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움직이는 그림자
너무나 짧은 시간에 급격하고 충격적인 일을 겪은 지연이 깊은 잠에 취해 있는 모습을 안쓰럽게 내려다 보는 눈이 있었다.
‘ 설희! 너를 지키지 못한 나를 위해 너의 모습으로 내게 다시 보내준 이 여인만은 꼭 지키고 싶구나. 이 못난 오빠를 이해해 주겠니? ’
거의 100년 전 자신과 결혼을 해달라는 구혼에 펄쩍 펄쩍 뛰며 좋아 했던 설희의 모습이 의자에 기대 눈을 감은 준의 앞에 아른 거리자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 으으으음, 아니예요, 나, 난 간첩이 아니예요! ”
순간 비명을 지르며 튕기듯이 침대에서 일어난 지연이 한동안 초점 없는 눈동자로 방 안 정경을 바라보다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준의 모습에 울음을 터뜨리며 준의 품에 안긴다.
“ 오빠, 왜 이제야 왔어? 어어어어헝, 내,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
“ 정말 미안하다, 정말로..... ”
자신의 품에 안긴 지연을 왼손으로 안고 오른손으로 지연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준의 손길에 잔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지연의 어깨가 조금씩 안정을 찾는다.
“ 오빠, 으흐흑, 어디 가지마! 내 옆에 있어 줘. ”
“ 알았다. 내 옆에 있어 줄께! 물 한잔 줄까? ”
“ 응! ”
지연이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준을 바라본다.
“ 천천히 마셔! ”
준이 내민 투명한 잔의 맑은 물을 조심스럽게 끝까지 마신 지연이 빈 잔을 내밀며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 여기가 어디야? 오빠 집? ”
“ 아니! 아주 안전한 곳이야.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 ”
“ 그럼 그 국정원 요원이 다시 나를 찾아 오지 않는 거지? ”
“ 절대로 너를 그 놈들 손에 내 주지 않을 테니 걱정 하지마! 당분간 이곳에서 머물며 심신을 안정시켜. 여기에 네가 오래 동안 머물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있어. 당분간 아무한테도 연락 하지 말고! ”
“ 알았어, 오빠! 나 배고픈 것 같은데.... ”
“ 알았어, 잠시만! 내가 아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게. ”
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쪽으로 나가자 지연이 자신이 누워 있었던 방안을 찬찬히 둘러 본다. 잠시 후 아주 맛있는 냄새가 방안으로 살며시 넘어 들어오더니 준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 지연아! 나와서 밥 먹자. ”
지연이 침대를 빠져 나와 방을 나서자 큰 마루 건너편 주방에서 준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 공주님을 위한 최고급 안심 스테이크과 와인 대령 이오! ”
준이 익살스런 표정으로 고급 스런 식탁에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볼 듯한 식기에 플레이팅된 스테이크와 붉디 붉은 와인잔을 비추는 두 자루의 분위기 있는 초를 켠 채 지연을 바라 본다.
“ 와우! 이쁘다. ”
“ 이리 와! ”
준이 내민 손을 잡고 준이 빼주는 의자에 자리를 잡자 바로 옆에 준이 앉아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 든다.
“ 내가 잘라 줄테니 그냥 드시기만 하세요! ”
지연을 위해 스테이크를 한 입에 먹기 좋게 잘라내는 준을 보며 지연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떠오른다.
“ 와우! 정말 맛있어, 오빠! ”
“ 그래, 많이 먹어. 언제 든지 또 해 줄게. ”
지연이 준이 잘라 주는 스테이크와 와인을 연신 먹고 마시는 모습에 준이 편안한 웃음을 짓는다. 식사를 다 마치고 준이 그윽한 향이 인상적인 내린 커피 두 잔을 들고 다시 자리로 돌아 온다.
“ 향이 끝내 주네! ”
“ 좋은 커피 라고 아는 동료가 선물해 준 거야. ”
“ 오빠! 나를 구해준 사람들이 오빠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야. ”
“ 응! 맞아. ”
“ 그런데, 내가 거기에 있는 줄 어떻게 알고 찾아 온거야? ”
지연의 물음에 준이 커피잔을 내려 놓고는 오른손 검지를 들어 지연의 왼편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앙증맞은 브로치를 가리킨다.
“ 이것 때문! ”
“ 이거? 오빠가 선물해 준 브로치? ”
“ 그래! 혹시 몰라서 이 브로치에 위치 추적기를 심어 놓았거든. ”
“ 엉? 나 몰래? 나 바람 필까봐? ”
지연이 짐짓 화난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 하자 준이 웃음을 터뜨린다.
“ 맞아! 네가 나 말고 다른 사람 만날까봐.... 후후 ”
“ 걱정마셔! 이런 것 10개 달아 줘도 오빠가 걱정 하는 일은 안 생길 테니까. 그런데, 오빠가 하는 일이 도대체 뭔데 그런 특공대 같은 사람들이 오빠를 캡틴이라고 하고 이런 위치 추적기를 사용 하는 거야? ”
“ 으음! 아주 쉽게 이야기 하면 이 오빠는 국제적으로 움직이는 용병대에 속해 있어. 지연이를 구해 준 그 친구들과 같이 일하고 있어. ”
“ 오빠는 전세계 AI의 석학에게 도움을 줄 정도의 지식이 있고 여명 이라는 재단에도 몸을 담고 있고 거기다가 국제 용병단체의 팀장이라고? 도대체 오빠 정체가 뭐야? ”
“ 나? 내 진정한 정체를 알고 싶어? ”
“ 응! ”
준이 누가 들을것이 두려운 사람처럼 주위를 살피더니 지연에게로 몸을 기울여 속삭이듯 대답을 한다.
“ 네 남자! ”
“ 피이! 장난하지 말고... ”
준의 장난에 기분이 한껏 좋아진 지연이 커피향이 그윽한 잔을 들며 한 모금 마실 때 준의 오른팔에 있던 스마트 워치가 진동을 한다.
“ 잠깐만! ”
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옆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는 탁자에 놓여진 폰을 든다. “
“ 캡틴! ”
“ 응, 말해! ”
“ 이 자들 신분증은 국정원 소속이 맞는데요. 폰에는 알 수 없는 암호로 저장 되어 있는 번호들이 많아요. 노트북의 파일은 죄다 암호를 걸어 놓았구요. ”
훈이 지연이 납치된 안가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1차 분석한 결과를 설명 한다.
“ 맨 마지막 방에서 지연이를 취조 하던 놈의 핸드폰 번호 중 최근 가장 많이 걸고 받은 전화 번호 10개만 추려 놔 줘. 노트북은 내가 가서 해결 할게. ”
“ 알겠어요! ”
“ 지나 한테서 연락 온 것은? ”
“ 아직이요! ”
“ 지나에게 요청한 것이 빨리 진행 되도록 훈, 네가 도움을 줘. ”
“ 알겠어요, 캡틴! ”
****
“ 뭔 소린지 제대로 설명 해 봐! ”
지연을 납치하고 취조 하다 준에게 얻어 터져 정신을 잃어 버린 국정원 대공수사국 요원이라는 자가 부동 자세로 어두운 방 저편에 앉아 있는 누군가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 그, 그게.... ”
“ 있는 사실 그대로! ”
“ 네, 지시 하신대로 세기 일보의 이지연 기자를 잡아다 저희 안가에서 취조를 하던 중 갑자기 들이 닥친 세 명의 복면인에게 당한 후 이지연이라는 년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
“ 그 안가에 요원이 몇 명 있었지? ”
“ 저를 포함 총 일곱입니다. ”
“ 총기는 다 안가지고 있었나? ”
“ 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처 총을 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당해 버렸습니다. 다른 요원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자신이 언제 당했는지 모르고 당한 요원이 셋 이고 나머지 셋은 적을 인지 하였으나 손 몇 번 써보지 못하고 쓰러졌다고 합니다. ”
“ cctv는? ”
“ 그, 그게 말입니다..... 전부 다 포맷이 되어 있었습니다. 단 하나의 화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
“ 이런 머저리 같은 놈들..... 안가에 들어 서는 골목 구석 구석에 cctv는 확인해 보았나? ”
“ 네, 그런데 그 놈들이 드나든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
“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그 놈들이 유령이라도 된다는 거야? 안가에서 여자 하나를 구해 데리고 나간 놈들의 사진 한 장 못 건졌다는 거야? ”
“ 죄, 죄송합니다! 저희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지금 한창 파악 중입니다. ”
“ 알았으니까 그만 나가 보고 박팀장 튀어 들어오라고 해! ”
복면인에게 얻어 맞아 얼굴이 부을대로 부은 요원이 비틀 거리며 방을 나선 잠시 후 검은색 양복의 날렵한 몸매의 준수한 30대 중반 정도의 남자가 들어 선다.
“ 부르셨습니까? ”
“ 보고는? ”
“ 다 받아 보았습니다. 혹시 몰라 안가에 요원들 몇을 투입 해서 현장 감식 중에 있습니다. ”
“ 세 놈이라고? ”
“ 네, 요원들의 말에 의하면 프로의 솜씨라고 합니다. ”
“ 지들이 당해 놓고 프로라고 하면 이 세상에 프로 아닌 놈들이 어디 있어? 머저리 같은 놈들! ”
짙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저 멀리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 중앙의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 이리와 앉아! ”
현 정권의 최대 실세인 민정 수석 우상훈이 손에 든 담배를 탁자에 놓인 대형 크리스탈 재떨이에 올려 놓고는 민정 수석실 산하 특수 공작조 박찬열 팀장에게 지시를 한다.
“ 그 년이 시끄럽게 떠들기 전에 우리쪽에서 먼저 언론에 터뜨려! 그 년이 간첩 혐의를 받고 내사를 진행 하던 중에 도망 쳤다고...... 그리고, 그 기사의 출처는 북한일 수 있다고 3개 일간지에 때려. ”
“ 알겠습니다! ”
“ 한창 댓글 부대원들을 통해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 중에 그 망할 년의 기사 때문에 일이 어려워 졌어. 그리고 우리 쪽 우익단체들한테 가짜 기사에 대해 성토 하는 집회를 지시해. 돈은 넉넉히 보내서 일단 북풍으로 몰아 가자구! ”
“ 네, 바로 준비해서 내일 조간신문에 실어 보내겠습니다. ”
“ 그리고, 그 년과 그 년을 탈취해 간 놈들 반드시 잡아! 최대한 빨리. ”
“ 네, 알겠습니다! ”
박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서자 우수석이 재떨이 위의 담배를 다시 들어 깊게 들이마시고는 중얼 거린다.
“ 이거 최후의 수단을 쓸 수 밖에는 없는 것인가? 좋지 않아, 정말..... ”
****
“ 네, 알겠습니다. 보내 주시면 확인해 보겠습니다. ”
자신의 스마트폰을 책상에 내려 놓은 해외 정보국 이동욱 국장이 방금 자신에게 정보를 준 여명의 대표 이사와의 통화 내용을 상기 해 본다.
“ 국정원 대공수사국, 해외 정보국, 대테러 지원국 소속 신분증을 가진 놈들이 우리가 모르는 안가에서 이지연 기자를 납치해서 자신이 남파된 간첩이라는 자백을 강요 했다? 내 국에서는 그 청와대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온 정지원이라는 놈이 포함되어 있고? 흠! ”
뭔가를 생각 할 때 마다 손가락으로 번갈아 탁자를 두드리는 버릇이 있는 이국장의 손가락이 바쁘게 탁자를 오가고 있었다.
“ 청와대의 그 누군가가 일본과 눈이 맞았다? 김국장의 말로는 민정 수석실이 개입되어 있다고 했는데 설마....... 아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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