행을 도와준 사람이다. 가령 사람을 살해하려는데 용기가 없어 머뭇거리는 사람에게 살해의 용기를 북돋워 주며 살해 도구도 제공해 주는 등의 일을 한 사람은 살인죄의 방조죄로 처벌된다. 소설의 경우 정인의 도림 살해에 해주가 가짜 편지를 써 줌으로 말미암아 자살로 위장하는 데 도움을 줬으므로 살인죄의 방조죄가 성립한다. 도림이 옥상에서 떨어진 행위가 자살 기도가 되면 정인은 살인죄로 소추될 염려에서 해방되므로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범행을 자행할 수 있다. 그리고 방조가 되느냐 아니냐는 살인죄가 미수에 그쳤느냐의 여부와 상관이 없다. 한편 같은 행위라도 평가하기에 따라서는 방조범이 아니라 공동정범으로 처벌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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