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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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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6.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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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도림, 정인을 만나다...

DUMMY

도림은 이를 밥 먹듯이 살인을 저지르는 정인이


유정마저 없애려 든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태휘 사망 후로 그의 재산과 관련해서는 병록, 해월과 정인은 이해를 같이하였으나,


따지고 보면 정인이 처음부터 태휘의 재산에 관심을 두는 눈치는


전생에서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결국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이해가 일치하였으니,


도림은 정인이 중간에 병록, 해월로부터 사주를 받았거나 아니면


어떤 대가를 받고 포섭을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결국 병록 살해에 주목해 보면 중간에 둘 사이가 틀어졌다고 볼 수 있고,


거울의 얘기를 듣는다면 정인이 병록을 살해한 명분은


아들(태휘) 목숨값을 과하게 요구해서라지만, 결국 정인이 병록을 살해한 것은


그 사주의 대가, 또는 포섭의 대가를 받은 뒤에 그 사주받은 일,


또는 해주기로 약속한 일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그녀는 추정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해(利害)를 같이하는(도태휘 살해사건에서) 사람끼리


서로 악귀처럼 물고 뜯고 죽일 만큼 틀어진다는 것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도림> ‘그것이 유정을 없애는 일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F 보육원에 찾아와서는 유정이 없다는 노인의 대답을 들은 뒤에 정인은


유정이 죽었거나 어디 외국 -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보내졌을 거라고,


병록과 해월이 쓸데없는 걱정을 해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시켰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도림은 생각했다.



<도림> ‘그랬겠지. 그래야 상속자가 없어질 테니까.


그러니 채정인 같은 걸 시켜서라도 없애고 싶었던 거겠지.


자기들 힘만으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니.’



일전에 도림은 태휘의 재산을 정당한 상속자에게 돌이키고 싶은 그녀의 욕망이


‘그들’의 욕망과 부딪혀 상속 문제가 유정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반드시 그녀 자신의 문제가 될 거라고 예상했었다.


이제 보니 상속 문제는 그녀 자신과 유정, 그리고 태휘는 물론


전생에서 이어지는 악연들에게까지 얽히고설킨 모든 문제들에 꽤 깊이,


그리고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결국 이 문제는 그녀 자신의 문제임이 확실해졌다.


그리고 그 안에는 태휘와 윤정의 죽음도 해결과제로 포함하고 있었다.



<도림>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답은 하나네.’



그것은 진정한 상속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도림> ‘하지만 어떻게?


말이 쉽지, 나나 유정이나 미성년자일 뿐이고 상대는 재벌그룹 회장인데.


돈 좀 달랬다고 상큼하게 독이 든 찹쌀떡을 먹여버리는 변호산데.


<지록위마>(指鹿爲馬)급으로 진실을 왜곡하는 기잔데.


천목님이 사진에 소임이 있다고 했잖아.


그 소임이 상속을 되돌리는 게 아니란 말이야?’



예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천반산 목소리는 거울과 사진들이 ‘소임’을 다하면


자연히 그녀가 천반산에 찾아올 거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사진들이 제 맡은 ‘소임’을 다했음을 깨달을 때까지였다.



그것이 상속재산을 되찾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깨달은’ 뒤에는(‘소임’을 다했음을 깨달은 뒤에는) ‘그녀의 시간’은 끝이었다.



<도림> ‘우유 상하겠네. 알지도 못하는 유통기한이 이리도 짧아서야.’



도림은 실없이 웃고 말았다.






- 7 -




- 2021년 1월




참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이제 유정은 21세가 되었고, 도림은 20세가 되었다.


도림으로 치자면 전생에 다녀온 시간, 그 달팽이처럼 지나갔던 시간까지 합치면


벌써 골백번도 더 늙어 죽었을 시간이 지난 것이었다.



물론 나이가 찼어도 유정은 ‘고아’이므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고,


도림 역시 ‘아무나 가는’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그들이 뭔가 하기 위해 도모했던 일들은 코로나(註1)로 인해


집합금지명령이 떨어지면서 극심한 곤란에 처하고 말았다.


집합금지명령으로 가게들이 영업시간이 줄어들면서


알바 자리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워진 것이었다.



그것이 벌써 13개월째였다.



도림은 집에만 있자니 좀이 쑤셔서 H 법무법인에 무작정 찾아갔다.


일단 상담비용이 비싸지만 채정인의 면상을 좀 보고 싶었다.


나이가 들면 사람은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그 면상이 어떻게 변했을지도 보고 싶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회귀한 다음에도 몰랐지만, 사람 잡는 데 도가 튼 그 면상.


무슨 대책이 있다거나 작전을 짜 놨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것도 하루 이틀,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던 것도 한몫을 했다.



<도림> “상담료 비싼 건 좋은 동물원 구경 간 셈 치지 뭐.”



법인에서는 도림을 보고 의아해했다.


어리다고, 또는 어려 보인다고 법률문제가 없을 까닭이 없지만,


어린 사람이 보호자나 부모 대동 없이 홀로 나타나기는 그리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법인> “어떻게 오셨습니까?”


<도림> “상담 좀 받고 싶어서 왔는데요.”


<법인> “무슨 일로 상담을 받으려고 하시죠?”


<도림> “무슨 일이라기보다는 채정인 변호사님하고 상담을 하고 싶어서요.”


<법인> “아, 예약하신 그분이시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러더니 곧이어 정인이 나와 도림을 맞이했다.



<정인> “저희 법인에 실력 있는 변호사님들이 많으신데,


굳이 제게 의뢰를 해야겠다고 하셨단 말씀은 들었습니다.


그런 말씀을 들으니 꼭 무슨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아서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사연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도림> “채정인 변호사님께서 이 일을 잘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도림은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읊었다.


구실이야 무엇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녀에겐 상담 변호사가 정인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정인> “제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어쨌든 저를 찾아오셨으니, 그럼 사건을 한번 들어볼까요?”


<도림> “어떤 아이가 있었어요.


그 아이 아빠가 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아이 태어나기 전에 아빠가 죽고 그 가게를 동생이 가로챘거든요.


지금 그 가게가 잘 나가고는 있지만, 원래대로라면 아이가 받을 몫인 거잖아요.


그걸 되찾을 방법이 없을까요?”



정인은 앞에 앉은 도림을 수상한 사람이라는 듯 위아래로 훑었다.


이제 스물 갓 넘긴 여자가,


아직 학생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법한 사람이 아기가 있을 까닭이 있겠으며,


설령 있다 한들 아이 아빠가 재벌가의 자손이 아니고서는


굳이 상속이 문제 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인> “신도림 님의 아이인가요?”


<도림> “아니요. 제가 아는 사람의 아이예요.”


<정인> “그런데 그 어머니 되시는 분이 아니고 신도림 님께서 이 일에 신경 쓰시는 이유가 궁금한데요?”


<도림> “저희 언니 얘기라 그래요. 뭐든 돕고 싶어서······.”



도림은 둘러댔다.


여기에 지금 하는 말들이 아귀가 맞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정인> “먼저, 지금 아이는 몇 살인가요?”


<도림> “2001년생이에요. 22세죠.”


<정인> “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나요?”


<도림> “2000년에요.”


<정인> “지금 20년도 더 지난 일을 돌려놓으시겠다는 건가요?”


<도림> “천년이 지나도 도둑질은 도둑질이잖아요? 원래 주인이 찾아가겠다는데 20년이 대숩니까?”


<정인> “가게를 빼앗기셨으니 되찾고 싶으신 마음은 알겠지만, 사람들에게,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 가게가 누군가의 소유인지를 기억하기에


20년은 꽤 긴 기간이에요.


세상이 기억해 주지 않는다면 되찾기가 난망하겠죠.


더욱이 지금은 코로나 시대여서 가게를 되찾는다고 해도


특별한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되찾은 보람이 없으실 텐데요.”



<도림> “그러니 그 난망한 것을 가망(可望)하게 하려고요. 보람은 신경 쓰지 마시구요.”



도림은 전생에서 쓰던 ‘가망’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보고 제법 놀랐다.


정인은 ‘난망’이란 자신의 말이 ‘되치기’당한 것에 언짢은 듯 잠시 도림을 노려봤다.



<정인> “아이 아빠가 돌아가시고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1년 가까이 공백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법적으로 아이 아빠가 돌아가신 날과 아이가 태어난 날은 어떻게 되나요?”



정인에게는, 아무리 기구한 사연이 있다고 해도 이런 류(類)의 사건에서는


아빠 사망으로부터 아이 출생까지 300일이 넘는지 여부가 중요했다.(註2)


그마저 추정일 뿐이었으니, 법정에서 다퉈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필요했다.



<도림> “2000년 7월 돌아가셨고 아이는 2001년 3월생으로 돼 있습니다.


근데 그건 주민등록상 그런 거고 실제는 2001년 1월생이에요.”



<정인> “친자관계는 어떻게 증명하실 수 있죠?”


<도림> “이건 전적으로 제 생각이지만,


아이 할아버지나 할머니, 삼촌이나 고모하고 유전자 비교를 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정인> “그럼 그 비교 결과는 확보하고 계신지요?”


<도림> “거기서부터 풀어가 달라고 변호사님께 온 겁니다.”



정인이 보기에 이 건은 될 사건이 아니었다.


설령 DNA를 분석하여 친자관계가 확인된다손 치더라도,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


어차피 되지 않을 일, 그녀는 놀면서 돈이나 벌어 보자 하고 사건을 맡기로 작정했다.





=== 주석


註1. 코로나는 2019년 12월 31일에 보고되었다. 한국에서는 2020년 1월 21일 첫 확진자가 나왔고 2월에 맹위를 떨쳤으며, 이 부분을 집필하는 2022년 4월 현재 비로소 엔데믹을 바라보고 있다.


註2. 민법 제844조[남편의 친생자의 추정] 제3항. 혼인관계가 종료된 날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녀는 혼인 중에 임신한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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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거울-두 개의 기사 23.06.09 8 0 10쪽
61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3... 23.06.09 8 0 10쪽
60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2... 23.06.08 8 0 10쪽
59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1... 23.06.08 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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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거울-거울로 보고 싶은 세 가지... 23.06.05 9 0 10쪽
52 도림의 바다-아기를 두고 다시 천반산으로... 23.06.04 9 0 10쪽
51 도림의 바다-태휘의 죽음 23.06.04 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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