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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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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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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역 1번출구-신풍역 가는 길

DUMMY

6. 신풍역 1번출구





- 1 -




도림은 천반산 목소리에게 받은 물건들을 꺼내 죽 늘어놓았다.


제각기 맡은 ‘소임’이 있다는 말, 천반산의 ‘그’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거울은 그녀에게 잃어버린 5년의 일을 알려 주었다.


그것이 거울이 맡은 소임이라면, 그 5년을 반드시 알아야만 할 이유가


도림에게 있다는 얘기였다.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도리어 미치도록 궁금했었다.


그러나 불행했던 과거를 알아야 할 합리적인 이유란,


도림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혹시 정인과 지후의 불법을 밝히는 것이라면,


그들에 비해 그녀는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힘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도림보단 경찰이 하는 것이 맞았다.



신풍역 1번 출구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사진이 ‘맡은’ 소임이 무엇일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도 지난 5년과 신풍역의 접점은 없었다.


3년 전 F 보육원에서 원장이 기억하는 그 ‘뜬금없는’ 여자가


정인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제시했던 것이 신풍역 사진이긴 하지만,


단지 정인의 ‘과거’를 아는 것이 사진의 ‘소임’이라 하기엔,


사실 그 사진이 없었어도 정인이 그랬으리라는 것을 너끈히 추단하고도 남는다는 점에서,


천반산의 ‘그’가 준 사진이라기엔 값어치가 형편없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도림> ‘이건 거울이 얼굴 한번 봤다고 이제 그만,


기회는 한번 뿐입니다, 하는 거랑 다를 게 없지.’



도림은 신풍역에 가보기로 하고 채비를 했다.



지하철은 철길을 내달리며 철로에 철륜(鐵輪)이 규칙적으로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그것도 나름 백색소음이니 시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대림역에서 신풍역 가는 구간은 지하철을 건설한 공사 측에서도 민망했던지


좀 시끄러우니 참아 달라고 애교성 안내방송을 할 정도로 시끄럽기는 하였지만,


도림은 그것도 나름 매력이라도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 정도는 들어줘야 신풍역이 ‘오래 간직한’ 비밀에 접근하는 것을 허락(許諾)해 줄 거라는.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림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과거에는 지하철에 칫솔, 껌 등을 파는 사람들이 지나다녔는데,


그 사람들은 얼마를 벌어갔을까.


그네들도 나름 기업의 모양을 갖추고 있을 테지만,


파는 이들만 보는 사람들에겐 ‘날품팔이’의 모습이었다.


그 ‘날품팔이’를 유지할 만큼은 벌어갔을까.


물론 그때라고 지금과 달리 ‘지하철 날품팔이’가 불법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도림> ‘그러고 보면 <생존이즘>은 지하철의 숱한 CCTV도 겁을 내지 않는 것 같아.


물론 다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었겠지만,


그런 <감시의 눈길>조차 <불법이라 규정된 사람>의 생존을 향한


절박함은 막지 못했단 말이지.’



그네들처럼 지하철 객차 바닥에 서서 목청을 높여 장사해야만 하는 ‘생존이즘’이


그녀에게도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도림 역시도 나름대로는 뭔지 모를 절실함이 있었다.



지하철에는 이런 상인들 말고도 하모니카를 불며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지팡이를 짚고 그녀의 앞을 지나가던 사람도 있었다.



<도림> ‘저 사람은 <연민>을 파는 사람일까?’



이리 생각하고 있노라면, 옆에 앉은 사람들이 동전을 하나, 둘 던져주곤 했다.


그거 얼마나 할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생각하겠지만,


지금 생각으론 앞을 못 보는 사람들에겐 돈이 들어온다는 소리라도 들려줘야 하니,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이야말로 나름 큰 배려심에서


그리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도림> ‘그 정도 절실함이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믿어 줄까?’



그러는 사이 도림은 신풍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 사람들에게도 ‘봄’은 왔을까.



<도림> “어디, 비누 파는 사람은 없나?


그러면 내, 다 사줄 텐데.


하긴 지하철에서 장사하는 사람 씨가 말랐으니.”



1번 출구로 나오면서까지 도림은


평시의 2호선 신도림역 등하교 때와 같은 복잡함은 느낄 수 없었다.


환승역이 아니니 당연했다.


그리고 2호선과 달리 7호선인 신풍역을 운행하는 차량은 10량이 아니라 8량이었다.



<도림> “그래서 덜 복잡한 거겠지.”



물론 코로나 시대의 낮시간이라 그랬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고작 그런 이유들을 대고 끝내면


신도림역도 요즈음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은 것이 코로나 탓이 되고 마는 까닭에,


그녀는 신풍역이 신도림역보다 ‘나은’ 이유를 뭔가 다른 데서 찾고 싶었던 것이었다.



신풍역 1번 출구는 정말 특이할 것 없는 통로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것도 아니고 역명판이 괴상하게 생긴 것도 아니었다.


물론 다른 역의 역명판과는 달리 긴 -


정말 길어서 건물 1층 높이보다 큰 사각기둥 모양의 역명판이,


들어가는 입구 방향이 아니라 그 반대편 방향에 서 있는 것이 뜬금없기는 했다.



도림은 출입구 내외부와 에스컬레이터, 역명판 등을 찍었다.


그리고 주위 도로와 교차로도 찍었다.



<도림> “도대체 왜 나한테 신풍역 1번 출구 사진을 주었을까.


설마 역명판 세워진 걸 보라고 준 건 아니겠지?


또 허지후는 전생에서 왜 신풍역 1번 출구 사진을 찍어 보냈을까.


보라매공원(註1)하고 가까워서?”



가깝기로 치면 보라매역이 더 가깝지만,


신풍역이나 보라매공원과 누군가가 관련이 있다면 그것은 정인이었고,


2000년 정인이 살던 보라매공원 근처 옥탑방은 신풍역 1번 출구와 더 가까웠다.


정말 정인 때문에 신풍역 사진을 준 것이라면.



<도림> “아, 머리 아프다. 앞 못 보는 장님은 저들이 아니라 ‘나’였어.


하지만 나는 아무리 구해도 ‘봄’이 오지 않는구나.”



도림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녀는 묻고 또 물어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평범한 공원이었다.


마치 대학 캠퍼스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었다.


워낙에 넓어서 걸어서는 단과대학을 옮겨 다니기 힘든 그런.


공원 내부를 운행하는 버스도 그런 생각에 한몫을 했다.


그리고 중간에는 대학의 대운동장과 같은 공간도 있었다.



배가 고파진 그녀는 그 근처 매점에서 라면을 하나 샀다.



<도림> “저 나무 이름이 뭔가요?”



그녀는 운동장을 둘러싼 채 숲을 이룬 나무의 이름을 물었다.



<주인> “몰라요.”



주인의 대답은 간단했다.


모른다니.


물론 자신도 모르는 나무 이름을 쉽게 알 거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이 너무 빠른 것 아닌가.



그러더니 무려 라면을 사 가는 손님께 무려 카운터를 맡은 사람이


대답이 너무 성의 없어 보일 것이 걱정되었는지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되묻는다.



<주인> “푯말에 안 써 있어요?”


<도림> “안 써 있네요. 혹시 자작나무나 편백나무가 아닐까 싶어서 여쭤보는 건데······.”


<주인> “아니에요. 저건 동그란 열매 맺어서 내내 꽃가루 날리는 아주 나쁜 나무예요.”


<도림> “그렇군요.”



도림은 라면을 들고 매점을 나왔다.


졸지에 ‘나쁜 나무’가 된 나무는 무슨 죄일까 싶었다.



<도림> “괜히 물어봤어. 나무한테 미안하잖아.”



따지고 보면 나쁘기로 치면 정인보다 더한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도림에게는.



그녀는 마스크를 벗고 라면을 호호 불어가며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비워 먹었다.






공원 밖으로 나와서는 예전 정인이 살던 곳을 찾아가 보았다.


온통 아파트 숲인지라, 정인이 어디에 살았었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설령 사진을 찍어 두었다 해도 경위도 좌표를 기록해 두지 않은 이상은


찾기는 무리일 듯 싶었다.



<도림> “아파트 장사치들이 용케도 공원은 그냥 두었네.


먹을 걸 앞에 두고 어떻게 참았을까.”



도림은 온 김에 윤정이 죽었다는 곳도 가 보려고 했다.


물론 당시 기사에는 어디에서 죽었는지 명확히 나오지는 않았다.


그저 ‘후미진’ 곳이라고 했으니,


공원 옆 후미진 곳을 찾을밖에 도리가 없었다.


당연히 후미진 곳도 개발이 됐겠지만,


값어치가 안 나가는 물건(아파트 부지)이 팔렸을까 싶기는 했다.


그런 곳에 아파트를 지었을까.


한편으로는 그래도 서울인데 싶은 생각도 들었다.





=== 주석


註1. 신풍역과 보라매공원은 이 부분 집필 중인 2022년 4월 6일 답사하였다. 주변은 아파트로 가득하였고 2000년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일 것으로 생각되나, 2021년 1월 모습과는 그래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공원 내부는 공사가 한창이어서 군데군데 가림막이 있었는데, 2022년 신림선 개통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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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신풍역 1번출구-배왕(배달의 王足)에 군침 흘리는 태홍 23.06.13 10 0 10쪽
69 신풍역 1번출구-정인의 태휘 살해 고백 23.06.13 11 0 10쪽
» 신풍역 1번출구-신풍역 가는 길 23.06.12 12 0 9쪽
67 거울-아줌마, 나 도림이예요... 23.06.12 14 0 16쪽
66 거울-정인, 도태휘를 듣다... 23.06.11 10 0 10쪽
65 거울-도림, 정인을 만나다... +3 23.06.11 15 1 10쪽
64 거울-아기를 찾는 비밀 이름 23.06.10 8 0 10쪽
63 거울-그를 해코지하려 했던 사람들 23.06.10 12 0 10쪽
62 거울-두 개의 기사 23.06.09 9 0 10쪽
61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3... 23.06.09 10 0 10쪽
60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2... 23.06.08 11 0 10쪽
59 거울-거울이 들려준 잃어버린 5년 1... 23.06.08 11 0 10쪽
58 거울-도림 곁에 살아있는 전생의 인연들 2... 23.06.07 10 0 10쪽
57 거울-도림 곁에 살아있는 전생의 인연들 1... 23.06.07 12 0 10쪽
56 거울-절망, 그리고 또 다시 천반산으로... 23.06.06 9 0 10쪽
55 거울-이오카스테의 저주 23.06.06 10 1 10쪽
54 거울-Z 보육원의 그 아기 23.06.05 15 0 10쪽
53 거울-거울로 보고 싶은 세 가지... 23.06.05 13 0 10쪽
52 도림의 바다-아기를 두고 다시 천반산으로... 23.06.04 12 0 10쪽
51 도림의 바다-태휘의 죽음 23.06.04 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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